크리스틴의 양초
조세핀 테이 지음
이리나 옮김
블루프린트 펴냄
2016년 9월 발행
2점 ★★ 에효


:: 오빠한테 양초 살 돈 1실링만 남긴 유서

추리소설은 제목이 대개 주요 단서, 힌트,  혹은 맥거핀(중요한 척하는데 시선 돌리기일 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크리스틴의 양초. 크리스틴은 희생자 이름이고 그 사람의 양초라면 단서일 텐데, 초반 아무리 읽어도 양초는 안 보이고 옷에서 떨어진 싸구려 단추가 엄청 중요하다. 그 단추가 범인의 옷에서 떨어졌다고 추정하기 때문이다. 초중반에 와서야 양초가 등장한다. 유서에 나온다. 

'오빠 허버트에게 양초 살 돈으로 1실링' A Shilling for Candle 원서 제목은 유서 내용 그대로다. 초 살 돈 1실링. 크리스틴의 양초가 아니라 허버트의 양초다.

주 용의자는 유서에서야 갑자기 등장한 오빠가 아니라 아주 가까이 최근까지 같이 지내던 사기꾼 같은 남자 로버트 티스덜이다. 최근 작성한 유서에는 그한테 많은 재산을 주는 것으로 나와 있다. 범인인가? 하는 행동을 봐서는 너무 바보 같아서 아닌 것 같은데... 연기라면 대단한 배우겠고. 티스덜은 도망을 치고 그런 중에 자기가 죽였다는 미치광이 여자 등장에 그랜트 경감은 짜증이 나서 미칠 지경이다.

내가 범인이라면? 내가 그라면 다음 행동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다시 스스로 대답해 보는, 두 경찰의 모습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수사과 경찰이라면 정말 이렇게 할 것 같다. 용의자는 놓치고 수사는 진전이 없다. 진짜 수사는, 코트 찾아 삼만리, 에리카라는 소녀가 맡게 된다. 갑자기 청소년 탐정 소설이 되네.

이야기는 용의자로 이 사람 저 사람 짚어 보다가 다시 허버트와 양초에게로 되돌아간다, 드디어. 이제 후반부다. 그리고 그 망할 단추 떨어진 코트도 찾아낸다. 여기까지 읽었어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 드러난 정체는 정말이지 너무하네. 계속 헛짓했던 거네. 참, 유서는 뭐야? 여전히 의미를 모르겠는데... 맥거핀이었나?

이 작가는 추리소설이라면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대놓고 하는데,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썼는지 모르겠다. 사람 외모를 보고 판단하고, 경찰이 감으로 수사하고, 결정적인 사람이 이야기 끝에서 자백 혹은 증언을 한다. 초중후반까지 범인이나 사건의 진상을 알 수 없으면 그게 미스터리라고 여긴 모양이다. 끝까지 읽어 준 독자에 대한 예의라고는 십원 한 푼어치도 없는 작가다.

조세핀 테이의 소설은 이야기가 아니라 문장 때문에 읽는다. 아, 정말 글 잘 쓴다. 이야기는 잘해 봐야 2루타지만 문장은 언제나 홈런이다. 문장 속에 살고 싶을 지경이다. 아, 그놈의 관상쟁이는 그만했으면 싶은데, 정말 꾸준히도 나온다. 미스터리 빵점. 문체 백점.

사랑에 빠져도 결점을 무시하지 않는다. 
잘 알고 있으면서 그것마저 끌어안는다. 
그래 그게 사랑이다. 

뭐야? 어느새 조세핀 테이 문체 흉내내고 있네.
사랑했다, 조세핀 테이의 문장을.
잊으리라, 조세핀 테이의 미스터리를.

2024.8.7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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