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惡意 (1996)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 2008년 초판
5점 ★★★★★ 끝내줍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 '악의'에서 인간성의 단면을 날카롭게 묘파해냈다. 추리소설 장르에서 안주하는 그저그런 이야기로 쓰지 않았다. 범인 찾기 놀이와 트릭 보는 재미로 독자를 위한 놀이 한마당을 열고 잊혀지는 소설이 아니었다. 이토록 읽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다니. 놀라운 솜씨다. 

소설 주인공 가가 형사의 수사만큼 끈질기게 기필코 우리 모두에게 있을법한 '그 괴물'을 기어끼 꺼내 코앞에 들이댄다. 이런 악의적인 작가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다. 스콧 스미스의 '심플 플랜' 이후 이런 작품은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 여겼는데...

잘 팔리는 작가라고 해서 어떻게든 책에서 못난 점을 찾으려고 혈안이었다. 아무리 잘 써도 그냥저냥 괜찮네 정도로 폄하시켜 내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불행을 감추고 싶었으리라. 그래, 어쩌면 나도 또 한 명의 노노구치이리라. 이름부터가 마음에 안 들더니. 

초반부 서술 트릭을 읽을 때만 해도 별 기대를 안 했다. 뻔히 나 범인이라고 말하는 문장과 이 수기는 제 멋대로 꾸며낸 거라는 게 확연히 보였다. 시시하게 끝나겠네. 하하핫. 드디어 이 작가 씹어 줄 때가 되었다고 속으로 엄청 좋아했다. 후반부를 읽을 때까지도 여전히 나는 이 작가를 어떻게든 깔아뭉게 버리고 싶었다. 예상했던 반전이었다. 그래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데...

마지막 세 쪽에서 지고 말았다. 담배를 피울 수 있으면 좋으려만, 나는 담배를 못 피운다. 그저 찹찹한 심정을 삼키고 한 마디만 덧붙인다. 최고다.

악의
惡意 (1996)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 2019년 개정판
5점 ★★★★★ 끝내줍니다

개정판으로 다시 읽은 '악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작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감상은 꽤 많이 달라졌다. 세월도 많이 지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트릭과 결말을 어느 정도 알고서 다시 읽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 시대 기술 수준이 그대로 나오고 있어서 아무래도 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포토앨범시디라니. 스마트폰, 인터넷, AI 시대에는 고대 유물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서술 트릭을 이 정도까지 완성시켰다는 점은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서술 트릭.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의 호불호가 갈린다. 범인과 수법이 가장 나중에 밝혀지는 식을 선호하는 추리소설 애독자한테는 이 작품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초반에 범인과 수법이 밝혀지고 게다가 신뢰할 수 없는 화자 1인칭 시점 수기라니. 추리소설에서 싫어하는 것이 한 개도 아니고 두 개 연속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악의라는 범행 동기를 밝혀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정교하게 디자인된 작품이다. 반전 추리소설 기술력을 보여준다. 이게 최고가 아니면 뭘 최고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이 소설에서 바라는 것은 재미와 감동이다. 둘 다 있으면 좋지만, 둘 다 소설에 쓰기는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악의'보다 '용의자 X의 헌신'을 더 좋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나 자신도 이제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소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선해도 미움을 받는다는 얘기다. 심지어 악의를 품어 선한 자를 죽이려고까지 한다. 인간 본성의 악한 측면을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은 결코 유쾌할 수 없다. 악플 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 수밖에 없나 보다. 집단 따돌림과 학교 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저 계속 외면할 것이다. 이런 생각에 빠져 버렸다.

학교 폭력(집단 따돌림)을 다루고 있지만
속시원하게 뭔가 해결해 주는 건 없다.

소설 '악의'는 좀 과하게 요약하면
악플 다는 인간 본성을 보여준다.

고양이 독살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서술 트릭. 추리소설에서 1인칭 서술이
시작되면 거르는 게 낫겠다.

작가는 독자를 속이는 재미로
독자는 속는 재미로 추리소설을 읽는다지만
읽은 후 허무함을 달래줄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재미있었잖아?
그래 최고로 재미있었다.
그럼 됐지 뭐.

2024.9.24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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