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왜 짧은가 - 세네카의 행복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오래된 질문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도서출판 숲 | 2005년 10월
이 책 '인생이 왜 짧은가'는 세네카의 저작들 중에서 '대화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10편의 에세이에서 4편을 골라 번역한 것이다.
인생의 짦음에 관하여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
섭리에 관하여
행복한 삶에 관하여
편지 형식으로 읽는 이한테 인생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세네카의 글을 읽으면서 무척 놀랐다. 이거 어디서 이미 읽은 내용이었다. 헨리 소로우의 '월든'과 아놀드 베넷의 '시간관리론'은 세네카의 글을 가져다 썼다고 해도 될 만큼 이 옛날 사람 세네카가 쓴 글을 자기 식으로 조금 변형했을 뿐이었다. 소로우와 베넷한테서 배신감을 느낄 정도였다.
어쩌면 세상에 새로운 것이란 근본적으로 없는 것이라, 이미 옛날 사람들 한 말, 한 고민, 한 생각을 오늘날 사람들도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리라.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혹은 행복하고자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고통, 고난, 실패, 불행, 불운에 시달리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자기계발서를 아무리 비난한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한테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기계발서의 핵심은 외부적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면, 내심, 의지, 마음을 바꾸거나 굳건하게 하는 것이다. 닥치는 불행, 갑자기 찾아오는 행운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느냐가 전부다. 세네카의 글은 이 마음가짐에 대한 친절하고 자상한 충고이다.
착한 사람한테는 복이, 나쁜 사람한테는 불행이 온다는 것은 산타만큼이나 거짓말이라는 것을 뻔히 아는 나이에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철학적인 문제이자 당장에 현실적인 고민이다.
왜 착한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냐는 물음에, 세네카는 '섭리에 관하여'에서 직접적인 답이 아니라 우회적인 해설을 내놓는다. 선한 이에게 불행으로 오히려 더 단련되고 더 인간답게 처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악한 이에게 행운은 그 사람을 더 악으로 이끌어줄 뿐이란다. 동문서답인데, 결국 인생의 길흉화복 자체는 우리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알려준다. 그러니까 노력하면 성공하는 게 아니라 노력하는 것 자체의 덕목을 유지하라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였다.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에서도 세네카는 같은 견해/태도를 유지한다. "우리의 마음은 모든 외적인 것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네. 우리의 마음은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을 좋아하고, 자기 것을 존중하고, 남의 것을 되도록 멀리하고, 자신에게 헌신적이어야 하네." 116쪽 이에 따라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외부의 불행, 행운, 부, 명예, 병, 기타 등등에 그다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인생의 짦음에 관하여'에 보면 사람이 왜 인생을 낭비하고 허투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이 글은 아놀드 베넷의 '시간관리론'과 무척 비슷하다. 소로우의 '월든'을 읽는 듯했다. 그러면서 실용적인 해결보다는 더 근본적 인식을 제시한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계속 불안하고 불만에 사로잡힌다. 왜? 답은 간단하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자신을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남을 위해 자신을 소모하고 있지요." 11쪽 바쁘게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정작 그게 그다지 중요하지도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니까 시간을 낭비한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고 왜 이렇게 인생이 짧은가 한탄하게 되는 때가 온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은 지금 자기계발서 뭘 읽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당장 덮고 이 책을 읽기 바란다. 나도 웬만한 자기계발서는 두루 읽어 봤다. 그리고 많이 실망하고 많이 낙담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세네카는 성공이 아니라 성공 그 자체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차분하고 진솔한 어투로 말해주고 있다.
도대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세네카는 '행복한 삶에 대해여'에서 "올바르고 확고한 판단에 기초하고 있어 동요하는 일이 없는 생활"(175쪽)이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올바르고 확고한 판단이 바로 철학, 인생와 세상에 대한 생각, 좁혀 말하면 스토아 철학이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행복하려고 너무 애쓰기 때문이다. 행복하려고 애면글면 집착하는 것을 버리고 담대하게 인생을 사는 것이 진짜 행복이다. 세네카가 그토록 침착하게 자살 명령을 수행했던 것은, 이같은 철학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삶을 살았으나 참으로 비극적이고 부조리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세네카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자결함으로써 자기 철학을 몸소 실천하여 완성한다. "그들이 가끔 죽기를 원하는 것은 사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52쪽 세네카는 자기 성찰로 죽음마저 평정한다. "자유는 운명에 무관심할 때에만 얻을 수 있어요."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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