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를 쓰는 방법
Mystery Writer's Handbook
미국추리작가협회 지음
로렌스 트리트 엮음
정찬형, 오연희 옮김
모비딕 펴냄
2013년 2월 발행
전자책 없음
추리소설 쓰는 방법을 알아보려고 읽었다가, 역시나 소설 쓰는 것은 쉽지 않구나를 깨달았다. 장르소설이라고 해서 쓰기 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이지 오만이다.
어렵든 쉽든 어쨌거나 이 책으로 추리소설 쓰는 방법을 알아보자.
첫째, 추리소설을 쓰는 것과 추리소설을 읽는 것은 그 방향이 다르다. 아무리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도 정작 쓰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이 점을 모르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의 독자는 추리소설 작가가 뿌려 놓은 여러 단서를 보면서 용의자들 중에 범인이 누구인지 생각한다. 작가는 반대다. 범인을 정한 후 최대한 범인을 알아차릴 수 없도록 하면서 여러 실마리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 드러낸다.
둘째, 범죄소설을 쓰기 전에 배경지식을 얼마나 갖추었나 반성해 보라. "추리소설 작가에는 '현대범죄수사' 같은 범죄 수사 교과서나 '법의학, 병리학, 독극물학' 같은 법의학 교과서, 그리고 '범죄학 개론' 같은 경찰학 교과서들의 최신판이 필요하다." 9~10p
이미 읽은 소설에서 대충 알고 있으면 충분할까. 사후경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나라 경찰조직은? 그들이 쓰는 은어는? 우리나라 법의관은 어떻게 일하고 있나? 교도소는? 형법은? 범죄 재판 과정은? 미행은 어떻게 하는가?
그런 거 몰라도 재미있게 쓸 수 있을 거라고? 그딴 거 몰라도 추리소설을 쓸 수 있다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데뷰작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은 독극물 지식과 영국 특유의 법률 지식으로 만든 작품이다. 알아야 쓴다. 상상만 해서는 쓸 수 없다. 재료 없이 요리가 안 되듯.
물론 이런 지식을 무시하거나 아예 멋대로 꾸며 쓴 추리소설도 있긴 있다. 밀른이 쓴 '빨강집의 수수께끼'는 형사 사건 수사의 기본 절차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 편한 대로 썼다. 그리고 그렇게 써야 이야기가 성립된다. 이 이야기에서 신원 조회 문제는 수수께끼의 핵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말이냐. 범죄 수사 관련 지식을 정확하고 명확히 알고 있되, 지나치게 사실대로 쓸 필요는 없다. 소설은 사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보이게 쓰는 것이니까.
픽션과 논픽션은 다르다. 달라야 한다. 병리학자가 퍼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에서 법의학 관련 묘사가 실제와 너무 달라서 황당했다고 해도, 소설에서는 용납이 된다.
셋째, 소설 쓰는 방법 자체는 정말이지 간단하다. 문제는, 간단해 보여도 실제로 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 제4장 플롯에서 프레드릭 브라운이 살짝 웃음이 나게 가볍게 쓴 글을 읽고나면, 소설 쓰기가 얼마나 힘든 노동인지 알게 된다.
브라운이 말하는 플롯 쓰기 방법은 '덧붙임'이다.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대 쉽지 않다. "덧붙임은 인물, 주제, 배경, 단어 등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시작할 수 있다. 덧붙임을 통해 거기서부터 플롯이 만들어진다." 57p
소설 쓰기는 상상하고 생각하고 느끼면서 문장을 하나씩 만드는 일이다. 생각을 해야 하고 문장을 써야 한다.
가만히 방에서 놀고먹으면서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소설 쓰기는 철저한 정신노동이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이야기를 뽑아내는 작가의 경험담에 경악했다. 노동도 놀이처럼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럴 수 있겠는가.
넷째, 퇴고가 프로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를 나눈다. 정확히는 작품에 대한 애정 유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퇴고는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철저하다. 글쓰기의 진짜는 초고가 아니라 퇴고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매뉴얼일 뿐 현실은 아니다. 지키면 좋을 거라는 것이 꼭 지키라는 것은 아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다.
퇴고의 관점에서 엄밀히 볼 때,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는 아마추어 작품이다. 그는 명백한 오류 지적에도 원고를 수정하지 않았다. 한 번에 내달려 쓰고는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도일이 홈즈를 싫어했다는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이다. 돈 때문에 쓴 것도.
반면 끝도 없이 퇴고를 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한 문단 혹은 한 문장 안에 계속 뭔가를 집어 넣으려는 짓이 프로라고? 미친 짓이다. 정상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퇴고란 삭제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공들여 힘들여 쓴 글을 내 몸 같은 글을 잘라내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의 영역이라기보다는 편집 디자인의 측면이다. 대개 작가들은 죽어도 자기가 쓴 글을 삭제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느니 자기 팔다리를 잘라낼 것이다. 힘들여 썼는데 그걸 지우려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퇴고는 글이 빠르고 정확하게 읽히게 수정하는 것이다. 초고를 되는 대로 쓴 후에 퇴고에서는 쓸데없이 반복되는 구절이나 표현, 군더더기의 부사와 형용사를 잘라낸다. 그러면 문장과 문단과 글 전체가 가볍고 빠르게 읽히게 된다.
퇴고는 독자 입장을 생각해야 할 수 있다. 독자가 잘 읽도록 배려하는 작업이다. 작가 본인 입장만 생각하면 절대 한 글자도 고칠 수 없고 고치기 싫으며 고치기를 거부한다. 왜 애써 추가 노동을 해야 하는가.
이 책 스테디셀러다. 절판 안 되고 계속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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