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탄생
마이클 래비거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년
편지나 보고서 같은 일상 실용문이 아니라 허구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남들과는 다른 삶을 꿈꾸는 것이다. 책으로 나올 때까지는 자신만 이 사실을 알고 지내고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지 않는다. 그만큼 픽션 창조는 평범한 일상은 아니다.
픽션(소설, 시나리오, 드라마) 쓰는 방법을 알고 싶은 분이 있다면 다른 그 어떤 책보다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연습 과정을 잘 마련해서 웬만한 창작 교실보다 낫다.
당장 실천해 볼 수 있는 창작방법을 마련해 놓았다. 특히, 클로새트는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방법이다. 극작가 이강백이 다른 한 분과 공동으로 펴낸 창작론 책을 펴 보면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클로새트(CLOSAT)는 픽션을 구성하는 요소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든 단어다.
C character 인물
L location 장소
O object 사물
S situation 상황
A act 행동
T theme 주제
전체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의 구성 요소를 평소에 조금씩 하나씩 만들어 둔다. 그러다가 이것들을 결합하고 확대하고 배열해서 창작하는 것이다.
누구나 이야기를, 그것도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픽션을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근거는 모든 삶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다. 그 이야기가 진지하게 진실을 탐구하면 통찰의 순간에 이른다는 것이다. 좋은 예술 작품은 그 진실의 통감이다.
목차와 겉모습은 자잘한 창작 기술을 가르쳐 주는 듯 보이나, 들어가서 살펴보면 글쓴이 마이클 래비거의 철학이 스며 있다. "이 책은 개별 인간은 그 자체로 완전한 인격체라는 신념에서 쓰였다.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좋은지 알고 싶으면 바로 자신의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신념에서 쓰였다. 좋건 싫건, 이런 작품만이 당신의 열정을 유지할 수 있다." 250쪽
요리와 달리, 이야기는 방법을 안다고 바로 써낼 순 없다. 이 책을 안 읽었어도 이미 많은 작가들이 많은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다. 그들이 대체로 이 책에서 설명한 방법을 쓰고 있을 뿐이다.
대학생 때,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픽션을 써댔다. 원고지 5장짜리 짤막한 콩트에서 원고지 1200매짜리 장편소설로까지 나아갔다. 아무도 내게 글을 쓰라고 하지 않았다. 너에게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말해 준 이도 없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쓰는 거라고 알려주는 책도 읽지 않았다. 나는 내면과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대담하게 그대로 글로 노출시켰다. 쓰는 일에 몰두하자 방법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이야기를 처음 지어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그다지 독창적이지는 않았다.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조합해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옆집 5학년한테 이야기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아이는 내 말을 100% 사실로 받아들였다. 재미는 있었으나 거짓말을 했다는 미안함에 내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고백했다. 그때 그의 얼굴에 나타났던 실망감은 내가 지어낸 이야기에 빠져들어 행복해 했던 표정과 겹쳐 지금도 기억난다.
대학 졸업반 시절, 소설론 강의 시간에 내가 지어낸 짧막한 이야기 두 편을 학생들 앞에서 소리내어 읽었다. 박수를 받아 기뻤으나 그들의 놀란 표정이 당혹스러웠다. 마치 "외계인이 나타났다!" 하고 말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픽션을 쓸 수 있는 사람, 혹은 쓰려는 사람은 흔한 편이 아니다. 내가 소설을 썼다고, 혹은 쓰려고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너처럼 평범한 사람은 소설을 쓰기 어렵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나도 모르게 믿어 버렸고 이내 창작은 멈췄다.
요즘 주변 사람들한테 듣는 얘기는 내가 정말 특이한 사람이며 나 자신을 소설로 쓰라고 할 정도다. 나 자신이건 주변 사람이건 이미 있는 이야기의 캐릭터를 등장인물로 활용하건 이야기가 굴러간다면 가져다 쓰면 된다.
이야기는 작가가 자신과 타인과 세상에 대한 반응 혹은 해석이다. '작가의 탄생'이란 그 누구든 우리와 우리 세상에 대해 진솔하고도 공감할 수 있게 말하는 순간이리라. 자기가 절실하게 느낀 삶의 진실을 과감하게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작가가 될 수 있다.
이 책을 곁에 두고 작가로 태어나라. 비밀스러운 삶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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