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이기숙 옮김/문학동네
글을 단지 읽기만 하려는 사람에게, 잘 쓴 글은 그저 고맙고 재미있을 뿐이다. 허나, 글을 잘 쓰려는 사람에게 잘 쓴 글은 때때로 절망감을 안겨 준다.
이 책은 글쓰기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사람들한테는 재미있는 읽을거리다. 어느 쪽을 펴도 상관없다. 한두 문단을 읽기 시작하면 멈추지 못할 정도로 잘 읽힌다. 평범한 단어의 간결한 조합으로 평이한 문장만을 나열하면서 이토록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니, 경의롭다. 이는 내가 목표로 했던 글쓰기였다. 정답을 봐 버렸을 때, 허탈감이란.
낯선 독일 문학 작품이 나열되고 있음에도 이토록 잘 읽히는 건,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글솜씨 때문이다. 화려한 문체로 뭔가 대단한 걸 말하려고 했다면 안심했으리라. 그는 평범함 문체로 흔한 걸 절묘하게 잡아낸다.
그나마 위안을 삼자면, 그가 평론가라는 사실이다. 독일에서, 그는 '문학의 제왕'으로 불린다. 그의 서평은 작가의 목숨을 좌우할 정도라고.
'나의 인생'이라는 단순한 제목 아래 자신의 문학과 인생과 사랑을 무려 6년에 걸쳐 쓴 자서전이다. 간결, 단순, 명확, 웃음, 사랑, 통렬, 신념, 재미가 문장에서 뛰논다.
독일인한테 핍박을 받은 유태인임에도, 독일어를 잘하고 독일 문학을 사랑하고 독일 음악을 즐긴다. 부조리한 시대를 살았지만, 웃음과 사랑을 간직하며 그 어려운 시절을 문학으로 도피하여 살아남았다.
문학이, 그를 구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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