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
에라스무스 지음, 차기태 옮김/필맥
한글 세대를 위한 번역본
한문보다는 한글에 익숙한 세대에게 편한 번역본이다. 다만, 한스 홀바인의 삽화는 넣으려면 제대로 넣든가 하지. 실망했다. 아예 삽화를 다 빼 버리는 게 낫겠다. 그리고 어차피 이해도 잘 안 되고 낯설기만 한데 주석도 다 빼 버리고 본문만 간결하게 남기면 좋았겠다 싶다.
여러 번역본 중에 가장 잘 읽혔다. 교수 번역자들의 한문투 번역 문장에서 벗어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2015.1.20
우신예찬 - 열린책들 세계문학 182
에라스무스, 김남우/열린책들
풍자를 허용해야 건전한 사회
열린책들에서 펴낸 책에는 부록으로 에라스무스가 주변 사람들에 보낸 편지글이 있다. 읽어 보니, 의외로 에라스무스는 심심풀이 책 '우신예찬'을 나름대로 변호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냐는 식으로 전제를 세운 후 풍자를 어느 정도 허용해야 건전한 사회라는 투였다.
책은 저자의 의도가 아니라 독자의 마음대로 읽힌다. 건전한 반성 정도를 기대했으나 전면적인 사회 개혁의 불씨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종교 정치 지배층의 억압과 위선에 시달렸던 사람들의 양심에 사이렌을 울려 버렸다. 가볍게 다들 한 번 웃자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 말했던 진실이 너무나도 뜨거웠다. 풍자의 힘이 센 이유는 웃음으로 진실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2011.9.21
우신예찬
에라스무스, 김남우/열린책들
해마다 읽는 책
어떤 책은 반복해서 읽는다. 대표적인 게 수험서다. 수험서의 운명은 한심한 인생과 똑같다. 반복해서 읽지만, 시험이 끝나면 다시 쳐다보지도 않는다. 딴 사람한테 팔아 버리거나 쓰레기통으로 간다. 어떤 사람의 삶은 그렇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가 그렇게 가는 거다. 고전은 반복해서 읽히지만, 수험서와는 정반대의 운명이다. 계속 읽어도 언제나 새롭다. 인생은 이래야 한다.
에라스무스는 꽤 많은 책을 썼다. 하지만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한테 읽히는 책은 달랑 [광우예찬] 한 권이다. 그것도 심심풀이로 별 생각없이 썼다. 작가라면 자신이 가장 노력해서 쓴 책이 많이 읽히길 바란다. 하지만 책의 운명은 작가의 노력과는 상관없다. 그가 공들여 쓴 책은 현재 거의 읽히지 않는다.
이 책이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는 게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정도 풍자에 당시 사람들이 흥분했다면 당시 종교 단체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정도로 짐작할 뿐이다.
에라스무스의 이 책을 네 번 읽었다. 해마다 읽었다.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왜 이렇게 읽을까. 이유는 뭘까. 아직도 바보들이 이 세상에서 설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친 놈들이 판 벌리고 지랄발광하고 있는 중이다.
2004.7.21
광우예찬.군주론.방법서설.잠언과 성찰
에라스무스 외 지음/을유문화사
풍자 문학의 진수
인간의 광우에 대한 넉살
그리스로마 고전, 성경, 구절의 종횡무진
세상을 바꾼 우스개
세로쓰기 책을 가로쓰기 책으로 읽으니까, 빨리 읽힌다. 느긋하게, 주석도 종종 읽었다. 세로쓰기에 절판의 운명을 겪었던 책이 가로쓰기에 새판으로 나왔다. 다행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에라스무스의 [광우예찬], 우리한테는 학생시절 세계사 시간 [우신예찬]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고전이 그렇듯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은 드물다.
고전이 읽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옛날 책은 재미없다고 미리 판단하는 건 잘못이다. 책을 읽기도 전에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건, 음식 맛을 보기 전에 맛이 없다고 말하는 거와 같다.
[광우예찬]은 재미있다. 지금껏 세 번 읽었다. 앞으로도 시간이 나면 또 읽을 작정이다. 이 책은 개그 콘서트보다 정확히 백배 더 웃긴다. 에라스무스의 수다는 수다맨을 오천배 앞지른다.
광우여신이 스스로를 예찬하면서, 인간의 바보 멍청 지랄 개판 짓거리를 줄줄이 꿰어서 늘어놓으며 웃긴다. 글쓴이 에라스무스의 익살은 자신의 책 [격언집]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까지 풍자하면서 끊없는 수다를 이어간다.
그는 이 풍자문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가 쓴 진지하고 교훈적인 책들에 비하면, 이 책은 심심풀이였다. 하지만, 이 책에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게 있었다. 부패 종교 권력에 대한 매서운 비판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이 그 당시 베스트셀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건 그래서다. 사람들은 억압된 자신의 감정을 속시원하게 풀어준 이 책에 열광했다.
당시 종교 단체들은 성경 구절을 자기 이익에 맞게 뜯어고쳐 함부러 사람들을 사형시켰다. 그런 시대에 감히 그건 미친지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에라스무스가 처음이었다. 이 심심풀이 책은 그 시대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어 퍼진다. 우스개가 세상을 바꾼다.
밑줄 긋기
모든 것을 먹줄로 재고, 어떠한 잘못도 용서하지 않고, 자기에게만 만족하고, 자기만이 부와 건강을 지니고 있고, 자기만이 임금이고, 자기만이 자유롭고, 천하에 유아 독존이라고 자칭하고, 친구도 필요치 않고, 어느 누구의 친구도 아니고, 신들에 대해서도 업신여기고, 인간의 행위를 모조리 어리석다고 생각하여 그것에 대해서 비난과 조롱밖에 퍼붓지 않는 그런 따위의 인간을 보았을 때, 누가 그를 괴물처럼, 유령처럼 무서워서 달아나지 않겠어요. 이러하기에 완벽한 현인이란 짐승 같은 거예요. (66쪽)
2002.8.15
글쓴이: 에라스무스 Erasmus
옮긴이: 정기수
펴낸곳: 을유문화사
발행일: 1989년 11월 25일
풍자 문학의 진수
인간의 광우에 대한 넉살
인간의 바보 미친 지랄을 찬양하라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전기문, [에라스무스 - 위대한 인문주의자의 승리와 비극]을 읽고, 에라스무스의 책이 보고 싶었다. 서울문고에 갔다가 영어 원서 펭귄 클래식 [Praise of Folly]를 발견했다. 그것도 세일 코너에서! 덕분에, 싸게 샀다. 하지만, 내가 워낙 게으르고 영어 실력이 부족하여, 생소한 단어와 온갖 주석이 달린 그 책을 영어로 읽자니 만만치 않았다. 앞 부분 조금 읽다가 그만 두었다. 그게 1년 전이다.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 언제쯤 읽게 될지는 저 위에 계신 분도 모른다.
송파 도서관에서 에라스무스를 검색해 보니, [광우예찬]이 나왔다. 서가로 들어가서 책을 찾아냈다. 책을 펴는 순간, 읽어야 할지 망설였다. 세로쓰기였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 보니, 새로 가로쓰기 책이 나와 있었다. 종이가 누렇게 바랜 세로쓰기 책을 읽기로 했다. 읽다가 말다가 읽다가 자다가 거의 2주일이 걸려서야 다 읽었다. 머리 속에 남은 게 있나. 그래도 밑줄 두 개 그었다.
중학교 이상 교육을 받은 한국 사람들이라면, 에라스무스를 세계사 시간에 르네상스 시대의 학자 정도로 들어봤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에라스무스는 고전 연구 학자였다. 그는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라틴어로 쓰여진 옛 그리스 로마 고전들을 섭렵한 박학 다식한 사람이었다. [광우예찬]에서 종횡무진 쏟아져 나오는 인용문구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헌과 성경이다.
에라스무스는 이 책을 진지하게 쓴 게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여행을 하면서 그 동안 내내 말을 걸터타고 있어야만 했던(25쪽)" 그는, 장난삼아 광우신(狂愚神)을 예찬하는 글을 쓴다. 그냥 심심해서 쓴 거다. 그는 이 책이 종교 개혁의 불씨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심심풀이로 쓴 책이 세상을 바꾸다니, 우습지 않은가.
[광우예찬]은 나오자마자 그 시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부패한 종교 권력 세력들의 짓거리에 대한 풍자가 그 시대 사람들의 속을 풀어 주었다. 그럼에도, 이 책의 풍자 대상은 포괄적이다. 신학자, 문필가, 남편, 노름꾼, 사냥꾼, 국왕, 추기경, 수도사, 신하, 법률가, 철학자, 교황 등. 시작할 때는 농담만 하다가 독일 주교들과 신부들을 풍자할 때는 진담을 말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이 책은 기존 기득권 세력한테 금서로 묶인다.
에라스무스가 쓴 책들 중에 지금까지도 읽히는 건 이 책뿐이다. 나머지 책은 잊혀졌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이 책만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서양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과 성경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갖추거나 일일이 주석을 읽어야한다. 반면, 에라스무스가 그랬듯 심심해서,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라면 광우신의 유쾌한 자화자찬을 그런 배경 지식과 주석의 도움이 없이도 즐길 수 있다.
풍자문의 생명은 꽤나 긴 것 같다. 인간들의 바보 미치광이 짓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으니.
밑줄 긋기
어떠한 종류의 인생도 제외하지 않는 풍자는 어떠한 특정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악덕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일어나서 상처를 입었다고 외친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죄가 있음을 인정하는 까닭이요,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불안감을 자백하는 까닭일세.(27쪽)
행복이란 사물에 관해 인간이 갖는 의견에 따라서 좌우되는 거예요.(87쪽)
2001.12.20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트런드 러셀 [서양의 지혜: 그림과 함께 보는 서양철학사] 주관적인 통찰력 (0) | 2024.10.17 |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난세에 간웅이 이기는 법 (0) | 2024.09.26 |
[세계 자기계발 필독서 50 /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 자아인식 (0) | 2024.09.25 |
[인생이 왜 짧은가 - 세네카의 행복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오래된 질문] (0) | 2024.09.23 |
[자성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내면의 신성 추구 (0) | 2024.09.23 |
스피노자 [에티카] 영원하고도 무한한 신에 대한 지적 사랑 (0) | 2024.09.23 |
[철학 이야기] 듀란트 - 유명한 철학자들과 친해지기 (0) | 2022.09.03 |
[논어] 사람다움의 길 (0) | 2022.09.01 |
[대학, 중용] 유학의 목표와 방법 (0) | 2022.09.01 |
프란체스코 알베로니 [지도자의 조건] 사람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 (0) | 2022.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