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완네 쪽으로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Du cote de chez Swann (1913년)
마르셀 프루스트
문예출판사 | 2011년
:: 읽기 어렵기로 악명 높은 문학작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읽어보려고 하지만 통독하기가 '극도로' 어려운 작품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누구든 예외가 있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려다 시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농담이 아니다. 진담이다.
이 유명한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 읽어 본 것은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던 그해 한여름이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조용했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어슬렁 건물 안을 걸어다니다 한 구석에 자리한 책꽂이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집어다 먼지 탁탁 털어서 병실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 쓰여진 검은 글씨를 읽었으나 한 쪽을 읽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잠이 쏟아졌다. 판결은 내려졌다. 이해가 불가능하고 졸린 책이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길고 지루하고 난해한 문장의 연속 속에 사건 진행이 그다지 없으니, 악명은 해마다 높아져 갈 뿐이다. 도서관에서 가장 대여가 안 되는 책이니 무인도에 갇혔는데 할 일이 없을 때조차 읽지 않을 책이니 별별 희안한 말들이 돌고 있다. 읽다가 화가 나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통독하거나 이해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책이다. 유명한 농담 반 진심 반으로 이런 게 있을 정도다. "나는 프랑스 문학 박사입니다. 프루스트를 읽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문학이라는 영토에 들어서는 순간 보지 않을 수 없는 건축물이다. 산처럼 거대한 소설을 어쩐단 말인가. 못 본 척하거나 무시할 수도 있겠지. 문학 작품을 읽을지 말지, 읽다 말지, 읽고서는 욕을 할지, 읽고서는 질투나 감동에 사로잡혀 며칠 몇 달간 음식조차 못 먹을 지경이 될지는 당신 몫이다.
::김인환 번역, 가장 읽기 편함
번역본이 많이 나와 있는데, 그중에 김인환의 문예출판사 책이 가장 편하게 읽혔다.
처음에는 전 권이 번역된 민희식의 동서문화사 판을 읽었다. 그해 여름 독서 체험이 반복되었다. 하루에 한 쪽을 읽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빨리 많이 읽어가기가 어려웠다. 한 문단이 한 쪽을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한 문장조차 기나길었다. 읽고나서는 더 해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생각하는 시간이 읽는 시간보다 많았다.
1권 1부 전반부까지 읽고는 포기할까 말까 망설이던 중, 김인환 번역본이 전자책으로 나와있어 휴대폰에 받아놓고 지하철로 이동할 때 무심코 읽어나아가는데, 이게 웬일인가 읽기를 멈추지 못할 지경이 빠르게 읽히며 이해를 하면서 감상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이미 어느 정도 내용을 안 상태에서는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술술 읽혔던 것이다. 게다가 김인환 문예출판사 번역본은 주석을 각주나 미주가 아니라 본문 글 중 가로 안에 처리했다. 그래서 시선이 왔다갔다 하지 않으니 읽는 흐름을 유지했다.
:: 경이로운 문장, 문장 표현의 최대치
마침내 1권을 통독했다. 프루스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문장이 묘사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를 만들어 놓았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쓸 수 있어. 혼자서 중얼거렸다. 별다른 내용이 없으면서 이토록 문장은 최고 수준이라니. 읽는 이에게 경의로움을 선사한다.
전 7권을 다 읽을 필요까지는 없다. 이 1권만 읽어도 이 대단한 문학작품의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다. 부디 포기하지 말고 완독하길 바란다.
읽는 시간을 잊으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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