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사나이
Der Sandmann (1816년)
E.T.A. 호프만 지음
김현성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1년 초판
2020년 개정판

2001년판 표지에 나온 사람은 모래 사나이가 아니라 작가 호프만이다. 무섭게 생기긴 했다만 그래도 착각하진 말자.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는 발레 '코펠리아'의 원작 소설이다. 발레극은 기계 인형이라는 소재를 중심에 가져다가 각색했다. '코펠리우스'를 빼고는 등장인물 이름이 죄다 바꾸었다. 

'코펠리아'가 아니라 '올림푸스'다. 여자 주인공이 기계 인형 흉내를 내는, 발레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원작에는 없다. 게다가 남자 주인공 나타나엘은 정신이 돌아버려 공포에 질려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발레는 유쾌한 희극이나 소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공포소설이다. 혹시 스티븐 킹 소설 같은 재미로 읽으려 드는 분이 있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다만, 옛날 소설이라 그리 쉽게 읽히지 않는다.

모래 사나이는 서양의 민간 설화다. 어린이 눈에 모래를 뿌려 잠들게 하는 귀신이다. 애들 일찍 재우려고 꾸며낸 이야기 같다. 내 상상으로는 귀여운 요정처럼 생긴 것 같은데, 전혀 아니란다. 무서운 존재의 대표자로 거론되는 모양이다. 메탈리카의 노래 '엔터 샌드맨'이 바로 이 샌드맨이군! 소설의 일부를 인용해 보면 이렇다.

"그건 아주 나쁜 사람인데 자러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와서 눈에 모래를 한줌 뿌린단다. 눈알이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오면 모래 사나이는 그 눈알을 자루에 넣어 자기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달나라로 돌아가지. 그의 아이들은 둥지에서 사는데 올빼미처럼 끝이 구부러진 부리로 말 안 듣는 아이들의 눈을 쪼아먹는단다." 2001년판 16쪽.

작가는 이 민담을 끌어다가 소설에서 내면이 분열된 주인공을 묘사한다. 고등법원 판사가 이런 소설을 쓰다니. 이중생활자네. 이야기의 첫머리에 낭만주의자 나타나엘의 편지와 계몽주의자 클라아의 편지가 나온 후, "친애하는 독자여!" 하며 작가가 직접 말을 한다. 몽상, 동경, 환상, 꿈 등이 이성, 질서, 논리, 현실과 날카롭게 대립한다.

사람들이 나무 인형한테 속아넘어간 후 혼란에 빠진다. "자동 인형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영혼 깊이 뿌리 박혀 실제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형상을 한 것에 대한 심한 불신이 생겼다. 이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 인형이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기 위해 애인에게 약간 박자가 틀리게 노래하고 춤추라고 요구하고, 책을 읽어줄 때 수도 놓고 뜨개질도 하고 강아지와 장난도 하고, 무엇보다도 가만히 듣고 있지만 말고 이따금 무슨 말을 하되, 진정한 사고와 감정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말할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2001년판 66쪽. 왜 이렇게 웃긴다냐.

'사람처럼 보이는 기계 인형'이라는 아이디어는 이 소설 발표 당시 1816년에는 충격이었으리라.

SF 호러 애독자라면 읽어 볼만한 고전 명작이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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