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Slaughterhouse-five (1966년)
커트 보니것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이 소설의 제목은 세 개다. 제5도살장(Slaughterhouse-5), 소년 십자군(The Children's Crusade), 죽음과 억지로 춘 춤(A Duty-Dance with Death). 독자가 마음대로 골라잡으면 그만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미국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다. 미국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전세계 젊은 독자들도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에 열광하고 있다.
[제5도살장]은 그의 대표작으로, 작가 스스로도 A학점을 매긴 작품이다. 그의 장기인 블랙 유머와 SF기법을 현란하게 표현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지은이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보네거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소총수로 참전했다.
그 전쟁 중에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독일의 작센 지방으로 끌려가 드레스덴의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이 포로수용소에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이 가해졌는데, 그는 용하게 살아났다. 옛날에 도살장으로 쓰였던 포로수용소 건물의 지하 방공호가 깊었기 때문이다. 옛날에 도살장이었던 곳에서 폭격을 피해 살아나다니, 정말 블랙 유머 같지 않은가.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 것을 눈으로 직접 본 작가는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그 체험을 글로 쓴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으리라. 그러나 그는 그 공포를 유머로 이겨내며 소설로 쓴다. 그 글이 바로 이 작품 [제5도살장]이다.
이 작품은 과거, 현재, 미래가 질서 정연하게(?) 뒤죽박죽으로 전개된다. 또 SF 기법과 포르노 소설 기법으로 독자를 웃기는데, 정말 못 말릴 정도다.
인간의 허위의식과 겉멋만 든 진지함을 꼬집는 독특한 유머가 가히 천재적이다. 이 작가의 유머는 우리의 상상을 넘는다. 트랄화마도르 인(외계인)을 등장시켜 인간을 풍자한다. 예수도.
이 작품 어디를 봐도 심각하고 진지한 표현은 없다. 가벼운 표현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다. 그러나 그런 가벼운 유머 뒤에 숨겨진 작가의 고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소설의 바탕에는 작가의 어두운 체험(전쟁 체험)과 인류 미래에 대한 종말론적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 '뭐 그런 거지'. 나는 이 말이 나올 때마다 웃었다. 작가도 그 문장을 쓰면서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웃음과 그의 웃음에는 차이가 있다. 작가의 웃음은 전쟁의 공포와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이기려는 안타까운 노력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웃음은 울음의 다른 표현이다. 울음 같은 웃음이다. 작가 스스로 말하길, "울 수 없으니까 웃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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