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풍경
박태원 지음
깊은샘 펴냄
1998년 발행 절판
박태원은 북한에서 망막염으로 실명하고 고혈압으로 전신불수가 되었음에도 '갑오 농민 전쟁'을 구술하여 완성시켜 북한 최고의 역사 소설가라는 호칭을 받았다. 남한에서는 기교파 작가나 세태 소설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대한 연구나 비평은 적은 편이다.
월북 작가들에 대한 연구는 아마도 통일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될 듯하다. 정치 문화 사회적 상황이 그리 좋지 않고 문헌을 구하기도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태원의 장편소설 '천변풍경'에 쏟아진 평을 보자.
"나는 박태원 씨의 '천변풍경'에서, 톨스토이의 만년의 작품에서 받는 것과 방불한 감동을 받는다." 춘원 이광수의 평이다.
"태원은 확실히 대 춘원을 능가하고 서울 중류 가정 시어머니, 며느리, 시뉘, 올케의 풍파를 잘 쓴다는 거벽 상섭을 물리칠 수 있다." 월탄 박종화의 서평.
"여하간 이 소설은 우리 문학의 새 단계를 표시한 작품으로 많이 읽히고 또 연구되어 족한 작품이다." 임화.
그러나 박태원의 이 작품은 한국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지도 연구가 되지도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독서가들한테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읽혀지는가. 그것은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는 우리네 평범한 삶에 대한 작가의 놀라운 묘사력과 관심과 애정 때문일 것이다. 이토록 일상 생활을 완벽하게 글로 잡아 낸 소설은 흔치 않다.
이 작품 이전에 쓴 여러 단편소설에서 나타나듯, 그의 묘사력은 독창적이다. 물 흐르듯 쉼표로 이어지는 지문과 대사가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고 그 시대의 서울 말씨와 풍속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청계천 빨래터, 이 곳에서 소설 '천변풍경'을 시작한다.
모두 50절로 나누어져 있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지는데 특별한 결말 없이 끝난다.
그해 겨울에서 다음해 겨울까지, 일 년 동안의 청계천변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씨줄 날줄로 교묘하게 연결시켜 천변 '풍경'을 완성시켰다.
어쩌면 단순하게 일상 생활을 그린 듯하지만,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애면글면 사는 사람들. 시대는 변했지만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이다.
박태원의 장편소설 '천변풍경'은 1930년대 서울 풍경을 꼼꼼히 섬세하게 글로 수놓은 아름다운 자수(刺繡)이다. 그 자수는 화려하지 않다. 그 자수에는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 기쁨, 슬픔, 웃음, 죽음, 고달픔, 사랑이 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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