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필립 K. 딕 지음
대개들 소설보다는 영화의 내용을 더 잘 알고 있다. 해서, 둘을 비교하며 그 차이점을 얘기해 보겠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필립 케이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다른 면이 꽤 많았다.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와 안드로이드 간의 숨막히는 대결에 초점을 두고 전개하지만, 소설은 그런 대결보다는 릭 데커드의 고뇌를 많이 다룬다.
자, 소설을 볼작시면, 영화와는 다르게 릭 데커드에게 아내가 있다. 시작 부분에서 둘은 자신들이 기르고 있는 전기 양에 대해서 투덜거린다. 끝에서도 이 부부가 전기 두꺼비에 대해서 투덜거리며 끝난다. 웬 전기 양과 전기 두꺼비?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물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 대전 후, 지구는 오염되어 살아 있는 동물이 많지 않다. 그래서 다들 실제와 흡사한 가짜 동물을 소유하고 있다. 돈이 많은 사람만 진짜 동물을 갖고 있다. 안드로이드 사냥꾼인 데커드는 진짜 동물을 사려고 돈을 모으기 위해 화성에서 탈출한 안드로이드를 죽이려고 다닌다. 그래서 진짜 양을 사지만 그 양은 안드로이드에 의해 허무하게 죽고 만다. 나중에 데커드가 진짜 두꺼비인 줄 알고 집에 가져 와 보니까 그것마저 전기 두꺼비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와 소설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인간이 만든 안드로이드를 통해 제기되는 인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다. 데커드는 안드로이드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혼란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안드로이드가 단순히 기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그것들을 죽여서 값비싼 진짜 동물을 사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안드로이드를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사랑하면서 정신적 혼란을 겪는다. 심지어 자신이 안드로이드가 아닐까 의심한다.
영화나 사이버펑크를 선호하는 이들은 이 상황을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많이 해석한다. 소설에서는 그 상황을 주로 고립되고 기계화되어 감정이 메마른 현대인에 대한 비난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전기 양과 전기 두꺼비는 황막한 현대 사회에 대한 작가의 냉소다.
'무드 오르간'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원하는 상태에 다이얼을 돌리면 그 분위기에 빠지게 하는 기계다. 작가는 왜 이런 황당한 '무드 오르간'을 등장시키는가. 이상하지 않은가. 기계 없이는 항상 불안한 사람들. 물질 문명 최고조에 이른 현대인의 운명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릭의 아내는 텔레비전을 끄면 고독감에 휩싸인다. 그래서 공감 박스를 통해 마사교에 열중한다. 자신의 고독을 '마사교'라는 종교로 해결한다. 타인과의 교감. 그러나 그 마사교가 가짜임이 안드로이드에 의해 밝혀진다. 현대 사회에 대한 작가의 냉소가 극에 달아 있다. 마사교에서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언덕을 오르는 노인의 등장과 돌팔매질. 세속화된 기독교에 대한 비아냥거림.
건물마다 키플이 넘친다. 키플은 "빈 성냥갑이나 껌 포장지, 어제 받은 신문 같은 그런 쓸모 없는 것들"을 말한다. 쓰레기로 가득한 세계.
이처럼, 현대 사회와 현대인에 대한 비판은 소설 곳곳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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