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베르의 앵무새 Flaubert's Parrot (1984년)
줄리언 반스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을 논할 때 빠짐없이 나오는 소설이 바로 이 '플로베르의 앵무새'다. 워낙 유명해서 모르고 있으면 책하고는 담 쌓고 지내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소설 픽션은 아예 안 읽는 독서가일 것이다.
아직 안 읽어 봤더라도, 플로베르의 평전 형식을 띤 소설이다 정도는 어디선가 읽거나 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막상 실제로 읽기 시작하면서 발생한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읽기 어렵다고 하소연을 한다. 간신히 읽어냈다고, 플로베르 관련 배경 지식이나 그의 소설들을 읽은 후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독후감도 보인다.
어이가 없었다. 너무들 진지하게 문학하는 독서를 하려고들 하는 거 아닌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잡담 농담 평전 수필 소설이다. 아무 페이지나 읽어도 된다. 아무 쪽에서나 읽기를 중단해도 딱히 아쉬울 건 없다.
읽다가 말다가 읽다가 말다가는 반복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열 번 이상은 분명하다. 이야기의 전반인 분위기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이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미라는 미케리누스의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았다."(147쪽) 아씨, 어쩌라고 이 양반아.
딱히 줄거리라고 할 것이 없고 궁금한 다음도 없는데, 아! 이런, 계속 야금야금 더 읽고 싶어지는 거였다. 왜 이러지? 희안하네. 어느새 다 읽어 버린 나 자신한테 배신감을 느낄 지경이었다. 어, 이건 아니지.
천박한 음담패설이 있는가 하면 심오한 통찰이 써 있었다. "삶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에 대해 나는 놀라지 않는다. 책은 삶을 의미 있게 한다. 유일한 문제는 책이 의미를 부여하는 삶은 당신 자신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이라는 점이다."(209쪽)
키득키득 웃다가 으잉 황당하다가, 이런 저질하다가 와 놀랍군 하다가, 이것저것 하다가 어느새 더 읽을 문장이 없은 거였다. 정말 맛있는 짬뽕이었다.
종이책 읽기는 너무 고역이긴 했다. 뭐가 이렇게 빡빡해. 전자책으로 읽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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