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의 천사
이디스 워튼 | 김지혜, 정윤희 | 민음사 | 2025

도서관 표시에 가려서 저 여인의 상반신 모습이 안 보이는데, 별거 없다. 유령처럼 노란 천을 뒤집어 쓰고 있을 뿐이다. 얼굴도 머리도 볼 수 없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의 공포

모파상 단편에 버금가는 강렬함을 보여줘서 놀라웠다. 광기와 불안을 표현해 줘서 고마웠다. 오랜만에 소설다운 소설 읽었다. 잘 쓴 글은 반가웠다. 하지만 실망하기도 했다.

이야기의 초점이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이면 독자로서 헷갈린다. 공포, 광기, 불안의 분위기면서 정작 서사의 주요 흐름은 연애다. 로맨스를 기대한 독자도, 공포를 기대한 독자도 불만일 수밖에 없다.

기승전결에서 전결이 별로면 전체가 별로다. 문장력이 아무리 좋아도 이야기로는 좋다고 하기 어렵다. 그냥 갑작스럽게 끝나는 식이었다. 결말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기이한 분위기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인지, 사랑 이야기를 기이한 분위기로 포장하고 싶었던 것인지.

당시 상류 사회 여성의 억압적 사회 상황을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뭔가 확실한 주장이나 결론 같은 것이 없어서 읽고나면 갑갑하다. 

가부장 사회 구조가 당시 여성의 공포이자 고통이자 두려움이란다. 사회학적으로 글을 해석하면 그렇겠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이야기, 뭔가 희망하는 바람인데 말이다.

기승전결 반전 딱딱 들어간, 완성도 높은 단편소설을 기대했으나 단상 혹은 연습 글로 보인다.

꿈 같은, 대체로 악몽 같은 이야기들이다. 어쩌면 현실이 그녀들한테 그랬을지도. 상상과 현실의 중간 지대에 소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2025.11.04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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