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페낙 산문팔이 소녀 - 창작자는 스스로를 가둔다

산문팔이 소녀
다니엘 페낙 지음, 이충민 옮김/문학동네

프랑스 소설가 다니엘 페낙은 572쪽의 마지막 문장까지 아낌없이 독자를 웃겼다. 왜 갑자기 그런 기적이 일어났느냐에 대해서는 은근슬쩍 얼렁뚱땅 독자와 작가 간의 암묵적 침묵으로 넘어가고 마지막 문장을 읽고 서로 동의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뱅자맹 말로센을 둘러싼 사람들은 개성만점에 엽기 코믹 캐릭터다. 만화에나 나올 법한 등장인물들이 천연덕스럽게 초현실적인 일들을 해낸다. 손가락 두 개만 잘라내는 명사수에, 변신의 귀재에, 천재 외과의사에.

거대한 문학 사기극과 유머와 살인, 그리고 사랑을 환상적으로 조합했다. 인생의 씁쓸한 단면을 여러 개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유머로 전달한다. 추리 첩보 소설을 방불케 하는 빠른 전개와 긴장감 속에서도 말로센 가의 다국적 다민족 사람들의 코미디는 멈추지 않는다.

다니엘 페낙의 '산문팔이 소녀'에는 예술을 하는 재소자가 가득한 교도소가 등장한다. 창조자들은 자기 자신을 가두는 사람이다. 글에, 그림에, 음악에, 조각에, 그 무엇에. 하나에 몰입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것이다. 감옥. 그곳은 정말 감옥일까. 물론 감옥이다. 책읽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 조각하기 등 이런 일은 감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 특히, 책읽기와 글쓰기는 외부의 방해 없는 공간에서 해야 한다.

소설가는 뭐하는 사람일까. "당신은 편한 마음으로 글을 계속 써요. 당신은 방을 정리하듯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소설가예요. 리얼리즘은 당신의 특기가 아니라고요. 당신 소설은 깨끗하게 정돈한 방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의 꿈을 충족시켜주는 거예요. 당신 소설이 성공한 걸 보면 알겠지만 독자들은 당신 작품을 열렬히 원하고 있다고요." 482쪽

꿈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 소설은 그런 것이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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