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에드 맥베인

87분서 [살의의 쐐기] 에드 맥베인 - 살아숨쉬는 인간들의 이야기

lovegood 2021. 10. 14. 21:27

살의의 쐐기
Killer's Wedge (1959)
에드 맥베인
피니스아프리카에 2013년
ISBN 9788996655756

살아숨쉬는 인간들의 이야기


내가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게 맞나. 왜 이렇게 생생하게 보이지. 나는 지금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어. 소설책을 읽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꿈을 꾸는 것인지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어떻게 글을 이렇게 쓸 수 있지.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이라는 작가 소개는 진짜였다. 글 진짜 잘 쓰는 사람이다. 챈들러 따위는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라. 애들이나 읽으라고 해라. 진짜 글, 진짜 살아숨쉬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챈들러가 아니라 맥베인을 읽어라.

'살의의 쐐기'는 간결하고 명쾌하게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동안 쓸데없이 복잡하고 어렵게 쓴 소설을 읽은 게 억울한 지경이다. 밑도 끝도 없는 묘사에 너무 꼬아서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지경인 음모에 음모, 트릭에 트릭.

정말 잘 쓴 글은 쉽게 읽히면서 이해가 빨리 된다. 그런 면에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어슐러 르 귄, 조지 R. R. 마틴, 톨킨, 기타 유명한 작가들은 글을 잘 쓴 게 절대 아니다. 정말 못 쓴 거다.

추리소설, 형사소설, 경찰소설을 읽으려니 기대했다가 여러 인간 군상들의 인생 드라마 한 편을 빠르게 본 느낌이 들었다.

밀실 트릭과 인질극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맨 끝에서 합쳐진다. 그 진행 중에 여러 사람들의 사연이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소개되는데, 그 어느 것 하나도 시시하거나 흥미롭지 않은 게 없었다. 여기에 유머까지.

긴장을 조성하는 스릴러 기술력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진실되고 편안하게 들려주는 이야기 방식이 더 매력적인 소설이다. 총 한 자루와 폭발물을 가지고 경찰서에 들어와 자기 애인을 체포한 형사를 죽이겠다는 여자. 과연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읽어가는데 정작 재미있는 것은 이 긴박한 상황이 아니다. 이 점이 놀라웠다. 이 상황에서 여러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가 술술 펼쳐진다. 그다지 분량이 많지 않은 장편소설임에도 대하소설 분량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스티븐 킹의 평이 정확하다. 맥베인은 "장르 소설에 리얼리즘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최초의 작가"이며 "단순히 재미뿐만 아니라 시대와 문화를 솔직하게 반영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쓰는지 베이비붐 세대에게 가르쳤다." 정말 "끝내주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