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성경

성경 통독 31일째 욥기 : 신앙의 본질

lovegood 2021. 10. 17. 22:00

[성경 통독] 31일째 욥기 : 신앙의 본질, 신을 믿는다는 것, 종교적 태도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욥기라고 대답하겠다. 왜 사대복음의 예수가 아니라 왜 고린도후서의 13장 사랑이 아니라 왜 요한계시록의 재림이 아닌가?

욥기는 신을 믿는다는 행위의 본질을 가장 잘 설파한 글이기 때문이다. 신앙 생활을 하는 분, 혹은 신앙은 없지만 종교적 태도로 살아가는 분의 신념을 잘 보여준다. 이는 단지 기독교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욥기는 욥이라는 사람이 받은 시련을 이야기해준다.

이 이야기의 첫인상은 내게 대단했지 못했다. 시시했다. 태양과 바람의 사람 옷 벗기기 우화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성경을 창세기부터 차례대로 읽어가다가 욥기를 만나면 갑자기 붕 떠버린다. 누가 언제 왜 썼는지 본문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글이다. 꾸며낸 이야기인가 싶었다. 에스더까지는 시대순으로 차근차근 이야기가 이어지며 전개되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처럼 욥기를 만난다. 이건 뭐냔 말인가? 도대체가 역사적 맥락을 전혀 알 수 없다. 다 읽고나면,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데?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기 전 얘기다. 차근차근 욥기의 맥락을 살펴 보자.

구약 성경은 크게 세 가지 묶어 볼 수 있다.

1. 창세기 ~ 에스더 : 이스라엘 민족의 구속사
2. 욥기 ~ 아가 : 이스라엘의 문학 작품
3. 이사야 ~말라기 :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예언

구약성경을 한마디로 이스라엘 민족의 옛날 이야기 책이라고 정의해서 말해 준 사람이 있었는데, 신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정확히 맞는 말이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고서다. 아주아주 옛날 책이다. 창세기는 기원전 1446~1406년 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기록했고 그 기록은 오늘날까지 남아 전해져 읽힌다.

가끔은 구약성경을 이스라엘 역사책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정확한 말은 아니지만 대충 맞는 말이다. 구약성경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핵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여호와 신과 이스라엘 민족의 구속사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다시 욥기로 돌아가자. 성경을 시대순으로 차례차례 잘 읽다가 욥기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하게도, 구속사 서술이 이전 책인 에스더에서 끝났기 때문이다. 에스더까지는 역사서고 욥기부터는 문학작품이다.

모세가 쓴 것으로 추정한다. 어떻게? 1장 1절에 우스 땅에 욥기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라고 시작한다.자, 우스 땅은 어딘가? 지금의 아라비아에 있는 땅이고, 우스 옆동네까지는 아니더라도 근처 땅 미디안에서 모세가 지냈고 아마도 우스 근처를 지나갔을 때 이 욥이라는 사람 이야기를 듣고서 기록한 것 같단 얘기다. 자, 이제 앞서 의문과 느낌에 대한 설명이 끝났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절대 다수가 그 목적이 구복이다. 복을 달라는 것이다. 착하게 살고 선을 행하고 남을 돕고 절이나 교회에서 돈이며 인력이며 음식에 온갖 물건에 땅에 뭐에 바치고서 제사를 지내면 재앙이 끝나고 축복이 내려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제사와 기도를 통한 구복은 종교생활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인생의 목적이 돈이 아니듯이 종교의 목적도 구복이 아니다. 대단히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일 것이다.

신을 믿고 따르는 일이 절대로 인간의 논리나 득실, 혹은 이해에 따르는 것이 아님을 명백하게 밝힌 이야기가 바로 욥기다. 그래서 욥기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욥은 잘먹고 잘살고 있었다. 자식도 많고 건강하고 재산도 많고 종도 많았다. 하나님께 제사를 꼬박꼬박 잘 드렸다. 악을 멀리하고 진실하며 정직하게 '착하게' 살았다. 신의 축복이란 축복은 다 받고 살았다.

자, 그런 그에게 시련, 시험, 고난, 재앙이 아무런 이유도 맥락도 까닭도 없이 닥친다. 여호와와 사탄의 욥의 신앙심을 놓고 하는 대결에 완전히 놀아난다.

여호와 :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처럼 진실하고 정직하며 나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1:8)

사탄 : "욥이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데에 어찌 이유가 없겠습니까? 주께서는 항상 그와 그 가정과 그의 재산을 보호하고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축복해 주셔서 그의 가축이 온 땅을 덮을 만큼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한번 빼앗아 보십시오. 그러면 당장 그가 정면으로 주를 저주할 것입니다."(1:9~12)

사탄이 그렇게 이의를 제기하자, 여호와는 사탄에게 욥의 소유를 네 맘대로 하되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하였다. 이것이 첫번째 시험이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욥의 가축을 불살라 버린다. 그의 종이 습격을 당해 죽음을 당하고 그의 집이 태풍에 무너진다.

욥은 의연하게 대처한다. 흔한 유행가처럼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서. 재산을 잃고 낙담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신앙심을 버릴 정도까지는 아니란 말이다. 돈은 다시 벌면 되고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우면 되며 필요한 재물은 다시 사면 그만이다.

이에 두번째 시험이 닥친다. 발다닥부터 머리 끝까지 악성종기가 난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순으로 나열해 보면, 그 1순위가 건강이다. 건강해야 돈을 벌고 건강해야 명예를 얻을 수 있으며, 건강해야 재산과 명성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욥은 너무 괴로워서 죽기를 바란다. 그리고 고뇌한다. 완전 부조리한 상황에 빠졌으니 누군들 안 그러겠는가.

욥과 그들의 친구가 하는 대화는 일상 대화가 아니라 문학적/철학적/예술적 문장으로 가득한 노래에 가깝다. 기독인들한테는 대단히 불경스럽게 들리겠는데, 불경을 읽는 기분이다. 숫타니파타처럼 대화가 리듬을 타고 계속 이어진다. 욥기는 총 42장 분량인데 욥과 친구들의 대화가 3장부터 31장까지 어이진다. 그러니까 욥기의 대부분이 이 대화다.

기나긴 대화, 거의 논쟁에 가까운 일이 끝난 후에, 엘리후가 말한다. 조금은 실망스러운 말을 한다. 신이 산타처럼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34: 21~23.

욥의 주장은 이렇다. 나는 죄가 없는데, 왜 이런 고통과 고난과 재앙을 받느냐는 거다.이에 엘리후의 대답은 이렇다. 하느님이 행하는 일에 대해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 없다. 천지만물의 움직임을 보라.

엘리후가 욥한테 그렇게 대답하자, 여호와 등장! 38장. 이건 뭐 연극도 아니고 갑자기 결정적일 때 나타나는 신의 심보는 뭔가. 엘리후가 하는 말을 더 상세히 풀어낸다, 독수리가 높은 곳에 집을 짓는 게 사람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해서냐고. 이어 계속 자신의 창조물을 나열한다. 신이 인간한테 한 말을 요약하면, 전능한 창조주 앞에서 인간 따위가 교만하게 굴지 말라는 거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욥은 회개한다. 여호와는 다시 축복을 돌려주며 재산을 예전보다 갑절로 늘려준다. 욥은 140년을 살아 자손을 4대까지 보고 늙어 죽었다. 그런데 사탄은 어디 갔냐?

욥기를 다 읽고나서 허무할 수도 있는 게, 욥기의 이의제기에 대한 여호와의 답변이 동문서답이기 때문이다. 아니 내 말은 왜 착하게 산 내가 이런 재앙과 고통을 당해야 하냐니까요? 신의 대답은 교만하면 못 써. 때끼때끼. 뭔소리야?

신에 대한 인간의 가장 큰 불만은 왜 착한 사람한테 나쁜 일이 일어나냐는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권선징악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고 무질서하고 부조리한 짓을 일삼는 신은 믿을 가치가 없는 것이다. 알게 뭔가. 어차피 혼란인데.

자, 그렇다면 그렇게 신을 믿고자 하니, 정말 그런 신이 존재하고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그 신은 정말 신인가? 그 신은 단지 규칙/정의/개념/논리/원리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게 신인가? 당신은 신을 그렇게 정의하는가. 악한 자를 벌하고 착한 자한테 복을 주는, 불경한 인간한테는 재앙을 내리고 경건한 인간에게는 축복을 주는 존재?

신에 대한 그런 관점이 대단한 불순종임을, 욥기는 주장한다.

그럼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신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한다. 인간의 기준으로 신을 믿는 것은 신을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신이 신이 아니라 저 잘 되게 해 주는 신비로운 힘에 불과하다. 그게 신인가?

신앙의 본질, 신을 믿는다는 것, 종교적 태도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라. 욥기가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