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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길을 잃어야 지혜를 얻는다

lovegood 2022. 8. 18. 10:10

여행의 기술
카트린 파시히, 알렉스 숄츠
김영사
2011.08.03.

제목만 보고 이 책 산 사람들 당황했으리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이라면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는 비법을 알려주리라 기대했을 테니까.

막상 책장을 펴 읽으면 '의도적으로 길 잃기'를 가르쳐 준다. 그것도 등급이 있어서 초보자, 중급자, 전문가 과정까지 마련해 놓았다. 길을 잃어 죽음에 이른 사례까지 나열하고 있으니, 적지 않게 놀랐으리라. 그러나 이것은 잠시일 뿐이다.

읽어 갈수록 조금씩 묘한 재미와 기묘한 흥분에 사로잡힌 자신을 느꼈을 때야 비로소 글쓴이가 전하는 메시지를 깨닫게 된다. 여행이 아니라 삶을, 기술이 아니라 지혜를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정해진 삶의 지도와 길이 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패배자나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 돈과 명예로 펄럭이는 깃발은 높은 산 꼭대기에 꽂혀 있다. 다들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려 한다.

이런 지도는 삶을 사는 재미와 행복을 즐기는 법과 별 상관이 없다. 온 세상 다 정복한 왕은 행복한가? 정말 제대로 사는 것일까? 언제 어디서 반란이 일어나 내 목숨을 노리고 있는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한시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면? 가진 건 하나 없는 거지는 불행한가?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며 아무 걱정도 없이 느러지게 낮잠을 잔다면?

지금 진행 중인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방향을 틀어야 한다. 기존 길을 고수해서는 삶이 바뀌지 않는다. "길 잃은 사람이 되기 이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모든 여행 안내책과 지도를 방해물로 분류하고 무시하는 것이다."(28쪽) 이는 대단히 두려운 일이다. 안정을 포기해야 한다.

길을 잃으면 방황하면서 불확실함에 직면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고 나면 우리 몸의 감각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28쪽) 이제 지루함을 벗어나 새로움 모험을 할 수 있다. 일부러 길을 잃어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무지의 상태에 놓이는 것이야말로 길을 제대로 잃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28쪽) 어떤 일이든 너무 자세히 잘 알고 시작하면 오히려 더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차라리 몰라야 한다. 모르니까 알고 싶어서 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안다면 그걸 할 동기는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인생 성공의 지도를 잊고 자신의 흥미와 스스로 느낀 재미를 따라 인생 길을 걸어 자기 지도를 완성해야 한다. "지도가 없다면 길을 잃기는 한결 수월해진다."(28쪽)

인생은 흐르는 강물이다. 만족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으면 갑자기 닥치는 재앙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서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경에 이르나, 스스로 불확실성에 뛰어들면 그 어떤 불행한 상황에 처해도 침착하게 살아낼 수 있다.

삶을 사는 데 명확한 이유가 없다면, 우리는 살면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마케팅 교수 테드 레비트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사람들은 6밀리미터 드릴을 가지기 위해 드릴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6밀리미터의 구멍을 원하는 것이다."(246쪽)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 성공하려는 것이다.

진정한 인생은 의미를 추구한다. 각자의 의미에 따라 길을 걷는다. 사업이 망했다고 이혼했다고 취직하지 못했다고 더 길을 가지 않으려는가? 당신의 의미가 그런 실패로 사라지는가? 다시 의미있는 그 길로 갈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심에서 만족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248쪽)

자기가 사는 의미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이래야 성공한다, 이런저런 말 듣고 따라하기 지쳤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런 지도와 나침반을 과감하게 버리고 자신만의 감각으로 살아보자.

이 책은 길 잃는 방법을 알려주고 길 잃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자기 길을 찾아내 자기 길을 가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끝내 찾지 못해 굶어 죽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위험을 어느 정도 무릅쓰고 나아가야 새로움을 경험하고 자신감이 생기는 법이다. 길을 잃어야 지혜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