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 상 - 10점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열린책들
죄와 벌 - 하 - 10점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열린책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읽기 #13 죄와 벌 줄거리 독후감 느낀점 등장인물 첫문장 열린책들 큰글자판

 

:: 죄와 벌 첫 문장

 

"찌든 듯이 무더운 7월 초의 어느 날 해질 무렵, S골목의 하숙집에서 살고 있던 한 청년이 자신의 작은 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K다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11쪽)

 

첫 문장입니다. 석영중의 해설로는 이 한 문장에 시간, 공간, 사람, 움직임이 다 들어갔다고 합니다. 완벽한 문장이니, 방과 걸음의 의미니 하는 것들은 해석을 하던데요. 작가가 애써 의도적으로 그런 상징이나 의미를 생각해서 그렇게 썼다고는 생각진 않습니다. 쓰다 보니 어쩌다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죠.

 

:: 죄와 벌 줄거리

 

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중에 유별나게 잘 알려졌다. 학교에서 읽기 과제로 많이 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느낀 점 써오라고 하니 줄거리 써야 하고 독후감을 내야 하니까.

 

문제는 막상 이 책을 읽으려고 하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대부분이 그런 편이지만, '죄와 벌'은 술술 읽히지 않는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주인공이 내내 뭐라뭐라 계속 혼잣말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기존 소설 독법 입장에서는 참으로 불친절한 서술이다.

 

줄거리라고 해 봐야 딱히 사건이랄 것이 없다. 핵심 사건만 추리면, 청년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후 소녀 가장한테서 감동을 받아 자수하고서 감옥살이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전부다. 독후감 과제 숙제 때문에 줄거리를 써야 한다면 이보다는 더 많이 써야하겠지. 열린책들 홍대화 번역본에는 하권 끝에 옮긴이가 쓴 다섯 쪽에 달하는 줄거리가 붙어 있다.


:: '좌와 벌'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이 많은 분량의 소설을 읽어낸 사람이라면 기대감이 클 것이다. 뭔가 대단한 결말을 바랄 것이다. 하지만 끝을 읽으면 허탈할 수 있다. 어쩌면 쓰다가 에라 모르겠다고 하고 이야기를 멈춰 버리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죄와 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건 전개 줄거리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해서 다시 읽어야 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 '죄와 벌'에서 이야기하는 살인은 철학적 의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의미를 넘어선다. 그래서 소설이다.

 

주인공 청년 로쟈가 노파를 살인하는 것은 자기 논리적으로는 정의 실현이었다. 하지만 '정의 실현' 후에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양심의 괴로움에 사로잡힌다.

 

그런 그를 소냐가 부활시킨다. 요한복음에서 라자로의 부활 부분을 읽는 장면은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부분이지만, 소설의 주제를 위해서는 꼭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소냐는 소설 후반부에서는 성녀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소설 '죄와 벌' 마지막 부분에서 주목해 볼 문장은 다음과 같다. 열린책들 홍대화 번역본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는 다만 느꼈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 속에서 무언가 전혀 다른 것이 형성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809쪽

 

"새로운 이야기, 한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그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는 이야기,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810쪽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참모습은 정신적 부활로 드러난다. 사람의 삶은, 그리고 영혼은 이론으로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리하고 처리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영혼의 순수함을 열정적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어간다. 광기에 사로잡힌, 영혼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도 선생이 '죄와 벌'에서 펼쳐보이는 심리 묘사는 놀랍다. 읽는 이가 그 등장인물이 된 기분이 든다.

 

 

 

 

 

 

:: 소설 '죄와 벌' 등장인물 정리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소설을 등장인물 이름 때문에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부러 등장인물 이름을 따로 적어두거나 아예 책에 맨앞에 정리해서 적혀 있다. 그래도 헷갈리고 어려운 이유는, 러시아 이름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기 못한 탓이다.

 

러시아 사람의 이름은 총 세 개가 있다. 영어권 이름이 세 개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똑같진 않다. 영어 이름에서 가운데 이름, 즉 미들 네임은 세례명인데 거의 안 쓴다. 하지만 러시아 사람의 중간 이름은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이고 일상에서 자주 쓴다. 오히려 마지막 이름, 라스트 네임은 미들 네임에 비해 자주 쓰지 않는 편이다. 라스트 네임은 여자가 결혼할 경우 남편의 성을 따른다. 이 점은 영어 이름과 똑같다.

 

죄와 벌 주인공의 이름은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꼴리니꼬프다. 로마노비치는 아버지 이름이다. 여성은 오브나, 예브나를 붙여서 만들고 남성은 오비치, 예비치를 덧붙여서 만든다.

 

그리고 퍼스트 네임은 종종 애칭을 쓴다. 이 점은 영어 이름이랑 비슷하다. 로지온의 애칭은 로쟈, 로지까이다.

 

주요인물만 정리하겠다.

 

로쟈, 로지까,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꼴리니꼬프 : 주인공

뿔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라스꼴리니꼬바 : 주인공의 어머니

두냐, 두네치까, 아브도찌야 로마노브나 라스꼴리꼬바 : 주인공의 여동생

 

알료나 이바노브나 : 전당포 주인

리자베따 이바노브나 : 전당포 주인공의 이복동생
나스따시야 빼뜨로브나 : 주인공 하숙집의 하녀

 

드미뜨리 쁘로꼬비치 라주미힌 : 주인공의 친구
조시모프 : 주인공의 의사

뽀로피리 빼뜨로비치 : 주인공에게 자수를 다그치는 예심 판사

 

아르까지 이바노비치 스비드리가일로프 : 주인공의 여동생 두냐에게 흑심을 품은 지주

마르파 빼뜨로브나 스비드리가일로바 : 지주의 아내

뽀뜨로 빼뜨로비치 루쥔 : 두냐의 약혼자

 

세묜 지하로비치 마르멜라도프 : 퇴역 관리

까쩨리나 이바노브나 마르멜라도바 : 퇴역 관리의 두 번째 아내

소냐, 소네치까,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라도바 : 퇴역 관리의 첫 번째 아내가 낳은 딸

 

 


:: 영문 위키에서 알아낸, 흥미로운 사실 - 노란색의 상징은 고통 받는 상태 혹은 정신병이다

정당포 주인 알료나 이바노브나의 방 벽의 벽지 색은 노란색이다.

루쥔의 반지 색은 노란색이다.

로쟈의 다락방 벽 색은 노란색이다.

소냐의 매춘 신분증/허가증의 색은 노란색이다.

러시아 어로 정신병원을 노란색 집이라고 부른단다.

 

 

:: 열린책들 출판사에서는 왜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로 표기하는 것일까?

 

러시아 원음 발음에 가깝게 우리말로 표기한 것 같다.

우리말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도스토옙스키'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많이 쓰는 표기는 '도스토예프스키'다.

 

※ 열린책들에서 큰글자판이 나왔다. 

 

판형은 기존과 동일하다. 다만, 본문 글자 크기가 2포인트 커져 12포인트다. 그래서 쪽수가 30% 늘어났다. 물론 인쇄 내용 자체는 똑같다.

 

죄와 벌 - 상 (큰글자판) - 10점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열린책들
죄와 벌 - 하 (큰글자판) - 10점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열린책들

 

 

 

양심의 불꽃, 여윈 말 이야기

마흔, 도스토옙스키 읽기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열린책들의 전자책 '세계문학 e컬렉션 세트(전170권)'가 도스토옙스키 전집(총 26권)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세운 목표가 도스토옙스키 전집 독파다. 155 세트를 산 후에 15 업그레이드 팩 세트를 사서야 비로소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완성했다. 총 스물여섯 권이다.

2016년 12월 27일 현재에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 세트가 180권이 되었고 도스토옙스키 전집(총 26권)을 포함하고 있다.

2017년 1월 18일 현재, 도스토예프스키 작품만 묶어서 전자책 세트로 팔고 있다. 종이책으로는 도스토옙스키 전집은 아직 안 팔고 있다. 그냥 낱권으로 26권을 사면 되겠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이 더는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았음을 깨닫고 의미있는 일을 해보려고 한다. 늙을수록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촉박할수록 신중한 법이니, 독서도 신간보다는 고전에 손이 간다.

나이 드니 고전이 더 깊게 더 많이 이해된다. 머리가 아니라 경험으로 이해한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세상 부조리와 더러운 년놈들과의 타협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쌓인 독을 고전 읽기로 해독하자. 

죄와 벌, 양심의 불꽃

소설 '죄와 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여윈 말을 억지로 짐수레에 묶어 사람들이 학대하는 부분이다. 언뜻 보기에 이야기의 전개와 큰 관련이 없는 듯 보일 수 있으나 이야기 전체를 이끄는 중심 감정이다. 소냐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소냐에게 하는 말("잘 있어라, 이 불쌍한 것...! 여윈 말을 너무 부려 먹었구나...!")로 다시 이 작은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라스꼴리니꼬프가 폭리를 취하는 전당포 노파를 죽이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이론적 정의 실현 살인'을 실천에 이르지만 양심의 열병에 걸리고 만다. 그의 살인은 논리적으로는 옳지만 삶은 그렇게 논리적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논리적으로만 보자면 삶은 모순이며 오직 죽음만이 타당하다.

로쟈의 그림자로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있다. 그는 갈등 많은 양심 대신에 명쾌한 욕망을 택한다. 욕망의 끝은 충족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로쟈의 여동생 두냐의 사랑을 얻지 못하자 그는 논리적인 귀결로 더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반면 로쟈는 소냐의 사랑이 있고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 있어 삶으로 나아간다.

양심의 괴로움 속에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그들은 논리적이지 못하고 상식적으로 수긍이 안 되는 행동을 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창녀 노릇을 하는 소냐는 미친년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소냐를 무자비하게 착취할 뿐인데도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돈을 벌어다 갖다 바친다.

로쟈는 자기가 가진 돈 전부를 소냐의 아버지 장례 비용으로 쓰라고 줘 버린다. 일부가 아니라 전부다. 우리의 정상적인 선행은 자기의 일부를 주고서 사회적 존경과 인기를 얻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재산 전부를 남을 돕기 위해 쓴다고 하면 미쳤다고 하지 제정신이라고 하지 않는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의 광기 어린 혼잣말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쏟아진다. 순수한 마음과 현실의 부조리가 대립하면서 정신은 비명을 지르고 행동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극한 상황에 처하자, 양심의 울부짖음이 불꽃처럼 타오르며 삶의 희망을 만든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삶의 부활을 예감한다. "그는 다만 느꼈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 속에서 무언가 전혀 다른 것이 형성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성경 요한복음(번역서는 '요한의 복음서') 11장 나사로(번역서는 '라자로')의 부활 이야기를 억지스럽게(뜬금없이 로쟈가 소냐한테 성경 책을 읽어달란다.) 추가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소설 '죄와 벌'이 추구하는 것은 영웅주의 무신론이 아니라 구원과 자기 희생의 기독교 유신론이다.

로쟈는 살인으로 마치 자신이 죽은 것처럼 느끼는데 자수를 하고 소냐의 사랑을 받으면서 부활을 시작한다. 소설 '죄와 벌'은 바로 이 정신적 부활을 강조하며 끝난다. "새로운 이야기, 한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그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는 이야기,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2014.04.28

죄와 벌 세트 - 전2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학수 옮김/문예출판사

죄의식, 욕망, 양심의 심리소설

인간의 불안, 갈등, 슬픔, 기쁨, 절망, 희망, 특히 죄의식, 욕망, 양심을 심연의 깊이로 보여주는 심리소설이다.

가난한 대학생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다는 범죄소설이지만 추리소설로 보는 이는 드물다. 범죄의 스릴이나 반전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 본성을 파헤치는 '철학소설'에 가깝다.

사건 전개를 치중해서 읽어내고자 하는 이들은 도스토옙스키 소설이 대체로 그렇듯 등장인물들의 장광설 독백에 질려서 더 읽기를 포기한다. 반면 읽는 이의 심장을 움켜쥐고 마구 흔들어대는 문장의 미칠 듯한 폭주에 사로잡히면 도저히 책에서 눈을 떼기가 불가능하다. 도스토옙스키에 중독되면 커피 마시듯 읽어 열 번 스무 번 백 번 읽는다.

이미 줄거리와 사건 전개를 아는 상태에서 다시 읽어 보니, 주인공의 불안 심리가 수술용 매스처럼 정확히 날카롭게 묘사해 나아간다. 경악스러운 문장이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냐. 

이 옛날 소설이 오늘날까지 폭탄 같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뭘까. 자기 아내의 양말까지 팔아서 술을 마시는 사내. 그래 이건 가난을 과장해서 만든 이야기에 불과하지. 정원 감원 때문에 실직한 가장이 허름한 술집에서 넋두리를 해댄다. 요즘 얘기잖아?

지독한 가난에 빠져 정신이 돌아버린 사람들을 집요하게 그리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처음에는 낡아빠진 옛날 이야기라는 인상을 받지만 나중에는 오늘날 이야기로 읽힌다. 경제불황과 장기실업을 피할 수 없는 요즘에 사람다움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살인과 자살, 학대와 자학은 극단 상황에 놓인 인간이 자주 보이는 행태다.

김학수 문예출판사, 한문투 옛날 번역

2013년 4월에 나온, 문예출판사 김학수 번역본은 옛날 번역이다. 도스토옙스키 150주년인 1971년에 출간한 책을 다시 편집했다. 옛날에나 썼던 한자어가 종종 나와서 읽기 거북할 수 있다.

열린책들 홍대화 번역과 비교해 보니, 정확성에서도 떨어진다. 읽는 데 큰 지장을 주진 않지만 이런 거다.

홍대화 : 1베르스따 밖에서도
김학수 : 1킬로미터 밖에서도

홍대화 주석에 보면, 베르스따는 미터법 시행 전 러시아의 거리 단위란다. 1베르스따는 1.067킬로미터다.

홍대화는 우리말 위주고 김학수는 한문투다. 읽으면 느낌이 다르다.

홍대화 : 7백30발자국이었다.
김학수 : 730보였다.

너무 사소한 거 아니냐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홍대화 : 사소한 것, 사소한 것이 중요하다……!
김학수 ; 사소한 것, 사소한 것일수록 중요하다!

2015.01.01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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