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페스트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문학동네 펴냄

희곡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 마지막 작품이다. 주제는 자비다.

상황 자체만 보자면, 그리고 극의 전개로 봐서 기대되는 것은 복수인데 결론은 자비다. 이야기 초반부터 자비는 예정되어 있다. 지금 이렇게 쓴다고 스포일러 만들었다고 나를 비난한다면, 정말이지 당신은 둔한 사람이다. 푸로스퍼로가 폭풍우로 그 사람들을 죄다 죽여 버릴 수 있는데 왜 애써 공기의 정령 에어리얼에게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게 하라고 시켰겠는가.

자비가 되려면 용서하는 사람이 상대를 완전히 제압할 힘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비는 성립되지 않는다. 강력한 힘이 없으면서 자비라고 하면 상대는 당신을 비웃을 것이다. 힘의 논리만 보면 자비는 말이 안 되는 행동이다. 복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타당한 행동이다.

권력욕에 취해 양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친동생이라는 사람이 반역해서 밀라노 공국 군주 푸로스퍼로와 그의 딸을 쪽배에 태워 바다에 던져 버린다. 운이 좋게도, 둘은 섬에 도착해서 살아남았고 프로스퍼로는 무려 12년을 복수를 위해 마법을 갈고 닦는다.

자, 그럼 이제 처절한 복수극이 벌어져야 하지 않나. 그러기는커녕 병 주고 약 주는, 맹물 같은 자비가 이어진다. 프로스퍼로는 각자에게 따끔한 교훈이 될 정도의 벌을 주고는 다 포기한다. 그 어마어마한 마법의 힘을 버리고 소중한 딸마저 자신을 배신 나폴리 왕 알론조의 며느리로 준다.

 


용서가 너무 쉽지 않나.

푸로스퍼로가 에어리얼에게 하는 말이다. "공기에 불과한 네가 그들의 고통을 아프게 생각하는데, 그들과 같은 인종인 내가, 그들에 못지않게 날카롭게 정서에 반응하고 고통도 느끼는 내가, 너보다 더 동정적이지 않겠느냐? 비록 그자들이 나에게 저지른 큰 죄는 나의 골수에 사무치나, 나는 고매한 이성으로써 분노를 참고 있는 것이다. 더 귀한 행동은 복수에 있기보다는 용서의 미덕에 있는 것이다."

4막 1장, 푸로스퍼로의 말이다. "이제 우리의 잔치는 다 끝났다. 말한 대로 이 배우들은 모두 정령이었다. 이제 다 공기, 엷은 공기 속으로 녹아버렸다. 그리고 기초 없는 이 허깨비 건물처럼 구름 높이 솟은 탑들, 호화로운 궁정들, 지엄한 사원들, 거대한 이 지구 자체도, 진정 이 세상의 온갖 사물이 다 녹아서, 이제는 사라져버린 저 환영처럼 희미한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된다. 우리는 꿈과 같은 존재이므로 우리의 자잘한 인생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다."

자비는 두 가지를 갖춰야 행할 수 있다. 첫째, 힘이 있을 것. 아주 강력해서 상대를 완전히 제압할 정도로 커야 한다. 즉 복수가 거의 확실하게 가능할 정도로 힘이 있어야 한다. 둘째, 인생의 허무를 알 것. 인생에 미련이 있는 사람은 절대 자비를 배풀 수 없다. 삶은 환영처럼 꿈처럼 연극처럼 그렇게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복수를 버리고 용서를 택할 수 있다.

에필로그에서 주인공 푸로스퍼로는 자신의 힘 마법을 포기하며 신의 자비를 빈다. 세상 떠나기 전에 깊은 한숨 분위기다. 그는 자유롭다. 마음 편히 영원히 잠든다.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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