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주인공은 오셀로지만, 비극을 조작한 주인공은 이아고다. 질투에 눈이 멀어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마는 오셀로는 멍청하고 순진해 보일 뿐이었다. 반면, 이아고는 악당이면서도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력한 인상을 주었다. 그의 대사는 묘한 공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이아고는 멀쩡하고 순진한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해서 살인을 하도록 '정직하게' 속삭인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커튼'에 나오는 범죄자가 딱 이런 식이다. 스스로 살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살인을 하도록 부축인다. 제목이 커튼인 걸 보면 오셀로를 의도적으로 차용한 것 같다. 극 마지막 부분 지문에 "커튼을 친다"라고 나온다.

이아고의 지능적인 범죄 수법은 기묘하다. 손수건 한 장과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장면 연출로 오셀로 장군을 질투에 불타게 하고 그 주변 인물들이 이 질투를 확산하고 자극하도록 조작한다. 사람들의 강직한 성품과 정직한 말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거짓을 믿도록 만든다. 오셀로가 극 중 내내 "정직한 이아고"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그래서다.

이아고는 타인의 선의와 본성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아주 교활한 자다.

잔머리를 많이 쓰는 범죄는 들통이 나는 법이다. 결국 이아고의 범죄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밝혀지고, 우리 비극의 주인공 오셀로는 죽음으로 삶을 끝내며 비극을 완성한다.

어떻게 보면, 부조리극이다. 손수건 살인 사건이라니.

이아고 : 공기처럼 가벼운 하잘것없는 것도, 질투하는 자에겐 성서만큼 강력한 증거가 되지. Trifles light as air, Are, to the jealous, confirmation strong, As proofs of Holy Writ. -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다.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사원'에도 나온다.

에밀리아 : 질투심은 스스로 잉태되어 태어나는 괴물이에요. 

에밀리아 : 당신(이아고)의 거짓말이 이 살인을 낳았다고요. 

손수건 하나 때문에 오셀로 장군은 질투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자살한다.

오셀로 장군의 부하 중 한 명인 이아고는 인사에 불만을 품고 음모를 꾸민다. 이아고 입장에서는 그 불만이 정당하다. 무공을 세우고 주변인 추천도 받은 자신은 장군의 잡심부름이나 하는 기수(넘버 쓰리)가 되고 전쟁 경험이 없으면서 탁상공론에만 능한 캐시오가 부관(넘버 투)이 되었으니.

상관은 자신이 자주 부리는 부하를 공평하게 잘 대우할 줄 알아야 하고 부하의 불만을 알아차리고 어떻게든 처리해 놓아야, 배신을 안 당한다. 가장 가깝고 믿었던 부하한테 배신을 당하는 것은 대체로 상관의 잘못된 인사처리에 원인이 있다. 이런 비극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작법 면에서 두 가지가 흥미롭다.

시작이 두 인물의 대화 한가운데에서 시작한다. 오늘날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흔한 수법이지만 셰익스피어는 그 옛날 이 기법으로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을 줄 알았다. 왜 그가 천재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극임에도 희극적 요소가 있다. 로더리고와 광대가 바보짓으로 웃긴다. 웃음은 쉼표처럼 관객의 긴장을 풀어준다.  

그냥 빠르게 읽을 때는 몰랐는데, 펭귄클래식코리아 번역본의 주석을 읽어 보니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에서 논리적 오류를 저지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큰 문제가 될 건 없지만 틀린 건 틀린 거다. 3막 4장에서 손수건을 이집트인이 어머니한테 줬다고 하고서는 5막 2장에서는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줬다고 나온다.

앞에서 했던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이야기꾼이 자기 이야기에 빠져 빠르게 써내려갈 때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창작 경험이 없는 사람은 어리둥절하겠지만 말이다. 심지어 등장인물이 중간에 바뀌거나 기껏 등장시켜 놓고 아무런 일도 말도 안 시키는 경우도 있다. 퇴고를 여러 번 하는 작가한테는 발생하지 않는다. 단숨에 써내려간 후 그 즉흥성을 살리기 위해 퇴고를 하지 않는 작가에게는 번번히 일어난다. 대표적인 예가 아서 코난 도일이다. 그는 지적을 받고서도 원고를 고치지 않았다. 셜록키언들처럼 셰익스피어 팬들은 작가를 옹호하기 위해 온갖 이론을 갖다 붙여 변명한다.

희극 '베니스 상인'에서 기독교인을 옹호하고 유대인을 욕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분명하게 볼 수 있었고 불편했는데, 비극 '오셀로'에도 보여서 당혹스럽다. "그 할례받은 개 같은 놈."(펭귄 특별판 231쪽) 작가 자신의 생각인지 당대 시대 사람들의 생각인지 알 수는 없으나 어쨌거나 글에 보이고 읽을 때마다 싫다.

셰익스피어 읽을 때 또 하나 싫은 게 성교를 암시하거나 지시하는 표현이다. 소네트에는 뭐 계속 나온다만, 희곡에서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허기야 이게 성기나 섹스를 뜻한다는 걸 알아차리려면 주석이 필요할 정도긴 하다만.

이로써, 펭귄클래식코리아 특별판 종이책으로 두 번,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자책으로 한 번 읽었다. 이제 영어 원서로 읽어봐야지.

2015.05.25

Posted by 러브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