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 외 - 8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열린책들
백야 외 - 열린책들 세계문학 126 - 8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열린책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읽기 #4 백야 외 - 창작 초반기 소설의 순박함


🔖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불륜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제목에서도 그런 기운이 물씬 풍기는데, 기대대로 전개된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연극 같은 분위기다. 특정 장소로 한정된 곳에서 열심히 코미디 같은 대사를 주고받는다.


🔖 약한 마음

자신의 행복에 정신이 미친 사람 이야기다. 주인공 캐릭터 자체가 당혹스럽다. 행복에 미쳤다는 설정이니 이게 이해가 되면 내가 미친 거겠지.

결국 정신병원에 갇힌다는 식의 결말은 ‘분신‘과 같지만 결말은 대단히 씁쓸하다. 우정도 사랑도 정신병에 걸리는 바람에 잃고 만다.


🔖 정직한 도둑

술주정뱅이와 외투 이야기는 당시 러시아 문학에서 식상한 소재다. 이 단편에서는 그저그랬으나 ‘죄와 벌‘에서는 이 소재로 끝판왕 솜씨를 보여준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 솜씨를 갈고닦았는지 이 초기 단편을 읽으면 알 수 있다.


🔖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아주 짧은 소설이다. 사랑이 아니라 돈 때문에 결혼한다는 이야기는 도 선생 소설에 계속 나온다. 이 소설에서는 강렬한 장면으로 이 상황의 비극 혹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희극을 보여준다. 대단한 작품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돈이냐 사랑이냐의 갈등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사랑으로 결혼한다는 관념이 재배적인 것은 아니다. 경제적 결합으로 보는 것이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다.

 


🔖 백야

1인칭 남자 주인공 시점으로 쓴, 연애소설이다. 제목 백야에서 낭만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사랑 이야기라고 해서 너무 기대 수준을 높이진 말기 바란다. 도 선생 스타일이라서, 절대로 제인 오스틴 소설이 아니니까.

신문 칼럼 연재 '뻬째르부르그 연대기'에서 썼던 몽상가를 이 소설 '백야'에서 구체적인 캐릭터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 몽상가 유형은 후반 걸작들에서 이어서 나온다. '죄와 벌'의 주인공 로쟈가 바로 이 고독한 몽상가다. 외부 접촉은 거의 안 하고 틀어박혀서 이런저런 공상만 하고 지낸다.

이야기 틀거리는 '가난한 사람들'과 대단히 흡사하다. 남자쪽에서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그다지 남자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오빠 혹은 그냥 친구로만 여긴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옛사랑이 있다. 나스쩬까가 옛사랑이 되돌아왔다고 그리로 가는 모습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그루셴카와 닮았다. 어장관리 연애랄까. 옛사랑한테 가고서도

남자 주인공의 짝사랑이 안타깝다. 허기야 몽상가의 사랑이란 한여름의 꿈 같은 것 아닌가. 현실적인 사랑이 아니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여자 주인공 나스쩬까가 스스로 자기 얘기를 하는 대목이 짤막하게나마 있는데, 이는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의 1인칭 여자 주인공 화자 소설로 이어진다.



🔖 꼬마 영웅

제목처럼 소년이 화자로 나오는 소설이다. 대단히 로맨틱한 소설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륜이다.

소년이 M부인을 사랑하는데, M부인은 N청년과 서로 사랑하는 듯 보인다. 소년은 M부인을 위해 그 불륜의 사랑을 지켜주는 영웅적 행동을 한다. 한 번은 사나운 말 타기였고 다른 하나는 M부인이 분실해서 속상해 하던 편지를 건네주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답게 주인공 소년의 열정적 감정이 폭풍처럼 그려져 있다. 게다가 서정적인 아름다움마저 느껴지며 이토록 말랑말랑한 낭만주의 분위기라니. 도 선생의 작품 중에 예외적인 편이다.

이런 소설을 감옥 생활 중에, 그것도 사형을 받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구상하고 써냈다고 한다. 이런 순결한 사랑 이야기를, 최악의 현실에서 쓰다니. 도스토예프스키는 정말 괴물 같은 작가라 할밖에. 어쩌면 도 선생의 상상력은 현실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던 듯하다.

창작 초반기에는 이렇게 순수한 작품을 쓰지만 후반기 작품에는 사회 비판에 철학에 신학에 신비주의에 뭐에 갖가지를 용광로처럼 끓게 한다.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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