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서둘러 찾아오고 용기는 더디게 힘을 낸다
고든 리빙스턴 지음
노혜숙 옮김
리더스북 펴냄


고든 리빙스턴의 책은 달콤한 말로 달달한 위안을 주는 자기계발서나 정신적 아픔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수필집과는 다르다. 요즘 인기를 끄는 힐링과는 정반대로 정신적 상처를 더 키울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읽으라고 당신에게 권한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당혹스럽다. 지은이는 위선을 날카롭게 찔러댄다. 독자의 비위를 맞추려는 태도가 없다. 매서운 채찍질만 계속 해댄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따스한 위로보다는 차가운 진실만을 말한다면 과연 계속 들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끝까지 읽긴 했지만 쉽고 편안한 독서는 아니었다. 더는 읽고 싶지 않았으나 어느새 책을 펴고 읽어나아갔다. 이 사람 짜증나서 책을 덮었다. 그러다가다고 나도 모르게 다시 펴서 읽었다. 온탕과 냉탕을,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듯한 책 읽기라니. 이런 책을 읽으라고 나는 당신에게 추천한다.

글쓴이는 한국 독자에게 쓴 서문부터 냉기를 유지한다. "글쓰기는 직접 만날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생각, 감정, 사연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외로운 작업입니다."(6쪽) 다음 문장에서 따스한 말이 나오길 기대했는데 바로 냉정하게 말한다.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건설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상하는 것은 주제넘은 생각입니다. 특히 우리의 삶에 의미와 기쁨을 가져오는 방법에 대해 이러쿵저렁쿵 이야기하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6쪽)

용기를 다루는 책이지만 두려움을 많이 다룬다. 종교, 전쟁, 정치, 미국의 위선과 폭력을 낱낱이 폭로하면서 두려움을 독자의 눈앞에 펼쳐 놓는다. 진실은 대체로 괴롭다. 고통을 노출시키고 기쁨을 주지 않을 때가 많다. 진실은 두려움과 과거의 상처를 똑바로 바라볼 기회를 준다. 자발적 선택의 행동은 용기가 있어야 한다.

"최근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정치 용어 중, 부유한 유권자들을 일컫는 '일자리 창조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타락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단어가 과연 있을까요?"(238쪽)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하기는 꺼렸다.

현충일 행사가 살아남은 자들의 자기 위안일 뿐이라는 지적에는 뜨끔했다. "우리는 군사적 모험을 지지하는 것과 애국심을 동일시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누가 그 대가를 치르는지에 대해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215쪽) "일년에 한두 번 깃발을 내걸고 그들을 기념하고 추모하는 것 역시 비겁한 이들의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릅니다."(216쪽)

두려움을 직면하라는 격언을 지은이 자신부터 실천했다. 자식을 잃은 아픔, 자신이 입양아라는 부끄러움, 베트남전 참전에서 봤던 거짓된 행동을 담담하게 고백했다.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기보다는 비겁한 짓을 그만두라고 얘기한다. 요즘 성폭력, 학교폭력 등이 문제되는 것은 바로 '방관자 현상' 때문이다. "사건을 목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을수록 누군가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낮아진다."(232쪽)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는 방법은? 작은 일부터 두려움을 인정하고 용기를 내보는 연습을 하란다. 집단따돌림을 당하는 친구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홀로 사는 노인에게 찾아가 말벗이 되어주고 부당한 일에 분노하라. 투표권을 올바르게 행사하고 유기견을 키우고 공동화단을 가꾸라. "무심히 지나쳤던 주변을 둘러보고 내가 할 수 있을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용기."(240쪽)다. 방관자의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의 인간 심리 통찰은 상쾌하다.

불평분자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한편, 삶에는 운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비난하는 태도를 버리고, 우리는 공동 운명체이며 때론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242쪽)

왜 정치가들은 그토록 싸우기만 하는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각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건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와 관련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탓하는 것을 좋아합니다."(244쪽)

무신론적 견해를 밝혔으나 이해인 수녀가 추천사를 쓴 것은 글쓴이 고든 리빙스턴이 신랄한 어투로 어두운 진실을 얘기하면서도 낙관적 전망과 종교적 태도를 버리진 않았기 때문이다. "고통은 선택할 수 없지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해인은 암투병 중이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자기 내면의 평온한 성찰이다.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고, 남겨둘 것은 남겨둔 채로 내일을 맞으려고 합니다."(255쪽) 책 처음에 제기했던 죽음(가장 큰 두려움)의 문제, 그것을 지속적으로 응시했을 때 우리가 이를 수 있는 상태다.

이 책은 읽기 버겁다. 우리와 우리 사회의 위선과 두려움을 똑바로 바라보라는데, 이는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다. 진실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만 선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두려움을 정직하게 바라보라. 그때부터 진정한 용기가 솟아난다.

※ 무료로 책을 받고 쓴 서평입니다.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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