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사람들 1 - 6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윤우섭 옮김/열린책들
상처받은 사람들 2 - 6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윤우섭 옮김/열린책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읽기 #8 상처받은 사람들 - 멜로? 비극? 연애소설?

흥미롭게도 소설가가 화자다. 1인칭 주인공 시점. 소설에서 말하는 사람이 작가의 분신이다. 하는 말 하나하나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소설 창작 관련 진술이 그대로 나온다.

"좁은 방에선 생각조차 답답해진다."(11쪽) "내겐 작품을 직접 쓸 때보다 그것을 구상하고 어떻게 그 구상을 글로 옮길까를 상상할 때가 언제나 더 즐거웠던 것이다. 사실 이것은 게으름 탓이 아니다."(12쪽)

주인공 바냐는 첫 소설로 나름 유명한 소설가로 나온다. 도 선생 본인 얘기다. 소설 쓰는 작가라는 존재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는지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당시 러시아에서 문학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꽤나 높게 본 모양이다.

이전 작품 '아저씨의 꿈'과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에서는 코미디를 추구했으나 실패했고 그래서 이번 '상처받은 사람들'은 비극을 써 보기로 한 것 같다. 계속 첫 히트작 '가난한 사람들'의 명성을 되찾고 하자는 노력이 계속된다. "언젠가는 무엇이든지 대단하고 훌륭한 것을 써낼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28쪽)

'상처받은 사람들'은 어정쩡한 소설이다. 연애소설도 아니고 멜로도 아니고 비극이라고 하기도 뭣하다.

삼각관계 연애소설이긴 한데, 도 선생의 소설 분위기는 연애소설이나 유머소설과는 안 어울린다. 열에 들뜬 캐릭터, 모욕당하는 인물, 모욕하는 사람, 돈에 찌들리는 사람, 돈과 권력의 힘을 휘둘러대는 년놈들, 너무 착해서 혹은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 이러니, 무슨 달콤한 연애소설이 나오겠는가.

작가가 의도하기로는 넬리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설정해서 이야기를 완성하고자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넬리는 이야기의 곁가지다. "나는 내가 줄거리를 벗어나고 있음을 느낀다."(451쪽) 중심은 여자 둘, 남자 둘 서로 꼬인 삼각관계 두 개다.

넬리의 이야기는, 정확히는 넬리의 어머니 이야기는 아흐메네프의 딸 나따샤 이야기와 겹친다.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집을 나가 남자랑 살다가 결국에는 버림받는다. 아버지는 딸을 버린 자식으로, 원수로 여긴다.

후기 걸작의 시작 '죄와 벌'의 밑그림을 보는 듯했다. 자의식과 선함이 지극한 캐릭터가 정신병 비슷한 것에 걸리고 의사가 와서 치료하고 정신을 잃었다고 깨어나고 친한 친구가 곁에서 도와주고. 아직 '죄와 벌' 수준의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후반기 작품의 분위기를 예감할 수 있다.

발꼬프스끼 공작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표도르의 전신이다. 음욕과 악의 화신이면서 때때로 광대짓을 한다. 다른 점이라면, 표도르는 대놓고 하지만 발꼬프스끼 공작은 음밀하게 하고 술에 취했을 때만 정체를 드러낸다.

주의사항. 열린책들에서 펴낸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대개 맨 앞에 등장인물 이름과 친인척관계 및 직업을 적어 놓는다. 대개는 이 등장인물 소개가 기나긴 소설을 읽을 때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번 소설 '상처받은 사람들'에서는 결정적인 스포일러다. 따라서 되도록이면 읽지 말기 바란다.

멜로드라마 설정이다. 결혼을 반대하는 두 집안을 도망쳐 나와 사는 두 연인이다.  우연,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그럼에도 도스토예프스키답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넬리가 고백하는 부분은 아마도 첫 성공작 '가난한 사람들'과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썼던 것 같다.

이 소설의 본래 제목은 '멸시당하고 모욕당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은 그 제목에 충실하게 끝맺는다. 비열한 인간은 끝까지 비열하고, 모욕당한 사람은 끝까지 모욕당하면서도 자존심을 지키려고 애쓴다.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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