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집의 기록 - 10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덕형 옮김/열린책들
죽음의 집의 기록 - 열린책들 세계문학 105 - 10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덕형 옮김/열린책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소설 이전까지만 해도 범죄를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범죄자의 심리나 행동을 그토록 잘 알지 못했었다. 관심이 없었다. 악한 사람을 묘사하긴 했어도 범죄자를 다루진 않았다. 특히, 살인범은.

도 선생은 진지하게 제대로 혁명을 꿈꾼 것도 아닌, 고작 어쩌다 모임에서 편지글 한 편 읽었다는 죄로 시베리아 수용소 감옥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온갖 범죄자를 꼼꼼하게 관찰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이를 수기 형식의 소설로 쓴다. 그 소설이 바로 '죽음의 집의 기록'이다. 여기서 죽음의 집은 감옥을 뜻한다.

 


감옥 체험 수기가 아니라 감옥의 범죄인들 모습을 그린 소설로 만들기는 간단했다. 순진하게도, 액자소설 형식을 취한다. 우연히 알렉산드르 뻬뜨로비치가 쓴 10년간의 유형생활 기록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나. 이런 액자 이야기를 맨 앞에 만들어 놓으면 소설로 변신 완료다. 이 소설 대부분이 아마 실제였을 것이다. 이야기가 되기 위해 어느 정도 더하고 빼고 했겠지만. 어쨌거나 소설보다는 실화 분위기가 난다. 다큐멘터리 같다.

그 유명한 '돈은 주도된 자유'는 바로 이 책에 나온다. 그 감옥에서 돈 쓸 일이 뭐 있나 싶은데, 감옥에 갇힌 점만 빼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는, 거의 모든 걸 하고 있다. 술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도박에 고리대금업까지 있다. 동물도 키울 수 있다.

딱히 주인공이 없다. 여러 사람들의 일화를 나열한다. 이 때문에 흥미를 잃을 수 있어서 통독하기 힘들 수 있거나 재미있게 다 읽어치울 수 있다. 나는 전자였다. 나는 사람들이 통독하기 어렵다는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편인데, 이 책은 읽다 말다 읽다 말다를 반복했다.

'죽음의 집의 기록'은 가장 도스토예프스키답지 않다. 장광설이 거의 없다. 오로지 성실하게 여러 인물들의 일화를 받아적는 태도를 유지한다.

웃긴 이야기, 슬픈 이야기, 황당한 이야기, 기괴한 이야기, 온갖 이야기가 다 있다. 가짜 금화 하나를 주조하기 위해 진짜 금화 세 개가 썼다는 위조화폐범. 특히, '벨까'라는 개 이야기는 묘한 울림을 준다.

부상을 당해서 언제나 굴욕을 당하며 주변 사람들과 개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던 개. "이미 벨까는 명예를 생각하는 일은 포기한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모든 희망을 상실한 채 오직 빵만을 위해 살고 있는 듯했으며, 자기 스스로도 이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377쪽) 결국 다른 개한테 물려 죽는다. 

'죽음의 집의 기록'은 범죄 캐릭터 모음집이다. 별별 인간이 다 있고 별별 이야기가 다 있다. 특히, 살인자들. 추리소설에 나오는 그딴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범죄자에 대한, 특히 살인자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진지하고 지독하고도 철저한 관찰의 결과는 나중에 나올 소설의 기반이 된다. "특히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의 기억이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친부살인 이야기는 '카라마조프카의 형제들'에 등장한다.

감옥생활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기독교 작가가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죄와 벌'은 죄에 대한 기독교적 사색의 시작이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완성이다. 인간의 선악, 죄, 인간 존재의 문제가 왜 신이라는 관념의 사색 없이는 무의미한지 끝까지 가 본다. 대단한 집념이다.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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