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 하 - 10점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열린책들
 

 

 



장황한 문체를 걷어내고 줄거리만 요약하면, 한 남자가 두 여자를 모두 사랑했는데 이도 저도 안 되고 도로 백치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결혼을 둘러싼, 정신병원 환자 같은 이들의 막장 드라마다. 코미디는 전작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과 비슷하지만 끝은 전혀 다르다. 비극? 개판이다. 작가가 작정을 하고 등장인물들을 시궁창으로 처넣는다.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허구의 인물들을 통해 다 하고서 버린 듯.

총 4부다. 1부 끝에서 빵 터진다. 그리고 소설 마지막에서 경악하게 된다. 그 외 부분은 대단히 지루한 편이나 중후반부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사상이 뜨겁게 달군 쇠처럼 불타고 있다. 이 글 하단에 몇 부분 인용해 놓았다.

'백치'는 그리 술술 읽히는 소설은 분명 아니다. 1부까지 읽어내기도 버거울 것이다. '백치'는 읽다가 졸거나 통독을 포기한다고 해도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당신만 그런 게 결코 아니다. 워낙 잡다한 이야기가 많아서 종종 샛길로 빠지니까.

이렇게 읽어 보라. 독서의 초점을 흥미로운 사건 진행이 아닌, 물론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너무 적은 탓에, 주인공 캐릭터에 맞춰 보기 바란다. 그러면 이 착한 어른 어린이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아,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이 책보다 먼저 읽기 바란다.

지극히 아름답다고 선한 인물. 이런 사람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에서 그려내고자 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바로 이 '백치'다. 그러니까 '알료샤'의 이전 버전이 '미쉬낀 공작'이다. 알료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주인공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총 2부를 계획했는데, 1부만 완성하고서 작가가 갑작스럽게 죽었다. 그래서 도대체 2부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한데, 아마도 알료샤의 전기일 거라고 추측한다.

미쉬킨 공작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화'라고들 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맞고 전반적으로는 틀린 말이다. 미쉬낀도 얄료샤도 신은 아니다. '유로지비'라 불리는 바보 성인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렇다고 미친 바보짓까지 하는 정도는 결코 아니다. 순진한 정도다.

예수를 닮았다는 것은 어린이랑 친하다는 점과 순진무구할 정도로 착하다는 점과 상대방을 단번에 간파한다는 점 정도겠다. 마쉬킨은 관상쟁이다. 딱 보는 순간, 상대를 파악한다. 점쟁이처럼, 마법처럼, 타고난 재능인 것처럼. 왜 그런지 논리적 이유는 설명되어 있지 않다. 초능력?

돈에도 별 관심이 없다. 외모도 딱히 꾸미지 않는다. 이런 미쉬낀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유도 모른 채 호감을 느끼고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주변 사람들이 자진해서 미쉬낀을 도와준다. 그리고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도 있다.

미쉬킨 공작 스스로도 자신을 '백치'라고 부르고 주변 사람들도 그를 '백치'라고 부른다. 그리고 실제로도 바보 같은 행동을 한다. 코미디 분위기랄까.

알료샤한테서는 그런 바보스러움을 제거하고 단순히 순박한 사람이자 종교적 열망을 지난 인물로 그려진다. 이런 면에서는 미쉬낀과는 무척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지극히 선한 인물' 유형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순진하고 착한 인물은 별로다. 내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읽는 이유는 이런 인물이 아니라 자존심 끝판왕 캐릭터 때문에 읽는다. 도 선생 소설을 읽는 이유다.

아주 옛날에, 십 년 전쯤 되려나, 아니 더 오래된 듯하다, 어쨌든 이 소설 '백치'를 한 번 통독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읽었다. 읽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 읽기를 위한 읽기였다. 그래도 계속 기억에 뿌리깊게 남겨져 있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여자였다.

어마어마한 큰돈을 벽난로에 태워버리는 여자. 이런 미치광이 이야기를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어디선가에서 읽었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게 어느 소설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이제 알았다. '백치'였다. 270쪽에 나온다. 1부 거의 후반부다.

나스따시야는 소설 '상처받은 사람들'에 나오는 넬리처럼 윤리적 자존심이 극단적인 인물이다. 잊히지 않는 캐릭터다. 이름을 잊을 수는 있어도, 이 캐릭터가 한 행동과 그 감정 상태는 워낙 강렬해서 잊을 수가 없다. 정말이지 도스토예프스키다. 징헌 인간 같으니. 이런 소설을 써내다니.

그리고 시체가 있는 방에서 두 사람이 함께 밤을 새우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는데, 어디였나 했더니, 바로 이 '백치'였다.

'백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종교적 철학적 러시아 민족 사상가적 사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이전에 발표한 '죄와 벌'의 생각이 더 발전하고 더욱 굳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로고진과 공작이 십자가를 교환해서 목에 거는 모습은 '죄와 벌'의 한 장면과 유사하다.

무신론, 유신론, 러시아 민족에 대한 믿음. 성찰. "종교적 감정의 본질은 그 어떤 이성적 논리로도 접근할 수 없어, 그 어떤 과실이나 범죄, 그 어떤 무신론도 그걸 붙잡을 수 없지. 그런 것들과는 무언가 달라. 영원히 다를 거야. 거기에는 무신론이 영원히 포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영원히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거라고.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 가장 선명하게 러시아 인의 가슴속에서 가장 자주 발견된다는 것이야. 그것이 바로 나의 결론이라네!"(344쪽)

무신론자가 이 소설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병에 시달리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열여덟 젊은이 이뽈리뜨의 사색과 몽상은 기독교, 죄, 죽음, 삶, 죄의 처벌, 선행을 밑도 끝도 없이 파고들어간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파고들어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열띤 말.

"우리는 신에게 우리 식의 개념을 뒤집어씌워 신을 지나치게 비하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신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면, 인간의 능력으로 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책임을 지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그렇다면 진짜 신의 의지와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나를 심판할 수 있겠는가?"(637쪽)

"무신론은 바로 가톨릭 추종자들로부터 시작된 겁니다. 이러니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무신론은 가톨릭의 허위성과 종교적 무력감의 산물인 것입니다."(835쪽)

"사회주의라는 것도 결국은 가톨릭과 그 교리의 산물이지 않습니까! 사회주의라는 것도 그 형제나 다름없는 무신론고 마찬가지로, 가톨릭에 대한 회의감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가톨릭과 반대되는 정신적 입장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사회주의는 종교가 상실한 정신적인 권위를 차지하려고 하고, 인류가 애타게 호소하고 있는 정신적 갈증을 해소하려 하고, 인류 구원을 '그리스도'가 아닌 '폭력'을 통해 얻으려 한다는 점은 가톨릭과 별 다른 점이 없습니다."(836쪽)

막장 드라마 코미디에서 갑자기 진지하게 심연의 사색과 불타는 감정을 분출해 버릴 때는 정신이 아찔해진다.

 

== 예수 그리스도 형상화 ==

 

때때로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넘겼다. 한 쪽을 여러 번 읽기도 했다. 읽다 자다 깨다 읽다. 반복했다. 늦게까지 도서관에 남아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잡다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탐독했다고 할 수 없다. 그냥 한 번 읽었다.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 이후로 쓴 것인데, 그래서 그런지 <죄와 벌> 이야기를 <백치>에 몇 부분 넣고 있다.

<백치>는 산만하다. 무수한 등장 인물들과 많은 이야기들. 소설의 결말은 모호하다. 큰 줄거리와 상관없는 작가의 체험담(사형 직전에 살아 남은 것, 도박, 간질병 등등)에 여러 잡다한 것들이 담겨 있다.

그래도, 중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똑같지는 않다. 오히려 작가를 많이 닮았다.) 이상형 주인공 미쉬킨 공작의 이야기이다. 미쉬킨 공작은 백치다. 주변 사람들마저 그를 백치라고 부른다. 그가 백치임에도, 사람들은 그에게 가서 고백하려고 하고 그의 인격에 감동을 받는다. 그를 사랑하는 나스타샤와 아글라야. 또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 이야기. 돈, 결혼, 사랑, 사회 비판, 뭐 이런 이야기들이라고나 할까. 그리스도를 닮은 미쉬킨 공작은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결국 치료를 받았던 스위스로 돌아간다.

무신론자 이폴리트가 자신의 논문을 낭독하는 부분에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는데, 스티븐 킹 공포 소설을 능가할 정도로 으스스하다.

작가의 인식 테두리를 볼 수 있었다. 공작의 입을 통해 쏟아 내는, 로마 카톨릭과 무신론에 대한 비난, 그리고 러시아의 종교와 사상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 또 공작의 입으로 말하는, 러시아 상류계급 비판.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유럽 여행 직후 쓴 것이라서 유럽 사회에 대한 실망감과 비난도 보인다.

도스토옙스키가 택한 것은 결국 러시아 정교였고, 참된 그리스도 정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신론자들의 회의를 어떻게 해서든 반박하려 했다. 만년의 작업은 결국 이것에 치중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 작업이 최고로 다다른 미완성 작품이다.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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