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 상 - 6점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상룡 옮김/열린책들

 

미성년 - 하 - 6점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상룡 옮김/열린책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읽기 #17 미성년 - 이념적 인간의 미숙함

 

도 선생의 문체는 장광설과 횡설수설에 형이상학으로까지 날아오르면 읽기 까다롭다. 심리 묘사도 어떤 때 보면 쓸데없는 것이거나 이미 했던 말을 반복한다.

 

문체 면에서 '미성년'은 의외였다. 대체로 편하게 읽히는 일인칭 주인공 회고다. 밑도 끝도 없는 심리 분석이나 묘사가 거의 없다. 여전히 말은 참 많이 하는 편이고 여전히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장광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특징이다. 어쩔 수 없다. 이게 싫으면 읽지 않을 수밖에.

 

귀족의 서자로 태어난 사람이 자신의 청년시절을 회고한다. 별다른 문학적 재능이 없는 사람이 자서전을 쓰는 식으로 나온다. 실제로는 아니면서...

 

'미성년'은 '악령'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사이에 있는 작품답게 두 소설의 특징이 모두 보인다. 

 

'악령'처럼 급진사상가 집단이 나오고 '이념' 논쟁을 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신 존재 논쟁의 씨앗을 볼 수 있다.

 

아버지 '베르실로프'의 정체를 밝히는 작업이 주된 흐름이다. 더불어, 아르까지 자신이 자신이 세운 이념에 따라 살겠다는 객기가 함께 진행된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부터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람을, 삶을, 사회를 어떤 이념이나 합리적 계획(공리주의든 공산주의든 뭐든)으로 개선하는(실제로는 억압하는) 것에 대해서 꾸준히 비판적 시각을 유지한다.

 

소설 '미성년'은 이념형 인간을 그리면서 얼마나 미숙한지 보여준다. 미숙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분위기다.

 

주인공의 이념이라는 게 거창하고 어렵고 고상한 것이 아니라, 부자되는 거다. 갑부가 되는 것이다. 부자되는 방법이라는 게 사람들과의 교재를 피하고 소비를 줄이고 악착같이 저축하는 것이다. 돈은 자유다. 권력이다. 남자를 미남으로 만들어 준다. 왕이 되게 한다.

 

아르까지는 도박을 한다. 그리고 돈을 빌린다. 예전 소설 '노름꾼'처럼 이래저래 돈과 인간관계가 엮여 있다. 상속 문제와 혈연, 사랑, 채권/채무 관계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다른 소설에서 했던 얘기를 반복하고 있다, 실망스럽게도.

 

핵심 이야기는 간단하다. 옷 속에 숨긴 편지 한 통의 파국. 이게 전부다. 곁가지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별 맥락도 없이 끼어 있다. 가끔 이런 삽화적 이야기가 대단히 인상적일 때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5대 장편 중에 유독 '미성년'을 사람들이 별로라는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 이런 식의 설정, 그러니까 유산을 둘러싼 친인척 간의 대립과 음모와 사랑과 화해 이야기는 이전에 썼던 소설 '아저씨의 꿈'과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에서 그리 좋은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미성년'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둘러 결말을 짓는 모습은 정말 전업작가 맞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따라서, 도스토예프스키 광팬이 아니라면 이 소설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이로써,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읽기가 끝났다. 한 작가의 전 작품을 발표 순으로 모조리 읽는, 이른바 전작주의 독서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제대로 읽혀진 때부터 시작되었다. 단지 나이를 많이 먹어서 그리된 것 같진 않은데, 어쨌거나 이십대 시절에는 이해도 안 되고 통독 자체도 안 되고 재미없는 작가가 도스토예프스키였다.

 

전자책으로 있었다. 하지만 안 읽혔다. 종이책으로 새책으로 구입해서 책장에 꽂아놓고 작정을 하고 독파해 나아갔다. 의무와 압박을 스스로 가해서 읽어냈다.

 

다시 읽고 싶은, 또 읽고 싶은, 혹은 계속 읽고 싶은 소설은 아니었다. 인상적인, 한 번쯤 빠질 만한 작가는 맞다.

Posted by 러브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