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독파하는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신원문화사
발매 2009.05.22.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실제로 읽은 사람도 거의 없다. 읽기가 쉽지 않다. 책 읽기에 익숙하더라도 여전히 독파하기 힘들다. 800여 쪽에 달하는 분량(열린책들 번역본 기준)부터가 만만치 않다. 사건 전개보다는 인물의 심리를 묘파하는 데 치중한다. 게다가 주인공의 정신분열 장광설을 읽어내는 것은 고역에 가깝다.

이런 책을 짧으면 30분만에 길어도 1시간 내에 읽어낼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이 생각을 실현한 출판사가 일본에 있다. East Press라는 출판사에서 고전을 '만화로 독파하는' 시리즈를 출판 중이다. 일본에서는 이 책을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다고 한다. 몇 권은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신원문화사에서 25권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마침 '죄와 벌'을 열린책들 번역본으로 읽는 중이었다. 독파는 못했고 제4부 제4장까지 읽었다. 만화로 전체 줄거리와 각 캐릭터의 인상을 기억해 두었으니 더 빨리 읽혀질 듯하다.

만화 그림체는 각 인물의 성격을 잘 드러내도록 그려 놓았다. 특히, 성격 좋은 라주미힌은 딱이었다. 인물의 심리를 만화 그림으로 표현하기 만만치 않았을 턴데, 고전의 분위기를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만화 기법을 이용해서 표현해냈다. 훌륭하다.

만화는 요약이다. 몇몇 세부사항을 생략했다. 원작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노파를 속이기 위해 가짜 은제 담뱃갑을 만들어 건네고 노파는 그 담뱃값을 겹겹이 싼 포장을 푸는 중에 살해당한다. 만화는 주인공이 담뱃값을 꺼내는 척하다가 노파의 뒤에서 살인한다.

정리를 잘했다. 원작(번역서) 800여 쪽 분량을 만화로 190여 쪽에 압축해냈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다. 핵심을 잘 파악해서 객관적으로 사건과 생각을 배열했다. 권말에 190여 쪽에 달하는 만화 분량을 12쪽으로 요약한 시놉시스와 8쪽짜리 작가의 삶과 작품들 해설이 붙었다. 요약이 신의 경지다.

아직 '죄와 벌'을 독파하지 못한 분이나 독파하려는 분에게 적극 추천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문학으로 빛나는 작품이다. 그의 악마적인 필력과 심연같은 심리 묘사는 영상이나 만화로 표현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글로 읽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내가 '죄와 벌'에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이 만화에 없다. 짐마차를 끄는 허약한 말을 학대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인간의 잔인함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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