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멜론 슈거에서 In Watermelon Sugar (1968년)
리처드 브라우티건 | 비채
2024년 5월 개정판 양장본
2007년 10월 초판
브라우티건의 대표작 '미국의 송어낚시'는 겉보기에 단순한 이야기이다.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미국 사회 비판이 흐른다.
[워터멜론 슈거에서]는 1968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미국의 송어낚시]가 나온 다음 해다. 전작에 비해 신랄한 풍자가 적었다. 문체는 단순함에서 아름다움으로 나아갔다. 그래도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역시나 같았다. 은유와 말장난으로, 기계 문명을 비웃으며 목가적인 꿈을 옹호한다.
도시 문명을 떠나 자연 생활을 추구하는 면에서 소로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무척 달랐다. 소로는 한껏 자연 예찬을 했다. 반면, 브라우티건은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바라본다. 소로는 숲 속 오두막에서 숨을 쉬지만 브라우티건은 오염된 강에서 죽어가는 송어를 본다. 회복 불가능한 꿈에서 유령처럼 떠돈다.
브라우티건은 소로의 이야기 방식으로 말할 수 없었다. 1960년대 미국은 이미 기계 문명에 의해서 자연은 물론이고 인간의 정신마저 망가져 버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방식을 취한다. 언어의 유희 속에서 침묵한다. 죽음 위에서 환상을 본다. 현실과 꿈의 중간 지대에서 방황한다.
소설은 '워터멜론 슈거'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한다. 그곳은 현실이면서 꿈인 곳이다. 달콤한 이야기인 듯 하지만 잔인한 이야기다. 꿈은 아름다우나 현실은 추하다. 이야기는 그 모두를 담아 덤덤하게 강물처럼 흐른다.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같지만 꼭 그렇지 않으며, 자연과 문명이 대결하고 화합한다는 의미가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것 같은데 역시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이다. 소설에 대한 소설로도 동화로도 시로도 읽힌다. 소설가는 꿈과 현실이 맞닿는 자리인 워터멜론 슈가로 들어가서 절망을 읊조린다.
이처럼 명확한 의미를 알 수 없으면서도 다양한 상상과 갖가지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산문은 드물다. 시처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는 은유적 산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또한 모방해서 될 일도 아니다. 시인은 타고날 뿐이다. 시인은 이런 불완전한 세상에 살기에는 너무나 완벽한 존재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감수성의 극한에 이른 자가 택할 길은 안타깝게도 자살밖에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읽는 동안 멍 때리며 즐거운 기분이 드는, 희안하고 휘귀한 책이다. 미국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알 수 없어 더욱 그렇게 읽힌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수록 재미있다. 기묘한 소설이다.
- 덧붙임 1
2007년 구판 편집 오류로 243쪽 작품 해설의 제목을 역자 후기로 해놓았다. 4쇄까지 찍고도 바로잡지 않았다. 6쇄에서도.
- 덧붙임 2
2007년 구판 그림은 소설의 은유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그렸다. 그림이, 다양한 의미로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방해한다. 표지는 그렇다치고 본문 삽화는 책의 질을 청소년용 소설로 전락시킨다. 본문 그림은 빼는 것이 작가에 대한 예의다.
- 덧붙임 3
2007년 구판 8쪽에 사진을 싣고 "이 사진은 미국 문명에 대한 작가의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다."고 했는데, 왜 그런지는 도대체가 알 수 없다. 아는 분?
- 덧붙임 4
2007년 구판 김성곤은 작품 해설에서 "브라우티건은 1968년에 벌써 iDeath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2000년대에 등장하게 될 iPod나 iMac을 예견했던 선구자적 작가였다."(251쪽)라고 썼다. 농담이죠?
- 덧붙임 5
2024년 5월 24일 개정판이 나왔다. 덧붙임 1과 2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드디어!
어, 잘 보니까 제목이 슈가에서 슈거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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