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nie the Pooh
A. A. Milne
Puffin


드디어 원서를 구입해서 읽어냈다. 안 졸렸다. 어린이 책이지만 역시 원서라서 읽기 만만치 않았다. 물론 어른용 소설책보다는 쉬웠지만 말이다.

시험용 영어 단어만 잘 알고 있으니 시험에 안 나오는 영어 단어는 모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문장 구조가 간결하고 쉬운 편이 아니었다. 밀른은 수필에서건 소설에서건 그 특유의 장황한 농담을 하기 때문에 길고 종종 꼬여 있고 뒤틀려 있다. 동화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위니 더 푸 이야기는 숲 속 동물 이야기로만 알았다. 곰, 토끼, 당나귀, 부엉이, 돼지, 캥거루. 나오는 캐릭터가 동물이니까 동물 이야기 맞잖아?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봐도 큰 문제는 없지만, '위니 더 푸'는 장난감 이야기다.

'위니 더 푸'는 동물 장난감 이야기다. 동물 인형이 말을 하고 움직인다. 우리가 아는 그 '토이 스토리'는 아니다. 장난감끼리만 이야기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밀른은 아이의 상상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던 이가 있을까.

이 이야기는 말짱 거짓말임을 시작과 끝에 명백하게 밝혀 놓았다. 작가 자신의 아들이 등장해서 곰인형을 데리고 쿵쿵 계단을 내려오는 것이 시작이고 다시 인형을 데리고 쿵쿵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끝이다. 아이가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자 밀른은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이 가지고 놀던 동물인형 장난감들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밀른답게 밝은 웃음과 여유로운 농담이 따사로운 햇살처럼 쏟아진다. 연필 강도를 뜻하는 B, HB, BB로 이야기 끝까지 웃겨준다. 썰렁 개그인데도 분위기가 워낙 따뜻해서 춥진 않다.

 


총 열 편의 짤막한 이야기들이 연재 형식으로 이어져 나온다. 멍청한 곰 푸의 위대한(?) 모험 이야기랄까. 우울한 당나귀 이요르의 꼬리를 찾아다 주고, 불어난 강물에 둘러싸인 겁많은 아기돼지 피글렛을 구출한다. 북극(?) 탐험에도 나서 정복(?)한다. 곰돌이 푸는 나름 시인이라서 시를 지어 주변 이들한테 들려준다.

그 유명한 호랑이 티거는 이 책이 아니라 후속작 The House at Pooh Corner에 나온다. 밀른이 이야기로 쓴 책은 그렇게 딱 두 권이다. 나머지 두 권은 시집이다. 푸 이야기 책이 하나 더 있는데, 이는 밀른이 쓴 게 아니라 저작권자 허락을 받아 다른 사람이 쓴 것이다.

 

 

표지에서 볼 수 있듯, 위니 더 푸는 아무런 옷도 입고 있지 않았다. 빨간 셔츠를 걸친 것은 디즈니 만화영화에서부터다.

2015.5.25. 씀.

 

 
곰돌이 푸(미니북)
앨런 알렉산더 밀른은 1920년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이 태어나자 하트필드의 아담한 시골집 코치포드 팜을 사들인다. 그리고 자주 산책을 나갔던 애시다운 포레스트를 무대로 곰돌이 푸의 원작인 《위니 더 푸》와 《푸 모퉁이에 있는 집》을 탄생시켰다. 《위니 더 푸》는 그의 아들 로빈이 가장 좋아했던 봉제 곰 인형과 다른 동물 인형들을 가지고 놀이를 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푸 이야기는 작가인 아버지가 어린 아들이 실제로 몸담았던 공간에서 아들이 사랑하는 인형들이 펼치는 재미난 모험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밀른은 인간관계를 이해하고 내면의 세계를 성찰하여 가장 순수한 언어로 옮겨 쓸 줄 아는 작가였다. 머리 나쁜 푸가 어떤 곡해도 없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긍정할 때, 겁쟁이 피글렛이 조용히 용기를 낼 때, 이요르가 냉소적으로 세상을 푸념할 때, 단순해 보이지만 동물 친구들의 진심이 묻어나는 대화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고 곱씹어볼 만큼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
앨런 알렉산더 밀른
출판
더모던
출판일
2018.10.15

 

한글 번역본에는 작품 탄생 배경과 실생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상당히 우울한 이야기라서,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다.

 

작가 밀른이 동화 장르를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발표했을 정도였으니. 책 잘 팔리고 유명해지면 작가와 작가 가족들한테 좋고 행복한 거 아닐까. 아니었다. 성공이 곧 행복은 아닌 모양이다. 차라리 발표하지 않고 아들만 읽을 수 있게 두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성공이 불행과 재앙을 가져왔다.

 

밀른이 정말 잘 쓰는 장르는 수필이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소재를 가져다가 기가 막히게 재미있게 써낸다. 그의 독특한 유머는 어느 장르에서든 밝고 따스하게 빛난다.

 

참, 번역본은 주석을 달아 영어 원문에서 어떻게 썼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전자책으로 읽었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컬러 삽화가 있다.

 

2022.9.7. 씀.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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