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백 희곡전집 1 - 10점
이강백 지음/평민사
 



[추천도서 009] 이강백 희곡전집 1 - 고독, 그 몽상의 자유로움

 

 

딱히 희곡을 좋아하는 내가 이런 희곡집을 읽게 되었던 사연은 이렇다. 나는 문득 연극이 하고 싶었다. 배우가 되려는 거였다. 왜 갑자기 그런 충동이 일었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나는 젊었다. 뭐든 못할 게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무작장 아마추어 연극단에 배우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그 당시에 상영할 연극 대본으로 나온 것이 바로 이강백의 '알'이었다.

 

이 대본을 읽은 배우/배우 후보자 및 관계자들은 거의 대부분 이 희곡을 싫어했다. 왜 그랬는지 이해는 되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드라마가 딱히 없었고 각 인물은 개성있는 캐럭터라기보다는 움직이는 기계 인형 같았다. 반면, 나는 대단히 흥미롭게 읽었다. 배우는 안 하기로 하고 희곡 습작에 나선다.

 

내가 쓴 희곡을 같은 교실 수업 몇 사람들과 읽어 보기도 했다. 무모했던 나는 그렇게 쓴 희곡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춘문예에 응모했었다. 당연히 혹은 충격적이게도 떨어졌다.

 

 

지난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는 정말 외로웠던 것 같다. 물리적으로는 곁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언제나 혼자라는 느낌 속에서 살았다. 지금은 정반대로 지내고 있다.

 

 

 

 

 

이강백 희곡전집 1은 이강백의 초기작 다섯, 셋, 알, 파수꾼, 내마, 결혼, 보석과 여인 등을 실려 있다. 이강백은 이후 8권까지 희곡전집을 낼 정도로 꾸준한 창작을 했다. 하지만 내게는 언제나 1권만이 오랜 기억 속에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의적 극작술. 현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비유, 즉 어떤 가상의 상황을 보여 준다. 관객은 연극의 상황을 보고서 자신의 현실을 더욱 뼈져리게 느끼게 한다. 여기에 구성의 치밀함과 연극적 아이디어가 맞물리면서 잘 만든 조각품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극작가는 아예 등장인물들은 장기판의 말처럼 조종한다.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 같을 정도다. 사람이라기보다는 인형, 인형이라기보다는 기계 로봇 같다. 특정 행동을 반복한다. 같은 성격, 같은 감정을 반복해서 표현한다.

 

이렇게 보면 도대체 이강백 희곡의 매력이 뭔지 의문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터져나오는 고독의 고백은 이런 기계적이고 계산적이고 별 개성이 없는 잿빛 희곡을 순식간에 찬란한 빛으로 바꾼다. 그리고 그 고독 가운데 펼치는 몽상은 아름답다.

 

이강백의 말이다. "이승규씨(극단 연출자)가 작품에 대해 상의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왔을 때, 나는 그 편지를 지하실 방에서 받았었다. 그리고 그 지하실 방을 떠나 사람을 만나러 갔다는 것이 나에게는 또 일생을 바꿔 놓은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스물 네 살의 그 때까지 다락방이나 지하실 방에서, 나방이가 고치를 짓듯이, 나 혼자만의 폐쇄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그 속에 들어가 살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나러 외부에 나갔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나간다는 사회생활의 첫시작이기도 했다."

 

나만의 폐쇄적인 몽상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던 그 시절. '이강백 희곡전집 1'은 내게 이십대 시절 고독의 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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