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사회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행복한책읽기


로저 젤라즈니는 SF와 신화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신화 SF' 작가다. 이 작품 <신들의 사회(본래 제목은 '빛의 왕')>은 그의 그런 재주가 최고조로 이른 명작이다. 사람들은 이 소설에 대해 격찬을 아끼지 않는다. 신화를 SF로 끌어 내렸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SF로 다시 써서 신화의 해석을 풍요롭게 했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신화를 SF로 읽는 재미는 색다른 맛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소설을 누구에게나 선뜻 권하긴 주저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젤라즈니를 읽을 때 바탕에 깔린 신화를 알지 못하면 정말 재미없기 때문이다. 읽다보면 이게 SF인지 신화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이 모호함을 기꺼이 받아들여 즐길 수 있다면, 당신은 젤라즈니의 열렬한 독자가 될 것이다. 루드라의 화살을 열추적식 미사일로, 야마의 우레 전차를 제트 추진식 비행 기계로, 이런 식이다. 그러나 SF 아이디어가 자세히 묘사되진 않는다. 그냥 기계 정도로 서술하고 그친다. 자세히 묘사할 필요도 없지만.

이 서양 작가는 동양 독자를 장난스럽게 웃긴다. 싯다르타가 숙소에 들어가는 하는 행동이란, 정말 코미디다. 부처는 여관 주인장한테 부르고뉴(포도주)를 받아 마시질 않나. 소년한테 피리로 푸른 다뉴브 강(왈츠)을 연주하게 하지 않나. 샘과 쿠베라가 아일랜드식 권투를 하는 장면은 갑작스러워서 당황했다.

<신들의 사회>가 고대 인도 신화와 불교를 종횡무진 수놓고 있다. 이 책이 환생과 부처의 생애를 기본 골격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상의 진수를 담아낸 소설은 아니다. 이야기를 이끄는 힘은 기독교 사상이다. 신들의 전쟁은 그리스 신화랑 닮았고, 지옥은 단테의 <신곡>을 연상시키며, 싯다르타가 자신의 육체를 빼앗은 타라카한테 일장 연설을 하면서 내린 결론은 서구 기독교 사상의 죄악감이다. 신들의 사회에 대항하는 샘의 촉진주의는 서양의 종교 개혁 운동과 비슷하다. 샘은 부처의 탈을 쓴 프로테스탄트다. 자동 기도 기계에 돈을 넣고 선업을 쌓아야만 좋은 육체와 계급(카스트)으로 환생한다. 신들은 이 기계로 부를 독점한다. 자동 기도 기계는 면죄부 판매의 또 다른 비유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이 작품은 동서양의 역사와 신화와 문화가 교차되어 현란하게 조각되었다. 이 조각품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읽다가 어지러워 머리가 아프고 속이 매스꺼울 수도 있고, 눈부시게 아름다워 황홀할 수도 있다.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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