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이 희곡 [콘트라베이스]가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무명이었다. 글을 쓰기는 계속 쓰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를 알아 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소설 주인공처럼 말이다.

작가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입을 통해, 자신을 얘기하고 있다. 소시민의 삶을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희곡 마지막에 나오는 슈베르트의 5중주곡 숭어가 어느 채광업자의 청탁을 받고 쓴 작품이듯,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도 어느 작은 극단의 제의로 쓴 글이다. 화려한 오케스트라에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으리라. 음악사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줄줄이 풀어 놓은 것은 그가 역사학을 전공했으니, 그 방면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쓸 수 있었겠지.

술주정하듯 이 얘기 저 얘기를 비틀비틀 풀어 놓으면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모습은 은둔 소설가 쥐스킨트와 겹친다. 연주자가 완벽한 방음벽을 장치한 방 안에서 음을 하나를 연주하듯, 작가는 조용한 방에서 단어 하나를 쓰는 것이다. 자신의 악기 콘트라베이스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는 연주자의 절망감은 자신의 글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는 자신의 재능이 부족하는 것을 깨닫고 절망하는 작가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이 희곡에 작가의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났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술을 마시고 넋두리를 하듯 그렇게. 쥐스킨트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가면을 쓰고 자기 얘기를 한다. 어쩌면, 소설 쓰기는 그런 가면 놀이가 아닐까. 아무리 짙은 가면을 쓴다고 해도 자신의 내면은 숨길 수 없다.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진실 게임.

작성일 : 2002년 10월 23일

일상적인 소재로 아주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독자를 감동시키는 묘한 글재주의 소유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마치 동네 옆 집 아저씨가 조용한 목소리로 수줍게 말하듯 글을 쓰는 이 소설가의 소설은 아주 매력적이다.

한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남성 모노드라마인 [콘트라베이스]는 소시민의 감정과 삶을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이 콘트라베이스를 켜며 독자에게 신세 타령을 시작한다.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집단에서 소외당하지만 꼭 필요한 콘트라베이스를 켜는 주인공. 그는 자신의 삶에 불만이지만 동시에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바로 평범한 우리의 모습.

가장 돋보이는 오페라 가수를 사랑하는 그는 가장 눈에 띠지 않는다. 그는 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과감히 일상을 거부하려 한다. 누구나 꿈꾸는 일탈(逸脫)의 소망.

그의 전공 역사학이 소설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장편소설 [향수]에서는 그의 해박한 역사 지식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콘트라베이스]도 예외가 아니라서 숨겨진 음악사의 재미있는 단면을 주인공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즐거운 읽을거리다.

작성일 : 1998년 2월 22일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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