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이수현 옮김/북하우스
스캔들 - 브라운 신부 전집 5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이수현 옮김/북하우스

 

G. K. 체스터튼 브라운 신부 전집 5 스캔들 - 상식으로 범인 알아내기

브라운 신부 전집은 총 5권인데, 드물겠지만 이 5권 '스캔들'부터 읽지 말기 바란다. 첫 소설 '폭발하는 책'이 읽고나면 무척 허탈하기 때문이다. 4권 '비밀'부터 읽기 바란다. 혹은 1권부터 읽기 바란다. '스캔들'의 단편들은 이전 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교적 단순한 사건이다.

'폭발하는 책' "이 책을 들여보는 자들 날개 달린 공포가 그들을 낚아채리니."라고 앞면에 써 있는 책을 읽을 사람들이 사라진다. 결국 진실은 일종의 해프닝인 것으로 밝혀진다.

'풀 수 없는 문제' 일부러 범죄 수수께끼를 만들고 힌트를 줘서 풀게 한다는 이야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시리즈 갈릴레오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아니 드라마였던 것 같다. 하지만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일부러 만들어서 다른 범죄 수사를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식은 이 소설이 처음이었다.

'브라운 신부의 스캔들' 스캔들로 먹고사는 유명인, 연예인, 언론을 풍자한다. "그녀에게 내세울 지성은 없지만, 지성인이 되기 위해 꼭 지적일 필요는 없는 법이니까." 스캔들은 그들의 사업이다.

'퀵 원' 독살인데, 사람들이 모두 보는 술 집 안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퀵 원은 빨리 한 잔 마시고 곧바로 나가는 손님을 뜻한다. 그 사람이 목격자다.

'블루 씨를 쫓아서' 관점에서 따라서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다르게 보인다.

'그린 맨' 상식이 살인범을 알아내는 힌트가 되는 이야기다. 대단하고 복잡하고 요상한 사건일지라도 누구나 아는 상식만으로 범인을 알아낸다.

'마을의 흡혈귀' 말의 오해. 영어 다의어 특성 때문에 생긴다. 햄릿 hamlet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그 햄릿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아주 작은 마을이라는 뜻도 있다. 이 소설 읽고서야 알았다.

'핀 끝이 가리킨 것' 살해협박, 자살위장, 살인이 복잡미묘하게 얽힌 사건이다. 역시 상식이 힌트가 되었다. 이야기 맨 앞에 그 힌트를 배치해 놓았다.

'공산주의자' 사람들의 특정 행동 방식을 이용한 트릭이다.

드디어 브라운 신부 전집을 모두 읽었다. 체스터튼이 브라운 신부 시리즈에서 보여준 트릭은 훌륭한데 문체는 읽기에 쉽지 않았다. 번역 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시 읽으라고 하면, 아이고야 뭔 소설이 이렇게 읽기 힘들어서야,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할 순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작가는 이상적인 추리소설로 "철학의 깊이와 심리학의 미묘함을 녹여낸 섬세하고 독창적인 소설"을 쓰려고 했고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해냈다. 문제는 자신의 주장을 노골적으로 이야기에 넣으려고 한 점이다.

 

체스터튼은 나한테 생소한 사람이다. 브라운 신부가 누구야? 읽을까 말까 주저하고 있는데,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모처럼 추리소설을 읽어 보려고 집어 들었다. 작가 소개를 읽었다. 마지막 부분이 흥미로웠다. "후대의 대표적인 문인들, 가령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레이엄 그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마셜 맥루한, 애거서 크리스티 등은 체스터튼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보르헤스, 마르케스, 맥루한이 영향을 받았다면 체스터튼의 작품은 보통 추리 소설과는 다를 것 같았다. 집에 와서 읽기 시작하자, 그 짐작은 맞았다. 그래, 맥루한이 좋아할 만한 책이군. 마르케스가 즐겁게 읽었겠지. 보르헤스가 옛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으리라.

[폭발하는 책]은 도발적인 소재를 다룬다. "이 책을 들여다보는 자들 날개달린 공포가 그들을 낚아채리니."(27쪽) 그럼에도, 그 사건의 진상은 평범하다. 낯선 일상. 우리가 무심코 스치는 일상에 대한 고백으로 끝맺는다. 독자는 브라운 신부의 말 한마디에 바보가 된다.

브라운 신부는 놀라운 사건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뭔가 신기하고 기이한 사건들의 진상을 알고 보면 일상의 진실을 외면한, 우리의 무지이다. 사건의 핵심은 생각지 못한, 뻔히 보이는 곳에 있다. 흔한 성냥, 흔한 핀, 흔한 관습,

체스터튼은 추리소설 독자와 수수께끼 풀기 놀이를 하자고 제안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얘기한다. 수수께끼 놀이에 참여하려고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놀이가 끝나자 허탈할 기분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사건의 실마리를 뭔가 특별한 데서 찾으려는 독자가 당혹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브라운 신부의 외모는 평범하다. "챙 넓은 모자에 함박 웃음을 짓는 땅달막한 성직자"(156쪽)다. 그가 특별한 점은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은 흥분해서 감정에 치우고 당장 눈에 확 들어오는 이상한 것들에 신경을 쓴다. 반면, 브라운 신부는 차분하게 그 사건의 일상을 꼼꼼하게 관찰한다. 그리고 가장 당연한 것을 발견한다.

[브라운 신부의 스캔들]에서 체스터튼은 언론에 대해서 이렇게 꼬집는다. "기자들이 '그의 미소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혹은 '그의 턱시도가 훌륭했다' 등으로 보도를 하는 한, 청부살인업자조차도 패션리더쯤으로 받아들여지는 감상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한 우상숭배 분위기."(77쪽) 요즘 스포츠 신문 기사에 대한 비판으로도 적절하다. 작가는 저널리스트로 신문 칼럼을 4천 편이나 썼다. 그 점을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언론에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더불어, 그가 피상적인 현실 인식을 거부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책 맨 끝에 붙어 있는 체스터튼의 칼럼 [이상적인 추리소설]은 그의 소설 작법을 엿볼 수 있다.

이상적인 추리소설을 얘기하면서, 토마스 하디의 [테스]와 조지 메러디스의 [크로스웨이즈의 다이애나]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체스터튼은 단순한 대중장르 소설가가 아니다. 그랬다면, 맥루한과 보르헤스와 마르케스가 그의 책에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을 리가 없다. 그의 맺음말에서 명백하게 들어난다. "'이상적인 추리소설'이란 사람들에게 세상이 속임수로만 가득 찬 것이 아니라 번갯불처럼 들쭉날쭉한 것도 있으면 칼처럼 곧은 것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순기능을 하는 것이다."(351쪽)

이 책은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 옛날 작품인 게 한 몫 한다. 1935년에 처음 나온 책이다. 몇몇 단어는 주석이 달려 있을 만큼 생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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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 10점
G. K. 체스터튼 지음, 김은정 옮김/북하우스

 

G. K. 체스터튼 브라운 신부 전집 4 비밀 - 고해성사가 가능한 이유

브라운 신부 전집 제4권 비밀의 첫 글 '브라운 신부의 비밀'과 끝 글 '플랑보의 비밀'은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브라운 신부 자신이 자신의 놀라운 추리력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는 글이다. 그리고 실로 놀라운 발언을 한다.

"나 자신이 살인자와 똑같이 느낄 때 살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범인을 찾는 자와 범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최종 단계인 결심과 실행의 유무다. "저는 실제로 살인을 결심하는 최종적인 단계만 제외하고 그 이전까지 살인자들이 어떻게 그런 상태가 되었는지를 제가 직접 그렇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생각해보고 또 생각합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일반적인 추리소설에 비해서 철학적 통찰과 신학적 해석이 이야기에 스며 있어 미묘한 품격을 유지한다. 그 정도가 심하거나 작가의 독설 같은 게 없진 않지만, 범죄와 죄악과 용서의 문제를 성찰한다. "여러분들은 계속 용서하고 싶은 악덕과 죄만 용서한다"(마른 후작의 상주) 같은 문장을 읽었을 때 체스터튼이란 작가를 다시 보게 된다.

범죄자의 자백을 듣고 용서한다는 게 순진하고 별 설득력도 없어 보이는데, '플랑보의 비밀'에서 전 범죄자 플랑보가 왜 브라운 신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도둑질을 그만두었는지 들어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흔히들 범죄자라고 하면 광인이나 악인으로 취급하고 체포해서 어서 빨리 벌하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자신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는지는 알고자 하지도 않는다.

플랑보는 브라운이 가톨릭 신부라서 그에게 자신의 죄를 고하고 더는 죄를 짓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브라운 신부만이 자신이 왜 그렇게 물건을 훔치지는 알고 있었고 그걸 자신한테 말해줬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해성사가 가능한 이유였다. 물론 여전히 논쟁 여지가 있지만 말이다.

4권 '비밀'도 여전히 기발하지만 이번 단편집에 수록된 것들은 제목처럼, 해당 범죄자의 비밀을 알기 전에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겉모습만 봐서 그 사람의 사정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비밀을 간직한 범죄자들이다.

'보드리 경 실종 사건' 예술적 복수라는 이야기인데, 정말 소설 같은 일이다.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게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후반부에 강렬한 반전이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바꿔서 사건을 설명해준다.

'배우와 알리바이' 배우가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자신이 리허설할 연극을 잘 알고 이를 이용하는 식이다. 뻔뻔하게 선하고 지적인 사람인 척 연기를 하며 살다가 탐욕에 살인까지 대범하게 저지르는 자의 모습이 경악이었다.

'최악의 범죄' 1인 2역 트릭은 추리소설에서 진부할 정도로 자주 나오고 일종의 불문법 같은 거라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읽어야 한다. 풀어내는 방식은 신선했다.

'마른 후작의 상주' 애거서 크리스티의 트릭과 비슷해 보인다. 배우가 나오면 거의 대부분 뛰어난 연기력을 주변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 것으로 추리소설에서 설정된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을 덕에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판사의 거울' 우리가 흔히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직업군의 사람을 살인범으로 심어놓는 식인데, 오늘날도 먹히는 수법이다.

'두 개의 수염' 제목에 나오는 듯 연기의 신 트릭이다. 변장 수염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서 들통이 난다.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된 범죄자와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를 겹쳐 보여준다.

'날아다니는 물고기의 노래'와 '메루 산의 레드문'은 보석 절도 이야기다.

 

범인을 잡으려면 범인이 되어야 한다
범죄의 욕망이 곧 범죄학
이 책에는 브라운 신부가 범인을 잡는 비결이 담겨 있다. 다른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과 달리, 브라운 신부의 범인 접근 방법은 외부 관찰보단 사람의 내부 욕망에 치중한다.

"저는 모든 사건을 세밀하게 계획을 짰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유형이나 정신 상태에서 사람이 실제로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내는 겁니다. 그렇게 나 자신이 살인자와 똑같이 느낄 때 살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18쪽)

"저는 실제로 살인을 결심하는 최종적인 단계만 제외하고 그 이전까지 살인자들이 어떻게 그런 상태가 되었는지를 제가 직접 그렇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생각해보고 또 생각합니다."(20쪽)

브라운 신부는 범죄자의 어두운 욕망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가 범죄자를 찾는 것은 죄를 벌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죄인을 이해하고 용서하려는 것이다. 종교인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범인을 이해하기보단 범인을 잡아서 벌을 줄려는 생각밖에 없다. 이런 차이는 [마른 후작의 상주]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 끝에는 체스터튼이 쓴 칼럼 [추리소설 쓰는 법]이 있다. "이야기가 폭로되는 시점에, 탐정의 접근은 밖에서부터 이루어지지만, 작가는 안쪽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한다."(343쪽)

그는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이야기는 진실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설사 이야기가 환상을 다룬다 해도 그 환상도 단순한 꿈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343쪽)  체스터튼이 범인 찾기 놀이 추리소설 이상의 소설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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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 10점
G. K. 체스터튼 지음, 장유미 옮김/북하우스

 

G. K. 체스터튼 브라운 신부 전집 3 의심 - 범죄 수수께끼, 역설의 논리로 풀어낸다

 

추리소설 중에 유별나게,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패러독스 논리로 수수께끼 사건을 해결한다. 범죄 수수께끼와 범인 찾기 이야기로 우리 삶의 역설적 모순을 그려낸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 3권 단편소설 모음집 의심에서는 기적, 유령, 저주, 계시, 드라마 이야기 같은 일의 진상을 역설로 파헤친다. 이 때문에 사건마다 당혹스럽고 놀랍다. 너무나 기적 같아서 기적이 아니고, 너무 그럴 듯해서 가짜다.

세 번째 단편집 '의심'에서 브라운 신부는 셜록 홈즈처럼 유명 인사다. 첫 번째 이야기 '브라운 신부의 부활'에서 죽었다 살아나는 '기적'을 몸소 체험한다. 브라운 신부의 유명세를 이용하려는 자들의 헤프닝이다. 그렇게 보이면 그렇게 사람들은 믿는다. 실제 그래서가 아니라.

'기드온 와이즈의 망령'은 기묘한 범죄다. 갑자기 세 명의 부자가 거의 동시에 살해당한다. 한 사람이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된다. 그 사람이 그 중에 한 사람인 기드온 와이즈를 죽였다고 자백하고는 그의 유령을 보았다고 떠들어댄다. 기드온은 극적으로 살아남은 것으로 밝혀지고 결국 자백한 사람은 무죄 석방된다. 너무나 그럴듯한 이야기 같고 지나치게 문학적인 자백을 의심한 브라운 신부는 경악스러운 진상을 밝혀낸다.

세 번째 이야기,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 콥트 족의 잔을 소유자들이 죽어나간다. 이에 철저히 방어 및 범인 체포 준비를 했으나 이번에도 잔을 가진 회장이 죽고만다. 범인은 가장 가까운 데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난 범죄의 진상도 밝혀진다. 지나친 소유욕에 대한 우화로도 보인다.

'개의 계시'는 밀실살인이다. 미스터리 팬이 열광하는 트릭이자 고전이다. 요즘 현대에 들어서는 추리소설에서 잘 쓰지 않는 이야기 소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결국은 밀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판명된다. 개가 범인을 지목했다고 여기고, 여기에 유서 유산 문제가 겹친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의심스러운 가운데, 단지 들은 얘기만으로 범인을 알아내는 브라운 신부 되시겠다. 개의 행동과 사람들의 평소 성격이 힌트였다.

'황금 십자가의 저주'는 제목처럼 저주 이야기다. 정확히는 그런 저주를 믿는 사람들의 맹신을 이용한 범죄다. 트릭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같은 유형이다.

"나는 불가능한 일은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은 믿을 수 없다." 패러독스처럼 보이는 상식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다룬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우리가 이해하는 일을 반박하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보다 더 쉽게 받아들입니다."

십자가의 저주라는 초자연적인 일은 너무나도 쉽게 믿어 버리면서, 가능은 하지만 상식에 어긋난 일은 간과하는 것이다.

브라운 신부는 범죄자 체포, 처벌, 고발보다 자백을 우선시한다. 사건을 해결하고 설명하면서 사립탐정처럼 자신의 추리력을 한껏 자랑하지도 않는다. 상식과 진실을 차분히 말한다.

 

브라운 신부 전집 3 [의심] G.K. 체스터튼 / 북하우스 - 픽션을 깨는 픽션

의심 - 8점
G. K. 체스터튼 지음, 장유미 옮김/북하우스

저주, 기적, 전설처럼 기이한 일을 무턱대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은 이성적으로 보면 어이가 없지만 감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사람들은 대체로 명백하고 단순한 진실보다는 모호하고 신비한 거짓을 더 좋아한다 그게 더 마음을 편하고 즐겁게 하며, 특히 애써 더는 생각할 고역을 하지 않아도 된다. 체스터튼은 브라운 신부라는 가톨릭 신자의 냉철한 이성으로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거짓의 거울상을 깨뜨린다.

첫 단편 제목부터 얼마나 신비스러운가. 브라운 신부의 부활. 다른 단편소설에 붙은 제목도 그렇다. 기드온 와이즈의 망령. 망령이다.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 개의 계시. 황금 십자가의 저주. 저주! 날개 달린 단검. 다너웨이 가의 운명. 문크레센트의 기적. 기적! 부활, 망령, 계시, 저주. 운명. 기적이 모조리 브라운 신부의 단순하고도 명쾌한 추리로 개박살이 난다.

체스터튼은 추리소설의 가치를 기묘한 트릭의 재미가 아니라 명백한 진실의 발견에 두었다. "지적인 추리소설의 진짜 목적은 독자를 당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알게 하는 것이다. 그것도 일련의 진실들이 충격적으로 독자들에게 폭로되는 방법으로 알게 만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훨씬 더 고상한 추리물에서도 진실을 가리는 목적은 단순히 신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목적이 애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밝히는 데 있다. 그것도 섬광처럼 깜짝 놀랄 만한 형식으로."

이런 추리소설에 대한, 국내 독자의 반응은 좋지 못하다. 소설을 읽고 나며, 추리소설의 환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깨어나게 된다. 모든 수수께끼끼의 진실은 뛰어난 추리력으로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거짓 환상을 버리고 진실하게 볼 때면 나타난다는 것이다.

픽션을 깨는 픽션이다. 냉철한 이성주의자만 이 책을 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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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 10점
G. K. 체스터튼 지음, 봉명화 옮김/북하우스

G. K. 체스터튼 브라운 신부 전집 2 지혜 - 범죄 수수께끼와 인간 본성 성찰의 결합

브라운 신부 시리즈 2권 지혜에는 미신, 전설, 소문 등을 이용한 범죄 수수께끼가 주로 등장한다.

'기계의 실수'에서 나오듯, 기계는 실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진실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실수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기도 사람이다. 기계는 기계일 뿐이다. 사람은 어떤 일이든 그에 대한 의미 부여, 즉 자기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체스터튼은 추리소설집 '지혜'에 실린 단편소설들로 선입견, 미신, 전설, 소문 등에 정신이 팔려서 진실을 보지 못하는 맹점을 꼬집는다.

보통 추리소설은 한 번 읽고나면, 그러니까 트릭의 정체와 범인을 알게 되면 그 즉시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매력을 잃고 더 생각할 것도 없다. 그냥 재미있었다로 끝난다. 하지만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를 읽고나서 사색에 빠지게 된다. 범죄 수수께끼 이야기 형식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읽을 수 있다.

탐정소설에서 주인공 탐정은 자신의 추리력을 한껏 뽐내며 유아독존식의 천재형인 경우가 많은데, 정작 이 브라운 신부는 그런 게 거의 없다. 오히려 외모는 멍청해 보이고 말은 바보처럼 한다. 그럼에도 이 순박해 보이는 신부의 통찰력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한다.

'통로에 있었던 사람'은 여배우의 살인범으로 통로에 있었던 사람을 지목한다. 하지만 목격자마다 그 사람의 모습이 제각각이다. 결국 밝혀진 진실은 우스꽝스럽게도 자기 자신을 본 것이었다. 그럼에도 자기 자신으로 보지 못했다. 거울에 나타난 자가 살인범이라고 확신하고 본 탓이었다. 선입견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이다.

'산적들의 천국'은 일종의 사기극이다. 산적이 진짜 산적일 필요는 없다. 산적으로 보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서 또 사기를 치려는 사람.

브라운 신부는 '보라색 가발의 비밀'에서 귀족의 악명 높은 전설을 이용하려는 자의 사기극을 밝혀낸다. 귀족 가문에 전해내려오는 저주를 사람들이 워낙 믿기 때문에, 이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저주 따위는 없음을 가발을 써서 감춘다.

'징의 신'은 부두교 의식 미신을 이용한 범죄다. 역설적으로, 살인을 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밀실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은 공개된 장소임을 보여준다.

'글라스 씨는 어디에?'는 선입견으로 일어난 해프닝이다. 범죄가 일어났다고 생각하기에 그에 맞게 일어난 일과 목격한 것들을 그에 짜맞춰 해석한다. 그래서 잘못된 결론에 이른다. 실제로 밝혀진 진실은 범죄 없음이었다.

'존 블노이의 기이한 범죄'는 두 가지 점에서 놀랍다. 첫째는 존 블노이의 소박한 성품이다.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블노이는 돈도 명예도 별 욕심이 없다. 질투도 없다. 속세의 욕망에 완전히 무관심한 자다. 둘째는 클로드 챔피언 경의 질투다. 자신의 성공과 명성을 눈꼽만큼도 부러워 하지 않는 블노이에게 화가 나서 미쳐버린다. 질투를 받지 못해 질투가 나다니.

'브라운 신부의 옛날 이야기'는 전설로 내려오는 이상한 사건을 풀어냅니다.

'허쉬 박사의 결투'는 기묘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모든 것을 틀리게 말하려면 속속들이 모르는 게 있어서는 안 된다네." 어떤 것을 완벽하게 틀리게 말하려고 완벽하게 옳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브라운 신부 전집 2 [지혜] G.K. 체스터튼 / 북하우스

지혜 - 10점
G. K. 체스터튼 지음, 봉명화 옮김/북하우스

체스터튼은 문장을 회화 그림처럼 그리고 색칠하듯 쓴다. 인물과 공간 묘사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 사건 전개보다는 그런 묘사 문장이 반 이상 차지해 버린다. 수수께끼 풀이에 집중하려는 추리소설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문장은 비경제적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읽기를 방해한다. 애거서 크리스티처럼 단순하고 간단하게 묘사되지 않기 때문에 지루하게 읽힌다.

반면, 단편소설이라는 한정된 양 안에서 반전을 노리기 때문에 복잡한 트릭은 거의 없다. 너무 단순해서 읽고나면 허탈하고 뭔가 더 있어야 하지 않나 아쉬울 지경이다.

너무나도 이상하고 엉뚱하고 비상적인 현상을 제시하고 난 후에 명백하고 단순하고 상식적인 해결을 보여준다.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 대부분이 상식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역이용하는 트릭이다. 가문의 저주, 무용담, 전설, 부두교, 소문 등 일상적으로 그렇게들 생각하는 것이 실은 전혀 그렇지 않거나 정반대의 진실이 들어난다.

'브라운 신부의 옛날 이야기'는 아주 기이한 죽음을 보여준다. 머리에 한 개의 총알이, 그리고 또 견대에 또 한 개의 총알이 뚫고 간 구멍이 있었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브라운 신부는 들은 이야기만으로 수수께끼를 간단명료하게 풀어낸다.

채스터튼은 이 책에 실린 '추리소설의 옹호'에서 추리소설이 단지 저급대중문학이 아니라 예술적이기에 사람들에게 읽히고 인기가 있다고 주장한다. "추리소설의 제일 중요한 가치는 현대인의 삶에서 시적인 면을 표현해주고 있는 유일한 대중문학이면서 가장 초기형태라는 데 있다." 추리소설이 시적이다? 묘사적이라는 뜻인 듯하다. "위대한 작가들은 고양이의 눈과 같이 거대한 도시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과 감동적인 분위기를 글로 옮기는 일"을 한다. 추리소설만 그렇다기보다는 소설 자체가 그렇지 않나? 그다지 공감이 안 된다. 추리소설이 "로망스에서의 성공적인 기사 수업"처럼 사회 정의 수행자로서의 모험담이라는 주장은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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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 - 10점
G. K. 체스터튼 지음, 홍희정 옮김/북하우스

 

 

G. K. 체스터튼 브라운 신부 전집 1 결백 - 가톨릭 신부님과 전직 범죄자 커플의 범죄 수사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탐정소설에서 손꼽히는 작품이다. 셜록 홈즈, 푸아로, 브라운 신부. 이렇게 세 명이 유명한 (상상의) 명탐정으로 확고한 명성을 누리고 있다.

홈즈에겐 왓슨이, 푸아로에겐 헤이스팅즈가 있듯 브라운 신부에게 플랑보가 있다. 그런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커플은 앞서 두 커플과는 다르다. 신부님과 전직 범죄자(개과천선 후 사립탐정)이기 때문이다.

브라운 신부와 플랑보 도둑이 처음 만난 사연은 이 시리즈의 첫 화, '푸른 십자가'에 나온다. 브라운 신부님이 가지고 있던 보물 푸른 십자가를 유명한 도적 플랑보가 빼앗으려고 든다는 이야기다.

'푸른 십자가'에는 파리 경찰청장 발렝탱이 등장하여 이 거물급 범죄자 플랑보를 잡기 위해 키 큰 사람을 유심히 살피며 수사한다. 그리고 브라운 신부가 뿌려댄 엉뚱하고 황당한 단서를 쫓아 마침내 경찰은 플랑보를 체포한다.

경찰은, 홈즈 시리즈와 푸아로 시리즈에서 대개 멍청하고 명탐정의 놀림을 받는 대상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브라운 신부에서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1화에 나왔던 명성 자자한 경찰 발렝탱은 그 다음 화 '비밀의 정원'에서 퇴장한다.

체스터튼의 문장은 강한 개성으로 유별나다. 역설적 문장을 잘 쓰기로 유명하다. 독특한 유머 감각과 신학철학적 성찰에 회화 같은 풍경 묘사와 신랄한 독설이 뒤섞여 있다.

브라운 신부 이야기에는 그림 한 폭을 그리는 듯한 풍경 묘사에 철학, 신학, 정치 논쟁이 들어가 있다. 이는 작가 체스터튼의 개성이자 본인의 인생이다. 작가는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화가 지망생이었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였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 잡지를 발행했고 신문에 수많은 칼럼을 써댔다.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추리소설 읽기가 종종 가끔씩 살짝 어렵다. 중간중간 특유의 유머가 터지긴 하지만 그리 쉽게 읽히지 않는다. 간혹 어렵게 느끼는 이야기도 나온다. 철학 우화, 또는 신학 소설 같다.

어쨌거나 미스터리는 탁월하다. 괴상한 수수께끼와 초현실적인 일과 기적과 같은 상황을 펼쳐 보인 후에 브라운 신부님이 명백하게 풀어준다.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왜 식당 벽에 스프를 끼얹고 유리창을 깨고 과일 가게 사과 더미를 무너뜨리는가? 왜 집 안 정원에 시체가 목이 잘린 채 발견되고 또 집 밖에 또 다른 목이 발견되는가? 분명히 아무도 건물에 들어간 사람이 없다고 진술했는데, 건물 안의 사람이 살해되어 건물 밖에서 발견된다? 어떻게 작은 망치로 사람의 머리를 산산조각낼 수 있는가? 흉기가 세 개나 되는데 정작 살인 무기는 아니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단편소설 모음집으로 모두 5권이다. 장편소설은 없다. 북하우스에서 펴낸 종이책에는 삽화가 있는데 전자책에는 빠졌다. 특이하게도 전5권 전집 종이책 세트는 절판이 되어서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데 각 권은 여전히 나오고 있다.

도서관에 가면 이 책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빌려 읽어서 상태가 누더기에 가깝다. 그러니 가까운 중고서점에서 구입하거나 새 책을 사서 읽기 바란다. 나는 전자책으로 읽었다.

 

브라운 신부 전집 1 [결백] G.K. 체스터튼 / 북하우스 - 신부님 탐정의 온화한 여운

결백 - 8점
G. K. 체스터튼 지음, 홍희정 옮김/북하우스
 

브라운 신부는 추리소설의 주인공으로서 겉모습은 평범하다 못해 모자라 보인다. 둥글넓적한 얼굴에 멍한 눈, 작은 키에 뚱뚱한 몸매다. 촌사람이다. 커다랗고 낡아빠진 우산을 툭 하면 떨어뜨리고 종종 잃어버린다. 자주 하는 말: 우산을 어디 두었더라?

하지만 두뇌가 명석하고 충만한 신앙으로 마음은 고요하다. 등장인물의 내면에 작가 체스터튼이 있다. 글 곳곳에서 현란하면서도 날카로운 말솜씨를 뿜어댄다. 사천 편이 넘는 신문 칼럼을 써댈 만큼 당시 사회의 정치, 종교, 문화 논쟁의 한복판에 섰고 무신론자에게 매서운 직격탄을 날렸다.

자신의 종교적 편견을 소설에 드러냈다. 둘째 단편 ‘비밀의 정원’에서 무신론자라는 이유만으로 첫 회에 공을 들여 등장시킨 프랑스 파리 경찰청장 발렝탱을 퇴장시킨다. 희대의 도둑 플랑보는 단지 브라운 신부에게 몇 번 꼬리를 잡혔다는 이유만으로 회개한다. 이 책의 마지막 편 ‘세 개의 흉기’에서는 유쾌한 무신론자를 알코올 의존자에 자살광으로 설정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무신론자? 공정하지 못하다.

첫 단편 ‘푸른 십자가’에서 체스터튼의 특징이 잘 보인다. 그림 같은 풍경 묘사와 사진 같은 인물 표현은 미술 전공자로서의 기질이다. 특히 색과 모양을 세밀하게 썼다.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나열하는 과거사와 오가는 대화에서 풍자와 우스개로 독자를 웃긴다. ‘당나귀 휘파람’을 읽으면서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철학과 신학에 관한 사색과 비꼼도 돋보인다. “기적에 관한 한 가장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 기적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이다.”(17쪽) “그는 ‘생각하는 기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무식한 말은 현대 운명론과 물질주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생각할 수 없으므로, 기계는 기계일 뿐이다.”(17~18쪽) “자네, 이성을 공격했지 않나. 신학을 하는 사람에게 그리 좋은 태도가 아니지.”(48쪽)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잡지에 단편소설 형식으로 게재한 후 묶어서 단행본으로 나왔다. ‘결백’은 그 첫 권이다.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 수수께끼가 풀리면, 명백한 진실을 우리가 못 보았음에 무릎을 치게 한다. 기이한 일이 평범한 현실로 밝혀진다.

회개한 플랑보는 사립탐정으로 브라운 신부와 사건을 함께 맡기도 한다. 물론 사건의 해결은 신부가 맡는다. 플랑보는 신부의 말을 들어주는 정도다. 전직 범죄자와 성직자라는 특이한 커플이다. 어마어마한 덩치로 날쌔게 움직이며 호들갑을 떠는 장신의 플랑보와 천천히 움직이며 차분하게 말하는 단신의 브라운이 대조를 이룬다.

우리의 주인공 브라운 신부는, 대개들 어이가 없겠으나, 범인과 그 과정을 알더라도 그 사람을 놓아주거나 자백하게 한다. 범죄자를 악(惡)으로 낙인찍고 체포하고 처벌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권선징악보다는 범행이 일어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무게를 두었다. 이 때문에 온화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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