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25권짜리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권수는 총 26권으로 늘어났다. 기존에 한 권에 수록했던 '가난한 사람들'과 '분신'을 분리해서 2권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 기존 25권짜리 전집은 작품이 시대 순으로 배열되어 있었으나 열린책들 세계문학으로는 이런 순서가 없다. 무작위다. 그래서 시대 순서대로 작품을 읽고자 하는 도스토예프스키 독자를 위해 예전 전집 순서대로 열린책들 세계문학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을 나열해 보았다.
:: 알아둘 점
1. 전기, 중기, 후기 시대 구분은 내가 한 것이다. 2. 제목 앞 번호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번호다.
이상하게 전자책으로는 통독이 잘 안 되어서, 모두 종이책으로 구입해서 다 읽었네요. 그리고서 종이책은 중고서점에 모두 팔아버렸습니다.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해서요. 남은 건 전자책. 다시 통독할 날이 오려나 모르겠네요. 그때는 전자책으로 읽어 보려고요. 2017.11.14
📑 초기 작품들 (데뷰부터 시베리아 유형을 가기 전까지) - 전반적으로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경향이 짙다.
#1 117 가난한 사람들
#2 116 분신
#3 128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외 쁘로하르친 씨 /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 여주인
#4 126 백야 외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 약한 마음 / 뽈준꼬프 / 정직한 도둑 /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 백야 / 꼬마 영웅
#5 124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 중기 작품들 (사회로 복귀하고서 재기를 노리던 시기) - 코미디 풍자에 집중한다.
#6 123 아저씨의 꿈
#7 114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8 129 130 상처받은 사람들
#9 105 죽음의 집의 기록
#10 121 지하로부터의 수기
#11 131 악어 외 악몽같은 이야기 / 여름 인상에 대한 겨울 메모 / 악어
#12 97 노름꾼
📑 후기 작품들 (기술적 완성과 사색의 깊이가 더해진 시기) - 종교적 철학적 사상가 면모를 보인다.
#13 12 죄와 벌
#14 15 16 백치
#15 57 58 59 악령
#16 119 영원한 남편 외 영원한 남편 / 보보끄 / 예수의 크리스마스에 초대된 아이 / 농부 마레이 / 백 살의 노파 / 온순한 여자 / 우스운 사람의 꿈
#17 108 109 미성년
#18 29 30 31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도스토예프스키 5대 장편소설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모두 후기에 집필했다. 미성년은 다른 작품에 비해 많이 상대적으로 별로였다.
참고로, 국내에서 작가 이름 표기는 세 가지다.
도스토옙스키 - 외래어 표기법 도스토예프스키 - 외래어 표기법 이전 표기 도스또예프스끼 - 열린책들 출판사만 이렇게 표기했었다가 외래어 표기법 '도스토옙스키'로 쓰고 있다.
"찌든 듯이 무더운 7월 초의 어느 날 해질 무렵, S골목의 하숙집에서 살고 있던 한 청년이 자신의 작은 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K다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11쪽)
첫 문장입니다. 석영중의 해설로는 이 한 문장에 시간, 공간, 사람, 움직임이 다 들어갔다고 합니다. 완벽한 문장이니, 방과 걸음의 의미니 하는 것들은 해석을 하던데요. 작가가 애써 의도적으로 그런 상징이나 의미를 생각해서 그렇게 썼다고는 생각진 않습니다. 쓰다 보니 어쩌다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죠.
:: 죄와 벌 줄거리
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중에 유별나게 잘 알려졌다. 학교에서 읽기 과제로 많이 내서 그런지도. 느낀 점 써오라고 하니 줄거리 써야 하고 독후감을 내야 하니까.
문제는 막상 이 책을 읽으려고 하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대부분이 그런 편이지만, '죄와 벌'은 술술 읽히지 않는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주인공이 내내 뭐라뭐라 계속 혼잣말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기존 소설 독법 입장에서는 참으로 불친절한 서술이다.
줄거리라고 해 봐야 딱히 사건이랄 것이 없다. 핵심 사건만 추리면, 청년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후 소녀 가장한테서 감동을 받아 자수하고서 감옥살이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전부다. 독후감 과제 숙제 때문에 줄거리를 써야 한다면 이보다는 더 많이 써야하겠지. 열린책들 홍대화 번역본에는 하권 끝에 옮긴이가 쓴 다섯 쪽에 달하는 줄거리가 붙어 있다.
:: '좌와 벌'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이 많은 분량의 소설을 읽어낸 사람이라면 기대감이 클 것이다. 뭔가 대단한 결말을 바랄 것이다. 하지만 끝을 읽으면 허탈할 수 있다. 어쩌면 쓰다가 에라 모르겠다고 하고 이야기를 멈춰 버리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죄와 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건 전개 줄거리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해서 다시 읽어야 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 '죄와 벌'에서 이야기하는 살인은 철학적 의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의미를 넘어선다. 그래서 소설이다.
주인공 청년 로쟈가 노파를 살인하는 것은 자기 논리적으로는 정의 실현이었다. 하지만 '정의 실현' 후에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양심의 괴로움에 사로잡힌다.
그런 그를 소냐가 부활시킨다. 요한복음에서 라자로의 부활 부분을 읽는 장면은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부분이지만, 소설의 주제를 위해서는 꼭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소냐는 소설 후반부에서는 성녀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소설 '죄와 벌' 마지막 부분에서 주목해 볼 문장은 다음과 같다. 열린책들 홍대화 번역본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는 다만 느꼈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 속에서 무언가 전혀 다른 것이 형성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809쪽
"새로운 이야기, 한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그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는 이야기,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810쪽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참모습은 정신적 부활로 드러난다. 사람의 삶은, 그리고 영혼은 이론으로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리하고 처리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 선생이 '죄와 벌'에서 펼쳐보이는 심리 묘사는 놀랍다. 읽는 이가 그 등장인물이 된 기분이 든다.
:: 소설 '죄와 벌' 등장인물 정리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소설을 등장인물 이름 때문에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부러 등장인물 이름을 따로 적어두거나 아예 책에 맨앞에 정리해서 적혀 있다. 그래도 헷갈리고 어려운 이유는, 러시아 이름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기 못한 탓이다.
러시아 사람의 이름은 총 세 개가 있다. 영어권 이름이 세 개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똑같진 않다. 영어 이름에서 가운데 이름, 즉 미들 네임은 세례명인데 거의 안 쓴다. 하지만 러시아 사람의 중간 이름은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이고 일상에서 자주 쓴다. 오히려 마지막 이름, 라스트 네임은 미들 네임에 비해 자주 쓰지 않는 편이다. 라스트 네임은 여자가 결혼할 경우 남편의 성을 따른다. 이 점은 영어 이름과 똑같다.
죄와 벌 주인공의 이름은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꼴리니꼬프다. 로마노비치는 아버지 이름이다. 여성은 오브나, 예브나를 붙여서 만들고 남성은 오비치, 예비치를 덧붙여서 만든다.
그리고 퍼스트 네임은 종종 애칭을 쓴다. 이 점은 영어 이름이랑 비슷하다. 로지온의 애칭은 로쟈, 로지까이다.
주요인물만 정리하겠다.
로쟈, 로지까,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꼴리니꼬프 : 주인공 뿔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라스꼴리니꼬바 : 주인공의 어머니 두냐, 두네치까, 아브도찌야 로마노브나 라스꼴리꼬바 : 주인공의 여동생
알료나 이바노브나 : 전당포 주인 리자베따 이바노브나 : 전당포 주인공의 이복동생 나스따시야 빼뜨로브나 : 주인공 하숙집의 하녀
드미뜨리 쁘로꼬비치 라주미힌 : 주인공의 친구 조시모프 : 주인공의 의사
뽀로피리 빼뜨로비치 : 주인공에게 자수를 다그치는 예심 판사
아르까지 이바노비치 스비드리가일로프 : 주인공의 여동생 두냐에게 흑심을 품은 지주 마르파 빼뜨로브나 스비드리가일로바 : 지주의 아내
뽀뜨로 빼뜨로비치 루쥔 : 두냐의 약혼자
세묜 지하로비치 마르멜라도프 : 퇴역 관리 까쩨리나 이바노브나 마르멜라도바 : 퇴역 관리의 두 번째 아내 소냐, 소네치까,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라도바 : 퇴역 관리의 첫 번째 아내가 낳은 딸
:: 영문 위키에서 알아낸, 흥미로운 사실 - 노란색의 상징은 고통 받는 상태 혹은 정신병이다
정당포 주인 알료나 이바노브나의 방 벽의 벽지 색은 노란색이다. 루쥔의 반지 색은 노란색이다. 로쟈의 다락방 벽 색은 노란색이다. 소냐의 매춘 신분증/허가증의 색은 노란색이다. 러시아 어로 정신병원을 노란색 집이라고 부른단다.
:: 열린책들 출판사에서는 왜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로 표기하는 것일까?
러시아 원음 발음에 가깝게 우리말로 표기한 것 같다.
우리말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도스토옙스키'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많이 쓰는 표기는 '도스토예프스키'다.
※ 열린책들에서 큰글자판이 나왔다.
판형은 기존과 동일하다. 다만, 본문 글자 크기가 2포인트 커져 12포인트다. 그래서 쪽수가 30% 늘어났다. 물론 인쇄 내용 자체는 똑같다.
:: 양심의 불꽃, 여윈 말 이야기
마흔, 도스토옙스키 읽기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열린책들의 전자책 '세계문학 e컬렉션 세트(전170권)'가 도스토옙스키 전집(총 26권)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세운 목표가 도스토옙스키 전집 독파다. 155 세트를 산 후에 15 업그레이드 팩 세트를 사서야 비로소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완성했다. 총 스물여섯 권이다.
2016년 12월 27일 현재에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 세트가 180권이 되었고 도스토옙스키 전집(총 26권)을 포함하고 있다.
2017년 1월 18일 현재, 도스토예프스키 작품만 묶어서 전자책 세트로 팔고 있다. 종이책으로는 도스토옙스키 전집은 아직 안 팔고 있다. 그냥 낱권으로 26권을 사면 되겠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이 더는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았음을 깨닫고 의미있는 일을 해보려고 한다. 늙을수록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촉박할수록 신중한 법이니, 독서도 신간보다는 고전에 손이 간다.
나이 드니 고전이 더 깊게 더 많이 이해된다. 머리가 아니라 경험으로 이해한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세상 부조리와 더러운 년놈들과의 타협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쌓인 독을 고전 읽기로 해독하자.
죄와 벌, 양심의 불꽃
소설 '죄와 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여윈 말을 억지로 짐수레에 묶어 사람들이 학대하는 부분이다. 언뜻 보기에 이야기의 전개와 큰 관련이 없는 듯 보일 수 있으나 이야기 전체를 이끄는 중심 감정이다. 소냐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소냐에게 하는 말("잘 있어라, 이 불쌍한 것...! 여윈 말을 너무 부려 먹었구나...!")로 다시 이 작은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라스꼴리니꼬프가 폭리를 취하는 전당포 노파를 죽이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이론적 정의 실현 살인'을 실천에 이르지만 양심의 열병에 걸리고 만다. 그의 살인은 논리적으로는 옳지만 삶은 그렇게 논리적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논리적으로만 보자면 삶은 모순이며 오직 죽음만이 타당하다.
로쟈의 그림자로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있다. 그는 갈등 많은 양심 대신에 명쾌한 욕망을 택한다. 욕망의 끝은 충족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로쟈의 여동생 두냐의 사랑을 얻지 못하자 그는 논리적인 귀결로 더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반면 로쟈는 소냐의 사랑이 있고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 있어 삶으로 나아간다.
양심의 괴로움 속에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그들은 논리적이지 못하고 상식적으로 수긍이 안 되는 행동을 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창녀 노릇을 하는 소냐는 미친년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소냐를 무자비하게 착취할 뿐인데도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돈을 벌어다 갖다 바친다.
로쟈는 자기가 가진 돈 전부를 소냐의 아버지 장례 비용으로 쓰라고 줘 버린다. 일부가 아니라 전부다. 우리의 정상적인 선행은 자기의 일부를 주고서 사회적 존경과 인기를 얻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재산 전부를 남을 돕기 위해 쓴다고 하면 미쳤다고 하지 제정신이라고 하지 않는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의 광기 어린 혼잣말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쏟아진다. 순수한 마음과 현실의 부조리가 대립하면서 정신은 비명을 지르고 행동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극한 상황에 처하자, 양심의 울부짖음이 불꽃처럼 타오르며 삶의 희망을 만든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삶의 부활을 예감한다. "그는 다만 느꼈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 속에서 무언가 전혀 다른 것이 형성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성경 요한복음(번역서는 '요한의 복음서') 11장 나사로(번역서는 '라자로')의 부활 이야기를 억지스럽게(뜬금없이 로쟈가 소냐한테 성경 책을 읽어달란다.) 추가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소설 '죄와 벌'이 추구하는 것은 영웅주의 무신론이 아니라 구원과 자기 희생의 기독교 유신론이다.
로쟈는 살인으로 마치 자신이 죽은 것처럼 느끼는데 자수를 하고 소냐의 사랑을 받으면서 부활을 시작한다. 소설 '죄와 벌'은 바로 이 정신적 부활을 강조하며 끝난다. "새로운 이야기, 한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그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는 이야기,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2014.04.28
죄와 벌 세트 - 전2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학수 옮김/문예출판사
죄의식, 욕망, 양심의 심리소설
인간의 불안, 갈등, 슬픔, 기쁨, 절망, 희망, 특히 죄의식, 욕망, 양심을 심연의 깊이로 보여주는 심리소설이다.
가난한 대학생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다는 범죄소설이지만 추리소설로 보는 이는 드물다. 범죄의 스릴이나 반전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 본성을 파헤치는 '철학소설'에 가깝다.
사건 전개를 치중해서 읽어내고자 하는 이들은 도스토옙스키 소설이 대체로 그렇듯 등장인물들의 장광설 독백에 질려서 더 읽기를 포기한다. 반면 읽는 이의 심장을 움켜쥐고 마구 흔들어대는 문장의 미칠 듯한 폭주에 사로잡히면 도저히 책에서 눈을 떼기가 불가능하다. 도스토옙스키에 중독되면 커피 마시듯 읽어 열 번 스무 번 백 번 읽는다.
이미 줄거리와 사건 전개를 아는 상태에서 다시 읽어 보니, 주인공의 불안 심리가 수술용 매스처럼 정확히 날카롭게 묘사해 나아간다. 경악스러운 문장이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냐.
이 옛날 소설이 오늘날까지 폭탄 같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뭘까. 자기 아내의 양말까지 팔아서 술을 마시는 사내. 그래 이건 가난을 과장해서 만든 이야기에 불과하지. 정원 감원 때문에 실직한 가장이 허름한 술집에서 넋두리를 해댄다. 요즘 얘기잖아?
지독한 가난에 빠져 정신이 돌아버린 사람들을 집요하게 그리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처음에는 낡아빠진 옛날 이야기라는 인상을 받지만 나중에는 오늘날 이야기로 읽힌다. 경제불황과 장기실업을 피할 수 없는 요즘에 사람다움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살인과 자살, 학대와 자학은 극단 상황에 놓인 인간이 자주 보이는 행태다.
김학수 문예출판사, 한문투 옛날 번역
2013년 4월에 나온, 문예출판사 김학수 번역본은 옛날 번역이다. 도스토옙스키 150주년인 1971년에 출간한 책을 다시 편집했다. 옛날에나 썼던 한자어가 종종 나와서 읽기 거북할 수 있다.
열린책들 홍대화 번역과 비교해 보니, 정확성에서도 떨어진다. 읽는 데 큰 지장을 주진 않지만 이런 거다.
홍대화 : 1베르스따 밖에서도 김학수 : 1킬로미터 밖에서도
홍대화 주석에 보면, 베르스따는 미터법 시행 전 러시아의 거리 단위란다. 1베르스따는 1.067킬로미터다.
홍대화는 우리말 위주고 김학수는 한문투다. 읽으면 느낌이 다르다.
홍대화 : 7백30발자국이었다. 김학수 : 730보였다.
너무 사소한 거 아니냐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홍대화 : 사소한 것, 사소한 것이 중요하다……! 김학수 ; 사소한 것, 사소한 것일수록 중요하다!
2015.01.01
죄와 벌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은이), 홍대화 (옮긴이)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3부 5장 예심판사 뽀르피리와의 심리 대결 묘사와 3부 6장 주인공 로쟈가 악몽에 빠지는 장면이 압권이다. 사람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니, 놀랍다. 도선생은 천재다. 최고다.
2018.11.5
죄와 벌 - 하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은이), 홍대화 (옮긴이)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횡설수설, 쓸데없는 말, 난데없이 등장하는 권총. 소설로의 이성적 논리는 내팽개치고 열광적 광기로 써내려간 글이다. 로쟈는 끝까지 양심의 가책이나 반성이 없다. 결말은, 로쟈가 소냐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냐는 성녀처럼 보인다. 소냐의 사랑이 로쟈를 구원한다.
2018.11.9
열린책들 번역본 전자책 열어 봤더니, 로쟈가 로댜로 나온다. 왜 이러는지. 오탈자나 잡지.
도스토예프스키는 처음 쓴 소설 '가난한 사람들'로 일약 문학계의 스타로 떠올랐다가 그 다음에 야심차게 쓴 '분신'으로 추락한다. 그토록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던 독자며 비평가들이 갑자기 돌아서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작가 본인은 이 작품의 성공을 확신했다. "골랴드낀(소설의 주인공)은 저를 성공의 절정으로 데려다 주었답니다." 실제로는 당시에 망했다. 하지만 오늘날 비평가와 독자들한테는 격찬을 받았다.
'분신'은 분열된 자아, 그러니까 똑같은 자신인데 정확히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을 보게 되는 환상을 그린 소설이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자신과 꼭 닮았으면서 자신보다 훨등한, 분신(도플갱어)이 갑자기 나타나서 서로 갈등한다는 이야기다.
자아 분열 혹은 다중 인격, 또는 도플갱어를 다룬 이야기는 대개 복잡하고 애매하고 우울하다. 하지만 때로는 아주 대박나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개인적 체험으로는 대개 다 별로였다.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쾌감이나 통쾌감이 없는 탓인 듯.
다중인격 살인자를 다룬 영화, 제임스 맨골드의 '아이덴티티'를 끝까지 흥미롭게 봤다. 과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그랬다. 알고나면 허탈하지만, 보는 내내 재미는 있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적의 화장법'은 이 소재 '자아분열'로 반전을 만든다. 곰곰 생각해 보니, '지킬과 하이드'도 있다. 스포일러가 되려나.
이 소설 '분신'을 바탕으로 혹은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만든 영화도 있다. 나탈리 포트만이 주연으로 나오는 '블랙 스완'은 두 개의 인격으로 분열되면서 강렬한 긴장감을 만들긴 했지만 딱히 재미있다고 하긴 그렇다. 영화 '더블 : 달콤한 악몽'은 보다가 잤다. 영화적인 것과 소설적인 것은 아무래도 다른 듯.
:: 극사실주의 판타지
소설 '분신'은 우리의 실제 사회 생활을 극사실주의 판타지로 보여준다. 너무나 공감하고 심히 절감해서 무서울 지경이다.
우리는 자신의 참된 자아가 아니라 가면, 즉 거짓된 자아를 연기하고 있다. '분신'의 주인공처럼 자아 분열 정신병에 걸릴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사회생활은 때때로 자아에 많은 상처와 스트레스를 준다. 대개들 가장 미운 사람 1순위가 직장상사 아닌가. 그리고 비굴하게 사는 자기 자신이 2순위겠고.
하급 관리 골랴드낀의 심리적 붕괴, 그의 일상, 그의 자존심, 그의 자의식은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다음은 이 소설 '분신'의 일부다.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 만났을 때 주인공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소리다.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대답을 해, 말아? 아는 체를 해야 하는 거야, 뭐야, 이거?' 우리의 주인공은 엄청난 고민에 빠져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내가 아니고, 놀랄 정도로 나랑 닮은 누구 다른 사람인 척할까?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하게 쳐다 봐?'"
마음에 없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 속으로는 화가 풀릴 때까지 저 인간을 때려주고 싶은데 얼굴은 웃으며 입은 덕담을 말한다. 통제를 못하고 분출해 버리기도 하지만 가끔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첫 번째 소설 '가난한 사람들'에서 인물의 외부 모습과 주변 환경 묘사가 아닌 인물의 심리, 심중 묘사에 초점을 맞춰 썼다. 두 번째 소설 '분신'에서는 분열된 심리의 모습을 그려냈다. 미래의 문학 수법을 써내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분신'은 뒤에 나올 대작의 서곡이다. 특히, '죄와 벌'을 미리 보는 느낌이다. 소심함과 자의식, 그리고 갈팡지팡하는 성격에 혼자서 중얼거리는 주인공. 종종 꿈이나 환각에 빠져서 현실을 이탈해 버린다. 빛과 그림자처럼 쌍둥이 분열자아의 캐릭터들인 라스꼴리니꼬프와 스비드리가일로프.
읽다가 그 의미가 곧바로 이해가 되지 않거나 이상해서, Andrew R. MacAndrew의 영역본을 읽고 알아낸 것은 다음과 같다.
상권 제2권 5장 아멘, 아멘!
✔ 꿈?
영어 번역본에 Vision으로 나온다. 장로가 뭔가를 미리 예견, 선견한 것을 뜻한다. 조시마 장로가 드미뜨리의 발에 대고 인사한 장면.
상권 제2권 6장 저 따위 인간은 뭣 때문에 살고 있는 걸까!
✔ 헌병? 124쪽
영어 번역본에 security police다. 헌병이 아니라 보안경찰이다. 공안경찰 혹은 비밀경찰. 문맥상 불순한 사상(자유주의, 사회주의)을 가진 자를 체포하려는 경찰이라는 뜻이다. 러시아 원문에는 헌병으로 나올 수도 있겠다 싶다. 헌병이 경찰 역할을 하는 군인이라는 뜻이니까. 러시아 어 원문까지 찾아 봐야 하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실제로 읽은 사람도 거의 없다. 읽기가 쉽지 않다. 책 읽기에 익숙하더라도 여전히 독파하기 힘들다. 800여 쪽에 달하는 분량(열린책들 번역본 기준)부터가 만만치 않다. 사건 전개보다는 인물의 심리를 묘파하는 데 치중한다. 게다가 주인공의 정신분열 장광설을 읽어내는 것은 고역에 가깝다.
이런 책을 짧으면 30분만에 길어도 1시간 내에 읽어낼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이 생각을 실현한 출판사가 일본에 있다. East Press라는 출판사에서 고전을 '만화로 독파하는' 시리즈를 출판 중이다. 일본에서는 이 책을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다고 한다. 몇 권은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신원문화사에서 25권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마침 '죄와 벌'을 열린책들 번역본으로 읽는 중이었다. 독파는 못했고 제4부 제4장까지 읽었다. 만화로 전체 줄거리와 각 캐릭터의 인상을 기억해 두었으니 더 빨리 읽혀질 듯하다.
만화 그림체는 각 인물의 성격을 잘 드러내도록 그려 놓았다. 특히, 성격 좋은 라주미힌은 딱이었다. 인물의 심리를 만화 그림으로 표현하기 만만치 않았을 턴데, 고전의 분위기를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만화 기법을 이용해서 표현해냈다. 훌륭하다.
만화는 요약이다. 몇몇 세부사항을 생략했다. 원작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노파를 속이기 위해 가짜 은제 담뱃갑을 만들어 건네고 노파는 그 담뱃값을 겹겹이 싼 포장을 푸는 중에 살해당한다. 만화는 주인공이 담뱃값을 꺼내는 척하다가 노파의 뒤에서 살인한다.
정리를 잘했다. 원작(번역서) 800여 쪽 분량을 만화로 190여 쪽에 압축해냈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다. 핵심을 잘 파악해서 객관적으로 사건과 생각을 배열했다. 권말에 190여 쪽에 달하는 만화 분량을 12쪽으로 요약한 시놉시스와 8쪽짜리 작가의 삶과 작품들 해설이 붙었다. 요약이 신의 경지다.
아직 '죄와 벌'을 독파하지 못한 분이나 독파하려는 분에게 적극 추천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문학으로 빛나는 작품이다. 그의 악마적인 필력과 심연같은 심리 묘사는 영상이나 만화로 표현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글로 읽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내가 '죄와 벌'에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이 만화에 없다. 짐마차를 끄는 허약한 말을 학대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인간의 잔인함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비참한 상태에 있을 때, 고통의 한계까지 시달렸을 때, 삶 전체를 화끈거리고 욱씬거리는 하나의 상처라고 느낄 때, 절망을 호흡하고 희망이 사라져 버렸을 때,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야 한다. 우리가 비참한 상태에서 빠져 나와 고독하게 다리를 절며 삶을 응시하면서 삶을 더 이상 거칠고 아름다운 잔인함으로 파악하지 않고, 삶으로부터 더 이상 아무 것도 가지려고 하지 않을 때, 그때 우리는 이 끔찍하고 훌륭한 작가의 음악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된다." - 헤르만 헤세 - (249쪽)
표도르의 만년 미완성 대작 <카라마조프 家의 형제들>을 읽었던 것이, 지난 1995년 11월이었다. 감기가 걸려, 머리 아프고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읽다가 그만 코피를 쏟았다. 근처 교회에서 운영하는 주민 문고에서 빌려 읽었는데, 책장 가득 코피가 묻어 어찌나 미안했던지. 괜찮다며 웃으시던 그 교회 주민 문고의 아주머니가 무척 고마웠다. 반납일 하루 늦어서, 30원인가 50원인가를 냈다. 반납일을 어기는 일은 거의 없는데, 그 책은 예정 반납일을 어기면서까지 읽었다. 수첩에 반납일을 꼭 표시하고 다녔기에, 다른 날을 다 잊어도 도서 반납일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내 지난 독서 생활에서 그 책만이 유일하게 반납일을 넘겼다. 일신서적에서 펴낸 그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두 권짜리 책에서 무엇을 얻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 문학을 시간 순서로 서술했다. 어조는 담담한 편이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그는 삶의 극한까지 다 겪어 본 사람이었다. 사형 직전에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범죄자들과 함께 4년간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했고, 도박에 빠져 가난뱅이가 되기 일수였으며, 간질병으로 시달렸다. 이런 극단의 경험들은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 이 여자들과의 사랑도 작품에 잘 나타나 있음은 물론이다.
첫 부인, 마리아 드미트리예브나 이사예바(54쪽에 이 사람의 초상화가 나오는데, 척 보기에 요부(妖婦)다). 이 여자는 알코올 중독자인 하급 관리의 아내였다. 또 아들 파샤를 데리고 있었다. 마리아는 금발의 매력적인 여자이긴 했지만, 서른 나이에 변덕스럽고 신경질적인 성격이었다. 그런데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여자를 사랑했다. 남편이 있는 여자를! 더구나 여자는 그에게 관심조차 없다. 이 여자가 미망인이 되자, 그는 청혼한다. 그러나 그사이 벌써 그 여자는 애인이 있었다. 그래도 청혼! 최하급 장교가 되자, 그제야 여자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이 여자는 뻔뻔하게도 자신의 애인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딸 리유보프의 말에 따르면, 결혼식 전날 밤에도 마리아는 그의 애인과 같이 지냈다고 한다.
두 번째 여자는 아폴리나리야 수슬로바(줄여서, 폴리나라고 불렀음; 74쪽에 이 여자 초상화를 보니, 한눈에 평범한 시골 출신 여자로 보인다. 강인한 외모다). 의과 대학생에게 바람맞은 이 여자를 짓궂게도 도스토예프스키는 다시 서로 결합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 대학생은 이 여자와 결별한다. 그래서 그는 폴리나에게 같이 여행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폴리나와 함께 여행하면서 도박에 미쳐 돈을 마구 썼다. 폴리나는 그런 그에게 질려서 도망친다. 이 여자는 끝내 이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러시아 작가는 옛 사랑 폴리나를 다시 만나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작품 판권을 스텔로프스키라는 악질 출판업자에게 맡긴다. 문제는 기존 책의 판권을 넘기는 것 말고도 새 소설을 써서 늦어도 지정된 날짜에 넘겨주지 않으면 아무런 추가 보상은 물론이고 그가 쓰게 될 모든 책의 발행 권리를 갖게 된다는 계약에, 그는 순진하게도 서명해 버렸다.
이 계약이 두 번째 부인을 만나는 계기가 된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스니트키나. 속기사. 촉박한 시간에 빨리 작품을 써야 했다. 그래서 그의 친구가 속기사 한 명을 구해 주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안나다. <도박꾼>이 바로 이 때 완성된 작품이다. 26일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안나의 도움으로 출판업자의 재정적인 모략에서 벗어난 그는, 안나에게 청혼한다. 45세 작가와 20세의 속기사. "나의 모든 미래는 그대에게 달려 있소. 그대는 나의 희망이자 행복이며 축복이오." 이렇게 안나에게 썼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 중에서 그를 가장 잘 이해하고 실질적으로 많이 도와주었다. 앞의 두 여자는 그를 참지 못하고 화를 냈지만, 안나는 달랐다. 안나는 그를 사랑한 만큼 인내심이 강했다. 아내의 도움으로, 표도르가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도박벽에서 탈출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남편이 사망한 후 38년 정도를 더 살았던 안나는, 자신이 사랑한 남자에 대한 추억으로 그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젊은 아내 안나에게 무척 끌렸던 모양이다. 이런 편지를 썼다고. "나는 꿈 속에서 늘 당신과 키스하고 있소. 당신의 몸에서 내 입술을 떼지 않고."(이 책 172쪽)
사람들은 그의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더 놀란다. 어떤 사람은 그의 외모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보잘것없는 외모에다 다소 무뚝뚝하며 수염은 약간 불그스름한 빛을 낸다. 광대뼈가 튀어나온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여위어 있고 오른쪽 뺨에는 사마귀가 나 있다. 의심과 불신으로 때때로 불타오르는 눈은 슬픈 표정을 띠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 두 눈에서 깊은 생각과 번민을 읽을 수 있었다."(이 책 200쪽).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첫 소설이자 대박 데뷰작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첫 작품으로 러시아 당시 문단에서 스타로 떠오른다.
본격적인 장편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 열린책들 석영중 번역본이 고작 200여 쪽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번역본은 대개가 두세 권으로 총 1000쪽 안팎이다.
이 소설 '가난한 사람들'은 서간체 소설이다. 두 인물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식이다. 당시에 연애소설 형식으로 이 서간체를 주로 썼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도 본래는 서간체 소설이었는데 다시 쓰면서 일반적인 서술형식으로 바꿨다. 그 옛날에는 편지 형식을 연애소설로 즐겨 사용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첫 소설이라고 하니 뭘 어떻게 썼나 궁금해서 첫 쪽을 펴서 보면, 제사가 나온다. 오도예프스끼가 썼다는 '살아 있는 주검'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글이다. 처음에는 이게 뭘까 싶을 텐데 소설을 읽으면 왜 이런 말을 맨 앞에 썼는지 알 수 있다. 116~119쪽에서 말이다.
마까르 제부쉬낀은 늙은 하급 공무원이다.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서 정서다. 남이 휘갈겨 쓴 글을 바르게 예쁘게 다시 써서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름 문학 창작이라는 걸 하고자 하는 편이고 책도 열심히 읽고 문학 모임 같은 데도 참석한다. 문제는 그 수준이 낮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남자가 문학 관련해서 하는 말은 코미디가 된다. 그러면서 기존 문학의 비판적 고찰 겸 도 선생의 문학 지향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객관적 자연주의 태도에서 벗어나 심리적 사실주의로 나아간다. 가난한 사람의 외양보다는 그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묘사해낸다. 그가 새로운 '고골'이 된 것은 '외투'에서 그 '외투를 입은 자의 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야기 줄거리는 시시하다. 나이 많고 가난한 남자가 고아인 젊은 여자를 사랑해서 열심히 이것저것 사서 갖다 바친다. 젊은 여자는 결국 돈 많은 지주한테 시집간다. 둘이 헤어진다.
허기야 도 선생의 유명한 작품도 대개가 줄거리는 간단하다. 대학생이 노파를 죽인 후 자수하고 시베리아 유형을 간다. '죄와 벌'이다. 돈과 여자 문제로 아버지와 싸우던 장남이 부친 살인죄로 유형에 처해진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매력은, 그런 이야기보다는 열정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등장인물의 말과 간단하면서도 강렬한 이야기 속 이야기다.
'가난한 사람들'에서 독자를 울게 하는 대목은, 대학생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보여주는 노인의 모습이다. 아들이 좋아했던 책을 옷에 쑤셔넣었는데, 그게 떨어지는 장면이란! 참, 이 작가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대단히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대목은 여자 주인공 바르바라 도브로셀로바가 그 대학생 뽀끄로프스끼의 방에 있는 책을 읽으면서 문학 세계에 몰입되는 부분이다. 56~57쪽. 그리고 64쪽.
"책 속으로 몰입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내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 나는 점점 더 깊이 그 낯선 느낌에 빠져 들었고, 그 느낌은 점점 더 달콤하게 내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다."
작가의 독서 체험 고백으로 들린다.
남자 주인공 마까르 알렉세예비치가 가난 때문에 심리적 위축과 괴로움과 자존심에 상처를 당하는 모습은 여러 일화를 통해 신랄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절대적 빈곤이 사라졌다는 지금에서조차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상사 앞에서 자신의 옷에서 단추가 떨어져서 굴러가는 장면이 압권이다.
'죄와 벌'이 겹쳐서 읽혔다. 바르바라는 두냐와 닮았고 마까르는 로쟈와 비슷하다.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큰 유형으로 보면 그랬다.
가난의 외형과 그에 따른 심리적 내면 풍경을 그려냄에 있어, 도스토예프스키는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독보적인 소설가다. 그 놈의 돈 문제는 옛날에도 지금에도 미래에도 인간에게는 골치아픈 문제다.
:: 독자를 울리고 웃기는 재능
첫 작품인데도 이 정도면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다. 이 책 끝에 붙은 작가 연보(231쪽)에 보니 정성을 들여 퇴고했다고 하지만, 글에서 보이는 광휘는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그 후에 작품의 발전은 양적인 것이지 질적으로는 그다지 없었다. 다루는 주제의 폭을 넓힌 것이 질적 향상으로 친다면 발전했다고 봐야겠지만. 이 작품 이후 문체는 불변이다.
나중에 쓰여질 '죄와 벌'이 이 소설에서 보인다. 가난에 찌든 인간의 모습. 절대 빈곤이 사라진 요즘이지만 여전히 공감하게 되는 건 뭘까. 절대적 가난을 사라졌어도 상대적 가난은 여전하니까 그런가. 읽는 내내 돈이 뭔지, 사는 게 뭔지, 나도 모르게 푸념하더라.
작가가 그리는 가난은 인간적인 가난이다. 문학적 상징으로 만들어낸 가난이지 사실적 실제 가난의 모습은 아니다. 가난을 있는 그대로 글로 그려냈다면 그 글을 읽고 감동할 사람은 없다. 가난한 사람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모는 것이 작위적이지 않나 싶다. 첫 작품이라서 더 그렇게 보인다. 때마침 사람이 죽고 등장인물은 대개들 다치거나 병에 걸린다. 참 편리하게도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제목과 달리 달랑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는 서간체 소설이다. 가난하지만 교양이 나름 높은 젊은 여자,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와 역시 또 가난하고 교양도 없지만 마음은 착한 늙은 남자 하급 공무원 마까르 제부쉬낀. 두 사람 사이의 러브레터 겸 일상잡담 편지다.
작가 특유의 장광설은 그가 쓴 어느 작품에서건 나타난다. 첫 작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등장인물이 끝도 없이 쉼 없이 혼자서 지껄인다. 미친 사람처럼 떠들어댄다. 말이 쏟아지는 중에 갑작스럽게 빛을 내며 감동을 만든다. 그 열띤 말의 끈질긴 당김으로 인간 내면을 끌어낸다.
이야기 속 이야기로, 여주인공 바르바라의 회상에서 열한 권짜리 뿌쉬낀 전집을 사주고 난 후 벌어지는 비극은 '죄와 벌'에 나오는 '여윈 말' 이야기보다는 덜 하지만 독자의 심장을 쥐어짜내는 듯 격렬하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미쳐버린 아버지가 그 아들이 그토록 좋아해서 사 주었던 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떨어뜨리고 줍기를 반복하며 장례를 치르는 모습이라니. 도스토예프스키다운 캐릭터다.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 감정의 폭발로 더는 제정신일 수 없는 사람. 갈 데까지 간 사람.
고골의 유명한 소설 '외투'에 대해 불평하는 마까르의 수다를 읽다가 어찌나 웃기던지. "도대체 그런 글은 왜 쓴답니까? 그런 게 왜 필요하대요? 이런 책이 나오면 독자 중 누군가가 외투라도 하나 장만해 준답니까? 새 신발이라도 사준대요?"(117~118쪽) 책 맨 앞에 왜 요상한 인용 글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최고다!
'외투'는 바르바라가 마까르한테 읽어 보라고 빌려 준 책에 있다. 마까르는 문학작품이라는 일컫는 고상한 소설 대신에 싸구려 인기소설을 높이 평가한다. 의도적으로 여자와 대조시키기 위해 남자를 가난하고 무식한 인물로 그려놓았다. 각자의 문학 소양은 편지의 문체에도 잘 드러난다.
남자 주인공이 직장 상사한테 야단을 맞던 중 자신의 옷에서 단추가 떨어지고 그걸 줍고 최악의 상황으로 간다. 그러다 곧바로 직장 상사가 고액권 지폐 한 장을 주며 일 다시 잘하라고 하자 우리 주인공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인생의 희비극을 이토록 절묘하게 써내는 도스토옙스키 선생은 역시 문학의 신이다.
횡설수설에 등장인물이 많아 읽기에 까다롭고 지루했다. 사건다운 사건은 3부부터 몰아치듯 나온다. 인물들이 죽어나간다.
각 인물별로 이야기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1인칭 시점 서술과 전지적 작가 시점을 오가면서 관찰자 입장을 유지한다. 직접적이기보다 암시적이다. 갑갑하다. 어찌나 산만한지. 같은 말을 반복하기까지.
열린책들 번역본에는 번역자가 줄거리를 첨부해 놓았다. 워낙 줄여 놓은 탓에, 그리고 이야기가 워낙 산만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직접 모두 다 읽어 보는 수밖에 없다.
분량은 많지만 얘기는 간단하다. 무신론 무정부주의자들의 폭동이다. 실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장광설과 형이상학과 사회비판이 나온다. 무신론자들 이야기인데, 180쪽에 가서야 무신론을 처음 논한다. 키릴로프의 인신사상. "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돌 자체에는 고통이 없지만 돌에서 비롯된 공포 속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신은 죽음의 공포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고통과 공포를 극복하는 사람, 그 사람은 직접 신이 될 겁니다." 진지하기보다는 우스꽝스럽다.
평온하고 조화로운 삶은 살고 있는 사람한테는 종교가 필요없다. "인간은 더 고약하게 살거나, 혹은 더 학대받고 더 가난한 족속일수록 더욱더 집요하게 천국의 보상을 꿈꾼다는 거 말입니다."(295쪽) 이 세상의 삶이 지옥일수록 저세상은 더욱 간절하다. 불가지론자인 나로서는 시큰둥한 얘기지만.
소설 '악령'은 무신론자들 풍자하려다 유신론을 사색한다. 유신론과 무신론은 빛과 그림자다. 극과 극은 통한다. 무신론자는 절망한 유신론자다. 신이 없다고 부정하기 위해서는 '신이 있음'이 전제다.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무신론 급진 사회주의 무정부주의자들을 우스꽝스럽게 짧게 그려내는 '팸플릿'을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써 나아가면서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던 인물인 '스타브로긴'이 중심 인물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초고의 계획을 엎어버리고 아예 '위대한 죄인'이라는 비극으로 양을 늘려 버린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모호해진다. 코미디인가, 비극인가. 웃기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뭐지? 3부 8장까지 읽고나서는, 이게 뭐야 싶다. 도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 거야?
이 책을 예전에 읽었을 때는 "촛불처럼 분명하고 손가락처럼 단순합니다."(286쪽) 이 한마디와 끝 장면이 머릿속에 남았다. 그때 내가 읽은 책에는 '찌혼의 임자에서'가 안 붙어 있었다.
'스타브로긴의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더 잘 알려졌다는 이 글은 본래 2부 9장으로 넣으려고 했다가 편집자의 권유 혹은 강압으로 삭제했었다가 작가 사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표뜨르 스쩨빠노비치 베르호벤스끼가 주인공 아닌가? 다 계획하고 실행한 사람은 이 사람이지 않은가? 그리고, 니꼴라이 프세볼로도비치 스타브로긴은 딱히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뺨 맞고 결투에서 총을 엉뚱한 곳에 쏘고 왜 그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행동들, 왜 등장인물들 이 사람한테 열광하는 것일까.
삭제되었던 장이 그동안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를 여는 열쇠가 된다. 드디어 인격화된 악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어진다. 모호함과 불명확함은 의도적인 것이었다!
장황한 문체를 걷어내고 줄거리만 요약하면, 한 남자가 두 여자를 모두 사랑했는데 이도 저도 안 되고 도로 백치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결혼을 둘러싼, 정신병원 환자 같은 이들의 막장 드라마다. 코미디는 전작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과 비슷하지만 끝은 전혀 다르다. 비극? 개판이다. 작가가 작정을 하고 등장인물들을 시궁창으로 처넣는다.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허구의 인물들을 통해 다 하고서 버린 듯.
총 4부다. 1부 끝에서 빵 터진다. 그리고 소설 마지막에서 경악하게 된다. 그 외 부분은 대단히 지루한 편이나 중후반부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사상이 뜨겁게 달군 쇠처럼 불타고 있다. 이 글 하단에 몇 부분 인용해 놓았다.
'백치'는 그리 술술 읽히는 소설은 분명 아니다. 1부까지 읽어내기도 버거울 것이다. '백치'는 읽다가 졸거나 통독을 포기한다고 해도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당신만 그런 게 결코 아니다. 워낙 잡다한 이야기가 많아서 종종 샛길로 빠지니까.
이렇게 읽어 보라. 독서의 초점을 흥미로운 사건 진행이 아닌, 물론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너무 적은 탓에, 주인공 캐릭터에 맞춰 보기 바란다. 그러면 이 착한 어른 어린이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아,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이 책보다 먼저 읽기 바란다.
지극히 아름답다고 선한 인물. 이런 사람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에서 그려내고자 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바로 이 '백치'다. 그러니까 '알료샤'의 이전 버전이 '미쉬낀 공작'이다. 알료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주인공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총 2부를 계획했는데, 1부만 완성하고서 작가가 갑작스럽게 죽었다. 그래서 도대체 2부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한데, 아마도 알료샤의 전기일 거라고 추측한다.
미쉬킨 공작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화'라고들 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맞고 전반적으로는 틀린 말이다. 미쉬낀도 얄료샤도 신은 아니다. '유로지비'라 불리는 바보 성인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렇다고 미친 바보짓까지 하는 정도는 결코 아니다. 순진한 정도다.
예수를 닮았다는 것은 어린이랑 친하다는 점과 순진무구할 정도로 착하다는 점과 상대방을 단번에 간파한다는 점 정도겠다. 마쉬킨은 관상쟁이다. 딱 보는 순간, 상대를 파악한다. 점쟁이처럼, 마법처럼, 타고난 재능인 것처럼. 왜 그런지 논리적 이유는 설명되어 있지 않다. 초능력?
돈에도 별 관심이 없다. 외모도 딱히 꾸미지 않는다. 이런 미쉬낀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유도 모른 채 호감을 느끼고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주변 사람들이 자진해서 미쉬낀을 도와준다. 그리고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도 있다.
미쉬킨 공작 스스로도 자신을 '백치'라고 부르고 주변 사람들도 그를 '백치'라고 부른다. 그리고 실제로도 바보 같은 행동을 한다. 코미디 분위기랄까.
알료샤한테서는 그런 바보스러움을 제거하고 단순히 순박한 사람이자 종교적 열망을 지난 인물로 그려진다. 이런 면에서는 미쉬낀과는 무척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지극히 선한 인물' 유형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순진하고 착한 인물은 별로다. 내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읽는 이유는 이런 인물이 아니라 자존심 끝판왕 캐릭터 때문에 읽는다. 도 선생 소설을 읽는 이유다.
아주 옛날에, 십 년 전쯤 되려나, 아니 더 오래된 듯하다, 어쨌든 이 소설 '백치'를 한 번 통독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읽었다. 읽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 읽기를 위한 읽기였다. 그래도 계속 기억에 뿌리깊게 남겨져 있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여자였다.
어마어마한 큰돈을 벽난로에 태워버리는 여자. 이런 미치광이 이야기를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어디선가에서 읽었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게 어느 소설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이제 알았다. '백치'였다. 270쪽에 나온다. 1부 거의 후반부다.
나스따시야는 소설 '상처받은 사람들'에 나오는 넬리처럼 윤리적 자존심이 극단적인 인물이다. 잊히지 않는 캐릭터다. 이름을 잊을 수는 있어도, 이 캐릭터가 한 행동과 그 감정 상태는 워낙 강렬해서 잊을 수가 없다. 정말이지 도스토예프스키다. 징헌 인간 같으니. 이런 소설을 써내다니.
그리고 시체가 있는 방에서 두 사람이 함께 밤을 새우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는데, 어디였나 했더니, 바로 이 '백치'였다.
'백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종교적 철학적 러시아 민족 사상가적 사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이전에 발표한 '죄와 벌'의 생각이 더 발전하고 더욱 굳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로고진과 공작이 십자가를 교환해서 목에 거는 모습은 '죄와 벌'의 한 장면과 유사하다.
무신론, 유신론, 러시아 민족에 대한 믿음. 성찰. "종교적 감정의 본질은 그 어떤 이성적 논리로도 접근할 수 없어, 그 어떤 과실이나 범죄, 그 어떤 무신론도 그걸 붙잡을 수 없지. 그런 것들과는 무언가 달라. 영원히 다를 거야. 거기에는 무신론이 영원히 포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영원히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거라고.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 가장 선명하게 러시아 인의 가슴속에서 가장 자주 발견된다는 것이야. 그것이 바로 나의 결론이라네!"(344쪽)
무신론자가 이 소설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병에 시달리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열여덟 젊은이 이뽈리뜨의 사색과 몽상은 기독교, 죄, 죽음, 삶, 죄의 처벌, 선행을 밑도 끝도 없이 파고들어간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파고들어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열띤 말.
"우리는 신에게 우리 식의 개념을 뒤집어씌워 신을 지나치게 비하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신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면, 인간의 능력으로 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책임을 지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그렇다면 진짜 신의 의지와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나를 심판할 수 있겠는가?"(637쪽)
"무신론은 바로 가톨릭 추종자들로부터 시작된 겁니다. 이러니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무신론은 가톨릭의 허위성과 종교적 무력감의 산물인 것입니다."(835쪽)
"사회주의라는 것도 결국은 가톨릭과 그 교리의 산물이지 않습니까! 사회주의라는 것도 그 형제나 다름없는 무신론고 마찬가지로, 가톨릭에 대한 회의감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가톨릭과 반대되는 정신적 입장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사회주의는 종교가 상실한 정신적인 권위를 차지하려고 하고, 인류가 애타게 호소하고 있는 정신적 갈증을 해소하려 하고, 인류 구원을 '그리스도'가 아닌 '폭력'을 통해 얻으려 한다는 점은 가톨릭과 별 다른 점이 없습니다."(836쪽)
막장 드라마 코미디에서 갑자기 진지하게 심연의 사색과 불타는 감정을 분출해 버릴 때는 정신이 아찔해진다.
:: 예수 그리스도 형상화
때때로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넘겼다. 한 쪽을 여러 번 읽기도 했다. 읽다 자다 깨다 읽다. 반복했다. 늦게까지 도서관에 남아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잡다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탐독했다고 할 수 없다. 그냥 한 번 읽었다.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 이후로 쓴 것인데, 그래서 그런지 '죄와 벌' 이야기를 '백치'에 몇 부분 넣었다.
'백치'는 산만하다. 무수한 등장 인물들과 많은 이야기들. 소설의 결말은 모호하다. 큰 줄거리와 상관없는 작가의 체험담(사형 직전에 살아 남은 것, 도박, 간질병 등등)에 여러 잡다한 것들이 담겨 있다.
그래도, 중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똑같지는 않다. 오히려 작가를 많이 닮았다.) 이상형 주인공 미쉬킨 공작의 이야기이다. 미쉬킨 공작은 백치다. 주변 사람들마저 그를 백치라고 부른다. 그가 백치임에도, 사람들은 그에게 가서 고백하려고 하고 그의 인격에 감동을 받는다. 그를 사랑하는 나스타샤와 아글라야. 또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 이야기. 돈, 결혼, 사랑, 사회 비판, 뭐 이런 이야기들이라고나 할까. 그리스도를 닮은 미쉬킨 공작은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결국 치료를 받았던 스위스로 돌아간다.
무신론자 이폴리트가 자신의 논문을 낭독하는 부분에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는데, 스티븐 킹 공포 소설을 능가할 정도로 으스스하다.
작가의 인식 테두리를 볼 수 있었다. 공작의 입을 통해 쏟아 내는, 로마 카톨릭과 무신론에 대한 비난, 그리고 러시아의 종교와 사상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 또 공작의 입으로 말하는, 러시아 상류계급 비판.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유럽 여행 직후 쓴 것이라서 유럽 사회에 대한 실망감과 비난도 보인다.
도스토옙스키가 택한 것은 결국 러시아 정교였고, 참된 그리스도 정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신론자들의 회의를 어떻게 해서든 반박하려 했다. 만년의 작업은 결국 이것에 치중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 작업이 최고로 다다른 미완성 작품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소설 이전까지만 해도 범죄를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범죄자의 심리나 행동을 그토록 잘 알지 못했었다. 관심이 없었다. 악한 사람을 묘사하긴 했어도 범죄자를 다루진 않았다. 특히, 살인범은.
도 선생은 진지하게 제대로 혁명을 꿈꾼 것도 아닌, 고작 어쩌다 모임에서 편지글 한 편 읽었다는 죄로 시베리아 수용소 감옥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온갖 범죄자를 꼼꼼하게 관찰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이를 수기 형식의 소설로 쓴다. 그 소설이 바로 '죽음의 집의 기록'이다. 여기서 죽음의 집은 감옥을 뜻한다.
감옥 체험 수기가 아니라 감옥의 범죄인들 모습을 그린 소설로 만들기는 간단했다. 순진하게도, 액자소설 형식을 취한다. 우연히 알렉산드르 뻬뜨로비치가 쓴 10년간의 유형생활 기록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나. 이런 액자 이야기를 맨 앞에 만들어 놓으면 소설로 변신 완료다. 이 소설 대부분이 아마 실제였을 것이다. 이야기가 되기 위해 어느 정도 더하고 빼고 했겠지만. 어쨌거나 소설보다는 실화 분위기가 난다. 다큐멘터리 같다.
그 유명한 '돈은 주도된 자유'는 바로 이 책에 나온다. 그 감옥에서 돈 쓸 일이 뭐 있나 싶은데, 감옥에 갇힌 점만 빼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는, 거의 모든 걸 하고 있다. 술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도박에 고리대금업까지 있다. 동물도 키울 수 있다.
딱히 주인공이 없다. 여러 사람들의 일화를 나열한다. 이 때문에 흥미를 잃을 수 있어서 통독하기 힘들 수 있거나 재미있게 다 읽어치울 수 있다. 나는 전자였다. 나는 사람들이 통독하기 어렵다는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편인데, 이 책은 읽다 말다 읽다 말다를 반복했다.
'죽음의 집의 기록'은 가장 도스토예프스키답지 않다. 장광설이 거의 없다. 오로지 성실하게 여러 인물들의 일화를 받아적는 태도를 유지한다.
웃긴 이야기, 슬픈 이야기, 황당한 이야기, 기괴한 이야기, 온갖 이야기가 다 있다. 가짜 금화 하나를 주조하기 위해 진짜 금화 세 개가 썼다는 위조화폐범. 특히, '벨까'라는 개 이야기는 묘한 울림을 준다.
부상을 당해서 언제나 굴욕을 당하며 주변 사람들과 개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던 개. "이미 벨까는 명예를 생각하는 일은 포기한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모든 희망을 상실한 채 오직 빵만을 위해 살고 있는 듯했으며, 자기 스스로도 이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377쪽) 결국 다른 개한테 물려 죽는다.
'죽음의 집의 기록'은 범죄 캐릭터 모음집이다. 별별 인간이 다 있고 별별 이야기가 다 있다. 특히, 살인자들. 추리소설에 나오는 그딴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범죄자에 대한, 특히 살인자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진지하고 지독하고도 철저한 관찰의 결과는 나중에 나올 소설의 기반이 된다. "특히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의 기억이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친부살인 이야기는 '카라마조프카의 형제들'에 등장한다.
감옥생활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기독교 작가가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죄와 벌'은 죄에 대한 기독교적 사색의 시작이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완성이다. 인간의 선악, 죄, 인간 존재의 문제가 왜 신이라는 관념의 사색 없이는 무의미한지 끝까지 가 본다. 대단한 집념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Записки из подполья (1864년) 도스토옙스키 | 열린책들 | 2010년
:: 반항하고 욕망하는 인간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이게 소설이야? 계속 혼자 중얼거리잖아." 그러면서 읽다 말았다. 당시에는 이 소설과 '죽음의 집의 기록'이 합본으로 묶여 있었다. 그 탓에 두 소설 제목이 헷갈렸다.
이 소설을 두 번째로 읽은 것은 '죄와 벌'을 드디어 완독하고서였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자책으로 읽었다. 이번에는 어쨌거나 다 읽었다. 그냥 혼자 떠드는 코미디 정도로 여겼다. '죄와 벌'의 1인칭 수다 버전으로.
이 소설을 세 번째로 읽었다. 제대로 읽어낼 수 없으리라 여겼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세 번 읽은 상태에서 이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장난스러운 어투로 그다지 많지 않은 분량의 글이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관찰 연구 결과를 어느 정도 마무리해 놓았다. 작가는 이를 기반으로 걸작들을 쌓아올린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한 사람들, 선과 악의 극단에 이른 인물, 모욕하는 사람과 모욕받는 사람 등을 주로 다루면서 낭만주의와 신비주의를 보이는 소설들을 써내면서도 과연 도대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답을 딱히 못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그 답을 내놓기 시작한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2부 구성이다.
'1부 지하실'에는 자기가 하급 공무원(일개 8등관)이었으며 친척한테 유산을 받고서 사표를 내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산다는 점과 나이, 성별 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없다.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수기인데도 말이다.
작가가 붙인 주석에는 이렇게 나온다. "<지하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장에서 그는 자신과 자신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으며, 아울러 우리 주변에 그가 나타난 이유, 아니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밝히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다음 장에서는 자신의 생애에서 일어났던 몇 가지 사건들에 관한 이 사람의 실제 <수기>가 제시될 것이다."(9쪽)
장이라고 설명했는데, 번역된 소설에서는 부로 표시했다. 작가 주석대로 '2부 진눈깨비 때문에'는 수기의 주인공 삶 이야기가 나온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인간의 존재 심리학 성찰 논문과 비아냥거리는 우스개와 열띤 광기가 뒤섞인 소설이다. 왜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다가 내가 이렇게 그의 모든 작품을 순서대로 읽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부의 핵심 주장은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정의가 거짓이라는 거다. 우리들이 여전히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이성적 존재라는 개념이 말짱 허구라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어디에서나, 그가 누구이든 간에, 절대적으로 이성과 그의 이익이 지시하는 대로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중간 생략)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욕구, 가장 거친 것이라 할지라도 당신 자신의 변덕, 때때로 심지어는 광기에 달하는 당신의 몽상, 바로 이것이야말로 모든 이들이 간과하는 있는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이익 중의 이익이며 이것 때문에 모든 체계들과 이론들은 끊임없이 와해되어 버린다."(43쪽)
반항하고 욕망하는 것이, 인간이다. 단순히 존재하기를 거부한다. 욕망, 욕구, 변덕, 광기, 몽상의 인간은, 이론이나 제도로 바꿀 수 없다.
'죄와 벌'의 코미디 일인칭 독백 버전
'죄와 벌'의 코미디 일인칭 독백 버전이 있었다. 아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도 이렇게 유쾌한 작품이 있다니! 책을 펴는 순간 지하로부터의 개그 콘서트가 펼쳐진다. 당신을 꽉 붙잡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고 속사포 독백이 쏟아진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실험적 풍자소설이다. '죄와 벌'의 주인공의 독백을 이 작품에서 자유롭게 펼친다. 읽고 있으면 아주 돌아버린다. 이 소심한 미치광이의 장광설이 진지함과 농담이 오락가락하며 독자의 머릿속을 이리저리 휘젓는다.
트위터 친구 한 분이 '죄와 벌'을 읽은 다음에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꼭 읽어보라며 "정말 분열적이다 못해 웃겨 죽습니다. 지드는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가운데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이 작품을 고르겠다고도 했었죠."라고 추천했다. 정말 웃기더라. 걸작은 아니더라. '죄와 벌'의 스케치로 보인다. 자전적 독백도 섞여 있다.
시대를 앞서 간 것일까. 대단히 실험적인 소설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인 줄 알았다. 허구와 현실이 교차되고 대놓고 독자한테 말을 건다. 발표 당시 독자들한테 외면당했다. 지금도 그리 환영을 받진 못하리라.
수기 형식 소설이다. "나 자신만을 위하여 쓰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만일 독자들을 대하듯이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단순히 보여 주기 위한 것이고, 그 이유는 그렇게 쓰는 것이 나에게는 더 쉽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나는 주장한다. 그것은 형식이다. 단순히 형식일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결코 독자를 가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메타픽션. 허구의 허구. 현실을 끌어들인 허구다. "'당신은 어떻게…… 마치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녀는 말했고, 무엇인가 조롱하는 듯한 것이 그녀의 목소리에서 다시 울렸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웃겨서 미칠 것 같았다. 소설 텍스트 안에서 스스로 허구임을 밝히면서도 고집스럽게 이 지하 인간은 자기 말을 줄기차게 쏟아낸다.
주인공은 극도로 소심하며 지나치게 솔직하다. 농담과 자조 속에서 속물 비판을 비수처럼 던진다. "우리 시대의 모든 예의 바른 사람은 겁쟁이고 노예여야 한다." "그들에게 직위란 지성과 동등한 것이었다. 열여섯에 그들은 이미 편하게 돈벌 수 있는 직업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싸구려 행복인가 아니면 고상한 고통인가?" 가끔씩 툭툭 던지는 진지한 말이 무섭도록 매력적인 작가 도스토옙스키임을 입증한다.
도스토옙스키는 불행하고 진지한 사람들이 읽는 생명수다. 행복하고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한테는 난해하고 읽기 힘든 고전일 뿐이다. 당신의 삶이 비틀거리고 소외되고 미칠 것만 같을 때 도스토옙스키를 읽어라. 당신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이토록 웃긴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조차 그렇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읽기 #18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줄거리 등장인물 독후감 주제 국내 번역본 비교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줄거리
제목처럼 카라마조프 가문의 아들들 이야기다. 아버지 표도르와 맏아들 드미트리가 재산과 여자 문제로 싸우는데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가 살해된다. 범인은 누구인가? 뻔히 범인으로 보이는 드미트리가 살인자로 밝혀지면 그게 무슨 소설이겠는가. 다른 아들들 중에 한 명이다. 하지만 재판 끝에 드미트리는 유죄 판결을 받는다.
고작 이런 얘기가 명작이라고? 율 브린너 주연의 미국판 영화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봐도 그런 의문이 들 것이다. 소설을 읽어야 왜 그렇게 걸작이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줄거리 혹은 사건 전개 자체만으로는 별 다른 흥미도 감동도 느끼기 어렵다. 게다가 등장인물이 워낙 장황하게 말하는 식이라서 통독을 해내기도 만만치 않다.
도 선생의 소설은 대중적으로 무난하게 누구에게 잘 읽히지는 않는다. 자기 취향에 안 맞으면 아마 평생에 이 작가의 책 한 권도 통독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빠져들면 그의 전작품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왜? 그의 철학적 심리적 인간 탐구 묘사력은 때때로 머리를 도끼로 맞는 것처럼 충격적이다. 특히, 광기에 어린 등장인물의 정신 상태에 감전되면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에 중독된다.
이 소설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2부작이다. 도 선생은 1부만 완성하고 안타깝게도 죽고 말았다. 그래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미완성 작품이다. 작가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려던 것은 2부였다. 주인공이라고 작가가 칭한, 알렉세이가 활약하기로 되어 있었던 2부.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소설의 주인공을 알렉세이라고 하는데, 정작 1부에서는 그다지 비중이 크게 나오지도 않고 사건 줄거리의 핵심 인물도 아니다. 없어도 될 정도다. 결국 드미트리가 주인공으로 보이며, 이반의 논문이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어쩐지 '죄와 벌'이 반복된 느낌이다.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주제
주제를 살펴보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죄와 벌'과 무척 유사하다. '죄와 벌'의 확장판 느낌이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 정교를 참된 그리스도 정신으로 민다. 그리고 로마 카톨릭과 무신론적 사상들을 반박한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그렇게 한다. 정점이 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이 소설의 핵심만 알고 싶다면, 2부 5권 5장 대심문관 에피소드를 읽으면 된다. 독후감 숙제를 내려면 이것만 읽으면 안 되겠지만, 이 소설이 왜 그렇게 유명하며 온갖 사람들이 찬사를 쏟아내는지는 여기에 있으니까.
이반이 얄료샤한테 자신이 대충 어디서 들어서 꾸며낸 서사시라면서 '대심문관'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장에 먹고살 것을 거부하고 자유니 양심이니 하는 것을 따를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는 것이며, 그게 실현될 가능성이 있겠냐는 거다.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인데, 자본주의 오늘날도 이 문제는 여전하다.
사람에게 왜 신이 필요한가? 기독교 옹호론은 논리적으로는 언제나 무신론자의 비판에 패배한다. 이에 도스토예프스키는 바보지만 성인으로 불리는, 그 유로지비를 내세운다. 자신이 가진 돈 전부를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한테 줘 버리는, 가난뱅이. 완전범죄로 들통이 나지 않을, 자신의 살인을 자백하는 살인자를 이야기한다.
사람은, 인간의 영혼은, 삶은 논리로 자 재듯 칼 자르듯 할 수 없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한다."를 택한다. 조시마 장로는 지옥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은 데서 오는 괴로움"이라고 정의한다.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장인물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 : 아버지. 어릿광대 바보짓을 잘하는 호색한이다. 미차,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 : 맏아들. 돈과 여자를 놓고 아버지와 싸운다. 이반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 : 둘째 아들. 무신론자. 알료사,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 : 셋째 아들. 수도사. 스메르자코프 : 사생아. 요리사.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 미차의 약혼녀. 그루센카 : 아버지와 맏아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바로 그 여인.
조시마 장로 : 알료사의 스승.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번역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열린책들 이대우 - 몇 군데 이상함.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민음사 김연경 - 읽기에 무난함. 좋지도 나쁘지도 않음. 카라마조프의 형제 범우사 김학수 - 가장 오래된 번역본. 못 읽어 봤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종이책은 양장본도 아니고 실제본도 아니라서 여러 번 읽기에는 좋지 못하다. 다행히 전자책으로 나와 있다.
김연경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무난하다. 그러니까 아주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다. 여러 번역본을 참고해서 그런 듯 싶다.
어휘 선택이 어색한 데 발견했다. 1권 21쪽 중간 쯤 "전설에 따르면". 전설은 아무래도 아닌데... 그냥 소문이나 들리는 얘기로는, 이 정도의 뜻이다. 혹시나 최근 2018년에 나온 책에서는 교정을 했나 봤는데 그대로 '전설에 따르면'으로 찍혀 있다.
채수동은 한문투가 적으면서 순우리말 구사력을 보여준다. 트릿하다. 살쩍. 감때사납다. 흘게 늦다. 순우리말이 외국어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출판사는 마음에 안 들지만 번역 자체는 좋았다. 추천한다.
하지만 문제가 없다고 할 순 없었다.
동서문화사 월드북 2015년 12월 1일 2판 6쇄로 읽었는데, 오탈자가 있다. 심하게 독서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지만, 있긴 있다. '유로지피, 팔사적.' 문맥으로 쉽게 유로지비, 필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가 보인다. '세째.' 종종 띄어쓰기가 잘못 되었다.
2016년 8월 두 권짜리 세계문학전집 형태로 나왔는데, 양장본이 아니다.
2018년 2월 월드북 시리즈로 두 권 양장본으로 나왔다. 기존 한 권짜리는 절판시켰다.
확인 결과, 오탈자가 여전하다. 세째로 나온다. 그리고 두 권으로 쪼개서 값을 올린 게 미안했던지 앞부분에 컬러 화보를 덧붙였다. 영화 장면과 작가 관련 사진이다.
한 권짜리 PDF 형식 전자책으로 나와 있다.
2018년 4월 30일 문학동네에서 번역본이 나왔다.
반양장을, 나는 싫어한다. 책장이 떨어져나가기 쉽다. 한 번 읽고 마는 책이라면 상관없지만 여러 번 읽을 책은 돈을 더 주고서라고 양장본으로 구입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문학동네에서는 이 책의 양장본을 펴낼 계획이 없다고 한다.
국내 출판사들이 양장본 출간을 꺼리고 있거나 아예 포기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책 판매량이 적어서 손해가 나기 때문이라고.
다행스럽게도 전자책으로 나와 있다. 반양장의 불편함을 생각한다면 전자책으로 구입하는 것이 좋다. 나는 전자책으로 샀다. 하지만 앞부분 읽다가 말았다.
띄어쓰기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 '다름 아닌'을 '다름아닌'으로 표기했다.
김희숙은 '죄와 벌' 번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도 고심해서 우리말로 잘 옮기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문장이 매끄럽다.
그럼에도 김희숙의 문장은 내 취향에는 거슬린다. 가끔씩 살짝살짝 어긋나는 기분이랄까. 신유자. 도망혼.
6권 3장 지옥와 지옥의 불에 관하여, 여기에서 첫단락에 지옥을 정의하는 말이 나온다.
Constance Garnett 영역본 The suffering of being unable to love.
이 영역본처럼 번역한 데는 채수동이고 다른 데는 다들 이상하게 번역했다.
도스토옙스키가 만년에 쓰다가 다 완성시키지 못한 작품이다. '작가로부터'에 이 소설은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적혀 있다. 그는 첫 번째 이야기만 완성한 후, 3개월 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첫 번째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완성작이다. '작가로부터', '전 12장', '에필로그'로 구성했다.
이 소설은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을 둘러싼 여러 가지 본질적인 문제를 다룬다. 신은 있는가, 죄란 무엇인가.
돈과 여자에 욕심이 많고 난폭한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에게는 세 아들이 있다. 전처의 아들인 드미트리(미챠), 후처의 아들인 이반과 알렉세이(알료샤). 정열적이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퇴역 장교 드미트리. 이성주의자이고 무신론자이고 지식인인 이반.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자 신학생인 알렉세이.
표도르는 자유분방한 여인 그루센카와 재산 문제로 맏아들인 드미트리와 자주 싸운다. 드미트리에게는 약혼녀인 카테리나가 있다. 그러나 그는 그루센카를 사랑한다. 그의 약혼녀는 이반이 사랑한다. 아버지 표도르가 살해되고, 그의 돈이 사라진다. 살인범으로 몰린 드미트리는 결코 아버지를 죽일 마음은 있었으나 실제로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유죄 판결을 받는다. 표도르를 죽인 범인은 드미트리가 아니라, 스메르쟈코프다. 스메르쟈코프는 이반에게 범행 사실을 고백하고 자살하고 만다.
전체 흐름으로 볼 때, 드미트리의 양심(아버지를 실제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일 마음을 품었다는 죄책감)이 중심이다.
이 소설의 핵심은 이반이 동생 알렉세이에게 들려주는 "대심문관(大審問官)"이라는 제목의 자작 서사시다. 이 서사시의 내용은 종교재판이 성행하던 시기에 그리스도가 기적을 일으켜 민중의 인기를 끌자 대심문관이 예수를 잡아 심문하는 것이다.
이 심문에서 대심문관은 죄수에게 "위대한 악마가 광야에서 당신과 말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소. 성경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 악마가 당신을 시험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게 사실이오?" 라고 묻는다. 세계와 인류의 미래사를 표현한 세 가지 질문. 하나, 이 황야의 돌을 빵으로 바꾸어라. 둘, 궁전의 정상에서 몸을 던져 보아라. 셋, 악마인 나에게 무릎을 꿇으면 지상의 모든 왕국과 영화를 주리라. 이 세 가지 악마의 제안을 거부한 그리스도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인간은 양심의 자유 같은 무거운 짐을 견딜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항상 자기의 자유와 맞바꾸어 빵을 줄 상대를 찾아 헤매며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바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자유의 무거운 짐에서 해방하고 빵을 주었다. 이제 사람들은 자기의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자유로워지고 기적과 신비와 권위라는 세 개의 힘 위에 지상의 왕국을 구축한 것이다."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보여주는 여러 생각이 흥미롭다. 생각에 몰입하는 독자를 위한 소설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얘기로는, 어느 분이 육이오 전쟁 중에 이 책을 우연히 읽기 시작했다가 피난 가는 것도 잊어 버렸다고 한다. 나는 코피가 나는지를 모르고 책장을 넘기다가 핏방울이 보던 쪽에 뚝뚝 떨어져서야 읽기를 멈췄다.
창립 30주년 기념판 '죄와 벌'은 기존 열린책들 세계문학판 '죄와 벌'보다 글씨를 키웠다. 당연히 쪽수도 늘어났다. 1036쪽. 소설 본문은 936페이지다. 두께가 6.5센티미터다.
하드커버는 아니다. 책 무게는 가벼운 편이다. 들고 읽어도 괜찮지만 약간 무게감은 있다. 두께 때문에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는 곤란하다. 집 안 실내 독서용 혹은 서재 장식용이다. 가지고 다니면서 읽을 사람이라면 두 권으로 나눠진 세계문학판이나 큰글자판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내가 읽어 본 바로는, 들고 읽기에 불편했다. 가격이 싸서, 혹은 합본이라서 이 책을 구입해서 읽어 보려는 사람이 많을 줄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구입이든 독서든.
@ 죄와 벌 간단 감상
전반적으로는 기독교 색채가 진하다. 하지만 광기 어린 캐릭터의 몰아치는 독백과 독자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붙이는 필력의 힘에 압도되면, 그딴 거 다 잊게 한다.
이 소설책을 젊은 날의 추억으로 기억하는 것은, 주인공 로쟈의 가난과 자존심 때문이리라. 세상의 불의에 분노하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야망은 다 어디론가 사라졌단 말인가.
도 선생의 문체는 장광설과 횡설수설에 형이상학으로까지 날아오르면 읽기 까다롭다. 심리 묘사도 어떤 때 보면 쓸데없는 것이거나 이미 했던 말을 반복한다.
문체 면에서 '미성년'은 의외였다. 대체로 편하게 읽히는 일인칭 주인공 회고다. 밑도 끝도 없는 심리 분석이나 묘사가 거의 없다. 여전히 말은 참 많이 하는 편이고 여전히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장광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특징이다. 어쩔 수 없다. 이게 싫으면 읽지 않을 수밖에.
귀족의 서자로 태어난 사람이 자신의 청년시절을 회고한다. 별다른 문학적 재능이 없는 사람이 자서전을 쓰는 식으로 나온다. 실제로는 아니면서...
'미성년'은 '악령'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사이에 있는 작품답게 두 소설의 특징이 모두 보인다.
'악령'처럼 급진사상가 집단이 나오고 '이념' 논쟁을 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신 존재 논쟁의 씨앗을 볼 수 있다.
아버지 '베르실로프'의 정체를 밝히는 작업이 주된 흐름이다. 더불어, 아르까지 자신이 자신이 세운 이념에 따라 살겠다는 객기가 함께 진행된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부터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람을, 삶을, 사회를 어떤 이념이나 합리적 계획(공리주의든 공산주의든 뭐든)으로 개선하는(실제로는 억압하는) 것에 대해서 꾸준히 비판적 시각을 유지한다.
소설 '미성년'은 이념형 인간을 그리면서 얼마나 미숙한지 보여준다. 미숙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분위기다.
주인공의 이념이라는 게 거창하고 어렵고 고상한 것이 아니라, 부자되는 거다. 갑부가 되는 것이다. 부자되는 방법이라는 게 사람들과의 교재를 피하고 소비를 줄이고 악착같이 저축하는 것이다. 돈은 자유다. 권력이다. 남자를 미남으로 만들어 준다. 왕이 되게 한다.
아르까지는 도박을 한다. 그리고 돈을 빌린다. 예전 소설 '노름꾼'처럼 이래저래 돈과 인간관계가 엮여 있다. 상속 문제와 혈연, 사랑, 채권/채무 관계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다른 소설에서 했던 얘기를 반복하고 있다, 실망스럽게도.
핵심 이야기는 간단하다. 옷 속에 숨긴 편지 한 통의 파국. 이게 전부다. 곁가지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별 맥락도 없이 끼어 있다. 가끔 이런 삽화적 이야기가 대단히 인상적일 때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5대 장편 중에 유독 '미성년'을 사람들이 별로라는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 이런 식의 설정, 그러니까 유산을 둘러싼 친인척 간의 대립과 음모와 사랑과 화해 이야기는 이전에 썼던 소설 '아저씨의 꿈'과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에서 그리 좋은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미성년'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둘러 결말을 짓는 모습은 정말 전업작가 맞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결론. 도스토예프스키 광팬이 아니라면 이 소설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이로써,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읽기가 끝났다. 한 작가의 전 작품을 발표 순으로 모조리 읽는, 이른바 전작주의 독서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제대로 읽혀진 때부터 시작되었다. 단지 나이를 많이 먹어서 그리된 것 같진 않은데, 어쨌거나 이십대 시절에는 이해도 안 되고 통독 자체도 안 되고 재미없는 작가가 도스토예프스키였다.
전자책으로 있었다. 하지만 안 읽혔다. 종이책으로 새책으로 구입해서 책장에 꽂아놓고 작정을 하고 독파해 나아갔다. 의무와 압박을 스스로 가해서 읽어냈다.
다시 읽고 싶은, 또 읽고 싶은, 혹은 계속 읽고 싶은 소설은 아니었다. 인상적인, 한 번쯤 빠질 만한 작가는 맞다.
소설 '노름꾼'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급하게 빨리 써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27일 만에 썼다고 하는데, 이게 빨리 써낸 것인지는 기준 나름이겠다. 구상은 예전부터 했었고 실제 집필만 그렇게 걸렸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도 선생은 전업작가로 글을 써서 먹고살아야 했다. 딱히 돈 걱정 없이 태평하게 심심풀이 취미로 소설을 써도 되는 톨 모 씨와는 작업 환경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당장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글을 최대한 빨리 많이 써야했다. 게다가 도박으로 빚에 쪼들리는 신세라면, 더욱 더 그러했다.
실제로 도박 중독에 걸렸던 소설가의 체험 수기 같은 소설 '노름꾼'은 제목처럼 딱 그만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수기 회고 형식이다. 도박으로 돈을 왕창 벌거나 졸딱 망해 버린 사람 이야기다. 별 다른 노력 없이 큰돈을 버는 도박. 그렇게 번 돈은 아주 쉽게 써버린다.
"이제 당신의 꿈과 절실한 희망이란 고작 홀수와 짝수, 검은색과 빨간색 그리고 가운데 열두 숫자들 같은 것들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렸어요."(253쪽)
이 소설을 쓴 후에도 도스토예프스키는 한동안 도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생 자체가 도박 같았던 사람이었다. 처음 쓴 소설로 문학 스타가 되고, 모임에서 편지 한 통 읽었다고 시베리아 감옥 유형 생활을 하게 되고, 도박 중독에 빠지고, 간질 증세로 군을 제대한다. 마지막 작품이 최고의 걸작으로 남는다.
어쩌면, 저술업도 결혼도 사업도 그 속성상 도박 비슷하다. 대박이 날 수도 쪽박이 날 수도 있다. 대개는 대박 가능성이 무척 적다. 소설 쓰기도, 결혼도, 사어도 결국 돈 많이 벌려고 하는 사람이 종종 있지 않은가. 노력 많이 안 하고 돈 벌려는 심리다.
이 다음 작품 '죄와 벌'도 그 살인이 일종의 도박 심리다. 가난에 쪼들린 청년이 단 한 번의 살인으로 현재의 궁핍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니까.
휴머니즘 운운하지만 개코도 실제로 하는 것은 없는 고위 관리가 우연히 하급 관리의 결혼식에 참석에서 온갖 추태를 부리고 민폐를 끼친다는 이야기다.
오늘날과 거의 똑같다. 직장 상사는 부하들한테 인간적이고 친구처럼 대하려고 하지만, 부하 입장에서는 그러는 게 피곤할 뿐이다. 부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지도 않고 페북 친구 신청하고 어서 승인하라고 닥달하고, 쉬는 날 카톡 보내서 업무 지시하고, 초대도 안 했는데 동료 직원들끼리 놀고 있는데 같이 놀자고 들이닥치고.
코미디 풍자소설인데, 도 선생은 이 장르에서는 별 다른 성과를 못 거둔다. 그래도 계속 시도하는 것은 보면 희극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듯. '아저씨의 꿈'과 '스쩨빠니꼬브 마을 사람들'처럼 결혼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리고 웃기는 사람들이 나온다.
'악몽 같은 이야기', '아저씨의 꿈', '스쩨빤치꼬보 마음 사람들' 모두 말장난과 우스꽝스러운 일과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문제는 그게 전부고 이야기 자체는 대단히 허약하다는 점이다.
2. 여름 인상에 대한 겨울 메모
유럽 여행기다. 그런데 당시 유럽 문명 비판이 워낙 많이 차지해서 여행기라기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62년 6월 7일부터 처음으로 외국 여행을 시작했다. 베를린, 드레스덴, 프랑크푸르트, 퀼른, 파리, 런던, 스위스, 이탈리아 등.
맨 앞 부분에 나오는 스파이 이야기, 외국인 감시 이야기는 소설 같다.
당시에 아내 구타는 흔했던 모양이다. "노동자들이나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결혼식은 거의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이유는 교회 의식에 따라 결혼식을 올리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결혼을 한 남편들 중 많은 수가 자신의 아내를 무섭게 구타하고, 죽어라고 때려서 불구로 만든다."(162쪽)
당시 유럽의 여러 사상을 자근자근 씹어준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박애주의, 공산주의.
자유, 평등, 박애라는 허울 좋은 말 뒤에 숨은 실상을 하나씩 까댄다. "단지 웅변이 있을 뿐 그 이상의 아무 일도 없으며, 말, 말, 말들만이 있을 뿐, 이 말들로부터 결정적인 아무 결론도 나오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그들은 매우 잘 알고 있다."(189쪽)
부르주아 비판이 가장 거세게 나온다. "당신들에게 돈만 있으면 아무리 놀라운 일이라도 허용이 된다."(168쪽) 오늘이라고 별다른가. 하는 짓은 똑같다. "부르주아는 이상한 사람들이다. 돈이야말로 최고의 미덕이고 인간의 의무라고 솔직히 선언하면서도 가장 고귀한 가문인 것처럼 행동하기를 지독히도 좋아한다."(168쪽)
3. 악어
도스토예프스키는 당시 진보급진사상가들과 불화가 심했다.
소설 '악어'는 급진 사상가 체르니셰프스키를 대놓고 풍자하고 공격한다. 노골적이다. 사람이 악어한테 산 채로 잡아 먹히고 그 안에서 산다. 그리고 이어지는 헛소리와 풍자와 우스개.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키는 일종의 공상적 사회주의자였다. 미래의 완벽한 공동체 유토피아를 설계하고 급진적 혁명으로 이를 실현하고자 했다. 이성적 합리적 인간관을 바탕으로 이상주의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죠.
도 선생은 체르니셰프스키에 대한 조롱을 이 작품으로 멈추지 않고 '죄와 벌'에서도 또 한다. 하지만 '악어'처럼 대놓고 조악하게 하진 않는다.
연재하던 잡지가 폐간되면서, 이 허접한 소설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풍자 유머 소설로는 영 실력이 없는 편이다. 간단한 농담이나 우스개 정도는 괜찮지만.
흥미롭게도 소설가가 화자다. 1인칭 주인공 시점. 소설에서 말하는 사람이 작가의 분신이다. 하는 말 하나하나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소설 창작 관련 진술이 그대로 나온다.
"좁은 방에선 생각조차 답답해진다."(11쪽) "내겐 작품을 직접 쓸 때보다 그것을 구상하고 어떻게 그 구상을 글로 옮길까를 상상할 때가 언제나 더 즐거웠던 것이다. 사실 이것은 게으름 탓이 아니다."(12쪽)
주인공 바냐는 첫 소설로 나름 유명한 소설가로 나온다. 도 선생 본인 얘기다. 소설 쓰는 작가라는 존재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는지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당시 러시아에서 문학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꽤나 높게 본 모양이다.
이전 작품 '아저씨의 꿈'과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에서는 코미디를 추구했으나 실패했고 그래서 이번 '상처받은 사람들'은 비극을 써 보기로 한 것 같다. 계속 첫 히트작 '가난한 사람들'의 명성을 되찾고 하자는 노력이 계속된다. "언젠가는 무엇이든지 대단하고 훌륭한 것을 써낼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28쪽)
'상처받은 사람들'은 어정쩡한 소설이다. 연애소설도 아니고 멜로도 아니고 비극이라고 하기도 뭣하다.
삼각관계 연애소설이긴 한데, 도 선생의 소설 분위기는 연애소설이나 유머소설과는 안 어울린다. 열에 들뜬 캐릭터, 모욕당하는 인물, 모욕하는 사람, 돈에 찌들리는 사람, 돈과 권력의 힘을 휘둘러대는 년놈들, 너무 착해서 혹은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 이러니, 무슨 달콤한 연애소설이 나오겠는가.
작가가 의도하기로는 넬리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설정해서 이야기를 완성하고자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넬리는 이야기의 곁가지다. "나는 내가 줄거리를 벗어나고 있음을 느낀다."(451쪽) 중심은 여자 둘, 남자 둘 서로 꼬인 삼각관계 두 개다.
넬리의 이야기는, 정확히는 넬리의 어머니 이야기는 아흐메네프의 딸 나따샤 이야기와 겹친다.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집을 나가 남자랑 살다가 결국에는 버림받는다. 아버지는 딸을 버린 자식으로, 원수로 여긴다.
후기 걸작의 시작 '죄와 벌'의 밑그림을 보는 듯했다. 자의식과 선함이 지극한 캐릭터가 정신병 비슷한 것에 걸리고 의사가 와서 치료하고 정신을 잃었다고 깨어나고 친한 친구가 곁에서 도와주고. 아직 '죄와 벌' 수준의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후반기 작품의 분위기를 예감할 수 있다.
발꼬프스끼 공작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표도르의 전신이다. 음욕과 악의 화신이면서 때때로 광대짓을 한다. 다른 점이라면, 표도르는 대놓고 하지만 발꼬프스끼 공작은 음밀하게 하고 술에 취했을 때만 정체를 드러낸다.
주의사항. 열린책들에서 펴낸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대개 맨 앞에 등장인물 이름과 친인척관계 및 직업을 적어 놓는다. 대개는 이 등장인물 소개가 기나긴 소설을 읽을 때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번 소설 '상처받은 사람들'에서는 결정적인 스포일러다. 따라서 되도록이면 읽지 말기 바란다.
멜로드라마 설정이다. 결혼을 반대하는 두 집안을 도망쳐 나와 사는 두 연인이다. 우연,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그럼에도 도스토예프스키답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넬리가 고백하는 부분은 아마도 첫 성공작 '가난한 사람들'과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썼던 것 같다.
이 소설의 본래 제목은 '멸시당하고 모욕당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은 그 제목에 충실하게 끝맺는다. 비열한 인간은 끝까지 비열하고, 모욕당한 사람은 끝까지 모욕당하면서도 자존심을 지키려고 애쓴다.
도스토예프스키 하면 후반기 걸작으로 잘 알려진 탓에 뭔가 다 철학적이고 기독교적인 사색으로 읽기 어려운 소설만 썼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감옥에서 나온 직후 쓴 소설은 의외로 코미디다. 가볍게 그냥 웃자고 쓴 거다.
'스뻬빤치코보 마을 사람들'은 작가가 독자를 웃기려고 작정을 하고 인물들을 모조리 과장해서 만들었다. 나는 별로 그렇게 크게 웃기진 않았다. 사람마다 웃음의 취향이 다르긴 하지.
왜 그런가 곰곰 생각해 보니, 모욕하고 모욕당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것 자체가 시원하게 웃지 못하게 하는, 심리적 방해물이 된다. 분명히 캐릭터 자체와 그 등장인물이 하는 짓은 웃긴데도 마음껏 웃기가 좀처럼 되지 않았다. 재미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재미있다고 하긴 뭣하다.
아마도 다들 초반을 간신히 읽고서 이 소설 통독을 포기할 것 같다. 작가가 워낙 장황한 문체를 구사하는데다가 등장인물이 워낙 많아서 읽기 부담스럽다. 게다가 딱히 사건이랄 것도 별로 없으니 지루하지.
하지만 1부 후반을 넘기면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2부부터는 빠르게 읽혀진다. 그러니까 조금만 참고 1부를 읽어내면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 부디 읽다가 책장을 덮지 마시라.
이 소설의 재미는 바보 캐릭터들의 엉뚱한 말과 황당한 행동(작중에서 정신병원 같다고 할 정도다. 그냥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괴상하다.)보다는 이중 삼중 사겹으로 얽힌 애정 사랑 결혼 잣대기와 놀라운 반전에 있다. 이 사건이 2부부터 본격적으로 나온다.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전체 분량의 삼 분의 이를 넘긴 후니까.
도 선생은 희극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소설에 양념으로 우스개를 넣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웃음을 최우선으로 쓴 소설은 어딘지 모르게 삐걱거린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코미디와는 상극인가.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은 '아저씨의 꿈'보다는 캐릭터가 더 많고 웃긴 말과 행동도 더욱 추가되었다. 워낙 웃기는 캐릭터가 많아서 바보들의 합창이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 우스개의 연속 속에서 소설의 갈등이 모욕을 하고 모욕을 받는 것이라서, 이를 인식하면 긴장하게 되고 진지하게 사태의 추이를 보고자 하게 된다.
포마 포미치는 쥐뿔도 없는 사람인데도 퇴역 대령 예고르 집안을 꽉 잡고서 폭군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나치게 착한 예고르 아저씨는 포마를 숭배한다. 이 관계는 이 과정이 그다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어차피 그 관계의 시작부터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이고, 캐릭터 속성으로 그리 되었다는 식이니까 넘어가자.
포마 포미치는 특이한 캐릭터다. 바보 성자 같지만 결국은 사기꾼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열광적으로 선을 추구한다. 자존심 끝판왕이면서 끝없이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면서 다른 사람들을 모욕한다.
갈등 해소는 극적이다. 이런 반전을 예상한 독자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온갖 갈등과 고민 속에서 괴로워들 하는 사람들을 포마 포미치가 한 방에 해결해 버린다.
풍자 희극을 표명한 소설이다. 소설 내에서 아예 "이건 코미디로군요."(216쪽) 하고 말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행동은 익살맞게 나온다.
산송장이라 할 수 있는 늙은 공작의 모습 묘사는 압권이다. 재산이 많고 신분이 높으나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온갖 것을 혼동해서 말한다. 거의 모든 것들을 가짜로 치장하고 다닌다. 머리도 가짜고 수염도 가짜고 심지어 눈도 의안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 공작한테 자신의 딸을 결혼시켜서 한몫 잡으려고 음모를 꾸미는 어머니. 돈 많고 명 짧은 남자한테 시집을 가서 몇 년 후 미망인이 되면 신분(공작 부인) 상승과 재산 획득(토지와 농노들)을 동시에 할 수 있으며 그 다음에는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딸을 설득한다.
이 음모를 엿들은 경쟁자(젊은 과부)가 가만 둘 리 없다. 방해 공작을 전개한다. 이 늙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공작을 친척 아저씨로 두고 있던 청년은 결정적인 반격을 가하는데... 제목이 결정적 힌트다.
도 선생은 이 소설 '아저씨의 꿈'으로 코미디를 쓸 수 있음을 입증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동안 추락했던 인기도 끌어 올리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웃긴가? 그다지. 풍자소설 도전은 실패한 듯. 유머는 사람마다 취향이겠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표도르가 자신을 광대라고 자처하면서 하는 말과 행동은 진짜 웃겼다.
코미디의 실패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에서 모욕감을 자주 다루기 때문인 듯 보인다. 모욕하는 사람과 그 모욕을 당하는 사람이 그의 소설 대부분에 등장하는데, 풍자소설을 의도한 '아저씨의 꿈'에서조차 나온다. 그러지 않아도 딱히 웃기지 않은 판국에 웃음의 크기를 더 줄여버리는 꼴이 되었다. 더운물(모욕감)과 찬물(웃음)이 뒤섞인 모양새다.
희극이라면 13장에서 이야기를 끝냈어야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도 선생은 14장부터 결혼 성사가 안 된 이후 이야기를 한다. 모욕감에 사로잡혀 꾸몄던 음모를 자백해버린다. 울부짖음이라니. 코미디는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그런데 비극으로 치닫는다. 죽음, 죽음.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3년 후, 공작의 친척이었던 청년은 우연히 시장 부인의 생일 축하 무도회에서 그 모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 반전이자 독자가 쓴웃음을 짓게 한다. 뒤틀린 코미디였다!
'아저씨의 꿈'은 전반적인 투가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때까지는 침묵을 지키고 있던 한 인물이 무대에 등장했다. 그러자 무대의 성격이 금세 변화되었다." 220쪽.
무대 공연을 위한 개작을 제안한 편지에, 작가 본인은 이렇게 답장한다. "이 작품은 가벼운 보드빌로 만들 수 있겠지만, 희극을 만들기에는 내용이 부족하며, 이 중편소설에서 유일하게 진지한 인물인 공작에게서도 내용은 부족합니다."(284쪽) 도 선생의 말로서는, 이 소설 집필 당시에 검열에 주눅이 들어서 온건하게 쓴 것이라고 한다.
도 선생은 이 "형편없는"(도스토예프스키의 자평이다.)" 소설부터 신문 사회 기사와 유형 생활에서 본 범죄자들을 소설에서 가져다 쓰기 시작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2부로 계획했으나 1부만 쓰고 만 것처럼,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도 그런 형국이 되었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그려놓고 정작 핵심이나 본격적인 전개인 주인공의 활약 시기는 이야기하지 않은 모양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미완성이 된 이유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사망했기 때문이었고,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를 완성하지 못한 이유는 창작 도중에 체포로 시베리아 유형 감옥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본래는 3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를 뭉쳐서 여러 개의 장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번역문에서도 독립된 세 개의 이야기가 아닌 세 가지 이야기가 장으로 이어진 것으로 나온다.
아마도 전체 큰 틀은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의 예술가로서의 삶을 그리고자 했던 것 같다. 이야기는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공부하는 시긴에서 멈춰 버렸지만.
도 선생의 소설에서 예술가를 진지하게 그려내는 작품이라, 흥미롭다. 본인이 문학 예술가로서의 하소연과 성찰을 보여준다. 비록 소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에서는 소설가 아니라 음악가를 다루고 있지만, 예술가로서의 고민과 어려움은 거의 똑같이 나온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로 일약 성공한 예술가가 되었지만, 이후 작품은 별다른 호응도 평가도 못 받게 되었다. 연예인으로 치자면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다가 이제는 사람들이 별로 주목해 주지 않는 것이었다.
여자 주인공 네또츠까는 1인칭 주인공 시점 화자로 자신의 계부 예피모프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예피모프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음악가 바이올린 연주자였는데, 지나친 시기심과 자기 재능에 대한 광기적 집착으로 몰락하는 인물이다.
예술가 예피모프를 비극적 낭만주의로 그려서 결말을 맺어 놓았지만, 이야기 과정 중에서 하는 여러 말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입에서 나온 고백이라 해도 좋을 만큼 현실적이다. 열린책들 번역본의 주석에 있는, 작가가 쓴 편지 글을 읽어 보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괴팍한 예술가는 질투에 사로잡혀 재능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자존심만 지켜려다가 현실의 가난과 고독에 매몰되어 버린다. 그런 그에게 위로하듯 충고하는, 에피모프의 재능을 아는 B가 이런 말을 한다. "아직은 아무도 자네를 필요로 하지 않고 아무도 자네를 알고 싶어하지 않네. 세상이란 그런 거야. 하지만 그다려 보게나, 사람들이 자네의 천부적 재능을 알게 될 날이 올 걸세." 27쪽
자기 성찰 같은 인상을 주는 대목. "아마도 재능을 잃어버린 이 불행한 사람은 모든 실패, 모든 불행을 전가할 외부적인 이유를 찾는 것 같았다." 33쪽
3장까지는 이 불운한, 재능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 이야기다.
이후 4장부터는 고아가 된 네또츠까가 공작의 집에서 키워지면서 만나게 된 공작의 딸 까쨔와의 사랑 이야기다.
도 선생 소설의 캐릭터는 대개 광기에 어린 인물이다. 예피모프는 자신의 예술적 광기에 파멸되는 인물인데, 그런 아버지와 생활했었던 네또츠까는 그와 비슷한 열병 같은 정신적 광기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두 소녀의 사랑은 평범한 우정의 수준이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미쳐버린 광란의 수준이다.
이 사랑은 이별로 끝을 맺고 6장부터는 새로운 집으로 입양되면서 겪게 된 일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네또츠까는 양어머니와는 선생님이자 학우열에 불파는 동지로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야기의 초점은 양어머니와 양아버지 사이의 첨예하고 갈등적 사랑이다.
주인공 네또츠까가 우연히 서재의 책에서 연애편지 한 통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에 적힌 글에서 양어머니한테 격정적 사랑을 고백하고 이별한 남자 S. O를 알게 된다.
결국 이야기는 이 편지가 양아버지한테 발각됨으로써 파국을 맞는다. 그러면서 양아버지 보좌를 하던 오브로프가 네또츠까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더는 진행되지 못한다.
이 남자 오브로프와 네또츠까의 사랑이 전개되고 헤어졌던 까쟈와의 만남이 있을 것이고 네또츠까의 음악 예술가로서의 활동과 활약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소설을 미완성으로 남겨둔다.
도 선생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욕당한 자존심'은 이 소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에도 나온다. 상처받은 자존심, 수치심, 모욕감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주된 감정이다. 그리고 그의 글에 중독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글을 읽고 있으면 감정적 고양 상태에 이르게 된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연극 같은 분위기다. 특정 장소로 한정된 곳에서 열심히 코미디 같은 대사를 주고받는다.
🔖 약한 마음
자신의 행복에 정신이 미친 사람 이야기다. 주인공 캐릭터 자체가 당혹스럽다. 행복에 미쳤다는 설정이니 이게 이해가 되면 내가 미친 거겠지.
결국 정신병원에 갇힌다는 식의 결말은 ‘분신‘과 같지만 결말은 대단히 씁쓸하다. 우정도 사랑도 정신병에 걸리는 바람에 잃고 만다.
🔖 정직한 도둑
술주정뱅이와 외투 이야기는 당시 러시아 문학에서 식상한 소재다. 이 단편에서는 그저그랬으나 ‘죄와 벌‘에서는 이 소재로 끝판왕 솜씨를 보여준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 솜씨를 갈고닦았는지 이 초기 단편을 읽으면 알 수 있다.
🔖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아주 짧은 소설이다. 사랑이 아니라 돈 때문에 결혼한다는 이야기는 도 선생 소설에 계속 나온다. 이 소설에서는 강렬한 장면으로 이 상황의 비극 혹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희극을 보여준다. 대단한 작품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돈이냐 사랑이냐의 갈등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사랑으로 결혼한다는 관념이 재배적인 것은 아니다. 경제적 결합으로 보는 것이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다.
🔖 백야
1인칭 남자 주인공 시점으로 쓴, 연애소설이다. 제목 백야에서 낭만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사랑 이야기라고 해서 너무 기대 수준을 높이진 말기 바란다. 도 선생 스타일이라서, 절대로 제인 오스틴 소설이 아니니까.
신문 칼럼 연재 '뻬째르부르그 연대기'에서 썼던 몽상가를 이 소설 '백야'에서 구체적인 캐릭터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 몽상가 유형은 후반 걸작들에서 이어서 나온다. '죄와 벌'의 주인공 로쟈가 바로 이 고독한 몽상가다. 외부 접촉은 거의 안 하고 틀어박혀서 이런저런 공상만 하고 지낸다.
이야기 틀거리는 '가난한 사람들'과 대단히 흡사하다. 남자쪽에서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그다지 남자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오빠 혹은 그냥 친구로만 여긴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옛사랑이 있다. 나스쩬까가 옛사랑이 되돌아왔다고 그리로 가는 모습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그루셴카와 닮았다. 어장관리 연애랄까. 옛사랑한테 가고서도
남자 주인공의 짝사랑이 안타깝다. 허기야 몽상가의 사랑이란 한여름의 꿈 같은 것 아닌가. 현실적인 사랑이 아니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여자 주인공 나스쩬까가 스스로 자기 얘기를 하는 대목이 짤막하게나마 있는데, 이는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의 1인칭 여자 주인공 화자 소설로 이어진다.
🔖 꼬마 영웅
제목처럼 소년이 화자로 나오는 소설이다. 대단히 로맨틱한 소설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륜이다.
소년이 M부인을 사랑하는데, M부인은 N청년과 서로 사랑하는 듯 보인다. 소년은 M부인을 위해 그 불륜의 사랑을 지켜주는 영웅적 행동을 한다. 한 번은 사나운 말 타기였고 다른 하나는 M부인이 분실해서 속상해 하던 편지를 건네주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답게 주인공 소년의 열정적 감정이 폭풍처럼 그려져 있다. 게다가 서정적인 아름다움마저 느껴지며 이토록 말랑말랑한 낭만주의 분위기라니. 도 선생의 작품 중에 예외적인 편이다.
이런 소설을 감옥 생활 중에, 그것도 사형을 받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구상하고 써냈다고 한다. 이런 순결한 사랑 이야기를, 최악의 현실에서 쓰다니. 도스토예프스키는 정말 괴물 같은 작가라 할밖에. 어쩌면 도 선생의 상상력은 현실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던 듯하다.
창작 초반기에는 이렇게 순수한 작품을 쓰지만 후반기 작품에는 사회 비판에 철학에 신학에 신비주의에 뭐에 갖가지를 용광로처럼 끓게 한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명한 소설 '죄와 벌'을 읽었는지 안 않았는지 테스트해 보기에 좋은 질문 세 가지를 골라 봤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실제로 책을 읽지 않고 그저 짐작으로 아는 것인데 잘못된 것들을 나열한 것이다.
1. 도스토예프키의 '죄와 벌'은 죄의식에 관한 소설이다. X
제목 때문에 그렇게 착각할 수 있다. 대충은 맞다고 할 수 있으나 정확히는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주인공 로쟈는 소설이 끝나는 마당에도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 내내 주인공이 괴로워 하는 것은 죄의식이 아니라 양심, 혹은 불안, 또는 공포감 때문이다. 정확히는 고립감에 힘들어한다.
2. 주인공은 노파를 살해한다. X
간략하게 요약한 줄거리에는 그렇게 나오기 때문에, 대개들 이것이 맞다고 여긴다. 주인공 청년 로쟈가 죽인 사람은 그 노파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다. 노파와, 그 노파의 이복동생. 이렇게 두 명이다.
3. 주인공은 망치로 전당포 노파를 죽였다. X
'죄와 벌'에 나오는 살인 무기를 망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망치가 아니라 도끼다.
누군가 도스토예프키의 '죄와 벌'을 읽었다고 하면 물어 보라.
1. 주인공이 뭘로 노파를 죽였어?
안 읽었다면 망치라고 대답할 거다. 어디서 자세한 줄거리를 읽었다면 도끼라고 말할 수도 있다.
2. 주인공이 누굴 죽였어?
안 읽었다면 노파라고만 대답할 것이다. 역시, 어디서 자세한 줄거리를 알아냈다면 노파와 그 이복여동생이라고 답할 수 있다.
3. 주인공이 죄의식으로 괴로워 하지?
안 읽었으면 곧장 "응, 그래." 하고 대답할 것이다. 읽었다면 대답을 곧장 못하고서 "죄의식 때문만은 아니고 그게 좀 복잡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명심할 것이 있다. 책을 안 읽은 사람이 검색해서 이 글을 읽고서 위 세 가지 대답을 해낼 수도 있으니, 여전히 상대가 '죄와 벌'을 읽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는 꼴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