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를 향하여
애거서 크리스티
황금가지 2013년

배틀 총경이 나오는 소설은 읽다가 포기했었다. 이제서야 다시 챙겨서 읽는다.

이번에 '0시를 향하여'를 완독하면서 예전에 읽다가 포기했던 것이 기억났다. 내가 참을성이 정말 없었던 모양이다. 초반에 본격적으로 사건이 시작되지 않고 그다지 관련이 없는 여러 사건과 인물들이 나열된다.

자살하려다 실패한 남자, 자신이 한 도둑질이 아닌데 자신이 했다고 자백한 소녀, 음모를 꾸미고 있는 누군가. 아무리 봐도 이 세 가지 조각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리라고 예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인내심이 금방 바닥 나고 더 읽기를 포기했었다.

눈에 잘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흔해 빠진 남녀 삼각관계로 짐작하고 사건을 풀려고 했으니, 당연히 이번에도 어김없이 당했다. 그렇게 당하라고 이야기를 썼으니까 그렇게 읽는 것이 맞다.

범인이 잡혀서 이제 끝났네 했더니 읽을 분량이 아직도 남았고 이야기가 계속 진행된다. 뒷이야기인데, 이 부분에서 그만 읽을까 싶었으나 다 읽으니 상큼한 디저트 같은 재미를 맛보았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여기에 후일담의 반전까지 있다.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역시 애 여사님이다.

나처럼 초반과 후반에 읽기를 포기하려는 독자가 있다면 조금만 참고 더 읽어나아가라. 꿀 같은 재미가 곰처럼 우직하게 기다린다.

황금가지 2017년 1판 5쇄를 읽었다. 띄어쓰기 틀린 데 한 곳 봤다. 오탈자는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들 중에 유독 인기가 높은 것은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다른 점이 있다. '0시를 향하여'는 기존 추리소설과 달리 살인 범죄가 나중에야 일어난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세 조각(살인 음모자, 하지도 않은 범죄를 인정하는 소녀, 자살 실패자)이 맨 앞에 나오고 끝에서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여기서 재미가 폭발한다.

초반에 지루해서 읽기를 포기할 수 있다.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부분부터는 흥미롭고 그래서 끝까지 다 읽게 된다.

푸아로가 나오지 않지만 배틀 총경이 푸아로를 언급하고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처럼 결정적 증거를 찾아낸다.

범인의 알리바이를 깨야 하는데... 트릭은 아예 생각조차 안 하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을 뒤집는 식이었다. '시태퍼드 미스터리 | 헤이즐무어 살인사건'처럼.

2025.03.29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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