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
Tess of the d'Urbervilles (1891)
토머스 하디 | 김문숙 | 열린책들 | 2011
열린책들 세계문학 184 185 상 하 두 권

영화로 드라마로 접했지만 원작소설은 읽은 적이 없었다. 뚱뚱한 책이라서 그랬을 것이고 옛날 소설이라 그랬을 것이다. 읽기 쉽지 않을 거라고 책을 펴 보기 전에 판단했었다.
막상 읽어 보니 읽을 만했다. 잘 읽혀서 놀랐다. 작가가 글을 잘 썼고 이야기를 잘한다. 필력을 키우고 싶다면 고전을 읽어야 한다. 한참 옛날에 출판된 소설이 아직까지도 인기를 끌며 계속 읽히고 있다면 읽어서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궁금하지 않은가. 도대체 이 소설은 왜 어떻게 이렇게 계속 찍어대고 있는가. 우리나라 번역본은 왜 이렇게 많이 있는가.
영상물에 원작과 다른 뭔가가 있을 거라 우려할 필요가 없으며, 원작 소설에서도 영상물에서 접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 거라 짐작할 필요가 없었다. 1998년 텔레비전 영화 테스는 거의 원작과 똑같았다.
영화든 드라마든 출연한 여자 배우의 외모에 정신이 팔려서,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했다. 원작에서도 주인공 테스는 외모가 빼어난 것으로 나오긴 하지만 글이라서 추상적이고 상상의 여지가 많다. 문학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상은 직접적이라서 상상할 여유를 안 준다. 이래서 문학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들 애써 원작 영화를 소설로 쓴 책을 읽는 것이다.
특히, 1998년 텔레비전 영화 테스에 나온 배우 저스틴 와델의 외모는 내게 충격이었다. 그래서 테스는 작가 하디가 아니라 배우 와델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영상은 소설의 세세함과 정확함을 못 따라잡는다. 와델의 아름다움은 소설을 넘어 버렸지만. 소설은 탄탄하고 견고했다. 허술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
1891년 출간 소설이 오늘날까지 읽히는 이유는 드라마 때문이 아니었다.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케케묵은 것이라 예상했던 내가 잘못이었다.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를까 싶다. 인물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운명은 경제적 문제 때문이었다. 그놈의 사랑 때문에가 아니었다. 먹고사는 것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했던 것이다.
집안의 경제적 주요 자원이었던 말이 사고로 죽으면서, 주인공은 먹고살기 위해 그런 선택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소설 속 사회는 농업에서 산업으로, 계급에서 부로 바뀌는 중이었고 주인공 테스는 그 변화에서 사회적 약자로 당하고 소외된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정신적으로 고귀하다고 해도, 매몰찬 사회의 폭력에 당하고 만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이다.
소설은 그 당시 풍속을 '정확히' 그려냈다. 작가의 성실한 성품이 느껴질 정도다. 대개들 별다른 관심이 없겠지만. 그래서 대개들 건너뛰어 읽겠지만.
비극으로 치닫지만, 어쨌거나 연애물이다. 이 작가 연애 도사라고 느껴질 만한 대목이 있다. 여성 독자의 압도적 사랑을 받고 있는 소설이다. 남편한테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달라고 한 이도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영화로 만들어 아내한테 바쳤다.
여자가 주체적으로 사랑을 한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는 결혼을 거부하며, 사랑하는 남자한테는 결혼 전에 속이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진정한 사랑과 단순히 성적으로 끌리는 것을 철저하게 구별해서 인식한다. 이 때문에 특별한 캐릭터로 남는다.
테스는 순수하고 당당한 사랑을 하고 싶었으나 운명은 그런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고 끝내 불운에 처해 세상을 떠난다.
두 남자 캐릭터는 황당하다. 뭐 이런 인간이 있나 싶다. 위선과 교만. 현실에서 더 짜증나는 남자도 많긴 하지. 어쩌라고, 이것들아. 갑갑하다, 두 남자. 억울하다, 여 주인공.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뭐냐, 그렇게 갑자기. 막장도 그런 막장이 없지.
테스는 와델의 미모로 기억하련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처럼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울한 이야기는 싫다.
202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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