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만 읽어보세요. 전쟁의 역사를 제대로 다룬 책을 보기가 무척 힘들다는 사실과 지금까지의 전쟁 역사를 개괄해서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읽을 마음이 생기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자료 사진과 그림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아, 물론 칼라입니다. 무기의 발달사도 보실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몽고메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죠. 2차 세계 대전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지휘했던 그 사람. 무적의 독일 전차 부대의 지휘관 롬멜 장군을 격퇴했던 명장. 이 책에는 그의 전쟁 체험과 전쟁에 관한 풍부한 독서량이 돋보입니다. 몽고메리는 1,2차 세계 대전 모두를 경험했고 유명한 전쟁사 책을 탐독했다고 합니다. 제 느낌으로는 그의 경험은 책에 많이 녹아있지 않은 듯. 앞부분에만 조금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이 책은 동양 전쟁사와 서양 전쟁사로 나누어져 있는데, 일본 사무라이 얘기는 있어도 우리나라 장군 이야기는 눈을 아무리 씻어 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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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 [책과 세계] 텍스트 정치경제사  (0) 202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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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계 
강유원 지음
살림 펴냄
2004년 4월 발행

"압도적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책 읽기를 강요하는 것은 소수의 음모다." 이렇게, 강유원의 '책과 세계'는 도발적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지금껏 외면했던 진실을 폭로한다.

저자와 제목은 알고 있으나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는 책, 고전(주로 서양 것)을 나열한다. 그렇다고, 이거 고전 소개서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참 순진한 사람이다. 정말이지 이 책 제대로 읽은 게 아니다. 계속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가. 세상은 이기적인 권력 투쟁의 전쟁터이며 텍스트란 그 전쟁의 기록이라는 것을 잊고 지낼 텐데. 

강유원이 표면적으로 내새운 이 책의 목적은 고전과 그 책의 역사적 맥락 소개다. 그리고는 이 목적이 이루어진다면 이 책은 잊혀지고 버려져야 한다고.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고전 안내서로 판결한다. 허나, 글쓴이의 진짜 목적은 자신이 읽어낸 고전을 통해 인류사를 자신의 관점으로 꿰뚫어 보려는 것이었다.

그의 시도는 견고한 텍스트 짜기로 성공을 거둔다. 허나, 그 성공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우리는 현 사회 체제에 익숙해서, 인류 전체 역사를 조망하며 지금 현재 여기 이 세상과 그 세상을 지배 논리로 강제하는 책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과 역사와 문학의 종말 시대라며 투덜대는 지식인이여, 정말 제대로 고전을 읽었는가? 

이 책은 시작할 때부터 끝나버렸다. 책 읽는 사람은 소수다. 책을 제대로 깊게 그 맥락과 의도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는 자는 몇 안 된다. 대부분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읽어도 지배 이데올로기의 폭력을 감지하지 못한다. 이미 그 폭력에 굴복하여 적응하고 먹고산다. 당장 회사에서 짤려 실업자 신세가 될지 몰라 초초한 인간이 고전을 읽는다? 가능하리라 보는가. 가능하다 해도 그것은 그저 점잖은 교양, 마음의 양식을 쌓는다는 도덕적 교훈론이 메아리처럼 반복된다.

'책과 세계'라는 제목을 내세우고 글쓴이가 풀어낸 인류사는 텍스트 정치경제사다. 글은 두 가지로 뻗으며 서로 교차한다. 하나는 주요 텍스트의 역사적 나열 분석 맥락 확인이며, 또 하나는 텍스트를 둘러싼 환경의 고찰이다. 

갈가메시 서사시, 모세 5경, 사자의 서,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오이디푸스 왕, 도덕경, 국가론, 갈리아 전기, 우정론, 신국, 신학대전, 군주론, 리바이어던, 백과전서, 국부론, 종의 기원. 유명한 책이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드물다. 읽었다고 해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책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술술 독파해 버린 강유원의 지적 번뜩임은 우울한 어조에 섞여 잿빛으로 변한다.

이 고전 소개 글 사이사이에 텍스트를 담는 매체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대나무, 진흙판, 파피루스, 금속 그릇, 거북등껍질, 비단, 종이, 인쇄술. 텍스트의 제작보다 오히려 그 보급과 유통 경로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정치 권력이 그 텍스트를 유통하거나 차단하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그리고 지금도 책의 역사는 검열의 역사다. 자기 주장과 논리를 글로 써서 책으로 엮어 널리 읽히려는 자와 그걸 막거나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고 편집하려는 자의 싸움이다. 

책을 읽으면, 그 책을 쓴 자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빨간 색으로 칠해야 할지 말지 꼭 확인하려는 사람이 있다. 검열관 나으리, 오늘 하루는 어떠세요. 빨간 줄 많이 치셨나요. 당신이 이 책 읽는 시간을 줄여 주겠다. 이 책 90쪽(이 책은 전부 93쪽이다.) 맨 아래 부분을 읽어 보라. 그렇다. 그는 폭력을 혐오하는 회색 지식인이다. 그가 읽어내는 책은 그 자신이 고백하길 대부분 폭력적이라니.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 

그리스 신화에 카산드라라는 예언자가 나온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예언을 믿지 않는다. 이 여자의 말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 미래의 진실을 말해도 왜들 듣지 않았을까. 자기 욕망에 거슬렸기에 그랬다. 어둡고 비관적인 미래를 그 누가 듣기 좋아할까. 강유원이 이 책에서 우울한 멜로디를 읊조리기에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하여,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반복해서 알려진다. "참 좋은 고전 소개서야." 그대들의 밝은 미래와 아름다운 교양에 축복이 있을지어다. 

이 책은 강유원 선언이다. 총론이다. 그가 이후에 내는 책들은 이 책의 각론이다. 남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거나 직접 지었거나 편집했거나, 이 책의 핵심 주장을 반복하리라.

강유원의 지적 탐험이 어디에 도착할지 아직 모른다. 방향을 정했다고 해서 꼭 거기로 가는 법은 없다. 지금은 회색인데, 언제 무슨 색이 될지 모른다. 좌파의 투쟁도 우파의 폭력도 싫다고 했으니. 우울하게 시작했다고 해서 그 과정과 도착점도 그렇지는 않는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감지한 사람은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마련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보면, 일제 시대 우리 조상님들의 행동을 보면, 우리가 재배 이데올로기의 폭력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볼 수 있다. 저항하는 소수, 침묵하는 다수, 그리고 그저 짐승처럼 하루하루 살기 버거운 대다수. 상당히 많은 애국지사들이 나중에 변절했다. 때로는 절망에 빠져 무정부주의자가 되거나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소수들은 언제나 책을 읽었다. 현실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그들에게 책은 생명이요, 무기였다. 

안중근 의사의 말,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격언이 역사적 상황을 무시한 채 오늘날 독서 교양인의 화폐처럼 유통된다. 그가 처한 입장과 결연한 각오를 떠올려 보라. 진실이 보이는가. 그 말은 결사항쟁 투쟁의 선언이었다. 자기 생명을 다 바쳐 책 읽을 각오가 된 자한테, 세상의 부조리 따위는 벌레만도 못한 것이다. 강유원은? 아직 모른다. 책 읽기 강의에 나섰다. 전사를 양성하고 싶었던 것일까? 서재의 회색인으로 지내기에는 답답했나? 

자, 이 글을 맺을 때다. 이상은 나의 과도한 텍스트 해석이었을까. 강유원의 텍스트에 가하는 또 하나의 폭력일지도. 어차피 이 문자의 세계는 자기 논리의 싸움터다. 이 글이라고 예외겠는가. 당신의 글이라고 안 그러겠는가.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텍스트로 싸워라. 인류의 역사는 텍스트의 역사였다. 당신의 사소한 글 하나하나도 이미 역사의 한 쪽을 쓰고 있다.

키보드를 두드려라. 좌파든, 우파든, 양파든, 개파든 글을 써라. 종이나 컴퓨터 화면 위에 썼거나 쓰여진 글이 현실을 바꾼다. 글은 생각이다. 생각은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감정은 행동을 부추긴다. 행동은 현실을 바꾼다.

삶은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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