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자
퍼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Predator (2005년)

그동안 시리즈에서 보여준 살인범들이 기괴하다지만, 이번 편의 미치광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연쇄 살인범의 뇌를 연구한다는 '프레더터' 실험에서 베이질 젤레트가 자신이 저질렀을지도 모를 살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것이 바깥 세상에서 발견된다. 여기에 살인범으로 추측되는 자칭 '호그'라는 자가 자꾸만 이상한 말을 해 오고, 감귤나무 조사관에, 루시와 하룻밤을 보낸 미인에, 산탄총에, 거미에, 별별 단서가 등장한다.

콘웰은 이야기 시작에 갖가지 미스터리를 설탕처럼 잔득 뿌린다. 수수께끼를 명확히 밝히기보다는 그냥 추측하는 쪽으로 끝내는 편이다. 복잡다단한 시작에 비해 결말이 초라하다. 이번 편은 작가가 욕심을 많이 부렸다. 시리즈 사상 '최고의 반전'을 만들고 싶었던 듯하다.

답을 알지만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복잡한 그 상황을 그 한 마디로 정리해주긴 하지만, 너무 쉬운 해결책이지 않나. 불가능해 보이는데, 작가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독자가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정신병자인데 이해가 되지 않은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괴물 같은 인간'이라고 두 번이나 말을 뱉는다.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시리즈 초기의 단순한 1인칭 주인공 시점과 간결한 문체는 이제 더는 볼 수 없다. 복잡다단하게 파편처럼 장면을 그리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범죄자는 더욱 기괴해졌고 살인범을 잡는 기술은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후속작은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질 듯한다.

그러지 않아도 괴상망측한 살인범들인데, 이번 편이 최고조였다. 최고의 미친년놈이었다. 사랑하던 캐릭터들은 망나니처럼 멋대로 굴며 초기 작품에 보였던 매력을 잃었다.

이번 편에서 마리노의 변신은 안타까웠다. 마리노 아저씨가 완전 비호감으로 바뀌었다. 사람이 나이 들어서 돈을 많이 벌면 이상해지는 것일까. 값비싼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며 젊은 오빠 폭주족 흉내나 하려고 들다니. 정말 싫었다. 내가 이 시리즈를 읽는 이유는 마리노였었다. 소설의 반전보다 이게 더 충격이었다. 회복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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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퍼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Trace (2004년)

그동안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중에 '악마의 경전' 다음으로 별로였다. 용두사미로 항상 끝이 별로인 건 콘웰의 특징이자 이 시리즈의 변함없는 결말이긴 하다만, 범인이 잡혀서도 이토록 허무하게 잡히냐. 마리노 아저씨가 범인이 즐겨 고집스럽게 구매하는 시가를 단서로 체포한다. 앞서 그 난리법석은 별 의미도 없다. 여차저차 하다보니 범인을 알게 된다. 게다가 이야기 앞부분에 이미 범인을 보여줘서 더 별로였다.

범인 이름을 왜 '애드거 앨런 포그'로 지었나 모르겠다. 자꾸만 애드거 앨런 포가 생각난다. 수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 유명 작가 이름 비슷하게 했는지 모를 일이다. 애드거 앨런 포 상까지 수상했다면서 이렇게 해야 하나? 이름 읽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콘웰답게 이 사건 저 사건 꼬여 놓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소녀. 변태 성행위를 하는 부부. 루시를 위협하는 남자.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실은 모두가 '애드거 앨런 포그'의 짓이었다. 나름 긴장감 고조와 조성을 잘하는데, 역시나 끝이 썰렁하다.

시리즈 4인방은 저마다 자기 개성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저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스카페타는 옛 직장으로 되돌아가서 현 검시국장과 티격태격 싸운다. 루시는 화가 난 나머지 나쁜 인간을 패대기 친다. 이 언니는 시리즈 초반부터 평소 한 성격한다.

루시는 이제 사장님이다. 마리노 아저씨가 '보스'라고 부른다. 역시 돈과 실력이 있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왕처럼 살 수 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비싼 집 사고 비싼 차를 몰고 다닌다. 성질은 더욱 불같아졌고 마음껏 자기 멋대로 산다.

이번 편의 최대 이벤트는 마리노 아저씨가 강간당한 사건이다. 마초라서 자신이 강간했다고 우겨대는 모습이 왜 그리 웃기면서도 서글픈지. 그런 마리노의 상처를 봐 주고 엄마처럼 보살피는 스카페타 누님이시다. 마리노 아저씨를 강간한 여자한테 가서 따지는 케이는 꼭 마리노 엄마 같다.

벤턴은 사설 경비회사 '마지막 경비구역'의 지휘 본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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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 플라이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Blow Fly (2003년)

12편 '데드맨 플라이'는 소설 서술자 인칭이 바뀌었다. 시리즈 내내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는데, 이번 편은 그런 제한된 시점으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간상으로 떨어져 있는 범죄자 두 명을 그려야 하는데, 스카페타 주인공의 시점으로는 그럴 수 없다. 이후 시리즈 13, 14, 15편 모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16편 이후로는 국내 번역이 안 되어 있어 확인을 못했다.

이야기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이번 편은 전지적 작가 시점을 쓸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스카페타 제외한 시리즈 고정 출연자들이 벤턴의 죽음이 가짜인 걸 알았고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믿도록 조작했음을 이번 편에서 밝혀야 했다. 그러려면 스카페타의 시점으로는 이야기 전개가 불가능한 것이다.

읽기 거북하다. 장이 너무 자주 바뀐다. 이 사람 이 사건이 진행한다 싶으면 다른 사람 다른 사건을 서술한다. 한두 장 읽고나면 다른 사람과 다른 장소니 산만한다. 노골적으로 미치광이들의 심리를 묘사한다. 그렇게까지는 알고 싶지 않은데 지나치게 친절하다. 아쉽지만 케이 스카페타의 내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번 편이 스카페타 시리즈 중 최대 반전이라며 팬들이 호들갑을 떠는 모양이다. 바보들인가. 지난 편에 마리노가 그토록 힌트를 줬는데 말이다. 그 정도 눈치도 없다면 추리소설을 이제 막 읽기 시작한, 참으로 순진한 독자이리라.  반전의 충격을 받은 사람은 독자가 아니라 주인공 스카페타다. 스카페타만 벤턴의 죽음이 가짜라는 걸 몰랐으니까.

이번 편이 정말 '늑대 인간 삼부작' 종결일까? 늑대 인간 동생 제이 톨리를 확실하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정작 털 많은 인간 장 샹도니는 이 책 어디에도 죽었다거나 누가 죽였다는 말이 안 나온다. 다음 편에 불쑥 등장할 것 같다.

벤턴과 케이의 재회는 예상했던 거라고 별 감흥은 없었다. 이번 편도 결말이 참 맥없다. 범인은 인터폴 산하 비밀수사기관인 '마지막 경비구역'의 요원들한테 총 맞아 죽는다. 그동안 법의학 증거 수집에 단서 추적에 뭐에 복잡다단했던 일들은 도대체 왜 했나.

전작에서 우리 4인방이 소속 기관에 사표를 내고 떠났고 '마지막 경비구역'이라는 비밀 사설기관에서 활동한다. 그냥 사설 경비회사가 아니라 극악 범죄자를 법의 심판대에 안 세우고 제거하는 임무를 맡은 곳이다. 케이, 벤턴, 마리노, 루시는 정치 권력이나 언론 플레이에 당하지 않고 범죄자를 찾아 잡아 없앤다.

이야기 중간중간 파리가 나오고 표지며 속지에 내내 파리 그림이 나와서 뭔가 대단히 중요한 단서일 줄 알았더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파리였다. 허무하네.

이 책 후반부에 띄어쓰기 안 된 부분이 많이 보이고 마침표가 안 찍힌 문장이 있어 읽는 데 짜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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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경비구역
퍼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The Last Precinct (2000년)

스카페타 시리즈는 각 편이 대체로 독립적이다. 그런데 이번 11편 '마지막 경비구역'은 예외다. '늑대 인간 삼부작'의 중간 이야기로 지난 10편과 다음 12편을 잇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9편 '카인의 딸'의 악당 캐리 크레센 사건의 숨은 진실이 밝혀지고, 죽은 벤턴이 남기 수수께끼 같은 비밀 파일을 발견한다. 따라서 지난 시리즈의 전편들을 안 읽는 독자는 이 책이 당혹스럽고, 읽은 지 오래되었다면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읽기가 만만치 않으리라. 시리즈는 순서대로 읽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지금까지 국내에 출판된 스카페타 시리즈 중에 분량이 가장 많다. 읽기가 무척 지루했다. 제이 톨리의 정체가 밝혀지는 반전을 위해 이렇게 많은 내용이 필요했나. 늑대 인간 시리즈 최종편인 다음 12편도 분량이 많아 600쪽이 넘는다. 역시나 이번 편도 스카페타 시리즈답게 예전 편처럼 결말이 싱겁다. 범인은 굳이 주인공에게 찾아가 애써 자기 정체를 밝히고 박사를 죽이려 한다.

분량이 늘어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지난 사건 이야기를 회상하여 다시 반복하여 더 자세히 더 세세히 풀어간다. 둘째, 현재 진행 중인 사건과 지난 여러 사건이 겹친다. 셋째, 곁다리로 핵심 사건 이야기에서 벗어나 등장인물들의 사적인 옛날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 추억담은 괜찮다. 하지만 주인공의 담당 정신과 의사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애써 할 필요가 있나. 시리즈 4인방 중 벤턴이 없으니까 그 자리를 이 의사가 채우며 벤턴의 비밀을 밝힌 단서를 알려준다.

11편 '마지막 경비구역'은 시리즈의 전환점이다. 이제 시리즈 3인방은 조직을 떠나 사설 경비 회사 '마지막 경비 구역'을 세우고 일할 작정이다. 케이는 주지사에게 법의국장 자리를 떠나겠다고 말했고, 루시는 ATF의 부당한 정직 처분에 사실상 요원을 그만두려 한다. 여러 살인 사건을 겪으면서 등장인물들이 조직 권력에 수사를 방해당하고 사생활이 침해당하며 목숨의 위험과 갖은 협박에 시달린다. 억울하게도, 스카페타는 살인범으로까지 몰린다.

DNA 트릭은 지난 편에서 워낙 많이 봐서 이번에는 놀랍지 않았다. 놀라야 하는데 놀라지 못한 것은 이미 익숙해서 어쩔 수 없는 '추리소설'의 숙명이다.

마리노 아저씨는 여전하시다. 다만, 그의 아들 로키가 악당 편의 변호사로 등장해서 '쓸데없이' 놀랐다. 아내와는 이혼했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자식 교육 제대로 못해서 기껏 나쁜 놈들 부하 노릇이나 하고 있으니, 외로운 사나이 마리노에게 남은 한 사람, 오직 한 사람, 순정을 바치는 그 사람, 스카페타가 국장 일 그만둔다니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시겠단다.

스카페타 시리즈는 마리노 때문에 읽는다. 의리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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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 수배
퍼트리샤 콘웰 지음
김백리 옮김
노블하우스 펴냄

Black Notice (1999년)

고정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어가는 형식인 시리즈를 쓸 때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이야기 주도권을 작가가 아닌 캐릭터가 쥐는 것이다. 도일은 홈즈를 이야기에서 죽여 버렸고 크리스티는 푸아로가 죽는 이야기를 미리 써 놓고 발표를 미뤘다. 스카페타 시리즈 10편에 무려 10년이 넘게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이제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이 통제불능인 상태에서 작가는 작가대로 이야기의 틀을 만들어놓고 진행한다.

지난 9편에서 시리즈 주요 4인 중 1명인 벤턴 웨슬리가 죽었고 이번 10편에서 그 파장이 남은 3명에게 대대적으로 미친다.

케이 스카페타는 연인이 죽은 슬픔에서 벗어나질 못해 그러지 않아도 일중독인데 그 정도가 심해진다. 프랑스 출장에서는 연하남과 하룻밤 섹스에 빠진다. 이 점은 이번 편만 보면 생뚱맞아 보인다. 뭐야, 갑자기? 골트 3부작(4편 사형수의 지문, 5편 시체농장, 6편 카인의 아들)처럼 이번 10편으로 '늑대 인간 3부작'이 시작된다. 제이 톨리는 다음 편과 다다음 편을 위한 복선이다. 자세한 얘기는 스포일러가 될테니 삼가겠다.

마리노는 윗선 정치에 밀려 형사에서 순찰직으로 사실상 퇴직 압력에 처했다. 스카페타가 내 밑에서 일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는데 말로는 화를 내도 내심 고마워하는 눈치다. 어설픈 신참내기 형사가 인터폴이 개입하는 연쇄살인 사건을 맡아 실수투성이다. 열심히 하려는 성의도 없다. 윗사람한테 잘 보여서 승진이나 하려는 인간이다. 마리노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케이가 프랑스에서 젊은 남자랑 하룻밤 정사를 벌이자, 마리노는 어마어마하게 화를 낸다. 죽은 벤텐 웨슬리 생각에 본인 질투까지 합세했다.

삼국지의 유비와 장비를 보는 것 같다. 상스러운 말과 과격한 행동을 해도 속마음과 의도는 착하다고 믿기에 마리노를 감싸는 케이. 툭 화면 화내고 욕하고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케이를 종종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하지만 충성심과 애정은 절대 불변인 마리노.

케이의 조카 루시는 여전히 동성애 중이다. 평소 총을 좋아했기 때문인지 재무부 산하 연방 알코올 담배 및 총기단속국의 수사관으로 일한다. 루시와 루시의 애인이자 동료인 조가 위장이 틀통나서 큰 부상을 당한다.

루시의 엄마이자 케이의 여동생인 도로시는 여전히 이기주의자고 남자들과 놀아나는 것이 즐거움이다. 술에 취해서 막장 드라마처럼 주인공 케이를 비난하고 나서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더라. "언니가 왜 그렇게 비쩍 말라 있는지 묻지 않아도 알아. 매일 죽은 시체에서 갈비뼈나 떼어내고 범죄현장을 누비거나 하루 종일 시체안치소, 그 지랄 같은 바닥에 서서 일하는데 살찔 틈이 있겠어?"(2권 86쪽) 자기 딸이 자신보다 자기 언니를 더 따르고 더 사랑하는 것에 단단히 삐쳤다. "내 딸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 유일한 자식한테. 항상 바쁘시니 아이를 가질 시간이나 있었겠어? 그래서 내 외동딸을 빼앗아 간 거야."(2권 86~87쪽)

이야기 규모는 10편에 와서 확실하게 커졌다. 참으로 우연히도 인터폴에서 주목하는 살인범이 애써 주인공 스카페타의 근무지역인 리치먼드까지 오셔서 연쇄살인을 저질러 주신다. 편리하게도 마침 그동안 잘 알고 지내던 상원의원이 인터폴과 잘 아는 사이다. 끝으로 예전 시리즈에서 그랬듯 이상하게도 살인범이 주인공을 굳이 위협하고 죽이려고, 실은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서지만, 케이 집에 나타나 주신다. 얼마나 고마운가. 감사합니다, 범인님.

옮긴이 김백리의 이름이 특이하고 '옮긴이의 말'이 정제된 문장력을 보여서 이 사람 도대체 누구인가 검색해 보니, 역시나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김백리는 필명이었다. 본명 김은숙. 위암으로 2011년 별세했다.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부미방)의 주역이었다. 좌파 운동권에서 유명했던 모양인데, 그 사건 후로 조용히 살려했던 것 같다.

이런 사람이 어쩌다 미국 자본주의 대중소설인 스카페타 시리즈의 한 권을 번역하게 된 것일까. 옮긴이의 말에 보면 영국 체류 시절에 책을 좋아해서 도서관과 서점을 자주 들렸는데 콘웰의 책이 워낙 잘나가는 베스트셀러다 보니 눈에 띄었고 가난하다보니 가까운 헌책방에서 콘웰의 책들을 사서 읽었단다. 때마침 번역할 기회까지 얻었다.

김은숙은 '케이, 마리노, 루시'를 '유사 가족 공동체'라고 하고 주인공이 하버드 출신에 부잣집 도련님과 눈이 맞아 버린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적어 놓았다. "자칫 인간성을 상실할 위기에 있는 이 험악하고 비정한 세상에서 스카페타 박사의 눈을 통해 나는 인간이 마지막까지 견지해야 할 태도를 끝까지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2권 336쪽) 싸구려 범죄소설에 이토록 진지한 의미를 부여한 걸 보면, 이 사람 참 인생 올곧게 살려고 부단히 애썼던 것 같다. 늦었지만,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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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딸
퍼트리샤 콘웰 지음
박아람 옮김
노블하우스 펴냄

Point of Origin (1998년)

스카페타 시리즈는 각 권이 독립적이다. 하지만 때때로 전작의 범인들이 재출현하기 때문에 되도록 발표순으로 읽어야 한다. 9편 '카인의 딸'은 6편 '카인의 아들'을 읽어야 이야기가 제대로 이어지고 이해도 된다. 그냥 바로 읽어도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캐리 그레센은 자신이 직접 살인을 하기보다는 그런 살인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도와주는 걸 좋아하는 '미친년'이다. 지난 편에서 엽기 연쇄 살인범 골트의 도우미 노릇을 했듯 이번 편에서도 골트 못지 않은 '미친놈'을 돕는다. 

언론사 사주 케네스 스파크스의 저택에 불이 난다. 그곳에서 살해된 듯한 시체가 발견된다. 시리즈 4인방이 조사에 나선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정신병원에 수감 중이던 캐리가 탈출한다.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힌다. 분명 캐리가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는 수수께끼다.

유사 방화사건이 이어진다. 발견된 시체에서 공통점이 드러나다. 모두 다 미인이다. 웨슬리는 제보를 받고 간 곳에서 살인범의 함정에 빠져 화재로 죽고만다. 화재 당시 목격된 헬리콥터가 캐리를 수감한 정신병원에서도 보였다는 '결정적 단서'를 따라 범인을 추적한다. 그리고 마침내 범인의 냉장고에서 소름끼치는 얼굴들(?)을 본다. 헬기 추격 총격으로 범죄자 소탕 완료!

어디선가 읽었던 스포일러에서 죽었던 인물이 되살아난다는 게 마크가 아니라 웨슬리인 모양이다. FBI 요원이 화재로 죽으면 소설에서는 되살아난다고 봐야겠지.

루시는 다방면의 천재다. 컴퓨터에 로봇에 전문가였던 루시는, 이번 편에서 헬기를 조종한다. FBI 같은 범죄 수사에는 진력이 난 모양이다. 아마 다음 편에서는 이쪽 일을 그만둘 것 같다.

형사 마리노는 점점 무너진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그나마 버티는 이유는 스카페타 박사를 좋아해서다. 그런 마리노를, 주인공 케이 스카페타는 안타깝게 바라본다. 

"마리노는 혼자이고, 틀림없이 사는 게 지옥 같을 것이다. 추억이라고 할 만한 것도 많지 않으리라.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사용해야 하고 그 외에도 인간관계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의 삶에서 변치 않은 건 나밖에 없을 것이다." 

마리노의 짝사랑 순정은 진한 사골국물 같은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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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닥터
퍼트리샤 콘웰 지음
허형은 옮김
노블하우스 펴냄

Unnatural Exposure (1997년)

콘웰의 긴장감 고조시키는 이야기 솜씨는 인정해 줘야 한다. 매번 결말이 흐지부지라서 용두사미지만, 책 마지막 쪽까지 읽게 하는 능력은 있는 작가다.

시리즈 8편까지 왔고 지난 7편에서 테러 집단과 당당하게 싸운, 우리의 주인공은 이제 유명인사다. 외국 가서 강의도 한다. 여전히 일중독자이고 휴일이고 주말이고 쉬는 법이 없다. 이 사람아, 좀 쉬라고! 그의 부하가 스카페타 국장한테 무조건 쉬라고 명령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팔다리가 없이 몸통만 있는 시체가 쓰레기 매립지에서 발견된다. 8년 전 아일랜드에서 발견된 시체들과 비슷하다. 딱히 실마리가 될 것은 보이지 않는다. 잘린 흔적을 봐서는 의료계 전문가다. 이런 가운데, 살인범은 '죽음의 닥터'라는 닉네임으로 스카페타에게 이메일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당신은 자신이 아주 똑똑하다고 생각하겠지."

사건은 변종천연두로 확대된다. 작은 섬마을에서 지난번 사지절단 시체와 비슷한 피부발진과 수포가 보이는 시체가 발견된다. 백신이 없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로 난리가 난다. AOL 채팅방에서 범인 '데드닥'과 대화를 오래 끌어서 마침내 범인의 위치를 잡아내고 FBI가 출동한다. 사건 해결의 결정적 순간은 이번에도 지난 편처럼 운이다. 참으로 고맙게도 그동안 추적이 불가능할 정도 짧게 채팅하다가 이번엔 어찌된 일인지 길게 한다. 억지스럽지만 어쩔 수 없어. 이야기 끝내야 하니까.

그동안 읽은 시리즈 중에 유일하게 주변 인물들 중 한 명이 범인으로 밝혀진다. 힌트가 잘 나와 있어서 범인은 쉽게 맞출 수 있다. 지난 편들처럼 생뚱맞은 사람이 범인이랍시고 갑자기 나타나는 식에서 벗어났다. 여전히 살인범은 그냥 미친 사람이라는 설명이다. 그냥 미친 년놈이야. 왜 그러지는 아무도 몰라. 묻지도 마. 알려고도 하지 마.

추리소설/범죄소설이라기보다는 '법의학 스릴러'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연속극 드라마 같은 소설이다. 이혼한 독신녀 스카페타의 일상이랄까. 시리즈 4인방의 사생활 이야기는 이 시리즈 팬들한테는 절대적으로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독자한테는 이야기의 사건 전개에 충실하지 않고 사족으로 보일 것이다. 이래서 시리즈는 1편부터 차례대로 읽어 줘야 한다.

스카페타는 드디어 마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웨슬리한테서 듣는다. 나처럼 주인공 케이도 마크의 죽음이 FBI가 거짓으로 꾸민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알고보니 죽은 게 맞다. 우연으로 일어난 사고였다. 웨슬리가 스카페타한테 진실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나름 스카페타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쨌거나 둘은 이제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웨슬리가 이혼했기에 불륜이 아니다. 둘이 결혼해도 아무도 뭐라 비난할 사람 없다. 마리노가 왜 둘이 결혼 안 하냐고 성화다. 충성스러운 마리노는 오직 케이 박사의 행복을 빌 뿐이에요.

루시는 FBI 인질구출팀 기술 담당으로 잘나간다. 일을 너무 잘해서 주변 동료들이 시샘하고 두려워한다. 마리노는 스카페타에 대한 애정과 질투는 여전하고 묵묵하게 주인공을 지켜주는 기사님 역할을 시리즈 처음부터 지금까지 수행하고 있다. 마리노가 건강 관리를 잘 하지 못하고 있어서 스카페타가 엄마처럼 잔소리를 해댄다.

나는 스카페타 시리즈는 주인공과 마리노가 다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읽는다. 둘이 너무 귀엽다.

마리노 : 내 트럭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칭찬해 준 적 있었냐고. 아님 나랑 낚시 가본 적 있소?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온 적은? 절대 없지. 박사가 사는 데가 더 고상한 동네라서 내가 매번 그리로 가야 하니까.

스카페타 : 당신이 요리 한 번 해봐요. 그럼 당장에 갈테니까.

말싸움은 하지만 참 다정한 커플이다. 스카페타가 자신도 엘비스 광팬이라고 고백하자, 마리노가 어찌나 좋아하는지 싱글벙글이다. 엘비스 관련해서 마리노의 유년 시절 사연이 나온다. 술 취한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구타하는 걸 어떻게 그만두게 했는지 나온다. 수호천사다운 사연이다.

다음 편에 스카페타와 웨슬리가 결혼하나.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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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경전
퍼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노블하우스 펴냄

악의 경전
시공사 펴냄

Cause of Death (1996년)

소설 초반부만 보면 근사하다. 폐쇄된 해군 조선소 근처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법의관 스카페타가 현장에 가서 보니 아는 사람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기자다. 기자가 왜 이런 곳에서 잠수복 차림으로 죽은 것일까? 부검을 해 보니 독살이다. 누가 왜 죽인 것일까? 기자의 소지품에서 광신교 뉴 시오니스트의 경전이 나온다.

콘웰의 스릴러 만드는 솜씨는 7편에 오니 득도의 경지다. 초반부터 주인공이 위협을 당한다. 누군가 집의 담을 넘어와서 몰래 훔쳐보고 가질 않나. 자동차 타이어를 망가뜨려 놓는다. 스카페타의 차를 운전하던 부하직원은 살해당한다. 그 차에는 우라늄의 흔적이 발견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익사라고 여겼는데 독살이다. 옛날 유적 발굴인가 싶더니 잠수함 관련이다. 북한 관련인가 싶더니 뉴 시오니스트의 음모였다. 사건의 사실과 규모가 점점 커진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테러리스트의 소굴로 들어가서 큰 활약을 한다.

문제는 마무리다. 살인범은 시리즈 전통(?)에 따라 갑자기 맥없이 밝혀진다. 이번 편은 특히 후반부에 갑자기 참으로 편리하고도 우연하게도 테러리스트 두목이 원자로 물속에 빠져 주신다. 아이고,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어서 주인공을 투입할게요. 적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의사 오직 스카페타 되시겠다. 짜자잔, 언니가 간다!

스카페타 시리즈 4인방 소식은 다음과 같다. 루시는 FBI 요원으로 이제 컴퓨터만이 아니라 로봇도 다룬다. 후반부에서 이 기술로 활약한다. 이제 아름다운 숙녀가 되셨고 대학생이자 동성애자로서 연애 중이다. 마리노는 이혼한 전처 때문에 미칠 지경이고 남성우월주의를 고집한 대가로 우울증과 성생활 곤란으로 고생한다. 웨슬리는 아내와 이혼했고 스카페타와의 관계를 당분간 친구/동료로만 유지한다. 스카페타는 여전히 일중독자고 고집불통이다.

도스 얘기가 나온다. 정말 옛날 소설이다. "나는 루시가 'undelete *.*'을 치고 엔터 키를 누르는 것을 보았다." (시공사 1997년 초판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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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아들
퍼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노블하우스 펴냄
From Potter's Field (1995년)

'카인의 아들'은 독자가 기대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전전편과 전편에 등장하는 살인마 템플 골트가 드디어 이번 편에서 끝장을 보기 때문이다.

소설 시작 프로롤그에 3인칭 서술로 범인이 골트라고 밝힌다. 이어지는 사건들은 주인공 스카페타를 향해 범인이 대담하게 다가선다. 살인범은 일부러 자신을 추적하라고 주인공의 신용카드를 훔쳐다 쓴다. 심지어 스카페타가 일하는 부검실까지 찾아들어와서 메시지를 남기고 간다.

범인을 추적할 수 있는 물증은 전작 스타일대로 참으로 편리하게도 희귀한 것들이다. 2차세계대전에 쓰인 군화, 시술자가 극히 적은 치아 금박복원술. 이 힌트를 따라 스카페타 박사는 범인의 가족을 만나 사연을 듣고 책머리에 인용한 창세기 4장 10절의 진실을 만난다.

차츰 긴장을 고조시키고 범인의 정체에 다가서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마지막 장면은 썰렁하다. 끝이 좋아야 한다. 시작과 중간만 현란하면 오히려 나쁘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 같은 장면을 남발하고는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 두 방으로 사건 종결이다.

악의 화신 같은 자가 허벅지에 스카페타가 찌른 칼을 맞고서 하는 말이 고작 "피가 멈추지 않아. 당신은 의사니까 어떻게 좀 해 봐."다. 왜 이렇게 갑자기 착해? "야이, X발 년아." 하고 욕을 하든지. 그토록 주인공을 사랑했다면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라고 해야 하지 않나.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인 자가 하는 말이 고작 나 좀 살려 달라고? 독자 좀 살려 주쇼.

그토록 교묘하게 죽이고 기발하게 도망치고 형사들을 농락했던 범인이 이토록 맥없이 죽어버리는 이유를 당최 모르겠다. 어서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서, 작가 편리하게 죽어버린다.

연쇄 살인범 골트는 끝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처럼 모호하다. 골트가 동생을 죽인 이유를 모르겠다. 그의 부모들은 골트가 사악한 놈이고 어서 죽여야 한다고만 한다. 살인범의 범행 동기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냥 미친놈이고 어서 죽여야 한다고 등장인물들이 합창한다. 미친놈이야. 더 알아서 뭐해. 죽여라!

골트가 주인공한테 그토록 애착을 갖는 이유도 모르겠다. 그렇게 케이 박사를 좋아했다면 왜 전전작부터 그런 행동을 안 하고 세월이 흐른 후에야 이번 편에 와서야 '날 좀 보소.' 하나?

시리즈 4인방은 변함이 없다. 루시는 동성애를 하고 범인 잡는 컴퓨터 시스템 '카인'을 완성한다. 주인공은 지난편에 이어 이번 편에서도 FBI 프로파이로 벤턴 웨슬리와 불륜에 빠졌다. 마리노는 반장으로 승진했는데 여전히 아부 같은 인간관계는 관심이 없다. 이혼한 전 부인한테 애정이 남아있는 듯 보이나 다른 여자 만나며 그럭저럭 산다. 마리노는 백인 남성 우월주의자이고 동성애 혐오자다. 촌스럽고 무식이 철철 넘친다. 그럼에도 스카페타는 마리노를 감싼다. 나를 지켜주는 충성스러운 기사님이니까.

이들은 악한 인간의 온갖 범행을 겪으면서 차츰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살인범 잡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하는 분위기다. 스카페타 시리즈가 계속 나오고 케이, 벤턴, 루시, 피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범인 잡는다. 인생이나 소설이나 내 맘대로 풀리는 경우는 드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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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농장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노블하우스 펴냄
The Body Farm (1994)

전편 '사형수의 지문'에서 도망친 살인범 골트가 이번 '시체농장'편에 이어져서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으나 오해였다는 식으로 끝나서 허무하고 당혹스러웠다. 긴장감 조성하는 스릴러 소설로는 최고지만 미스터리 소설로는 별로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지난 4편 '사형수의 지문'과 이번 5편 '시체 농장'과 다음 6편 '카인의 아들'이 살인마 템플 골트가 등장하는 시리즈라고 한다.

제목 시체농장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제목만 보면 너무 무시무시하다. 시체가 쌓인 농장인가? 내 상상이 지나쳤다. 시체의 부패 과정을 분석하는 곳의 별칭이었다. 실제로 있다고 한다. 정식 명칭은 '법의 인류학 센터'다.

정작 제목으로 단 '시체농장'은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망 시간이 결정적 증거 노릇을 못했다. 콘웰 이야기 스타일이 그렇듯 정말이지 사소하면서 특이한 증거물 하나가 결정적이다. 지난 편에는 값비싼 희귀 오리털이었는데, 이번 편에는 형광 오렌지색 덕트 테이프다. 이것마저 독자가 오해하는 장치로 이용하니 말문이 막힌다.

캐릭터들은 막장 드라마 분위기다. 스카페타 박사는 웨슬리 프로파일러랑 불륜 관계가 되고 이에 질투가 난 마리노 반장도 피해자의 딸 엄마랑 정분이 나버린다. 주인공의 조카 루시는 동성애를 한다.

이야기도 막장이다. 유괴된 소녀 에밀리가 시체로 발견되는데, 그 모습이 2년 전 연쇄살인마 골트의 범행과 유사하다. 수사 중에 수사관이 살해되는데 변태 성욕을 하던 중 죽은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수사관 집의 냉장고에는 에밀리의 피부 조직이 발견된다. 에밀리의 부검 사진에서 엉덩이 부분에 특이한 자국을 발견하고 그 정체를 알고자 묻었던 시체를 다시 꺼내기에 이른다. 관에서는 고양이 시체가 발견된다.

증거물과 의혹이 잡다하게 나열된 후 살인범이 우리의 주인공 목숨을 위협하다가 마침내 이래저래 범인이 밝혀지고 사건이 해결된다는 식이다. 그래서 콘웰의 소설을 읽을 때는 궁금하긴 하지만 애써 추리하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오해였다는 식으로 미스터리가 풀릴 테니까.

미스터리 추리극이라기보다는 스릴러 활극이다. 주인공이 살인자랑 서로 총을 쏜다.

배반의 얼굴
패트리샤 콘웰 지음, 이무열 옮김/시공사

'배반의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시공사에서 1996년 처음 국내에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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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의 지문
퍼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노블하우스 펴냄

현재 이 책을 서점에서 구할 수 없다.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찾아내 읽어야 한다. 저작권을 가져간 RHK(전 램덤하우스코리아)에서 이 책을 1권짜리로 다시 내 줄 것이다.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시리즈 3권까지 수정판으로 내다가 멈추고 최신작 위주(12권부터)로 출판 중이다.

디자인에 신경을 무척 썼다. 책표지에 지문을 볼록하게 처리했다. 서지사항에 보니 역시나 디자인 팀이 따로 있었다.

교정 교열 두 명이 있는데, 결정적 실수를 하고 말았다. 초판 2쇄 2권 158쪽 끝에서 문장이 끊겨서 원서 확인해 보니까 문장을 날려버렸다. 빠진 부분 "and Finlally PCP. And one morning he suddenly comes to and finds himself brutalizing the corpse of a stranger."

법의학 전문가 한길로의 추천사가 1권 맨앞에 있다. 스카페타 시리즈 1권 시작 부분을 우리나라 상황으로 바꿔서 쓴 부분이 재미있다.

{따르릉…….
"박사님, 논현동 190번지에 변사 있습니다."
과학수사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소설과 현실은 격차가 상당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나라 한해 평균 변사자 2만5000건인데 전문 법의관은 23명뿐이란다. 지인 중 한 명이 병리학자인데, 국과수에 지원해서 근무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근무환경이 열악해서 대개들 피한다고 한다. 다른 의사들에 비해 낮은 급여와 밤낮 없는 노동에 항상 대하는 것은 시체. 이러니 안 하려고 하는 것이 정상.

소설에서는 근사하게 나오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닥터 하우스니 CSI니 해서 병리학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이 가까스로 알려지긴 했지만, 드라마를 봤다고 해도 저 사람들이 병리학자라고 기억하는 사람의 극소수다. 해부병리학이든 법의학병리학이든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고 어렵게만 보이는 분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검시 결과만 서류로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리즈가 4권까지 오면서, 작가의 이야기 솜씨가 늘었다. 사형수가 사형되는 날, 그 살인범이 저질렀던 것과 동일수법의 범죄가 일어나고 계속 살인이 일어나는 가운데 사형된 이의 지문이 현장에서 발견된다. 이런 기이한 판국에 죽은 사형수의 신원 자료가 모조리 사라진다. 여기에 교도소장을 비롯해서 윗선에서 뭔가를 숨기고 있다. 그 파장은 주인공 스카페타의 사임 압박에 이른다. 스카페타는 법정에까지 서는 위기에 처한다.

스카페타 시리즈 이야기의 패턴이 그랬듯, 이번 4편에서도 주인공은 위기 상황에 몰리고 범인은 여차저차 해서 밝혀진다. 콘웰의 추리소설은 용의자가 나열되고 누가 어떻게 살인했는지 추리하는 재미는 없다. 대신에 스릴감이 고조되는 맛이 있다. 특히 '사형수의 지문'은 연쇄 살인이 폭주 기관차처럼 일어나고 주인공이 모함을 당한다.

스카페타와 마리노는 티격태격이지만 취향이 달라서 그런 것이고 정은 많이 붙어서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 준다. 마리노는 형사 생활에서 점차 지쳐간다. 이혼에 건강 악화에 스카페타 박사 걱정에 수사에 힘들다. 자기 일에만 충실하고 주변 사람들과는 잘 지내지 못하는 면에서 스카페타와 닮았다.

2편에 등장해서 3편까지 주인공을 방황하게 했던 옛애인 마크는 이번 4편에서 테러로 죽은 것으로 나온다.

주인공의 조카 루시는 마리노랑 나름 친해진다. 마리노가 루시한테 총 쏘는 가르쳐 준다. 루시는 천재인데 이번 사건에서 해킹 솜씨를 발휘해서 FBI 프로파일러 벤턴 웨슬리의 주목을 받는다. 아무래도 FBI에 루시가 들어갈 듯하다. 루시는 이모 스카페타랑 말싸움을 하지만 어머니보다 더 사랑한다. 스카페타도 조카를 딸처럼 여긴다.

소설 후반부에 웨슬리는 스카페타에게 FBI 행동과학팀 자문을 제안한다. 다음 편에서는 이번 편에서 도망친 살인범을 잡지 않을까 싶다. 이러면 다음 편을 안 읽을 수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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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잭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시리즈물을 읽는 이유는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편의 인물들이 3편에 다시 등장한다. 2편 '소설가의 죽음'에 등장했던 스카페타의 옛 애인 마크와는 이번 편에서도 여전히 잘 안 풀리고 있으며, 1편 '법의관'의 저돌적인 기자 애비는 이번 편의 사건을 책으로 내려고 한다.

법의관 스카페타와 형사 마리노의 대화가 재미있다. 귀엽다.

마리노의 음성이 다급하게 들려서 나는 수화기를 낚아챘다.
"여기 있어요."
"박사가 맞소, 아니면 아직 기계요?"
"알아맞혀봐요."

이 둘에 전직 기자 출신 애비가 합세한다. 냉소적인 말대꾸가 일품이다.

"말로는 날 아껴주겠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속뜻은 저녁밥 차려달라, 빨래해 달라, 청소하라는 거잖아."

스카페타가 이혼을 당한 마리노에게 하는 말에는 여성 특유의 진솔한 감성이 돋보인다.

"당신 아내는 돈 따위는 전혀 상관 안 할 거예요. 그보다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고 싶을 거예요."

결론이 마음에 안 든다. 그냥저냥 이래저래 범인은 잡혔고 그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단서는 오해였거나 잘못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끝난다. 미스터리는 맥 없이 풀리고 마지막 결말은 진부하다.

커플 연쇄 살인범 이야기인데 복잡하게 얽혀놓았다. 정치 음모론에 FBI와 CIA의 비밀주의, 특종을 따내려는 기자, 책을 내려는 애비, 심령술사, '젠장'이라는 이름의 개, 하트 잭 카드, 현장에 안 보이는 피살자의 신발 등. DNA로 마지막 반전까지 만들어 보인다. 그래도 썰렁하다.

스카페타 마리노 커플의 정다운 수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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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죽음
퍼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Body of Evidence (1991년)

두 번째 작품에서는 퍼르리샤 콘웰이 욕심을 많이 냈다. 연쇄 살인이 일어나지만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다. 주인공 스카페타의 옛 애인까지 등장한다. 역시나 이번에도 살인범은 주인공을 향해 돌진하며 죽이려든다. 왜? 모른다.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니까.

영국식 정통 추리소설에 익숙한 이에게는 콘웰의 이야기 방식에 멍해진다. 용의자로 나열된 사람들 중에 범죄자가 있고 그 절묘한 범죄 수법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내내 얘기했던 인물들은 범인이 아니다. 오해였다니까. 갑자기 튀어나온 범인이 주인공을 죽이려고 달려든다. 참 쉽게 쓴다.

사라진 원고를 둘러싼 살인극의 정체는 다소 엉뚱한 데 진실이 있었다. 진실을 밝혀가는 중에 밝혀지는 사연들은 명확하진 않다. 법의관 주인공이 추측할 뿐이다. 그래서 친애하는 M에게 보낸 편지의 정체 또한 두 번 반전한다. 그리고 이 사연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주인공의 감수성은 잔잔하게 감동을 준다.

형사 마리노와 법의관 스카페타가 티격태격 말대구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흐뭇한지. 은근히 미운 정 고운 정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둘이 싸우는 것은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취향이 달라서지 정말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다.

마리노 : 20년 동안 책은 한 권도 사지 않았소이다.
스카페타 : 안타깝군요. 독서란 참 좋은 거예요. 언제 한번 읽어보세요.

마리노는 애써 교양이 있는 척하지 않으며, 스카페타는 굳이 교양이 없는 척하지 않는다. 둘은 그 자신으로 살아간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알 헌트'다. 타인의 감정을 색으로 보는 사람이다. "내가 경위님에게서 받은 신호는 창백한 빨강입니다. 따뜻하기도 하고 분노도 있습니다. 경고 신호와 같습니다. 그것은 경위님을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어떤 위험을 뜻하기도…."

'소설가의 죽음'은 퍼트리샤 콘웰의 초기 걸작으로 불린다. 시리즈 통틀어 수작으로 뽑는 이들이 많다. 그나마 추리소설답다. 나름 좋다. 수수께끼를 많이 나열했고 살해되는 이도 많다. 어찌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단순한 것이 겹쳐 있을 뿐이다. 

주인공이 살인범한테 위협을 당하는 것은 전작 '법의관'과 달리 이야기 끝이 아니라 중간쯤에 등장한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깜짝 놀랄 사건을 배열하는 솜씨도 좋다.

잔혹한 사랑
패트리샤 콘웰 지음, 정한술 옮김/시공사

이 책은 시공사에서 가장 먼저 펴냈다. 1993년. 제목이 '잔혹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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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관
퍼트리샤 콘웰
랜덤하우스코리아
Postmortem (1990년)

법의국장 케이 스카페타의 1인칭 독백은 솔직하고 담백하며 때때로 감상적이다.

"나는 피해자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일단 피해자가 사건 번호로 불리기 시작하고, 증거물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면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꺼져버린 생명처럼, 개인의 프라이버시 역시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이다." 17쪽

"나는 죽은 사람이 무서운 적은 없다. 내가 두려운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다." 40쪽

주인공 케이 스카페타는 셜록 홈즈처럼 나 혼자 잘났다는 식으로 수사하지 않는다. 마리노 형사를 비롯한 주변 인물과 협력한다. 살짝 루저 캐릭터다. 일중독 이혼 미인 직장 여성인데, 능력은 있으나 소심하고 냉철하면서도 종종 실수를 한다.

소설 '법의관'은 법의학 스릴러를 탄생시켰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지금이야 온갖 과학의학기술을 동원해서 살인범을 잡는다는 설정이 진부하지만, 이 소설을 발표할 당시인 1990년에는 획기적이었다. '법의관'은 시대를 앞서가는 이야기였다. 스마트폰으로 페북에 트위터를 하는 요즘 시각으로 보기에는 이 소설이 선사시대처럼 느껴지리라. 모뎀으로 원격으로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본다.

썩 잘 쓴 이야기는 아니다. 이 유명한 추리소설이 독자를 골탕먹이는, 범인과 상관없는데 중요한 것인 양 속이는 짓을 두 번이나 한다. 정말이지 작가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더라. 명확하지 않게 설명하며 얼렁뚱당 넘어가자는 식으로 마무리하고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결말이라니. 용의자가 나열되고 단서를 조합해서 범인을 잡는 식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 수사를 진행하다보니 어느새 갑자기 범인이 잡힌다는 식이다. 복잡한 트릭이나 정교한 추리력이 아니라 끈질긴 수사와 우여곡절 끝에 범인이 잡힌다.

법의학 현장을 가까이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드라마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지만 소설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전문용어를 비롯해서 진행과정을 상세히 알려준다. 하지만 소설이고 그다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에서 애써 그런 전문가적 정확성까지 챙겨 읽을 필요는 없다. 그냥저냥 분위기 나면 충분하다.

이 소설 시리즈의 또 다른 재미는 주인공의 사적인 이야기다. 이혼에 조카에 엄마에 요리에, 이런 시시콜콜한 사생활 문제 해결(?)을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주변 인물과 티격태격 대화하는 모습이 읽고 있자니 드라마 보는 것 같다.

처음에는 스카페타를 주인공으로 해서 소설을 쓰진 않았다고 한다. 남자 탐정이 주인공이고 스카페타는 조연이었다고. 어느 출판 편집자의 충고에 따라 여주인공 1인칭 독백으로 쓴 것이 바로 이 '법의관'이다. 그 결과, 독창성과 흥미를 만들어냈다. 이야기는 별로라고 느낄지 몰라도 여자 주인공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주인공이 작가를 많이 닮았다.

1993년 장원에서 '검시관'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나왔었다. 검시관과 법의관은 다르다. 소설 본문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검시관은 선거로 선출되는 공직자다. 법의병리학자가 아닌 경우도 흔하다. 주유소 직원이라도 어떤 주에서는 검시관으로 선출될 수 있는 것이다."

원제 Postmortem 직역하면 '부검'이나 '검시'다. 제목으로는 영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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