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 - G. K. 체스터튼 지음, 홍희정 옮김/북하우스 |
G. K. 체스터튼 브라운 신부 전집 1 결백 - 가톨릭 신부님과 전직 범죄자 커플의 범죄 수사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탐정소설에서 손꼽히는 작품이다. 셜록 홈즈, 푸아로, 브라운 신부. 이렇게 세 명이 유명한 (상상의) 명탐정으로 확고한 명성을 누리고 있다.
홈즈에겐 왓슨이, 푸아로에겐 헤이스팅즈가 있듯 브라운 신부에게 플랑보가 있다. 그런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커플은 앞서 두 커플과는 다르다. 신부님과 전직 범죄자(개과천선 후 사립탐정)이기 때문이다.
브라운 신부와 플랑보 도둑이 처음 만난 사연은 이 시리즈의 첫 화, '푸른 십자가'에 나온다. 브라운 신부님이 가지고 있던 보물 푸른 십자가를 유명한 도적 플랑보가 빼앗으려고 든다는 이야기다.
'푸른 십자가'에는 파리 경찰청장 발렝탱이 등장하여 이 거물급 범죄자 플랑보를 잡기 위해 키 큰 사람을 유심히 살피며 수사한다. 그리고 브라운 신부가 뿌려댄 엉뚱하고 황당한 단서를 쫓아 마침내 경찰은 플랑보를 체포한다.
경찰은, 홈즈 시리즈와 푸아로 시리즈에서 대개 멍청하고 명탐정의 놀림을 받는 대상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브라운 신부에서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1화에 나왔던 명성 자자한 경찰 발렝탱은 그 다음 화 '비밀의 정원'에서 퇴장한다.
체스터튼의 문장은 강한 개성으로 유별나다. 역설적 문장을 잘 쓰기로 유명하다. 독특한 유머 감각과 신학철학적 성찰에 회화 같은 풍경 묘사와 신랄한 독설이 뒤섞여 있다.
브라운 신부 이야기에는 그림 한 폭을 그리는 듯한 풍경 묘사에 철학, 신학, 정치 논쟁이 들어가 있다. 이는 작가 체스터튼의 개성이자 본인의 인생이다. 작가는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화가 지망생이었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였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 잡지를 발행했고 신문에 수많은 칼럼을 써댔다.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추리소설 읽기가 종종 가끔씩 살짝 어렵다. 중간중간 특유의 유머가 터지긴 하지만 그리 쉽게 읽히지 않는다. 간혹 어렵게 느끼는 이야기도 나온다. 철학 우화, 또는 신학 소설 같다.
어쨌거나 미스터리는 탁월하다. 괴상한 수수께끼와 초현실적인 일과 기적과 같은 상황을 펼쳐 보인 후에 브라운 신부님이 명백하게 풀어준다.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왜 식당 벽에 스프를 끼얹고 유리창을 깨고 과일 가게 사과 더미를 무너뜨리는가? 왜 집 안 정원에 시체가 목이 잘린 채 발견되고 또 집 밖에 또 다른 목이 발견되는가? 분명히 아무도 건물에 들어간 사람이 없다고 진술했는데, 건물 안의 사람이 살해되어 건물 밖에서 발견된다? 어떻게 작은 망치로 사람의 머리를 산산조각낼 수 있는가? 흉기가 세 개나 되는데 정작 살인 무기는 아니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단편소설 모음집으로 모두 5권이다. 장편소설은 없다. 북하우스에서 펴낸 종이책에는 삽화가 있는데 전자책에는 빠졌다. 특이하게도 전5권 전집 종이책 세트는 절판이 되어서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데 각 권은 여전히 나오고 있다.
도서관에 가면 이 책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빌려 읽어서 상태가 누더기에 가깝다. 그러니 가까운 중고서점에서 구입하거나 새 책을 사서 읽기 바란다. 나는 전자책으로 읽었다.
브라운 신부 전집 1 [결백] G.K. 체스터튼 / 북하우스 - 신부님 탐정의 온화한 여운
결백 - 8점
G. K. 체스터튼 지음, 홍희정 옮김/북하우스
브라운 신부는 추리소설의 주인공으로서 겉모습은 평범하다 못해 모자라 보인다. 둥글넓적한 얼굴에 멍한 눈, 작은 키에 뚱뚱한 몸매다. 촌사람이다. 커다랗고 낡아빠진 우산을 툭 하면 떨어뜨리고 종종 잃어버린다. 자주 하는 말: 우산을 어디 두었더라?
하지만 두뇌가 명석하고 충만한 신앙으로 마음은 고요하다. 등장인물의 내면에 작가 체스터튼이 있다. 글 곳곳에서 현란하면서도 날카로운 말솜씨를 뿜어댄다. 사천 편이 넘는 신문 칼럼을 써댈 만큼 당시 사회의 정치, 종교, 문화 논쟁의 한복판에 섰고 무신론자에게 매서운 직격탄을 날렸다.
자신의 종교적 편견을 소설에 드러냈다. 둘째 단편 ‘비밀의 정원’에서 무신론자라는 이유만으로 첫 회에 공을 들여 등장시킨 프랑스 파리 경찰청장 발렝탱을 퇴장시킨다. 희대의 도둑 플랑보는 단지 브라운 신부에게 몇 번 꼬리를 잡혔다는 이유만으로 회개한다. 이 책의 마지막 편 ‘세 개의 흉기’에서는 유쾌한 무신론자를 알코올 의존자에 자살광으로 설정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무신론자? 공정하지 못하다.
첫 단편 ‘푸른 십자가’에서 체스터튼의 특징이 잘 보인다. 그림 같은 풍경 묘사와 사진 같은 인물 표현은 미술 전공자로서의 기질이다. 특히 색과 모양을 세밀하게 썼다.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나열하는 과거사와 오가는 대화에서 풍자와 우스개로 독자를 웃긴다. ‘당나귀 휘파람’을 읽으면서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철학과 신학에 관한 사색과 비꼼도 돋보인다. “기적에 관한 한 가장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 기적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이다.”(17쪽) “그는 ‘생각하는 기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무식한 말은 현대 운명론과 물질주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생각할 수 없으므로, 기계는 기계일 뿐이다.”(17~18쪽) “자네, 이성을 공격했지 않나. 신학을 하는 사람에게 그리 좋은 태도가 아니지.”(48쪽)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잡지에 단편소설 형식으로 게재한 후 묶어서 단행본으로 나왔다. ‘결백’은 그 첫 권이다.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 수수께끼가 풀리면, 명백한 진실을 우리가 못 보았음에 무릎을 치게 한다. 기이한 일이 평범한 현실로 밝혀진다.
회개한 플랑보는 사립탐정으로 브라운 신부와 사건을 함께 맡기도 한다. 물론 사건의 해결은 신부가 맡는다. 플랑보는 신부의 말을 들어주는 정도다. 전직 범죄자와 성직자라는 특이한 커플이다. 어마어마한 덩치로 날쌔게 움직이며 호들갑을 떠는 장신의 플랑보와 천천히 움직이며 차분하게 말하는 단신의 브라운이 대조를 이룬다.
우리의 주인공 브라운 신부는, 대개들 어이가 없겠으나, 범인과 그 과정을 알더라도 그 사람을 놓아주거나 자백하게 한다. 범죄자를 악(惡)으로 낙인찍고 체포하고 처벌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권선징악보다는 범행이 일어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무게를 두었다. 이 때문에 온화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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