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 10점
G. K. 체스터튼 지음, 봉명화 옮김/북하우스

G. K. 체스터튼 브라운 신부 전집 2 지혜 - 범죄 수수께끼와 인간 본성 성찰의 결합

브라운 신부 시리즈 2권 지혜에는 미신, 전설, 소문 등을 이용한 범죄 수수께끼가 주로 등장한다.

'기계의 실수'에서 나오듯, 기계는 실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진실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실수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기도 사람이다. 기계는 기계일 뿐이다. 사람은 어떤 일이든 그에 대한 의미 부여, 즉 자기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체스터튼은 추리소설집 '지혜'에 실린 단편소설들로 선입견, 미신, 전설, 소문 등에 정신이 팔려서 진실을 보지 못하는 맹점을 꼬집는다.

보통 추리소설은 한 번 읽고나면, 그러니까 트릭의 정체와 범인을 알게 되면 그 즉시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매력을 잃고 더 생각할 것도 없다. 그냥 재미있었다로 끝난다. 하지만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를 읽고나서 사색에 빠지게 된다. 범죄 수수께끼 이야기 형식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읽을 수 있다.

탐정소설에서 주인공 탐정은 자신의 추리력을 한껏 뽐내며 유아독존식의 천재형인 경우가 많은데, 정작 이 브라운 신부는 그런 게 거의 없다. 오히려 외모는 멍청해 보이고 말은 바보처럼 한다. 그럼에도 이 순박해 보이는 신부의 통찰력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한다.

'통로에 있었던 사람'은 여배우의 살인범으로 통로에 있었던 사람을 지목한다. 하지만 목격자마다 그 사람의 모습이 제각각이다. 결국 밝혀진 진실은 우스꽝스럽게도 자기 자신을 본 것이었다. 그럼에도 자기 자신으로 보지 못했다. 거울에 나타난 자가 살인범이라고 확신하고 본 탓이었다. 선입견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이다.

'산적들의 천국'은 일종의 사기극이다. 산적이 진짜 산적일 필요는 없다. 산적으로 보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서 또 사기를 치려는 사람.

브라운 신부는 '보라색 가발의 비밀'에서 귀족의 악명 높은 전설을 이용하려는 자의 사기극을 밝혀낸다. 귀족 가문에 전해내려오는 저주를 사람들이 워낙 믿기 때문에, 이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저주 따위는 없음을 가발을 써서 감춘다.

'징의 신'은 부두교 의식 미신을 이용한 범죄다. 역설적으로, 살인을 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밀실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은 공개된 장소임을 보여준다.

'글라스 씨는 어디에?'는 선입견으로 일어난 해프닝이다. 범죄가 일어났다고 생각하기에 그에 맞게 일어난 일과 목격한 것들을 그에 짜맞춰 해석한다. 그래서 잘못된 결론에 이른다. 실제로 밝혀진 진실은 범죄 없음이었다.

'존 블노이의 기이한 범죄'는 두 가지 점에서 놀랍다. 첫째는 존 블노이의 소박한 성품이다.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블노이는 돈도 명예도 별 욕심이 없다. 질투도 없다. 속세의 욕망에 완전히 무관심한 자다. 둘째는 클로드 챔피언 경의 질투다. 자신의 성공과 명성을 눈꼽만큼도 부러워 하지 않는 블노이에게 화가 나서 미쳐버린다. 질투를 받지 못해 질투가 나다니.

'브라운 신부의 옛날 이야기'는 전설로 내려오는 이상한 사건을 풀어냅니다.

'허쉬 박사의 결투'는 기묘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모든 것을 틀리게 말하려면 속속들이 모르는 게 있어서는 안 된다네." 어떤 것을 완벽하게 틀리게 말하려고 완벽하게 옳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브라운 신부 전집 2 [지혜] G.K. 체스터튼 / 북하우스

지혜 - 10점
G. K. 체스터튼 지음, 봉명화 옮김/북하우스

체스터튼은 문장을 회화 그림처럼 그리고 색칠하듯 쓴다. 인물과 공간 묘사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 사건 전개보다는 그런 묘사 문장이 반 이상 차지해 버린다. 수수께끼 풀이에 집중하려는 추리소설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문장은 비경제적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읽기를 방해한다. 애거서 크리스티처럼 단순하고 간단하게 묘사되지 않기 때문에 지루하게 읽힌다.

반면, 단편소설이라는 한정된 양 안에서 반전을 노리기 때문에 복잡한 트릭은 거의 없다. 너무 단순해서 읽고나면 허탈하고 뭔가 더 있어야 하지 않나 아쉬울 지경이다.

너무나도 이상하고 엉뚱하고 비상적인 현상을 제시하고 난 후에 명백하고 단순하고 상식적인 해결을 보여준다.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 대부분이 상식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역이용하는 트릭이다. 가문의 저주, 무용담, 전설, 부두교, 소문 등 일상적으로 그렇게들 생각하는 것이 실은 전혀 그렇지 않거나 정반대의 진실이 들어난다.

'브라운 신부의 옛날 이야기'는 아주 기이한 죽음을 보여준다. 머리에 한 개의 총알이, 그리고 또 견대에 또 한 개의 총알이 뚫고 간 구멍이 있었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브라운 신부는 들은 이야기만으로 수수께끼를 간단명료하게 풀어낸다.

채스터튼은 이 책에 실린 '추리소설의 옹호'에서 추리소설이 단지 저급대중문학이 아니라 예술적이기에 사람들에게 읽히고 인기가 있다고 주장한다. "추리소설의 제일 중요한 가치는 현대인의 삶에서 시적인 면을 표현해주고 있는 유일한 대중문학이면서 가장 초기형태라는 데 있다." 추리소설이 시적이다? 묘사적이라는 뜻인 듯하다. "위대한 작가들은 고양이의 눈과 같이 거대한 도시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과 감동적인 분위기를 글로 옮기는 일"을 한다. 추리소설만 그렇다기보다는 소설 자체가 그렇지 않나? 그다지 공감이 안 된다. 추리소설이 "로망스에서의 성공적인 기사 수업"처럼 사회 정의 수행자로서의 모험담이라는 주장은 공감할 수 있었다.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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