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생거 사원 혹은 노생거 수도원(펭귄클래식코리아만 이 제목을 쓴다.) 번역본이 다섯 개인데(현재 구입할 수 있는 것은 네 개) 그중에 을유문화사 판을 선택했다. 표지 그림이 제일 예쁘다. 예쁜 것은 누가 뭐래도 옳다. 다른 이유는 없다. 마침 제일 최근에 나왔다. 2015년 3월.

 



을유세계문학전집은 이 책이 처음이다. 만듦새가 좋다. 실 제본에 두꺼운 표지. 갈색 갈피끈. 적당한 크기. 펭귄클래식코리아보다는 세로가 1센치미터 더 작고 가로는 표지만 같고 본문 내지는 4밀리미터가 더 작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보다는 세로가 3센치미터 작다. 아니 그 반대로 말하는 것이 맞다. 민음사의 세로가 길다. 가격도 적당하다.

제목 번역은 직역이다. 노생거 사원/수도원. Northanger Abbey. 소설을 읽어 보면 노생거는 옛날에 사원/수도원이었던 대저택이다. 따라서 뜻에 충실하게 옮기면 '노생거 저택/대저택'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옮기지 않는 것이 올바른 이유는 이 소설이 그런 사원/수도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고딕소설을 풍자하면서 쓴 연애소설이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 당시에 유행하고 많이 팔린 소설은 고딕소설이다. 다음과 같은 전형을 따른다. 일단 배경이 옛날 사원이나 수도원이다. 이곳에는 비밀이 있디. 여자주인공이 그 저택에 초대되어 가게 된다. 그리고 살인과 음모 속에서 자신의 사랑을 발견한다.

고딕소설을 광적으로 좋아하고 많이 읽은 여주인공이 우연히 그런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사원/수도원 저택에 초대를 받으면서 벌어지는 요절복통 해피엔딩 로맨스를, 오스틴은 그려낸다.

초기 작품이라서 '오만과 편견'의 글솜씨까지는 보여주지 않지만 곳곳에서 '오만과 편견'의 자취를 읽어내는 재미가 있다. 오스틴의 소설은 서로 비슷하다. 우여곡절 끝에 여주인공이 좋은 남자랑 결혼한다. 그리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오스틴은 당시 유행하는 소설과는 다른 소설을 쓰고자 했음이 분명하다. 대세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자신만의 리얼리티는 당시 유행하는 소설의 허구성을 깨뜨리면서 만들어간다. 이 소설의 여자주인공 캐서린 몰란드가 고딕소설의 상상이 깨지면서 현실의 진짜 로맨스를 얻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돈 문제와 신분 상승 기회를 배제하거나 모른 척하면서 쓴 로맨스는 설득적이지 않다. 그래서 대놓고 남자 연소득과 여자의 재산을 정확한 금액으로 말한다. 남녀 주인공이 별다른 오해나 갈등이 없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른다? 아니다. 반드시 서로를 오해하고 그래서 갈등하다가 마침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해서야 결혼한다.

물론 제인 오스틴도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거나 중요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전쟁과 정치다. 그것은 남자들의 영역이고 여성인 자신이 잘 알지도 잘 다루지도 못하는 소재였다.

제인 오스틴 소설 속 남자주인공은 남자답다기보다는 여성적이다. 헨리 틸니는 무슨 남자가 옷감에 대해서 그리 잘 아는지. 여동생한테 들은 거라지만. 뭔 남자가 말을 그리 쫑알쫑알 수다스럽게 하는지. 여성들이 읽는 책을 많이 읽었다고는 하지만.

특히, 이 초기작 '노생거 사원'에서 주목할 점은 작가가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자 열망했는지 이 소설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신의 위대한 힘이 드러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과 인간 본성의 변화에 대한 가장 행복한 묘사와 위트와 유머의 생생한 발현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선별된 언어로 전달되는 그런 작품"(40~41쪽)을, 제인 오스틴은 최고의 소설로 생각했으며 이후 그런 소설을 써낸다. 


노생거 수도원
제인 오스틴 지음, 임옥희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펭귄클래식코리아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 하고 직역했다. 을유문화사 조선정은 맥락과 문화배경을 알고 했다.

1권 1장 two good livings.
을유: 두 개의 목사 자리
펭귄: 두 가지 확실한 생계 수단

펭귄클래식코리아 번역서의 주석은 챙겨 볼만하다.

2015.04.17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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