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의 길을 가라
프랜시스 타폰 지음
시공사 펴냄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겠다는 사람을 봤을 때, 우리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여기면서도,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며 부러워한다.
타폰은 잘나가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산행을 감행한다. 그후 이 책을 쓴다. 여행기를 바라는 사람한테는 실망스럽고 독창적인 인생론을 기대하는 분한테는 미흡하리라. 그래도, 가끔씩 읽으면 힘이 난다.
책의 제목과 목차를 보자 자세히 읽기도 전에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 계발서. 일곱 가지 원칙. 성공이니 꿈이니 행복이니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라고 하겠지. 그게 쉬운가. 누가 몰라서 못하냐고. 이런 책 읽기는 비눗방울 놀이야. 잠깐 보였다가 사라진다고.
본래 영어 제목을 보니 여행기다. 하이크 유어 온 하이크(HIKE YOUR OWN HIKE), 당신만의 산행을 하라. 그 다음에 보이는 것은 지도다. 미국 동부 산맥인 애팔래치아. 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의 메인 주에서 출발한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샤이닝]을 봤다면, 시작 장면이 떠오르리라. 그 험준한 산악이 아찔하게 펼쳐지리라.
난 여행기는 읽고 싶지 않아. 더구나 산행이라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등산이야. 아이쿠야. 차츰 읽어 들어가니, 이 책의 참모습이 보였다. 자기 계발서? 어느 정도는. 산행 여행기? 어느 정도는. 도대체 무슨 책이냐고?
월든의 21세기 산행 버전이다. 번잡한 문명에서 단순한 수풀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서 정말 잘사는 게 뭔지 생각한다. 하버드 대학 졸업생 헨리 소로 대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 관리학 석사(MBA)를 취득한 후 실리콘 벨리에서 잘나가는 회사에 다녔던 프랜시스 타폰이 등장한다. 타폰은 도끼 대신 가벼운 배낭을 들었다. 그는 숲 속에 홀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는 대신 여자 친구와 함께 산맥을 따라 걸었다.
소로 씨가 살던 시대나 타폰 씨가 사는 현대나, 좋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다른 뭔가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드물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버지가 부자야? 휴대폰 벨소리로 떼돈을 버셨나? 주식이 대박났구나! 로또 맞았구나! 뭐야? 다 아니라고. 아, 그래그래, 이제야 알 것 같군. 경영하던 벤처 회사가 쪽박이 났군. 빚쟁이를 피해 숲속으로 도망치는구나. 아니라고. 아니라면 왜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삼천사백팔십구 킬로미터를 걷느냔 말이야. 그것도 비바람 몰아치는 험준한 산맥을 따라 걷냔 말이야. 메인 주에서 조지아 주까지 그레이 하운드(미국의 대표적인 버스 회사 이름이다. 버스에 회색 사냥개 그림이 그려져 있다.)를 타고 편히 가면 될 걸 도대체 육 개월이나 그 고생을 왜 하냔 말이지. 그냥 한번 미친 짓을 해 봐야 사는 게 재밌냐?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판에 박은 듯 반복되는 생활과 무덤의 유일한 차이는 깊이밖에 없다." -엘런 글래스고-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아프다. 날카로운 인용이다. 우리의 위선을 사납게 찔러댄다. 뭐 좀 하고 싶은 데 돈이 없어. 시간이 없어.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어. 하고 싶은 일이지만 돈이 안 되니까 나중에 취미로. 지금 삶이 만족스럽다면 이 책을 펴지 않았으리라. 이 글을 읽지도 않았으리라. 마음속에서 끙끙거리는 무엇이 있으리라. 당신은 변화를 바란다. 아닌가. 아니라면 도대체 왜 여기까지 읽은 거야. 어서 변화를 바란다고 말해. 착하다, 독자여. 지은이는 산행 중 캐터딘 산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경험이었단 얘기다.
프랜시스 타폰은 자신의 애팔래치아 트레일(AT)을 이야기하면서 정말 잘사는 건 이런 거라고 차근차근 얘기한다. 자, 출발!
첫 번째 원칙: "사람들은 다 자신만의 하이킹을 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가? 사막을 상상해 보라. 당신은 사막에 왔다. 사막에 길이 있는가. 없다. 아니, 있다. 당신이 걸으면 바로 그 발자국 하나하나가 길이다. 사는 데 정답은 없다. 지금 살고 있는 게 사는 거다. 하지만 대개들 사회가 정한 정답을 따르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정답은 뭔가. 서울대, 삼성, 검사, 판사, 의사, 변호사, 사장님, 회장님,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 연예인. 프랜시스는 말한다. "그저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하면서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사람은 인생의 핵심을 놓치고 사는 것이다. 순례자의 목적은 인생을 지금 즐기는 것이지 은퇴 이후로 미루는 것이 아니다." 다시 또 아프다. 그만 찔러라.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할 수밖에 없잖아요. 지은이가 또 찌른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일단 내가 이것과 그것과 저것만 얻고 나면 삶을 즐기기 시작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물질적 조건이 삶을 즐기는 데 꼭 필요한 건 아니란 말씀이다. 삶의 순간순간을 즐기고 누리는 마음을 지녔다면 이 글은 물론이고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잘사시네요. 안녕히.
두 번째 원칙: 돈과 물질의 주인이 되라. 노예가 되지 마라. 현대 소비 사회에서 그게 쉽겠어요. 저자가 제안하는 비법은 간단하다. 일상적으로 자주 반복하는 지출에 주목하라. 정말 필요한지 숙고한 후 그 소비 습관을 버려라. 그러면 돈이 부족할 일이 생기지 않다. 새로운 기술로 나온 제품은 그 초창기가 아니라 번창기에 사라. 그러면 싸면서도 품질이 좋은 걸 쓸 수 있다. 할 수 있다면 아예 그런 물건 갖기를 거부해라. 사는 데 정말정말정말(정말을 이 말까지 네 번 썼다.) 필요한 것은 드물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자유를 얻고 싶다면 지출을 줄여라.
세 번째 원칙: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열정을 갖고 해라. 그러면 돈이 당신에게로 간다. 당신이 돈을 좇지 않아도 된다. 무슨 말인지? 타폰 아저씨는 마이클 크라이튼(책에는 마이클 크리치톤으로 나온다.)의 예를 든다. 그는 하버드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땄다. 그런데 그는 작가가 되겠다고 의사를 그만두었다. 그럼 그가 처음부터 글을 잘 썼냐. 아니다. 그는 작문 교수한테 C학점(수우미양가에서 미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보통이거나 별로라는 뜻이다.)을 받았다. 그는 열정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 실패? 그가 끝내 무명 작가로 삶을 마감했다면? 아니다. 그의 삶은 그 자체가 성공이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누구처럼 돈 때문에 남의 눈치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죽어라고 하다가 정년 퇴임 후에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네 번째 원칙: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서 배워라. 베토벤은 처음부터 명곡을 썼는가. 하이든한테서 배웠다. 물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밀고 나아가면서. 열린 마음이 없으면, 자기만 옳고 남들은 죄다 틀리다고 여기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다섯 번째 원칙: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라. 여섯 번째 원칙: 남을 배려하고 도우라. 일곱 번째 원칙: 어쩔 수 없는 일과 지난 일에 신경을 쓰거나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소용없는 짓이다. 왜 다섯 번째 원칙부터 별 다른 말이 안 붙냐고 따지는 이가 보인다. 이주일 선생님의 유행어 중에 불후의 명작이 있다. 그 말은 "따지냐?"다. 간단하지만 심오한 말씀이다. 사람은 게으르다. 부지런은 습관이지 본성은 아니다. 내가 이해한 대로 이렇게 글을 풀다 보니 이 책의 세세함이 많이 깎였다. 재미있고 웃기고 엉뚱한 이야기도 많다. 그러니 나머지는 직접 읽어 보길 바란다.
이 책을 읽고 산행을 떠나려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긴 하겠지. 하지만 정말 좋은 직장에 사표를 내고 나올 사람은 없으리라. 하지만 삶의 변화를 원한다면, 자기의 길을 가겠다면, 지금 직장이 아무리 좋다고 남들이 얘기해도 당신은 떠나리라. 꿈을 향해 내면이 가리키는 곳으로 힘차게 떠나리라. 끝으로 가장 중요한 문장 하나를 인용한다. 이 모든 말이 물거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넘어야 할 도전은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것이다." 뭘 하든 하고 싶은 일 하고 잘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