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08년 발행 절판
일본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자인 다카하시는 우리나라에 이상한 소설, 소설 같지 않을 것만 같은 소설인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의 작가로 나름 유명하다. 그가 낸 창작론도 그의 소설처럼 독특하다. 시작부터 웃긴다. 초등학생들한테 소설이 뭐냐고 어른들한테 물어오라고 숙제를 낸 후, 그 결과를 정리하며 문학을 이야기한다. 글 쓰는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면서 흉내를 권한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일본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자다. 본인 스스로 이 책에서 말하듯, 일본의 평범한 독자는 나쓰메 소세키나 다자이 오사무는 잘 알아도 이 작가의 이름은 잘 모른다. 일본 대중 문화의 여러 내용을 가져다 웃기는 일을 자기 책에서 상당히 많이 함에도 썩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작가는 아니다. 이 소설가의 쓰기 방식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소설이 아닌 것만 같은 걸 쓰고 있으니.
그런 그가 글쓰기 책을 썼으니, 기존 소설 창작론과는 다른 어투로 다른 시각에서 얘기를 한다. 그럼에도, 그의 말은 친숙하고도 익숙하게 들린다. 소설 창작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제시하는데,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거다. 독창성, 그리고 흉내. 기름과 물처럼 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데도 책을 다 읽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독일 어린이책 작가인 에리히 캐스트너가 그의 대표작 '에밀과 탐정들'을 쓰게 된 경유를 인용하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뭔가 대단할 걸 써내려 하는 건 창작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단다. 소설과 놀고 있으면 소설이 나타난다. 이 무슨 선문답인가. 캐스트너가 자신이 애써 쓰려 했던 소설은 중단하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어린이 얘기를 쓰게 된다. 그리고 그 작품은 그의 최고 작품이 되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나? 그는 지금껏 보지 않았었던 것을 보았다. 그걸 써서 독창성을 획득한다.
겐이치로가 강조하는 것은 남다른 시각이다. 기존 소설 쓰기 방식을 세련되게 다듬은 글보다는 거칠지만 자신만의 눈으로 보고 자신만의 귀로 듣고 자신만의 혀로 맛본 후에 쓴 글이 진짜 재미있다는 거다. 그가 본보기로 든 글을 읽고 나면 이게 정말 문학 작품인지 의문이다. 마약쟁이의 수기와 포르노 배우의 자서전. 거친 문체임에도 거기에는 개성이 뚜렷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을 흉내 내면, 혹시나 표절이 되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문체를 일부러 빌려 썼다. 이거 표절이 아닐까? 세상을 보는 눈과 말하는 투가 비슷하다. 허나, 하루키의 입김이 서려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서 말하는 차용 방식, 패러디다.
흉내는 표절과 달리 다른 사람의 방식을 똑같이 베끼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방식을 거쳐서 변형한다. 성대 모사는 비슷한 것이지 똑같지는 않다. 배철수가 자신의 목소리를 말하면 전혀 웃기지 않으나, 다른 누군가 그의 목소리를 거의 같게 따라하면 왜 그리 웃긴 걸까. 비슷하면서도 다른 무엇 때문이리라. 정확히 똑같다면 웃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리라.
많은 소설가들이 선배 작가의 작품을 흉내 냈으나 그대로 쓰진 않았다. 결국에는 자기 방식대로 썼다. 아기는 엄마 아빠가 말하는 걸 따라 하며 말하는 법을 배운다. 허나, 그 목소리는 다르다. 성장하여 자기 목소리를 낸다. 자기 얘기를 한다. 자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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