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Gold (1995년) 아이작 아시모프 오멜라스(웅진) | 2008년
"사건에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독자가 서스펜스 넘치는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급박하게 넘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125쪽.
계속 읽게 하는 비결이다.
"내가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냐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못해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을 때까지 생각한다네." 137쪽.
소설 쉽게 쓰는 방법 따윈 없다. 원래 어렵다.
아시모프는 딱히 소설 창작법이나 작문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단다. 그럼에도 그렇게나 많은 소설을 홍수처럼 써낼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일까? 뭔가 비결이 있지 않을까? 정작 해주는 말은 상식 그 자체였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소설가는 크게 두 가지 스타일이 있다. 세부사항과 사건 개요를 완벽하게 짜고 글을 쓰는 사람과 대충 두루뭉실하게 막연하게 생각하고 세부사항과 사건 진행을 생각해내는 사람.
아시모프는 후자였다. 그의 말을 들어 보라. "지금 가지고 있는 건 사회적 배경, 위기, 해결책, 등장인물과 시작뿐이다. 그러면 내 소설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잘 짜인 이야기 구성에 들어가는 수많은 세부 사항들은 언제 결정하는가. 유감스럽지만 나는 글을 써가면서 세부 사항을 구성한다. ...... 첫 장면을 우선 쓴다. 그것이 끝날 때쯤엔 두 번째 장면이 떠오른다. 두 번째 장면의 결말에 이르면 세 번째 장면, 그런 식으로 95장 정도까지 가면 소설이 끝나게 된다." 140쪽.
어떻게 다작하면서 빨리 쓸 수 있는지는 알긴 했는데, 여전히 경이로워 보인다.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 Mystery Writer's Handbook 미국추리작가협회 지음 로렌스 트리트 엮음 정찬형, 오연희 옮김 모비딕 펴냄 2013년 2월 발행 전자책 없음
추리소설 쓰는 방법을 알아보려고 읽었다가, 역시나 소설 쓰는 것은 쉽지 않구나를 깨달았다. 장르소설이라고 해서 쓰기 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이지 오만이다.
어렵든 쉽든 어쨌거나 이 책으로 추리소설 쓰는 방법을 알아보자.
첫째, 추리소설을 쓰는 것과 추리소설을 읽는 것은 그 방향이 다르다. 아무리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도 정작 쓰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이 점을 모르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의 독자는 추리소설 작가가 뿌려 놓은 여러 단서를 보면서 용의자들 중에 범인이 누구인지 생각한다. 작가는 반대다. 범인을 정한 후 최대한 범인을 알아차릴 수 없도록 하면서 여러 실마리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 드러낸다.
둘째, 범죄소설을 쓰기 전에 배경지식을 얼마나 갖추었나 반성해 보라. "추리소설 작가에는 '현대범죄수사' 같은 범죄 수사 교과서나 '법의학, 병리학, 독극물학' 같은 법의학 교과서, 그리고 '범죄학 개론' 같은 경찰학 교과서들의 최신판이 필요하다." 9~10p
이미 읽은 소설에서 대충 알고 있으면 충분할까. 사후경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나라 경찰조직은? 그들이 쓰는 은어는? 우리나라 법의관은 어떻게 일하고 있나? 교도소는? 형법은? 범죄 재판 과정은? 미행은 어떻게 하는가?
그런 거 몰라도 재미있게 쓸 수 있을 거라고? 그딴 거 몰라도 추리소설을 쓸 수 있다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데뷰작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은 독극물 지식과 영국 특유의 법률 지식으로 만든 작품이다. 알아야 쓴다. 상상만 해서는 쓸 수 없다. 재료 없이 요리가 안 되듯.
물론 이런 지식을 무시하거나 아예 멋대로 꾸며 쓴 추리소설도 있긴 있다. 밀른이 쓴 '빨강집의 수수께끼'는 형사 사건 수사의 기본 절차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 편한 대로 썼다. 그리고 그렇게 써야 이야기가 성립된다. 이 이야기에서 신원 조회 문제는 수수께끼의 핵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말이냐. 범죄 수사 관련 지식을 정확하고 명확히 알고 있되, 지나치게 사실대로 쓸 필요는 없다. 소설은 사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보이게 쓰는 것이니까.
픽션과 논픽션은 다르다. 달라야 한다. 병리학자가 퍼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에서 법의학 관련 묘사가 실제와 너무 달라서 황당했다고 해도, 소설에서는 용납이 된다.
셋째, 소설 쓰는 방법 자체는 정말이지 간단하다. 문제는, 간단해 보여도 실제로 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 제4장 플롯에서 프레드릭 브라운이 살짝 웃음이 나게 가볍게 쓴 글을 읽고나면, 소설 쓰기가 얼마나 힘든 노동인지 알게 된다.
브라운이 말하는 플롯 쓰기 방법은 '덧붙임'이다.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대 쉽지 않다. "덧붙임은 인물, 주제, 배경, 단어 등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시작할 수 있다. 덧붙임을 통해 거기서부터 플롯이 만들어진다." 57p
소설 쓰기는 상상하고 생각하고 느끼면서 문장을 하나씩 만드는 일이다. 생각을 해야 하고 문장을 써야 한다.
가만히 방에서 놀고먹으면서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소설 쓰기는 철저한 정신노동이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이야기를 뽑아내는 작가의 경험담에 경악했다. 노동도 놀이처럼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럴 수 있겠는가.
넷째, 퇴고가 프로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를 나눈다. 정확히는 작품에 대한 애정 유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퇴고는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철저하다. 글쓰기의 진짜는 초고가 아니라 퇴고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매뉴얼일 뿐 현실은 아니다. 지키면 좋을 거라는 것이 꼭 지키라는 것은 아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다.
퇴고의 관점에서 엄밀히 볼 때,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는 아마추어 작품이다. 그는 명백한 오류 지적에도 원고를 수정하지 않았다. 한 번에 내달려 쓰고는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도일이 홈즈를 싫어했다는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이다. 돈 때문에 쓴 것도.
반면 끝도 없이 퇴고를 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한 문단 혹은 한 문장 안에 계속 뭔가를 집어 넣으려는 짓이 프로라고? 미친 짓이다. 정상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퇴고란 삭제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공들여 힘들여 쓴 글을 내 몸 같은 글을 잘라내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의 영역이라기보다는 편집 디자인의 측면이다. 대개 작가들은 죽어도 자기가 쓴 글을 삭제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느니 자기 팔다리를 잘라낼 것이다. 힘들여 썼는데 그걸 지우려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퇴고는 글이 빠르고 정확하게 읽히게 수정하는 것이다. 초고를 되는 대로 쓴 후에 퇴고에서는 쓸데없이 반복되는 구절이나 표현, 군더더기의 부사와 형용사를 잘라낸다. 그러면 문장과 문단과 글 전체가 가볍고 빠르게 읽히게 된다.
퇴고는 독자 입장을 생각해야 할 수 있다. 독자가 잘 읽도록 배려하는 작업이다. 작가 본인 입장만 생각하면 절대 한 글자도 고칠 수 없고 고치기 싫으며 고치기를 거부한다. 왜 애써 추가 노동을 해야 하는가.
작가 수업 Becoming a Writer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공존 펴냄 2018년 발행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날마다 글을 쓰는 이는 드물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사람은 많다. 정작 영어를 우리말처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은 극 소수다. 피아노 연주를 잘하고 싶다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날마다 두 시간 이상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 그런가? 작가가 되는 방법,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방법, 피아노 잘 치는 방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작가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가는 무슨 일은 하는가. 문장을 쓴다. 문장들로 문단을 만들고 문단들로 글을 완성한다. 글 한 편 써달고 하면 도망간다. 한 문장은 누구나 쉽게 쓰지만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을 연결하여 하나의 그럴듯한 일관성과 충실한 내용을 담은 글을 완성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이미 누가 써놓은 것의 오탈자를 잡거나 편집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창작 행위다.
외국어는 어떤가. 땡큐 한 마디는 쉽다. 여러 상황에서 적절한 회화를 구사하려면 여러 표현을 알아둬야 하고 거침없이 나올 정도로 반복해서 암기해야 한다. 당신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는 힘들고 어렵고 재미도 없다고 이미 마음속에서 확신하기 때문이다.
피아노 연주도 그렇다. 도레미를 한 손 한 손가락으로 한 번씩 치기는 쉽다. 유치원생도 한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치려면? 양손으로 동시에 여러 건반을 강약 조절해서 곡의 느낌에 어울리게 눌러야 한다. 당신은 그럴 수 없다. 할 수 없다고 포기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고 싶다면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마침내 해내는 사람은 무작정 노력하는 자가 아니라 확고히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자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 이 책 '작가 수업'을 폈으리라. 작가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포기하지 않고 날마다 문장, 문단, 글을 완성하고 여러 출판사와 공모전에 내는 것이다. 대개들 안 하고 그만둔다.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포기하지 말라는 한 마디를 이토록 반복해서 강조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책을 써내는 글쓰기가 워낙에 외롭고도 지루하고 기나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작가들이라 해도 글을 쓰는 동안은 혼자다. 옆에서 잘 썼다고 말해주거나 격려해주는 사람이 없다. 일단 글로 쓴 후에야 비로소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고 몇 마디 말을 들어 볼 수 있으니까.
특히, 글 막힘 현상은 작가에게 지옥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글이 더 안 써진다. 하루, 이틀. 괜찮다. 한 달, 일 년. 어떻게든 되겠지. 오 년, 십 년. 당신은 영감님만 부르게 되리라. 아무리 애타게 불러봐야 대답은 없다.
글이 더 안 써지는 상황에 직면했거나 영감을 무작정 기다리고 있거나 몇 자 그적거리다 그마저 안 하고 난 작가가 될 수 없다고 포기했던 분이라면 도러시아 브랜디의 이 책이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미국 작가들이 이 책을 작가 지망생에게 추천했다. 나는 이 책을 원서로 먼저 읽었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레이 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ZEN IN THE ART OF WRITING)'에서, 줄리아 캐머런은 '아티스트 웨이'에서 이 책을 언급했다. 번역서 끝에 붙은 수많은 서평을 보라.
'작가 수업'은 글쓰기가 아닌 작가가 갖춰야 할 습관을 다룬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책이며, 작가 지망생이든 이미 작가이든 필독할 책이다.
이 책은 작가의 습관을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글을 어떻게 쓰라는 '작법'이 아님을 명심하길 바란다. 이 책의 원서 제목은 'How to Write'가 아니라 'Becoming A Writer'다. '글 쓰는 법'이 아니라 '작가 되는 법'을 다룬다.
당신은 이런 의문을 품지 않았는가. 작가라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이 쓸 수 있을까? 영감을 날마다 꺼내 써도 영원히 줄지 않는 '복주머니'라도 있나?
작가는 글을 꾸준히 많이 잘 쓴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비법을 도러시아 브랜디이 가르쳐 준다. 이른바 '작가들만의 비밀'이다.
에밀 쿠에가 '자기암시'에서 무의식(긍정적 상상)이 의식(의지, 노력)을 이긴다고 했듯, 이 책의 저자도 같은 말을 한다. 글을 쉽게 많이 쓰려면 무의식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 책 '작가 수업'은 이 무의식을 길들이는 여러 방법을 소개했다.
글이 소나기처럼 쏟아져서 순식간에 머리에서 목, 어깨, 팔, 손가락으로 좌르륵 흘러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상태가 되려면 의식적 노력으로는 잘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야기를 한 편 써 보겠다고 굳게 결심하게 책상에 앉았는데, 공책을 폈으나 한 글자도 못 쓰고 엉뚱하게도 연필만 수십 개 뾰족하게 깎거나 철새가 삼각형 대형으로 날아가는 창밖 풍경에 마음이 가 있지 않던가. 그러지 말고 무의식을 이용하자.
무의식 훈련의 첫 번째는 평소보다 30분이나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자기 검열을 하지 말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 내용이나 쓰는 것이다. 잠자는 상태와 깨어있는 상태의 중간 지대에서 자유 연상 글쓰기를 시행한다. 줄리아 캐머런의 '모닝 페이퍼'가 바로 이것이다.
이삼 일만 이를 실천해 봐도, 무척 놀라운 결과를 볼 수 있다. 자신이 써낸 글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정말 내가 썼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내 머릿속에 어떻게 이런 내용이 있을 수 있는지 당혹스럽다.
두 번째 훈련은 특정 시간대에 글을 쓰는 것이다. 당신이 날마다 오후 3시부터 3시 30분까지 글을 쓴다고 자신과 약속을 했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시간대에 글을 써야 한다. 마침 그 시각에 택배가 와서 어쩔 수 없이 글을 쓸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해서는 아니 된다. 여러 번 시험해 봐서 좋은 시간대를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이른 아침에 글을 쓰는 훈련과 아무 때고 글을 쓰는 훈련은 글을 자유자재로 거침없이 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88쪽) 저자는 이 두 가지를 성공하지 못하면 글쓰기 말고 다른 걸 하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이렇게 쓰기만 하면 작가가 되나? 아니다. 더 잘 쓰려면 반성하고 다듬고 고쳐야 한다. 여러 방법이 있겠으나, 역시 가장 유익한 것은 책 읽기다. 제9장 '작가로서 책 읽기'란 독자로서 한 번 읽는 게 아니라 그 글을 쓴 작가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읽는 것이다. 와, 이 문장 감동적이다. 밑줄 치자. 여기서 끝나지 말고 한 발 더 나아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이 소설가는 왜 이 부분에서 이렇게 썼을까? 더 좋게 읽히게 하려면 어떻게 써야할까? 이런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라.
그 외의 작가 습관은 잘 알려진 대로다. 아이처럼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보라. 솔직하게 써서 자신만의 독창성을 발휘하라. 작가라면 자기 노출을 감수해야 한다. 자기 표현을 즐겨라.
이 책의 핵심이자 바로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답은 제17장 '작가의 비법'에 있다. 도대체 영감을 어떻게 쉽게 빨리 얻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이다.
X : 마음 = 마음 : 몸
갑자기 공식? 188쪽에 나온 그대로 인용했다. X가 영감이다. 이 책에서는 작가의 재능이라고 표현했다. '이야기 구상'이라는 더 정확한 표현도 썼다. "몸을 가만히 놔두듯 마음을 가만히 놔두는 법을 익히라."(189쪽)
갑자기 영감이 떠오른 때를 기억해 보라. 마음이 고요히 있을 때 문득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릿하게 전기가 들어온 것 같지 않았던가. 참신한 아이디어나 해결책은 언제나 그렇게 생각난다.
이 정도까지 하면 누구나 작가는 될 수 있다. 하지만 실로 '위대한' 작가로서 영원히 기억되며 꾸준히 읽히려면 방구석에서 글 잘 쓰려고 머리만 굴릴 게 아니라 이 세상을 잘 살아야 한다.
"얼마나 좋은 작품이 탄생하느냐는 그대와 그대의 삶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그대의 감수성이 얼마나 예민한지, 분별력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그대의 경험이 독자의 경험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훌륭한 글쓰기의 요소를 얼마나 철저하게 익혔는지, 말의 가락을 가려짚는 귀가 얼마나 발달해 있는지에 달려 있다."(194~195쪽)
글에서는 정의를 말하고 생활에서는 온갖 비리와 배신으로 처세에만 능했다면, 과연 그를 '위대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고작해서 글 하나는 잘 쓰는 작가 나부랭이라고 부르겠지.
진정한 작가가 되는 진정한 비결은 사람다운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글을 잘 쓰려면 삶을 잘 살자. 아니 삶을 잘 살려면 글을 잘 쓰자. 글이 삶이고 삶이 글이므로 사는 것과 쓰는 것은 같다. 다음은 내가 만든 공식이다.
삶 : 글 = 마음 : 몸
글을 써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 것일까? 이 책을 옮긴 강미경의 말이다. "굳이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더라도 자신이 해석하는 세상을 자신의 언어로 담아내 동료 인간들과 공유하는 능력은 아주 중요하며, 그 능력을 깨우쳤을 때 우리의 삶은 한결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싶다."(208쪽)
글 쓰는 일이 삶을 사는 일이고 사는 것이 글쓰기가 될 때, 당신은 누가 뭐래도 작가다. 글을 써라. 삶을 살아라.
글쓰기의 기쁨 롤프-베른하르트 에시히 지음 배수아 옮김 주니어김영사 펴냄 2010년 발행 절판
작가들의 글쓰기에 관한 일화와 사례를 모은 책이다. 무려 2년이나 걸려서 모았다. 거의 전세계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 충고와 고민은 물론이고 문학 작품 출판 관련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안 세 봤는데, 책표지 문구의 주장에 따르면 무려 218명이나 되는 작가가 수록되었단다. 책 끝에 색인으로 붙은 작가 목록을 보면 거짓말은 아닌 듯. 하인리히 게스너부터 아테네 폰 드로스테 휠스호프까지, 우리나라 독자한테는 생소한 작가가 많다. 당연하게도 한국 작가는 없다.
읽어 보니, 글쓰기는 원칙이라 할 수 있는 게 없다. 각자의 상황과 취향에 맞게 쓸 뿐이었다. 좋아 보인다고 내게 어울리는 게 아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쓸지 고민해 본다.
왜 썼냐?
페터 빅셀은 운동신경이 둔해서란다.
린드그렌은 작가가 될 마음이 없었다. 딸 아이가 갑자기 "엄마, 삐삐 롱스타킹 얘기 해 줘요." 하고 졸라서 간단하게 즉석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후 사고로 누워 지내야 했는데, 본격적으로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써낸다.
셀마 라겔뢰프의 '닐스의 모험'은 아버지의 유산을 되찾기 위해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썼다.
트루먼 카포티는 남들과 자신이 다르기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부터 너무나 남들과 달랐습니다. 훨씬 지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주의력도 대단했죠. (중간 생략) 아무도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것처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비슷하게 흉내조차 낼 수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바로 그 점이 내가 글을 쓰게 된 강력한 동기입니다. 최소한 종이에는 내 인식과 사고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으니까요."
어떻게 썼냐?
존 어빙은 노력파다.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타고난 작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단지 나는 다듬는 일을 잘할 뿐이다. 단 한 번에 멋진 문장이 완성된 채로 광채를 번득이며 머릿속에 떠오른 적은 결코 없다. 그 대신 어떻게 하면 잘 고치고 다듬을 수 있는지 확실히 배웠다. 그래서 고치고 또 고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위대한 작가'는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는 것이다. 나보코프는 말한다. "작가에게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이야기꾼, 교사 그리고 마법사. 훌륭한 작가란 이 세 가지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마법사이다. 마법사의 성격이야말로 그 작가를 훌륭한 작가로 만들어 주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계획한 대로 쓸 수 있는가? 계획대로 된다면 계획만 세우면 된다. 세상 일이 그리 쉽게 풀리던가. 계획과 달리 이야기가 써져서 다시 쓰는 경우가 많았다. 계획과 즉흥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리라.
그라스는 소설 '양철북' 계획을 여러 번 수정했다. "실제로 글을 쓰다 보니 그 계획은 사실상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도 그 계획서가 공헌한 바가 있기는 했다. 첫 번째 원고, 두 번째 원고, 그리고 세 번째 원고 뭉치까지 내 서재를 덥히는 불쏘시개가 되어 난로 속으로 들어갔으니까."
그래도 추리소설은 계획대로 써야 하지 않을까. 레이먼드 챈들러의 대답은 단호하다. 계획을 세우는 것이 습관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단다. "내 소설은 계획으로 나오지 않는다. 내 소설은 스스로 성장한다. 성장하는 도중에 서로 상치하는 게 생기면 도려내 버린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쓰기 시작하다." 계속 수정하고 바꾸고 고쳐 썼다.
잘 쓰면 잘 팔리나?
멜빌의 '모디 딕'은 발표 당시에 독자들이 대놓고 외면했다.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멜빌이 쓴 것이라면 이제 아무것도 읽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글쓰기가 그렇게 좋은가? 완벽주의 글쓰기는 인생의 저주인가 축복인가. 매일 낮 1시부터 밤 1시까지 내내 글만 쓰는 삶이라니, 감옥이고 지옥이지 않은가? 플로베르는 글쓰기의 기쁨으로 하루 10시간을 홀로 지냈다. "내 심장은 기쁨으로 크게 뛴다. 나는 글을 쓰다가 스스로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모를 때가 있고, 멋진 아이디어와 그것을 표현한 근사한 문장에 흥분해 황홀경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그것을 생각해 냈다는 충족감이 나를 한없이 행복하게 한다."
가장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작가 이야기는 칼 마이다. 현실과 소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독자만 아니라 작가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칼 마이는 올드 샤터핸드라는 영웅을 만들어냈는데, 독자들은 그의 책을 읽고 주인공을 작가와 동일시하게 되었고, 작가조차 자신을 일명 올드 샤허핸드라며 떠들어댔다. 수십만의 팬들을 거늘였던 작가는 진실이 드러나자 몰락한다. 그 멋진 모험 여행담이 사실은 죄다 거짓말이었다. 소설이고 상징적인 의미였다고 변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소설 제목 이야기가 재미있다.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 처음 제목은 '제기랄, 죽었잖아'였다.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처음 제목은 '팬시'였다. 그 다음 제목은 '이정표'였으며 '음매, 음매, 검은 양'으로 바꾼다. 최종은 다행스럽게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이 제목 아니었으면 이 소설은 정말 말 그대로 바람과 함께 사라졌으리라.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한다면 흥미진진한 책이다. 비록 '글쓰기의 기쁨'을 체험할 수 없어도 구경할 수는 있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시나리오작가들의 101가지 습관 The 101 Habits of Highly Successful Screenwriters (2001년) 칼 이글레시아스 지음 이정복 옮김 경당 펴냄 2005년 발행
주변에 영화 시나리오 쓰겠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런 지망생을 위한 창작 교실도 널렸다. 그럼에도, 시나리오 한 편을 제대로 완성한 사람은 많지 않다. 습작을 다섯 편 이상을 넘긴 사람은 드물다. 대박을 터트리겠다는 무모함은 몇 달, 아니 일주일만 지나면 사라진다. 다시는 시나리오 쓰려고 하지 않는다. 시도는 쉽지만 완성은 어렵다. 포기는 순식간이다. 창작은 고되다.
시나리오를 쓰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종이와 연필?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컴퓨터? 있으면 좋다. 없으면 주변 피시방에 가면 된다. 열정과 끈기. 이 부분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 글을 쓰는 당신의 주변에 응원하는 자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마도 거의 대부분 없으리라. 도대체 언제쯤이면 제대로된 직장을 잡아 결혼해서 애 낳고 기르면서 어른이 될 거냐고 타박이나 들으리라. 힘들어서 미쳐 죽을 것 같을 때 이 책을 들여다 보라. 당신에게 용기를 주리라.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들의 말을 떠받들고 무작정 따라하진 마라. 충고나 조언은 언제나 그 사람의 입장이 반영된다. 자신한테 맞는지 검증해야 한다. 직접 해 봐야 안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에게 해 줄 말이 뭐냐고 물었더니, "끝내라!"라고 말했다. 이 간단한 말에는 두 가지 메시지가 있다. 하나는, 한 번 쓰기 시작한 이야기는 어떻게든 완성을 하란 소리다. 또 하나는, 말로만 쓴다고 궁시렁거리지 말고 손으로 행하라는 뜻이다.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자일 뿐이다.
이 책의 지은이가 맨 마지막에 하는 말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글을 써라."
이 책을 펴면, 선배 작가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당신을 격려한다. 자, 다시 한 번 글 쓰는 자리로 돌아가라. 그리고, 끝내라! 입 닥치고, 끝내라! 아무도 당신을 대신해서 글을 써 주지 않는다. 오직 당신만이 당신의 시나리오를 끝낼 수 있다. 우는 소리를 그쳐라. 그럴 힘으로 한 단어라도 더 써라. 완성을 해라. 또 다른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라. 계속 해라.
[밑줄 긋기] 만약 초보작가에게 핵심적인 충고 한마디를 하라고 한다면, 나는 매일 글을 쓰라고 하겠다. 그 일을 좋아한다면 글을 쓰면서 미리 작품을 준비해라. - 존 배스 463쪽
"나 자신을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이외의 모습으로는 생각해보질 않았다. 그러므로 내게 글쓰기는 간단히 그것을 추구하는 문제일 뿐이다." 어느 분야든 그렇지만 자신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저 할 뿐이다. 왜 쓰냐고 물어봐야 소용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없다.
"글 쓰는 일을 받아들여 습관으로 만들고 그 습관이 강박관념이 되기 전에는, 그 사람은 작가가 아니다. 글 쓰는 일은 강박관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말하고 잠자고 먹는 일처럼 본질적이고 생리적이며 심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 니위 오순다레
왜 사람들은 이야기를 그토록 좋아하고 찾는 것일까. 이야기가 없어도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지 않나. 이야기를 듣는다고 읽는다고 본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서사는 세계의 많은 것을 논리적, 순차적으로 파악하려는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서사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세계에 대한 인식, 생각, 기억, 행동들을 성공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용한 도구이며, 개인들 간의 의사소통과 공감을 돕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28p
말하는 게,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왜 그토록 중요하고도 절실한가? "에코는 형벌로서 타인의 말을 반복하는 소리만을 허락받았고, 인어공주는 목소리 자체를 스스로 포기했다. 발화하지 않은 말은 이야기가 될 수 없으며, 표현하지 않는 사랑을 로맨스가 될 수 없다." 103p
인어공주의 비극은 성형중독와 외모지상주의에 걸려든 여성들의 모습이다. 자신을 말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이고 사랑받으려만 한다.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 빌어먹을 수술을 하느라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다이어트와 값비싼 의상, 복잡하기 그지 없는 화장술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네 멋대로 쓸 수 없는 이유'는 학교라는 시스템 자체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대다수의 노예와 극소수의 지배자를 만드는 곳이다. 복종과 명령을 주로 배우지, 나는 누구인가 따위의 자기 성찰 따위는 안 배운다. 각자의 개성과 자기 표현은 점수로 표현할 수 없고 따라서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이퍼그라피아 - 위대한 작가들의 창조적 열병 The Midnight Desease (2004년) 앨리스 플래허티 지음 박영원 옮김 휘슬러 펴냄 2006년 발행 절판
작가를 지망하거나 이미 작가인 사람은 다음 두 가지 병을 겪습니다. 하나는 글이 너무너무 잘 써져서 주체할 수 없는 황홀경에 빠져 천국에 머무는 '하이퍼그라피아'이고, 다른 하나는 글이 막혀서 도저히 한 글자도 쓰지 못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지옥불에 타면서 고통을 겪는 '작가의 블록 현상'입니다. 두 가지 중에 하나도 경험한 적이 없다고요? 그럼 작가 지망생이 아니거나 작가가 아니죠. 독자로서 이런 현상이 궁금하다면 책을 펴세요.
글쓰기 중독이나 막힘은 아무나 경험하는 게 아니예요. 글쓰기에 대한 끝없는 열정 때문에 나타나는 강박 현상이거든요. 대개들 글 쓰다가 힘들면 그만두죠. 그러니 이런 열병에 걸려 고생하지 않아요.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이유죠. 글이 나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거든요.
글이 막히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안타깝고 주변에서 그 사람을 보는 입장에서는 안쓰럽죠. 증상이 심하면 몇몇은 머리에 총알을 박거나 가스오븐에 머리통을 넣거나 토스터를 꼭 끌어안은 채 물 가득 채운 욕조에 들어갑니다. 작가 중에 권총 자살이 보이죠. 리드 브라우티건, 어니스트 헤밍웨이.
글이 술술 잘 써지면 창조적 열정에 사로잡혔다고 좋게 말할 수 있지만, 병에 걸렸다고 얘기할 수도 있어요. 대체로들 예술에 대해서 좋게 보니까 이런 현상을 병이라고 부르는 게 아무래도 썩 유쾌하진 않을 거에요. 분명히 제정신은 아니죠. 저는 살짝 미친 사람들이 흥미롭습니다. 때때로 사랑스럽기까지 하죠.
천국과 지옥을 오가면서 쓴 글은 광기가 있어요. 모파상의 단편소설을 읽고 있으면 확실히 그가 세련되고 멋지게 미쳤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머리카락'을 읽어 보세요. 정말 환상적으로 제대로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쓸 수 없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럴은 어떤가요. 그는 수학자로서 논리적으로 미쳤죠. 해피 버스데이(happy birthday) 대신 해피 언버스데이(happy unbirthday)를 쓰죠. 언버스데이(unbirthday)를 사전에서 찾지 마세요. 안 나와요. 미쳤군요. 귀여워라.
이 책은 글쓰기에 지나치게 열중하는 현상에 대해 두 가지 입장에서 살펴 봅니다. 정신병으로 보기 시작해서 열정적인 삶의 모습으로 끝내죠. 의학 보고서로 시작해서 문학 예찬론으로 마무리합니다. 글쓴이는 이 병에 걸렸던 환자이자 의사로서 객관적으로 분석한 후 주관적으로 느끼라고 말합니다. 여러 사실과 분석 자료와 인용 글과 해설과 자기 글쓰기 체험을 늘어 놓고 뒤로 빠져요. 확답을 안 해요.
전두엽, 측두엽, 두정엽, 실비우스 틈새, 해마, 시상하부, 뇌량, 대뇌피질, 뉴런. 그만 하라고요. 아직 더 써야 해요. 좀 기다려 봐요. 간질, 발작, 게슈빈트 증후군, 조울증, 베르니케 실어증, 정신분열증. 이 책 앞부분은 이렇지만 좀 지나면 안 그래요. 사랑, 짝사랑, 자존심, 발상, 선택, 기억, 창의.
창의적인 오른쪽 두뇌를 쓰라는 상식이 널리 퍼졌는데, 이 책의 지은이는 그 사실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라는군요. 확산적 사고인 오른쪽 뇌와 수렴적 사고인 왼쪽 뇌를 적절하게 왔다갔다 써야 한다고 해요. 술 마신다고 다 시인은 아니다, 이 말씀이겠죠.
조울증 따위의 정신병에 걸려서 쓴 글이라 해도 그게 바로 문학은 아니죠. 읽을 만하고 감동적이고 세련되고 멋진 건 아니라고요. 이 책을 쓴 앨리스 플래허티의 자기 얘기는 문학이 아니죠. 그냥 자기 얘기죠. 임상 보고서죠. 문학과 문학이 아닌 것,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자로 잰듯 정확히 구별할 순 없지만, 다르죠. 차이가 있죠.
글쓰기는 정신적 치유의 기능이 있어요. 이 책의 저자 앨리스는 쌍둥이 아들을 조산해서 잃었을 때 글을 쓰셨다잖아요. 김연수는 소설을 쓰면서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54쪽)고 하잖아요. 정신과 치료에서 글쓰기를 권하죠. 억눌린 감정을 발산해서 그럴 거예요. 이때는 배설에 비유하죠. 설사와 변비를 오가는 글쓰기. 정말 비슷해요.
과학적 분석과 문학적 느낌으로 글쓰기 중독 혹은 막힘 현상을 바라보면, 여러 사례에서 재미있고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글쓰기를 충동시킨 것은 정상이 아닌 상태인 병이지만 그 병으로 더욱 창조적으로 글을 썼어요.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 밑줄 긋기 "언어 자체에 매료된 사람은 단지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작품을 쓰는 사람보다 언어의 세밀함이나 글의 전반적인 구조에 더 집중한다. 강한 내적 동기는 창의성을 증대시키는 반면, 외적인 동기는 놀랍게도 창의성을 떨어뜨린다."
셜록 홈즈는 기억하는 이들은 많아도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들의 인상에 남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주인공이다. 셜록 홈즈는 그 이야기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기억된다.
시리즈로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면 주인공이 필요한데, 과연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라인업'은 그런 궁금증을 푸는, 가장 좋은 책이다.
언급된 캐릭터는 영미쪽 범죄 추리 스릴러 작가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하다. 나는 람보만 알겠더라. 1980년대에 대한 기억이 없는 요즘 젊은이은 람보가 누구냐고 되물을 것이다. 미소 냉전시대를 겪은 세대들이 추억하는 캐릭터다.
이 책은 두 가지 관점에서 유용하다.
첫째, 독자로서 읽을거리 찾기다.
해당 작가의 캐릭터 소개가 마음에 들면 국내에 번역된 책들을 읽어가면 된다. 나로서는 죄다 생소하고 그다지 매력을 못 느끼겠더라. 영화로 나온 캐릭터도 몇 되는데, 이름조차 기억이 안 되는 걸 보면 역시나 별로 흥미롭지 못했던 듯. 그나마 하나 들자면 리 차일드의 잭 리처다. 국내에도 은근히 팬이 있어서 아주 좋아라 읽는 분들이 있다고. 검색해 보니까, 잭 리처가 나온 영화를 한 편 본 적이 있다. 아주 독특한 캐릭터다. 웬만하면 말을 안 하지.
둘째, 작가로서 캐릭터 창작력 기르기다.
도대체 남들은 어떻게 주인공 캐릭터를 만드는지 정말이지 궁금했는데, 막상 읽어 보니 다들 고생들 깨나 했더라. 역시 자기 경험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도 대개는 서서히 나타난다. 그리고 캐릭터가 하는 말을 받아적기 바빠진다.
아이디어 블록 The Writer's Block (2001년) 제이슨 르쿨락 지음 명로진 옮김 토트 펴냄 2013년 발행 절판
글쓰기가 막힌 사람한테 유용한 책이라고 해서 주문했다. 실제로 받아 보니, 한 손 크기의 정육면체다. 책 맞아? 장난하냐. 푸하하. 유쾌한 당혹감.
책 모양새가 말장난이다. 작가가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을 영어로 THE WRITER’S BLOCK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책의 원서 제목이다. 영어가 다의어다 보니 BLOCK에는 사각형 덩어리라는 뜻도 있다. 콘크리트 블록 따위 말이다. 내가 자주 갖고 노는 루빅스 큐브처럼 책을 정육면체로 만들어 놓았다. 책을 펴 놓으면 용수철 장난감 같기도 하다.
딱히 쪽수가 매겨져 있지도 목차가 있지도 않다. 심심할 때 아무 데나 펴서 읽으면 된다. 그러면 다음 세 가지 중에 하나를 만난다.
1. 집필 원칙 : 여러 작가들의 글쓰는 방식이나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지, 혹은 어떻게 배우는지에 대한 글이다.
2. 불꽃 튀게 하는 말 : 단어 하나와 관련 사진을 한 장을 제시한다. 작가라면 단어에 민감해야 한다. 글쓰기의 최소 단위는 단어다. 그 단어를 모아서 문장, 문단, 글로 나아간다. 따라서 단어 하나만 주어진다 해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언어적 상상력이 뛰어나야 한다.
3. 글쓰기 도전 과제 : 어떤 상황, 주제, 소재, 조건 등이 제시된다. 이를 토대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라. 글쓰기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글' 쓰기가 아니라, 글로 쓸 '생각'하기다. 글은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많이 세세하게 정확히 생각해내는 일이야말로 글쓰기의 원동력이다.
영감의 고갈은 그리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글이 안 써지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 정도도 제각각이다. 그 해결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다른 작가의 조언을 따라했더니 다시 글이 써진다면 다행이다. 안 써진다면 당신한테 맞지 않는 방식이다. 또 헤매야 한다.
자기만의 글쓰기 방식을 찾고 자기 표현을 구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를 개성이라 부르기도 하고 스타일이라고도 한다. 단번에 쿵 하고 떨어지는 사과처럼 얻을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장인이 오랜 세월 두드린 망치처럼 꾸준히 글을 써나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체득한다. 이 책은 그 글쓰기 수련 과정에서 가끔씩 심심풀이로 들여다 보는 만화경이다.
Bird by Bird: Some Instructions on Writing and Life (1994년) 글쓰기 수업 2007년 초판 쓰기의 감각 2018년 신판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옮김 웅진윙스 펴냄 2007년 초판
이 책의 본래 제목은 버드 바이 버드(bird by bird)다. 새 한 마리씩? 이게 무슨 소리야? 책 뒤표지에 실린 이야기를 읽으면 알 수 있다. 새에 관한 리포트를 쓰려고 온갖 도감과 각종 자료에 쌓여 있으나 한 글자도 못 쓰는 아들에게, 이 책의 아버지가 하는 말에서 제목을 따왔다. "하나씩, 하나씩, 새 한 마리씩 차근차근 처리하면 돼."
글쓰기를 하려는 사람들이 흔하게 빠지는 함정이 있다. 글이 수리수리 마수리 펑하고 단번에 한 번에 나오는 줄 안다. 라모트는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작가들은 허섭스레기 같은 초고에서 시작한다. 다시 쓰기를 반복하면서 차츰 더 나은 글로 바뀐다. 마침내 멋진 글이 탄생한다.
글쓴이는 제안하는 글쓰기 방법 두 가지는 초보자는 물론이고 능숙하게 글을 쓰는 사람도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다. 작게 완성한 글을 만들기. 조잡한 초고 많이 쓰기.
마치 작은 액자의 그림을 완성하듯, 짧지만 완성된 형태로 글을 만든다. 그다음에 그걸 크게 만들면 된다. 처음부터 크게 그리려고 하면 그리기도 어렵다. 자기가 뭘 그리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짧지만 완결된 글 하나를 지으라는 얘기다.
글쓰기의 시작은 언제나 초고다. 초고는 찰흙처럼 엉성하다. 초고를 쓴 후에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죄다 지울 수 있다. 그래도 다음날에는 또 써야 한다. 지운 자리 위에 또 쓴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해서 어떻게든 풀어내서 끝을 맺어야 한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써서 완성한다.
이 책은 완벽주의를 버리라고 충고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초고와 발상 단계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문장을 완벽하게 쓰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책상에 앉아 그토록 열심히 글을 쓸 수 있을까. 다시 쓰기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자만이 할 수 있다.
글을 쓰려는 자가 버려야 할 것은 조급한 마음이다. 갑자기 모든 새를 붓질 한 번에 모두 그려내려는 하는 것은 이룰 수 없는 욕심이다. 초고가 완벽하길 바라는 허영이다. 책만 내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여기저기서 서평이 쏟아지리라는 환상이다. 그런 건 없다.
글 쓰는 자의 모습은 단순하다. 책상에 홀로 앉아 조금씩 글을 써 나아간다. 한 마리씩 천천히 쓴다.
글쓰기 로드맵 101 The Writer's Book of Wisdom (2005년) 스티븐 테일러 골즈베리 지음 남경태 옮김 들녘 펴냄 2007년 발행
글쓰기 책은 종류가 세 가지다.
1. 글쓰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훈련으로 채운 책 : 읽기가 버겁고 실천하기도 힘들다. 2. 글쓰기의 영감을 되찾아 주는 책 : 억눌린 창조력을 끌어내기 위해 무조건 글을 써 보라고 권한다. 3. 글쓰기의 여러 자잘한 도움말로 엮은 책 : 딱히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해 준다.
'글쓰기 로드맵 101'은 3번이다.
글쓰기를 도와주려는 글이 글쓰기의 모범을 보인다. 빠르게 잘 읽힌다. 이 책은 군더더기가 없다. 정확히 핵심을 짚고 살핀 후 뒤돌아 뛴다. 계속 달린다. 그리고 마침내 101번째 규칙에 이른다. 그리고는 글쓴이가 하는 말은 이렇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열정이며, 그 열정이 자극하는 여행이다. 어느 날 당신에게 중요했던 것이 나중에는 어리석은 것이 될 수 있다. 그게 바로 삶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251쪽.
지금까지 나열한 규칙과 도움말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부수적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 내면의 목소리다. 그것은 사랑일 수도 소망일 수도 믿음일 수도 아니 차라리 분노이거나 아예 절망이거나 오히려 불신일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이 책은 글쓰기를 다루지 않는다. 무슨 소리냐고. 제목이 분명히 '치유하는 글쓰기'다. 그렇다. 강조점을 앞에 잡은 책이다. 글쓰기의 기능 중 하나인 '치유'에 초점을 맞췄다. 심리 치료 안내서다.
꽉 막힌 상태에서 그것을 글로 풀어내면, 시원하다. 글을 쓰면 그동안의 상처가 사라진다. 글을 많이 쓰는 소설가들은 이미 이를 잘 안다. 김연수는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나는 왜 문학하는가', 열화당, 2004년 12월, 54쪽)고 고백했다.
블로그에 억눌린 감정을 글로 배설하면, 개운하다. 인터넷에 쓴 글에 공감이나 추천 수가 하나라도 늘면 난 참 좋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사소한 댓글 하나에도 그날 기분이 좋아진다. 악플이면 화가 나지만, 없는 것보다야 낫다. 어쨌든 누군가 내 말에 반응했으니까. 자신을 즐겨찾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면 그날 하루는 좋은 날이다. 세상은 천국이야.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글을 끄적이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다들 안다. 그럼에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마음의 상처가 깊다면? 글을 마음껏 많이 쓰는 작가가 아니라면?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하다면? 글을 써서 마음을 치유한 사례를 보고 싶다면? 박미라의 심리 치료 수기 상담 안내 모음집인 이 책을 펴 보면 도움이 되리라.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서 작문 책을 섭렵하다 보니, 독서와 글쓰기로 심리 치료를 돕는 책을 몇 권 만났다. 대부분 외국 사례라서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계획표로 딱딱하게 진행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책은 그런 단점을 없애고 기존 책들의 핵심을 모아 놓았다. 더구나 이미 글쓰기로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여러 번 진행해 본 사람이 쓴 글이라, 더 구체적이다.
글쓴이는 가족학과 여성학을 전공한 후, 현재 심신통합치유학(새로 생긴 학문?)을 공부하며 글쓰기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단다. 풍부한 사례들은 물론 모조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쓴 글이다. 편집 없이 그대로 책에 실었다. 글에 달린 댓글도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인쇄했다. 지나친 감정 과잉이라 읽기 버거운 것도 있겠으나, 공감이 가는 글도 있으리라. 골라서 읽을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하리라.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수필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거부감이 커서 책을 덮거나 공감이 간다며 눈물을 흘리거나. 왜 이럴까. 노희경의 글은 냉정하게 쓰지 않았다. 그동안 가슴속에 쌓아 놓은 것을 배설했다. 이 때문이다. 자기 감정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글로 써냈다. 편집이 안 된 블로그 글처럼 말이다.
도대체 저렇게 유치한 드라마를 왜 좋아할까. "아주 그냥 죽여줘요."라고 부르는 노래가 뭐가 그렇게 죽여주게 좋다고 그리 난리일까.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고 있기에 그렇다. 거기에는 꾸밈이 없다. 때론 형식도 차리지 않는다. 아닌 말로, 말을 막한다. 말은 감정이다. 그런 감정을 차분하게 글로 단정하게 쓰려면 상당한 훈련을 해야 하고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한다. 책을 많이 정확히 확실히 읽어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당장 급한 불부터 끄듯, 그렇게 감정을 털어 놓는다. 안 그러고 참고 또 참으면 '캔디'가 된다. 몽상에 빠져 누군가 나 좀 위로해주고 사랑해주고 돈도 많이 줬으면 싶다. 꿈 깨라.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연애 소설이 왜 그리 많이 팔리는지 이제야 알았다. 우리는 외롭고 괴롭고 아프다. 그런 우리를 위로해주는 사람은 주변에 드물다.
예전에 내가 쓴 글과 읽은 책을 돌이켜 보니, 감정 배설이 대부분이었다. 부모에 대한 원망, 세상에 대한 원한, 갑작스럽게 닥친 병마, 안 풀리는 일, 일상의 사소한 짜증, 현실도피 몽상.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가끔 통제 없는 글을 쓰지만 그걸 공개하진 않는다. 나중에 읽고는 지운다.
화가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즉시 글로 쓴다. 이런 습관은 최근에야 생겼다. 화가 나면 그걸 말로 하지 않는다. 글로 쓴다. 문제가 생기면 머릿속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종이에 쏟아낸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면 화가 풀리고 해결책이 보인다. 나중에 읽어보면 웃음이 나온다. 왜 그렇게 고민한 거야. 별거 아니구먼.
블로그나 인터넷 글에 사적인 얘기는 되도록 안 쓴다. 댓글도 거의 안 단다. 감정 수위가 높은 글은 자제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안 할 수가 없을 때도 있다. 나도 사람이다. 당신처럼 말이다.
상처받은 아픔을 참지만 말고 글로 풀어내라. 속이 확실히 풀린다.
[밑줄 긋기] 우리는 그의 글이 가진 힘, 그러니까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고통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그의 저력에 감동했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촘촘하게 기록해낸 치열함 때문에 울었던 것이다. 그녀의 글을 통해 우리의 과거가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이 글이 그날 밤, 그녀와 우리 모두를 구원했다. 24쪽
창조적 글쓰기 2008년 초판 작가살이 2018년 개정 The Writing Life (1989년) 애니 딜러드 지음 이미선 옮김 공존 펴냄
번역 제목 '창조적 글쓰기'보다는 원서 제목이 더 어울린다. 더 라이팅 라이프 The Writing Life. 글 쓰는 삶. 글 쓰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의 모습은 어떨까? 그런 사람은 행복할까, 불행할까?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많이 쓸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조금만 쓸 수 있을까?
애니 딜러드는 이런 의문에 친절한 목소리로 답해 주진 않았다.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의 독단적인 삶을 솔직하게 적어 놓았다.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은 알려주는 게 하나밖에 없다. 써라. 미안하지만, 그게 글을 쓰는 삶의 전부다.
글을 쓰는 재미보다는 어려움을 더 많이 토로해 놓았다. 글 쓰는 일과 그런 생활을 건조하게 추상적으로 비유를 들어 보인다. 작가 본인의 문체가 본래 그런 모양이다. 진지하게 글쓰기를 대하고 있다면 추천한다. 그렇지 않다면 읽기에 까다로우리라. 즐거운 글쓰기, 재미있는 글쓰기, 어떻게 하면 글을 신나게 술술 쓸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얻을 게 거의 없는 책이다.
글, 긴 글, 한 권 분량의 책, 아니 두툼한 몇 권의 책을 써내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제1장 맨앞에 "서두르지도, 쉬지도 마라."라는 괴테의 말을 인용했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 지은이는 그저 묵묵하게 조금씩 써나아갈 뿐이다. 글을 쓰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없기에 자신의 생생한 삶을 밋밋한 종이에 글자 쓰는 일로 보내고 있지 않나 회의하기도 한다.
딜러드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44~47쪽)는 웃기면서도 섬뜩하다. 작가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창밖을 뚫어지게 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애니 딜러드도 창밖을 열심히 내다본다. 주차장에 차 대고 내리는 사람들, 언덕 위 암소들, 지붕 위 참새들, 앗! 한 마리는 다리가 하나다. 저 멀리 시냇물 속에 거북이가 헤엄치네. 그러다가 소프트볼 하는 아이들을 본다. 아예 같이 논다. 다음날, 작가는 창문을 굳게 닫고 블라인드를 친다. 커튼 위에 창밖을 그린 그림을 붙인다. 이제 그 모습을 글로 쓴다.
글을 쓰려면 그 시간에 다른 활동을 포기해야 한다. 흐린 날에만, 일요일에만, 기분이 내킬 때만 쓴다면 작가가 아니다. 그런 사람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글쓰기보다 재미있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뽐내기도 쉽다. 결과는 보여주면 상대가 바로 알 수 있다.
그림을 그립니다. 자, 제가 그린 그림입니다. 와, 멋집니다. 피아노를 칩니다. 자, 들어 보세요. 오, 아름다워요. 카레이서입니다. 자, 보십시오. 정말 빠르군요. 글을 씁니다. 여기 제가 쓴 책입니다. 예에, 멀뚱멀뚱.
글은 상대가 진지하게 읽어주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종이뭉치에 아무런 생기 없는 검은 글씨일 뿐이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 세상과 단절하고 다른 일을 포기하고, 대신에 홀로 즐겁게 지내며 홀로 격려하며 문장을 하나씩 써내려간다. 가끔이야 누구나 그럴 수 있지. 원고지 몇 장 정도야 그럴 수 있지. 날마다? 그것도 원고지 몇 천 장을 써댄다? 당신은 그럴 수 있는가.
글쓰기는 힘들다. 그래, 솔직해지자. 글 잘 쓰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다. 쉽게 쓰는 사람도 있겠지. 이 책의 지은이와 옮긴이는 그렇지 않다.
'옮긴이의 글'이 흥미롭다. 이미선은 글 쓰는 일과 번역의 차이점을 이야기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같으나, 그 과정은 다르다. 자기 글을 쓰는 일은 욕구와 재능과 지식이 필요하지만 번역은 학술 서적을 제외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번역은 시작과 끝이 분명하나, 창작은 시작도 끝도 없다. 글을 쓰기 전부터 고민하고 글을 쓴 후에도 고심한다. 번역자는 그저 이미 써 놓은 글을 따라가면 그만이다. 번역은 창작만큼 힘들지만 그래도 쉬운 편이고 더 낮은 차원이라고 말한다.
내 독서 경험으로는 오히려 원문보다 번역문이 더 뛰어난 경우도 봤다. 유명한 소설가들은 번역을 하면서 자기가 쓰는 자기 나라 말을 더욱 정밀하게 다듬고 자기 문체를 완성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고, 폴 오스터가 그랬다.
글쓰기가 그렇게 어렵고 힘들다면 왜 그만두지 못하는가? 그래도 즐겁기에 멈추지 못한다. 나가서 공을 차기보다는, 피아노 건반을 누르기보다는, 사진기 셔터를 누리기보다는,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문장을 하나 쓰는 게 더 재미있다. 나는 그렇다.
이 책 잘 읽으면 소설가 된다 1 이 책 잘 읽으면 소설가 된다 2 주조 쇼헤이 지음 윤성원 옮김 문학사상사 펴냄 2005년 발행 절판
주조 쇼헤이의 소설 창작 강의다. 뛰어난 소설 분석력과 어마어마한 독서량이 그가 쏟아내는 말들의 홍수에서 빛난다. 그가 분석하는 소설 대부분이 일본인의 작품이라서 낯설지만,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읽고서 느낀 점 셋.
첫째, 소설을 잘 쓰려면 읽기와 쓰기와 생각의 양과 질에서 탁월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있어야 한다. 끝없는 열정.
둘째, 소설을 분석할 수 있다고 곧바로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내 경험으로는, 기술적 훈련과 논리적 분석만으로는 소설을 잘 쓸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억지로 쓴 소설은 뭔가 중요한 게 빠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단어 많이 외우고 문법을 잘 안다고 해서 곧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하거나 쓸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셋째, 소설가의 의도대로 독자가 읽는 건 절대 아니다. 단어 하나하나 사건 하나하나에 온힘을 기울여 짓지만, 그렇다고 독자한테 잘 제대로 읽히진 않는다. 독자는 자기가 읽고 싶은 대로 읽는다.
1권은 총설이고 2권은 각론이다. 각론에서는 본격적인 분석에 들어간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소설가 지망생이라면 이 책을 읽은 후에 모두 잊기 바란다.
정말 좋은 소설은 분석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주조 쇼헤이는 왜 지금 유명한 소설가가 아닌지 곰곰 생각해 보라. 이 책을 열심히 따라해서 한 번쯤은 소설을 써낼 수 있겠지만, 계속 써내기는 쉽지 않으리라. 좋은 이야기는 언제나 이야기 이상을 추구했다. 그런 이야기는 분석의 대상이 아니다.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사이드 필드 지음 유지나 옮김 민음사 펴냄 1992년 초판 2017년 개정판
이 책의 지은이 사이드 필드는 데이비드 L. 월퍼 제작사의 전속작가 겸 제작자로서뿐만 아니라 시네모빌 시스템스 Cinemobile Systems의 시나리오 담당자로서,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로서 시나리오를 쓰고 읽는 데 여러 해를 보낸 사람이다.
수천 편의 시나리오를 읽은 것은 물론, 직접 시나리오를 써 본 지은이의 풍부한 현장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이 책이야말로 좋은 시나리오를 쓰고자 하는 이한테 도움이 될 것이다.
시나리오의 선적 구조(기본 모형, 패러다임, 형식)을 토대로, 등장인물을 창조하는 방법에서 실제 시나리오를 쓰는 방법을 소개했다. 모범적인 시나리오의 예로 영화 <차이나타운>, <콘돌>, <대통령의 음모>를 들고 있다. 먼저 이 영화들을 보고나서 이 책을 읽는 것이 이해하기에 좋을 것이다. 그 외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부분 발췌하여 설명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14 시나리오 쓰기의 실제>였다. 글쓰기의 어려움.
1992년에 처음 나온 책이다. 여전히 읽히며 절판되지 않는 걸 보니,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모양이다.
예로 드는 영화가 낯설고 오래된 점이 아쉽지만, 기본 원리는 변하지 않으니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김연수 옮김 한문화 펴냄 2006년 초판 2012년 개정판 2020년 발행 절판
개집 위에 올리베티 타자기를 올려 놓고 글짓기에 열중하는, 하얀 비글 강아지 스누피. 귀엽다. 스누피는 톨스토이를 숭배하며 유명 문학 작품의 글귀를 읊조린다. 비난과 고난에도, 글짓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은 여러 유명 작가들이 찰스 슐츠의 만화 '피너츠'에서 글짓는 강아지 스누피에게 보낸 격려와 충고의 편지를 모았다. 미국에서 책을 써서 성공한 사람 32명의 글쓰기 충고'다. 옮긴이 김연수의 충고도 있으니, 당신은 이 책에서 선배 작가 33명을 만날 수 있다.
작가들의 충고는 자기 체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이다. 그럼에도 모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당신은 초보다. 아는 게 없다. 일단 따라해 보는 거다. 그 다음에 "나한테 안 맞군." 하고 안 따르면 된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눈보라"처럼 많은, 출판 거절 편지를 받았다. 40대 후반에서야 소설이 팔렸다고 한다. 당신에게 글을 쓰기엔 늦은 나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은 무시해도 좋다. 글 제대로 써 본 적도 없는 사람일 테니. 진심으로 쓰고자 한다면 늦은 나이는 없다.
당신은 알 것이다, 이 책이나 이 책과 비슷한 종류의 책을 읽어도 글을 쓴다는 것, 더구나 잘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그래도 해 볼 만한 일이다. 운이 나빠 출판이 안 된다고 해도 당신은 써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진실이라면.
사람들 대부분이 글 쓰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 일이 고되고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것을 알고 작가가 되려는 길에 들어 섰을 것이다. 당신의 길은 당신이 걷는 것이다. 누가 대신 걸어 줄 수 없다. 누구랑 수다떨면서 같이 걷는 길이 아니다. 홀로 가야 하는 길이다.
이 책이 그대에게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글이 막힐 때마다, 응모에서 떨어질 때마다, 가혹한 비평을 받을 때마다 선배 작가들이 격려해 줄 것이다.
김연수의 말을 들어보자. "진정한 작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만의 문제야. 진짜 작가라면 평생 성장할 거야."(214쪽)
글쓰기 책이다. 지금껏 글짓기 책을 스무 권 넘게 읽었다. 그럼에도 글을 제대로 잘 쓰긴 여전히 어렵다. 요리 책을 백만스물한 권을 읽었다고 해도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는 쉽지 않겠지.
작법 책이 계속 반복하는 주장은 하나다. "제발 글 좀 써." 그럼에도 잘 안 쓴다. 어떻게든 온갖 핑계를 대고 글쓰기만은 피하려 한다. 키보드가 조금 뻑뻑하잖아. 새 키보드를 산다. 역시 연필로 써야 잘 쓸 수 있어. 새 연필을 산다. 조명이 어두운 것 같아. 형광등을 하나 더 단다. 졸리네. 잔다. 시간이 없네. 결국 안 쓴다.
글쓰기가 재미있다면, 게다가 술술 잘 풀리고 있다면, 이런 책을 읽겠는가. 안 써지고 재미없고 힘드니까 글짓기 책을 뒤적거리는 거다. 읽고나면 언제나 똑같은 교훈을 얻는다. "제발 글 좀 써."
글을 잘 쓰는 방법은 결국 하나다. 글을 날마다 강제적으로든 자발적으로든 일정 분량 이상을 써내야 한다. 잘 쓰건 못 쓰건 무조건 글을 써 내야 한다. 양적 팽창이 질적 승화로 이어진다. 양적 부족으로는 절대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날마다 글을 써낸다. 자, 그럼 어떻게 쓸까? "간결하게 써라." 이 책의 모든 것이다. 이게 뭐냐고? 별거 없다고? 아직 감이 안 온다고? 생각은 글로 잘 표현되지 않는다. 생각을 글로 쓰려면 벽에 막힌다. 그 벽은 유리다. 빛은 통과한다. 허나 다른 물질은 막는다. 슬프게도 생각은 빛이 아니다. 생각은 바위다. 무리해서 통과시키려 한다면, 벽은 깨지고 만다. 그러니 빛의 입자만큼 써야 한다. 통과하게 말이다. 다시 말해, 글을 어떻게 써야 한다고? 간결하게.
간결하게? 무슨 말인가? 읽기 쉽게, 보기 쉽게, 알기 쉽게. 정말 쉽다. 말만 쉽다. 써라? 쉽다. 말만. 글은? 어렵다.
어떤 사람은 글쓰기가 쉽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어렵다고 한다. 쉬운 사람은 이 글을 읽지 않았으리라.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글을 잘 쓰려는 당신은 누구인가? 간절히 소망하는 자이리라. 그리하여 그대의 글은 간결하리라.
헤르메스의 친절한 통합논술 5 - 창의적 글쓰기 헤르메스 지음, 신상웅 감수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2007년 발행
통합논술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이지만,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읽을 만하다. 창의적 글쓰기라는 부제가 붙었지만, 창의적 발상법을 다루진 않는다. 여러 글쓰기 방식을 소개하고 설명했다.
이 책이 가장 먼저 제안하는 생각은, 글은 표현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거다. 종합적 사고력을 표현한 도구가 글이지, 글 자체가 사고력은 아니다. 자기 생각의 표현으로 글을 쓴다. 이 점을 명심하면 글을 쓰기 전부터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글이 자기 생각만큼 잘 안 나오면 고치면 그만이다. 글이 목적이 아니므로 자기 생각이 더 잘 표현되게 다듬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쓰고 나서 실망할 이유가 없다. 칼이 잘 안 들면 갈아서 쓰면 된다. 글이 마음에 안 들면 더 다듬으면 된다.
그 다음으로 제안하는 건 걱정부터 하지 말라는 거다. 쓰기도 전에 잘 쓰지 못할 거라 걱정하지 말라고. 뻔뻔해야 잘 쓰고 자신감이 붙는다. 그래야, 글쓰기가 즐겁다.
글쓰기 방식을 세 가지로 묶어 설명한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법을 준수하는 행정, 법을 판단하는 사법, 법을 개정하거나 만드는 입법. 그 법을 글 쓰는 방식으로 바꾸어 얘기했다. 경험적 글쓰기가 행정에, 비판적 글쓰기가 사법에, 창의적 글쓰기가 입법에 해당한다.
각 방식에 예문을 덧붙였다. 창의적 글쓰기는 문예문, 비판적 글쓰기는 논설문, 경험적 글쓰기는 설명문, 이렇게 된다. 각 방식에 어울리는 글쓰기가 따로 있다. 자기한테 어울리는 걸 골라 써라.
각 방식을 적절히 섞어 쓰는 게 좋다. 소설이라도 그 안에는 설명적 글쓰기와 논리적 글쓰기가 창의적 글쓰기와 적절히 맞물려 있다. 기본적으로는 창의적 글쓰기 방식을 따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른 두 방식으로도 쓴다.
이상 설명한 글쓰기 방식은 참고일 뿐이다.
그럼, 궁극적인 '창의적 글쓰기' 방식은 무엇인가. 자기 방식대로 쓰기다. 이것이 글쓰기의 참된 방식이다.
실전 연습용 글쓰기 책입니다. 기존 좋은 글을 제시하고 분석하고 따라 써 봅니다. 글쓰기의 여러 원칙과 원리도 나오고요.
어느 정도 원칙은 알아 두는 게 좋겠지요. 교수님들이 쓰셔서 그런지 원칙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더군요. 자동차 운전에 비유하자면, 이렇게 말해 주는 겁니다. "이건 핸들이고 이건 핸드 브레이크고 이건 액셀러레이터입니다. 핸드 브레이크를 풀고 자동차 키를 꽂아 돌려서 시동을 걸고 엑셀레이터를 서서히 발로 밟으면서 갈 방향으로 핸들을 돌립니다." 이런 식이에요. 왜 클러치가 없냐고요? 아, 이 차는 오톱니다.
이 책은 딱히 새로운 글쓰기 방법이나 원칙을 제시하진 않아요. 알아야 할 것들을 정확히 모두 제시하고 있으니까 교본으로 하나 갖고 있으세요. 글쓰기 영감을 바라거나 자기 목소리를 찾으려는 분한테는 딱딱한 원론서일 뿐이죠. 그러니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진 마세요.
자동차 운전이 그렇듯, 원리 원칙을 너무 많이 알면 정작 편하게 할 수 없어요. 해 봐서 터득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러다가 안 되면 그때 설명서를 펴는 거죠. 깜빡이는 이걸 눌러 작동하는 거군. 이 정도요. 실제 많이 써 보기 전에는 어림도 없단 말입니다. 다행히 이 책은 운전 교습처럼 모든 코스와 기능을 따라해 볼 수 있습니다. 잘 따라하시면 어느 정도 솜씨가 늘 겁니다. 중간중간 점검 사항도 제시했네요.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노력이 필요하다." 헤밍웨이 아저씨 말씀이 무섭죠. 들리는 얘기론, 이분이 하루에 연필을 두 자루 이상 소비했다고 하네요. 도대체 얼마나 많이 쓴 거야. 그냥 아무 글이나 베껴 써도 하루 종일 두 자루는커녕 한 자루도 다 쓰기 힘들 텐데. 여러분은 글을 하루에 얼마나 쓰시나요? 양적 팽창 없이 질적 향상은 기대할 수 없는 걸까.
이 책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 해설입니다. 속이 시원하게 잘 설명해 주셨던데요. 혹시 이 책을 다 볼 시간이 없다면 '알고 보면 쉬운 우리글'이라도 읽어 두세요. 도움이 되실 겁니다.
힘내세요. 원래 글쓰기는 어려워요. 당신만 어려운 게 아니예요. 이 책에도 나오잖아요. "언젠가 장영희 교수의 글을 보니 '글을 못 써서 벽에 머리를 찧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라고.
기업 블로그 포스팅 대행을 해서 먹고살았던 지난 2년 남짓 동안 별별 일을 다 겪었다. 내 생각대로 운영할 수 없었다. 제한된 예산, 제한된 시간, 고객사의 요구 사항, 검색 최적화와 방문자 수 증대 등 제약 사항이 워낙 많았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결과치 증가 요구에 블로그는 점차 저품질로 가고 해당 검색 키워드가 네이버 검색 1페이지 뜨지 않으면 난리가 났다.
개인 블로그도 운영하기 버겁다. 수익이 거의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드는 시간과 노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나의 경우, 가끔 책을 무료로 보내 줄 테니까 블로그에 서평을 써달라는 이메일이 오곤 한다. 아주 마음에 드는 책이 아닌 이상, 안 쓰는 중이다. 원고료가 없고 책 한 권이 대가의 전부다. 엄청 좋아하는 작가나 책이 아닌 이상 책 한 권 무료로 받겠다고 머리카락 쥐어짜며 억지로 읽어 글을 써낼 이유는 없다.
이 책의 저자 이종범은 기업 블로그의 경우 3년 이상은 운영해야 실질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는데, 이는 실무 현장을 무시하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블로그 운영 대행비가 500만원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거품이다. 너무 편하게 교과서 같은 말만 하지 않나 싶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순진한 소리만 한다. 실무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대개는 3개월 내에, 결과치를, 대개는 방문자 수 최소 300 이상, 내기 위해서 어뷰징을 안 할 수가 없다.
이 책의 미덕은 어쩌면 교과서 같은 순진하고 정직한 '공자님 말씀' 같은 것에 있다. 또한 이 책의 악덕은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꼼수를 버리고 정석대로 하라는 얘기만 반복한다.
그럼에도 실용적인 블로그 글쓰기 팁은 좋다. 꼭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꾸준히 날마다 많이 글을 쓰기 위한 전략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 진리다. 당장 따라해 보라.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다.
1. 짧은 시간 안에 초고를 완성하라
블로그 포스팅 하나는 되도록 15분 내에 끝내라. 절대 30분을 넘기지 마라. 블로그 포스팅 하나를 제대로 하려면 최소 30분 최대 2시간이 든다. 오탈자 점검에 퇴고를 안 하고도 그 정도 걸린다. 그런데 무려 15분만에 끝내라니, 무슨 소린가?
제한된 시간 안에 집중해서 쓰라는 말이다. 마감 시간이 없으면 한없이 늘어진다. 마감 시간이 지나치게 촉박해도 문제지만 대개는 완성될 때까지 무작정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 문제를 제거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기획 기사 작성, 소설 초고 완성, 보도자료, 보고서, 독후감, 기타 등등 어떤 종류의 글이든 재빨리 완성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제한 시간이 지났어도 안 써지면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낫다.
블로그 글쓰기는 꾸준한 일기 쓰기와 비슷하다. 글 쓰는 시각과 시간을 정해서 무조건 시행해야 한다. 지은이는 아침 출근 시간 전과 퇴근 시간 전을 권했다. 특히 퇴근 전 30분은 마감 효과가 두 배다.
초고는 빠르게 멈추지 말고 쓴다. 일단 써라. 고치는 것은 그 다음이다.
2. 정말 당신이 쓰고 싶은 것을 써라
억지로 쓴 글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양도 질도 좋지 못하다. 글쓰기가 좋으냐 싫으냐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여기서 결정된다. 쓰려고 하는 글은 정말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싫지만 써야만 하는 것인가.
독후감 숙제, 보고서 작성, 보도자료 작성 등은 의무다. 안 하면 혼나고 야단맞는다. 하지만 본인이 정말 쓰고 싶어 미칠 지경이면 시키지 않아도 보상이 없어도 즐겁고 재미있게 쓸 수 있다. 할 말도 많다.
3. 글 소재를 평소에 모아두어라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도대체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본인이 모르는데, 남들이 알겠는가. 평소에 흥미나 관심이 가는 소재를 모아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메모와 독서가 효과적이다.
물론 이상은 참으로 교과서 같은 이상론이다. 실전에서는 실용적으로 융통성 있게 접근해야 한다. 원칙을 알고 변용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기본은 역시 기본이다. 그리고 성실함은 어느 일이든 필요한 자질이다.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 2005년 초판 사이토 다카시의 2000자를 쓰는 힘 | 2016년 개정판 루비박스 펴냄 글쓰기의 힘 | 2024년 개정증보판 사이토 다카시 지음 데이원 펴냄
글을 잘 쓰고 싶은 분은 많을 겁니다. 그럼에도, 실제로 쓰는 분은 드물죠. 여러 작문 서적을 뒤적거려도 딱히 방법을 모르겠고요. 사이토 다카시의 이 책이 그런 분들한테 제격입니다. 실용서라서 바로 따라할 수 있습니다. 제목처럼 일단 원고지 10장 분량을 날마다 쓰면 글발이 생긴답니다.
날마다 꾸준히 쓰면 확실히 글을 많이 잘 쓸 수 있어요. 이 사실은 명백해요. 이 책을 쓴 사이토 다카시 씨만 주장하는 게 아니랍니다. 작문 책 아무거나 펴 보세요. 비슷한 말을 하고 있죠. 글쟁이들한테 물어 보세요. 앵무새처럼 같은 내용을 같은 어투로 반복하죠. "열심히 꾸준히 많이 써 봐. 그러면 잘 쓸 수 있어."
글을 일정 분량 꾸준히 쓴 사람은 글발이 자연스럽게 생겨요. 그런데 정말 좋은 글은 여전히 잘 안 나와요. 왜 그럴까요? 글을 잘 많이 쓰는 사람은 많아요.
흔히들 책을 냈다고 하면 "우와, 작가네!" 하며 부러워하죠. 그 작가한테 등 돌리고 서점에 가 보세요. 책이 얼마나 많은지 보세요.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들을 보세요. 그 부러운 작가가 무진장 많아요. 책을 내지 않았어도 글을 쓰는 사람은 많죠.
신문에 잡지에 글 쓰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요. 사설에 칼럼에 기사에 광고에. 인터넷은 어떤가요. 쇼핑몰에 블로그에 미니홈피에. 정말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쓴 사람은 몇이나 되나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죠. 발가락까지 꼽을 정도라고요. 참 긍정적으로 사는 분이겠군요. 냄새야 좀 나겠지만요. 어쨌든, 정말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드물어요.
제목에 끌려서 이 책을 잡으신 분 많을 거예요. 저라고 안 그랬겠어요. 10장만 넘기면 무슨 글이든 잘 쓸 수 있다고? 정말? 읽고 난 후에는 어떤가요. 역시 글쓰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죠. 다시 글을 쓸 생각만 하고 실제로는 글을 안 써요. 사람은 본래 게을러요. 부지런은 본성이 아니죠. 글을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하죠.
왜 하필 원고지 10장이에요? 지은이의 답변은 이래요. "그 정도 분량은 구성이 있어야 쓰거든." 글을 생각나는 대로 쓰기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지금 당신도 할 수 있다니까요. 제가 해 보죠. 나는 생각을 하네. 열심히 하네. 정말 많이 하네. 시 한 편이 됐군요. 더 쓰라고요? 더 할 말이 없는데요. 다들 원고지 1~4장이 전부죠.
설령 10장을 넘겼다고 해도 잘 지은 글인지는 퇴고를 해 보면 알 수 있어요. 지나친 자기감정이나 관련이 없는 것을 빼 보세요. 봐요, 10장이 안 넘죠. 아까 제가 쓴 시를 퇴고하면 뭐가 남죠. 한 문장만 남죠. 나는 생각을 한다.
글에 재미가 없는 이유는 뭘까요? 왜 지루할까요? 영화 감상문과 독후감이 인터넷에 많죠. 대부분 어떻죠. "재미있어요." "재미없어요." "여기가 마음에 들어요." "여기는 이상해요." 무엇이 왜 어떻게 그런지는 아무 말이 없죠.
정말 잘 쓴 글은 잘 지은 글이에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잘 짜서 멋진 그림처럼 펼쳐보여 준 글이라고요. 끝까지 다 읽으면 머릿속에서 전구 하나가 번쩍 켜지는 거예요. 형광등 말고요. 그건 깜빡거리잖아요.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를 때 켜지죠.
저는 '글쓰기'보다 '글짓기'라는 단어를 더 좋아해요. 그게 더 어울리거든요. 단지 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단어와 단어를 이어서 좋은 문장 하나 만들기는 쉽지 않죠.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을 쌓아 글 한 편을 짓는 게 어디 쉽겠어요. 아무나 못하죠.
피아노 연주에 비유할 수 있겠어요. 누구나 건반을 누를 수 있어요. 한 소절 칠 수 있겠죠. 솔미미 파레레. 나비야 정도는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월광은? 그 곡을 독창적으로 감동적이게 연주할 수 있으세요? 자, 울지 마세요. "원래 정말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일은 매우 힘겨운 작업이다."라고 글쓴이도 말하잖아요.
구성력을 키우면 글을 잘 쓸 수 있지만, 정말 좋은 글은 안 나와요. 읽으면 머리카락이 전깃불에 맞은 듯 쭈뼛이 서는 글은 잘 지었다고 나오는 게 아니에요. 그럼 뭐냐고요? 유명한 소설가의 대하소설 백만 쪽보다 어느 무명씨의 일기 한 쪽이 왜 그렇게 감동적인가요. 글에서 울리는 그 무엇이 우리 가슴속에서 맴돌기 때문이죠. 글에서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은 뭘까요?
이 책의 끝 부분 151쪽에서 당신도 저처럼 밑줄을 긋게 될 거예요. 그랬다면 저랑 약속하세요. 글을 많이 잘 쓰게 된다면 글에 그것을 반드시 꼭 넣겠다고. 그것은 내면의 진실이에요.
희곡창작의 길잡이 이강백, 윤조병 지음 평민사 펴냄 2010년 초판 2018년 개정판 발행
멋진 용이 물을 뿜어대는 대학의 철학과를 다니다가 재수해서 캠퍼스가 작디작아 고등학교보다 못할 지경인 우리 대학 신방과로 옮긴, 언제나 목장갑을 끼고 다녔는데 정작 손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던, 바위가 되리라 열심히 외쳤던, 바나나를 무척 좋아했던, 어학 연수를 준비하던 중 교통 사고로 먼저 간, 언제나 심각한 고민이 있는 표정이었으나 웃을 때는 천사 같았던, 대학 동기가 교내에서 연극을 한 적이 있었어요.
주연으로요. 연극 제목이 신의 무슨 뭐였죠. 정확히 기억이 안 나네요. 제가 처음 본 정극이었습니다. 재미는 없었고 내용은 공감이 안 갔어요.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다 외웠나 그것만 신기했죠.
연극에 잠깐 관심이 생겨서 아마추어 연극단에 들어가 배우를 하려고 했습니다. 배우 훈련 과정은 흥미롭더군요. 그때 훈련용 희곡 교재가 이강백의 알이었습니다. A4 용지에 인쇄된 대본이었죠. 잘못 친 글자가 꽤 보였어요. 그래도 대본을 읽으면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에 푹 빠졌죠.
배우 지망을 포기한 후 단막 희곡을 하나 써 보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춘문예 첫 투고를 그 희곡으로 했어요. 당선은 안 되었지만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인물을 내가 만든 무대 위에 세우고 이런 말 저런 말을 시켜서 살아 움직이게 하니, 캬아, 이거보다 재미있는 일은 없다 싶었죠.
요즘은 연극이나 희곡을 보지도 읽지도 생각지도 느끼지도 않죠. 그런 거에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이 초현실주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벽으로 들어가는 장면만큼이나 믿기지 않아요. 추억의 한 쪽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강백 희곡집은 사 권 이후로는 흥미가 없어서 오 권 이후로는 아예 관심을 끊었어요. 그러다 이 책을 보았습니다. 드디어 창작의 비밀을 알려 주시려나. 이런 책 낼 때도 되셨죠. 1971년에 등단하신 후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희곡을 쓰셨으니, 이제 비법을 말하실 때가 온 거죠. 그런데 혼자 쓰신 게 아니라 윤조병이라는 분과 같이 쓰셨네요.
자, 이강백이 말하는 희곡 창작 비결은 뭘까요? 아니 이강백과 윤조병이 함께 말하는 희곡 쓰기는 어떤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기본에 충실하라는 거였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희곡을 쓰려는 사람이 지나치는 것이었죠. 이 책은 '세팅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합니다. 연극은 무대에서 하는 겁니다. 그러니 그 무대부터 생각하는 겁니다. 이야기부터가 아니고요.
설령 이야기부터 생각났다고 해도 다시 무대를 생각해야 합니다. 희곡은 바로 그 무대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생생하게 일어나서 눈에 직접 보이는 모습을 글로 쓰는 것이니까요. 영화처럼 써서도 소설처럼 써서도 시처럼 써서도 안 되는 것이죠. 연극이 되게 써야죠.
이 책이 전하는 창작 비결은 수집입니다. 현실에서 연극에 쓸 만한 인물을 잘 관찰했다가 공책에 잘 적어 두라는 겁니다. 그 사람의 말투, 옷차림, 습관, 꿈, 욕망, 좌절, 기억 등. 물론 희곡에서는 이야기에 알맞게 변형을 해야겠죠. 장소도 잘 봐두고 기록해 두랍니다. 그런 장소에 일어날 법한 일들에 대해서 잘 생각해 두라는 거죠. 그 장소가 곧 연극의 무대가 될 수 있으니까요.
희곡 창작 일반론이에요. 이강백 특유의 내밀한 숨결 같은 건 안 보이더군요. 그래도 두 분의 오랜 창작 경험에서 나온 충고는 역시 남다들 분들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장인의 손결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