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택한 이유는 단 하나, 표지 그림이 예뻐서. 그림이 바람개비처럼 나를 유혹했으니. 편안하고 고요한 파랑과 광대하고 무한한 노랑, 그 느낌이 좋더라. 책을 받자마자 광고 띠지는 휴지통이랑 잘 사귀라고 보낸 후, 후다닥 서지 사항부터 살폈는데 그림 그린 사람 이름을 도대체가 찾을 수가 없었으니, 이거 완전 숨은 그림 찾기. 옛말이 옳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첫장 바로 뒤에서 찾았다.

작크 장 피에르(Gack Jean Pierre)는 독창적인 색감으로 사막을 표현해서, 그가 그린 사막을 보고 있으면 꿈결처럼 아스라한 느낌에 빠져든다. 사막의 신비로움. 어딘가에서 바람이 분다. 사람들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사람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베일에 가려서 신체 그 어느 곳도 잘 보이지 않는다. 가끔씩 보이는 몸짓과 표정은 사막처럼 차분하다. 사람은 사막에 안겨 있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다.

글은 술술 읽히진 않았으니, 이는 글월이 길어서가 아니며 지루해서도 아니다. 딱히 뚜렷한 흐름이 없어서다. 논리적 흐름도 시간적 흐름도 없이 그저 생각나는 대로 적었더라. 부는 바람에 쌓이는 동시에 사라지는 모래 언덕처럼. 문명 세계와 사막 세계가 교대로 나오는데, 이도 규칙적으로 대구를 이루진 않았다. 사하라 사막에서 성장한 무사 앗사리드의 글은 그랬다. 당연하게도.

이 책 모양새는 글쓴이 할아버님 말씀에 나온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에겐 공통의 언어가 있단다. 그 언어를 이해하고 깨닫기 위해선 그들 얘기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네 얘기를 들어줄 게다. 이 말뜻을 마음에 새겨 두고, 네가 원하는 곳 어디로 가든 네가 어디서 왔는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21쪽)

사막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가서 갖가지 경험을 하고 놀라고 깨닫고 이 책을 쓴다. 여전히 사막의 마음을 간직하였고 다시 사막으로 돌아가 유목민으로 남으려 한다. 글쓴이는 뿌리를 강조한다. 가족 공동체 생활의 미덕을 찬양한다. 자연의 신비로움과 신이 만든 이 세상의 경이로움을 노래한다. 도시 문명의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에 놀란다. 기괴한 괴물처럼 보였으리라.

쉬엄쉬엄 읽어 나아갔다. 읽다가 멈추고 생각하고, 다시 읽다가 멈추고 음미하고, 또다시 읽다가 멈추고 웃고. 천천히 사막을 여행하다가 오아시스에 쉬듯 그렇게 읽어 나아갔다. 단순하고 꾸밈이 없는 글이다.

문득문득 철학 성찰이 나온다. 아마 글쓴이에게는 그저 당연한 상식이라서 내가 철학 성찰이라는 단어를 붙인 게 이상할 테지만. "투아레그족 사람들이 삶을 통해 궁극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이다. 이는 곧 진정한 자아와 만나고, 자기 안에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34쪽) "이모하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칭한다. 이모하는 자유인이란 뜻이다. "(65쪽)

우리에게는 당연하고 평범한 일과 사물이 유목민 청년에게는 경이롭고 이상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종종 우리를 향한 비웃음이 되기도 하니, 계속 유쾌하진 않았다. 구체적으로 여기 그 일들을 적진 않으려 한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접어 두었는데, 누군가의 읽는 재미를 뺐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싶어, 그냥 그대로 접기로 했다.

이 책을 뭐라 부를까. 현대 도시 문명 비평서. 사막 유목민 문화의 지혜. 유목민 청년의 파리 체험기. 투아레그족의 투쟁사. 앞의 두 가지에 집중된다. 사막에서는 필요로 충분하지만, 도시에서는 욕망 때문에 불충분하다. 도시에서 필요한 물질은 가까운 상점과 인터넷 쇼핑몰에 가득가득 있으나 부족한 정신과 위로는 찾을 길이 막막하니. 허영을 버리라고? 욕망을 줄이라고? 그게 어디 쉬운가. 신과 신화 대신 과학으로 설명되는 세상. 자연의 질서가 아니라 이성의 질서에 맞춰 사는 사람들. 스타에 열광하며 자아 정체성은 흐릿한 우리들. 그런 이들을 바라보는 이방인의 눈.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머리를 극적거리는 순진한 유목민 친구, 무사 앗사리드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도시에 사는 나 스스로한테 쓴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사막 문화와 도시 문화가 서로의 모습을 반사시킨 만화경을 보는 듯 즐거우면서도 어지러웠지만.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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