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딕의 단편소설집이 나왔다. 이 책이 나온 건, 영화의 힘이다. 스필버그 감독이 딕의 단편소설 [마이러리티 리포트]를 영화로 제작하고 있단다. 오렌지 빛 광고 띠가 큰 글씨로 그 사실을 알린다.
딕의 문체는 건조하다. 딕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꼭 모래알을 씹는 것 같다. 등장 인물들은 감정이 없는 인형이다. 글쓴이는 현대 문명과 현대인을 기발한 상상으로 비웃는다. 그의 비웃음은 읽은 사람의 심장을 꽁꽁 얼릴 만큼 차갑다.
이 책은 예외다. 단편소설집을 읽으면서 키득키득 웃느라 배꼽이 뒤집어졌다. 필립 딕을 세계 최고의 익살꾼으로 기네스북에 기록하라! 능청과 익살, 딕한테 그런 면이 있을 줄이야.
[스위블]은 황당한 개그 펀치다. 딕은 노련하면서도 능청스럽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사나이. 스위블을 고치러 왔다고 한다. 도대체 스위블이 뭐야. 명함을 보니, 그는 미래에서 온 사람이다. 도대체 스위블은 뭔가. 미래의 사람들이 모두 갖고 있다는 그것은. 그거 혹시 "새로 나온 볼륨 업 브라."(17쪽) 아닐까.
[스위블]은 작가의 집필 당시 미국 매카시즘에 대한 우스개다. 미래에서 온 사나이는 말한다. "신형 스위블을 소유하게 될 여러분은 많은 혜택을 받으시게 될 거예요. 이제 자신의 생각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안도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느끼시게 됩니다. 여하튼 다른 사람과 이념이 달라질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더구나 스위블이 지나가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면 덥석 잡아먹을 테니까요."(27쪽)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가 없는 사회를 그린다. 죄를 저지르기 전에 잡히고 만다. 예지 능력을 지닌 세 명이 미리 일어날 범죄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작가랑 머리 싸움하는 재미가 있다.
[물거미]는 작가의 동시대 SF 작가들에 대한 우정이다. SF 작가를 예언자라고 말하면서, SF팬이라면 다들 아는 실제 작가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당시 SF잡지 편집자도 등장한다. 자기 이름과 작품도 쓴다, 이렇게. "필 딕이라는 작가가 썼을 거예요. 그 디펜더스라는 소설."(161쪽)
필립 딕은 레이 브래드버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 남자는 짧게 깎은 가발에 나비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둥그스름한 얼굴에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어도 눈만은 강렬히 빛이 났다."(151쪽)
[그래, 블로벨이 되는 거야!]은 거의 내 예상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멘델의 유전법칙 1:2:1을 예측하지 못했으나 그 후론 내 예상이 들어 맞는 걸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