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을 배우는 순서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현재 어떻게 배우고 있는가. 일본어만 보자.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부터 외운다. 외워지는가. 비슷비슷한 글자가 많아서 일본 가나를 완전히 익히고 제대로 쓰려면 최소 한 달이 걸린다. 그것도 날마다 꾸준히 연습장에 쓰고 쓰고 또 써야 가능하다.

주변에 일본어 잘 하는 사람이나 일본어 강사한테 물어 보라. 당신은 그 어려운 일본 글자를 얼마만에 익혔냐고. 거의 대부분 두 달 이상이라고 답할 것이다. 심지어 일 년이 넘게 걸렸다고 대답하는 분도 있으리라. 제대로 완전히 익히는 수준까지라면 아마 이 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진 않을 듯.

일본 글자를 외운 다음에 뭘하는가. 이제 교재 1장으로 들어간다. 인사말 배운다. 단어 외운다. 문법 익힌다. 그럭저럭 나아간다. 하지만 한자를 익히는 장에 가서는 슬슬 숨이 막히고 동사 활용이 나오자 이내 일본어는 쳐다보기도 싫다. 그렇게 해서 이 교재 저 교재 쌓이고 마침내 배추를 셀 시각이 온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배우는 순서를 가꾸로 해 보자.

기존 외국어 배우기 순서가 모국어를 배우는 순서와 반대다. 소리보다 글자를 먼저 익힌다. 어린 시절 말을 어떻게 배웠지는 생각해 보자. 듣는다. 들은 소리를 그대로 따라 말한다. 글자를 배운다. 들은 소리를 글자로 쓴다. 쓴 글자를 읽는다.

이 책은 글자보다 소리부터 익히라고 권한다. 한 달 정도 CD나 MP3 플레이어로 꾸준히 들어 본다. 귀가 야들야들해지면 이제 입이 간질간질해질 것이다. 그러면 이제 말을 해 보면서 책을 편다. 글자를 보자.

진도는 2과씩 나가는 게 좋다. 반말과 존댓말을 교차시켜 반복 훈련할 수 있게 구성했기에. 반말을 설명한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기존 일본어 교재들이 존댓말 위주로 구성해서 일상적으로 친한 사람들끼리 쓰는 반말을 거의 익힐 수 없었다. 그러니 반말이 주로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책이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러기에 책부터 보진 말 것. 들어서 익히기 전에 책부터 보려는 습관이 들면 지금까지 세운 공든 탑 와르르 무너지는 꼴이니. 귀가 익을 때까지 눈은 감으라.

집에서 일본 위성 방송을 볼 수 있다면 뉴스를 보라. 일본어 특유의 억양을 익히는 데 좋다. 내용은 화면으로만 짐작하고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뜻이 아닌 그 소리에 익숙해지라는 말이다. 특히 일본 여자 아나운서의 콧소리를 내며 소근거리는 목소리는 독특하다. 귀가 간질간질 즐거운가. 일본어가 당신의 귀에 무르익었다. 이제 책을 펴도 좋다. 바로 이 책을.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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