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
김승옥
일신서적출판사

김승옥, 이 작가를 처음 만났던 때가 언제였더라. 고2때였던가. 그때, 집에 무슨 한국소설전집이 있었다. 검정색 표지에 세로 쓰기. 종이 빛깔이 누렇게 바랜 책이었다. 지금 그 책들은 어디로 갔는지, 원. 아무튼 그 책에서 한국 현대 소설가들의 작품을 몇 편 읽었다. 작가 이름은 거의 기억나지 않고 작품의 내용은 어렴풋이 지금도 생각난다. 김승옥, 이 작가도 그 책에서 만났다. 읽었던 작품이 [서울 1964년 겨울]이었다. 참 희한한 소설이었다.

김승옥과 두 번째로 만난 것은 컴퓨터 통신을 열광적으로 하던 대학 2학년 1학기 초였다. 그 때, 나는 하이텔 문학관에 올라온 작품들을 모조리 프린트해서 읽었다. 지하철로 학교를 오갈 때 날마다 한 작품씩 읽었던 옛 일이 갑자기 새롭게 느껴진다. 하이텔 문학관에 올라와 있던 <무진기행>을 읽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뿌연 안개로 자욱한 무진, 그 시골 마을.

그의 단편집을 읽는다. 김승옥은 다시 새롭게 다가왔다.

1960년대 작품이 마치 요즘 작가의 작품처럼 읽혀지다니, 이럴 수가! 김승옥의 소설 세계가 철저한 개인주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김승옥은 1960년대 작가다. 60년대에 한국 사회 하면, 생각나는 단어들, 4.19 시민혁명, 5.16 군사쿠데타, 군사독재, 베트남 참전, 3선개헌안. 이런 우울하고 답답한 억압 사회에서 김승옥의 소설 세계는 이기적이고 속물인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는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판돈으로 실컷 즐기고 끝내 자살하는 서적 외판원, 그의 자살을 묵인하는 구청 직원과 대학원생이 나온다. <그와 나>에서는 기차 좌석을 뺏기지 않으려고 자는 척하는 대학생. <생명연습>에서는 신의 계시로 거세했다고 속이고 밤에 몰래 수음하는 선교사, 유학 가기 전에 애인을 능욕하여 자기 것으로 만든 대학 교수, 돈을 위해 집안에 남자들을 끌어들이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남자 관계를 글로 쓰는 누이, 그런 어머니를 죽이려는 형. 이런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행동들이 왜 우리에게 밉게 보이지만은 않는 것일까.

김승옥의 소설은 60년대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지금 독자한테도 충분히 신선한 소설로 읽혀진다. 감각적인 문체, 세련된 한국어 구사, 소설 구성의 완결성, 현란한 기교, 실험 정신 등은 오히려 지금 90년대 한국 신세대 작가들을 능가한다. 거창하고 무거운 주제를 벗어나 개인적이고 가벼운 주제로 쓰여진 소설이기에 요즈음 소설 경향들과도 무척 잘 어울리는 듯하다.

개인주의 문학을 표방한 김승옥은, 아쉽게도 상업주의와 짝짝꿍한 후에 단명하고 말았다. 김승옥 문학의 한계랄까. 소시민의 일상을 자신있게 표현했다는 그의 문학 세계는 그 어떤 극복 의지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1964년 발표작 <무진기행>, 1965년 발표한 <서울 1964년 겨울>, 1977년작 <서울의 달빛 0장>이다.

<서울 1964년 겨울>은 한국 소설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는다. 1965년 작가는 이 작품으로 사상계사 제정 제10회 동인문학상 수상한다.

1966년, <무진기행>을 '안개'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각색하면서 작가는 영화계에 뛰어든다. 역시나 내 느낌이 맞은 모양이다. 이어령의 <장군의 수염> 영화각본으로 대종상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제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여 분발했지만,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멈춰 버렸다.

절필 이후에 영적 체험을 해서 화재를 뿌리기도 했다.

그의 콩트는 무척 재미있다. <움마 이야기>는 꼭 시사 만화 같다. 서울경제신문에 연재 만화 '파고다 영감'을 그렸다는 작가의 능력을 이 짧은 소설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끝부분을 읽고 어찌나 웃었던지. 김승옥의 콩트들을 읽어보니, 역시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개인적인 세계에 집착한 초기 작품들에서는 서울대 불문과 학생이었던 작가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서울 1964년 겨울
그와 나
생명 연습
건(乾)
환상수첩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염소는 힘이 세다
무진기행(霧津紀行)
차나 한 잔
서울 달빛 9장(章)
야행(夜行)
어떤 결혼 조건
사랑이 다시 만나는 곳
정직한 이들의 날
산다는 것
저녁 식사
반닫이 여인
움마 이야기
이상 18편.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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