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또는 M
N or M?
애거사 크리스티
황금가지

다행스럽게도 토미와 터펜스 시리즈는 출간 순서대로 읽게 되었다. 첫 작품은 젊은 시절 연애 할 때를 그린 '비밀 결사'이고 후속작은 둘이 결혼해서 부부가 된 '부부 탐정'이었다. 세 번째 소설은 중년 부부로 장성한 아들 딸이 있는 'N 또는 M'이다.

이제 남은 소설은 '엄지손가락의 아픔'과 '운명의 문'이다. 그렇게 총 5권이 토미와 터펜스 시리즈로 있다.

2차 세계 대전을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국 내부에 독일 첩자 간첩이 있는데, 이들을 제5열이라고 부르고 N은 남자, M은 여자를 뜻한다.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은 대개 그렇듯,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진다. 역설 심리를 이용한 반전을 자주 쓴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으로는 당연히 그 정체를 알기 어렵고, 독자는 작가의 반전 펀치를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토미와 터펜스 시리즈는 전통 범죄 수수께끼나 진지한 스파이 첩보 이야기를 바라고 읽으면 안 된다. 코믹 모험 만화책을 읽는다는 마음 가짐으로 읽어야 한다.

후반부에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간첩이 누군지 몰라서 이래저래 탐색하는 과정이라서 조금 지루하다. 유괴에 총이 발사되고 사람 죽고 간첩을 알아내고 토미가 납치되면서 빛의 속도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 소설의 유머 코드가 본인 취향에 맞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방심하고 있다고 자신도 모르게 킥킥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즐거운 독서가 되리라. 2장에서 가짜 신분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는 중년 부부의 모습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개그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 유머 예감은 뒤로 갈수록 착착 맞아 들어서, 어디까지 어느 수준까지 웃길지 짐작도 못할 지경에 이른다. 이상한 코고는 소리가 압권이었다. 코미디 방송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갑작스러운 대화 우스개는 신의 경지다. 

"그거 아십니까? 부인은 대단하십니다.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젊은이는 감명을 받은 듯했다. "칭찬은 그만둬요. 나도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굳이 당신까지 떠벌릴 필요는 없어요." (251쪽)

초중반까지는 뭔가 좀 허술하고 덜렁거리며 그냥저냥 사건이 해결될 듯 보이는데, 후반부에는 절묘한 반전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가 불꽃놀이처럼 펑펑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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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사나이 할리퀸
The Mysterious Mr. Quin
애거사 크리스티
나중길
황금가지
★★☆☆☆

'신비의 사나이 할리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할리퀸과 사교계의 명사 새터스웨이트, 이 두 사람이 범죄 수수께끼들을 푸는 단편집이다. 제목을 보면 주인공이 할리퀸인데 정작 이야기에서는 새터스웨이트가 미스터리를 풀도록 격려하거나 힌트를 주는 정도만 한다. 별 하는 일이 없어서 엑스트라 같았다.

무대 분위기를 중시해서 썼다. 이색적인 장소에서 범죄 미스터리가 발생한다. 유령이 출몰하는 저택, 화려한 카지노 도박장, 위험한 절벽 등. 특히 자살 미스터리를 많이 다루었다. 알고보니 자살이 아니었다는 식이다.

우연의 일치가 잦고 트릭이 대체로 작위적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추리 퀴즈 같다. 본격 추리물을 기대하고 책을 펴지 마라. 우쿨렐레 줄 나왔을 때는 정말이지... 카노지 딜러가 우승자를 잘못 말해주는데도 주변 사람들이 가만 있고 그냥 받아들인다는 건 수긍이 안 되고...

장편으로 쓰기에는 부족하다 싶은 것들을 모아서 할리퀸을 등장시키며 통일성을 부여해 12편을 모아 책으로 묶은 모양새다.

체스터튼의 단편소설 같은 분위기가 나는 단편도 있었다, 수준을 동급으로 놓긴 어렵지만. 트릭은 이미 애 여사가 다른 소설에서 쓴 유형을 반복하는 게 많아서 어디선가 이미 읽은 듯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노리는 분위기는 예술적인, 그러면서 연극적인, 드라마 같은 극적인 인생의 단면 같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자연스럽지 못한 인상을 주는 결과가 나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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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박인용 옮김
황금가지 펴냄


대개들 제목 때문에 이 책 읽었을 것 같다.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 뭐지? 누가 왜 부르지 않았다는 거야? 에번스는 누구야? 호기심에 읽기 시작한다.

보비는 골프를 치다가 공이 벼랑 쪽으로 날아가 버린다. 가 봤더니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한다. 죽어가면서 남긴 한 마디,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 그리고 그의 소지품으로는 미인 사진 한 장.

시체를 계속 지켜만 볼 수 없었던 보비는, 6시에 교회 가서 오르간 연주하기로 되어 있어서, 마침 근처에 온 배싱턴프렌치라는 사내한테 자리를 맡기고 떠난다.

친구 배시를 만나러 런던으로 가는 열차에서, 어릴적 친구인 프랭키 영애(귀족의 딸)를 만나서 그 사건 이야기를 나눈다.

보비는 죽은 프리처드의 여동생을 만나고 실망한다. 사진 속 그 여자와는 너무 다른데... 결혼하고 나이들고 지치면 저리 되나 싶었다. 

여동생 부부, 즉 케이먼 부부는 죽은 프리처드가 남긴 말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 자리에서는 없었다고 했다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아서, 보비는 나중에야 편지로 알려준다.

그러던 중 보니는 독살 위험에서 간신히 살아난다. 그리고 신문에 난 사진이 자신이 본 그 미인 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누군가 사진을 바꿔치기 한 것인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자기 대신 시체를 지켜 주겠다던 그 '배싱턴프렌치'라는 남자밖에 없다.

이런 보니의 이야기를 들은 프랭키는 배싱턴프렌치의 형이 사는 곳을 알아내고 잠입 수사를 하기 위해 위장 자동차 사고를 그 집 앞에서 내고 가짜 뇌진탕 환자를 연기해서 집 안으로 들어가 며칠간 머무르게 된다.

이상으로 전반부 이야기를 요약해 봤다.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 발생으로 호기심을 끝까지 유지해 계속 읽게 하는 힘이 있다.

두 젊은 남녀의 무모하고 유쾌한 탐정놀이다. 만화 보는 기분이었다. 비범한 탐정이 놀라운 추리력을 발휘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래저래 좌충우돌 하다보니 범인을 알아내는 식이다.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는 이들한테는 맛있는 책이다.

에번스가 맥거핀(궁금하게만 할 뿐 존재하지도 않거나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심지어 소설 속 주인공도 그런 거 아닌가 의심한다, 에번스는 실제로 있는 인물이며 정말 중요한 사건의 핵심이었다. 에번스가 누구인지, 왜 죽어가면서 그렇게 이상한 말을 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다.

거짓말 뒤집기가 많아서 범인의 친절한 설명 편지를 읽었어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알고나면 간단하다.

그 간단한 걸 감추기 위해서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꼬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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